봄의 절정이 맛과 향으로 팡팡 봄나물의 계절이 왔다. 나는 제철 나물이 될 식물들을 만나고 맛볼 생각에 파릇파릇 새순처럼 들뜬다. 낮의 길이가 밤의 길이를 추월하는 춘분을 기점으로 양지를 골라가며 각종 새순이 돋는다. 민가 주변에선 냉이와 달래와 쑥이 대체로 먼저 나온다. 좀더 깊은 골짜...2025-03-22 20:42
찻잎 향 나는 녹나무 도마를 매만지며캄포 도마를 선물로 받았다. 석 달간 목공 수업을 들으며 정성껏 만들었다 한다. 향기가 나니 주방에 걸어두는 것만으로도 기분을 좋게 해줄 거라고 지인은 도마를 자식 대하듯이 쓰다듬으며 말했다.캄포는 녹나무다. 정확하게는 녹나무에서 얻는 정유 물질인 장뇌(樟腦)를 말하는...2025-02-08 20:49
겨울철 새빨간 열매, 이 나무는 먼나무?새해가 밝았지만 내 기분은 어둡고 착잡하다. 나만 그런 건 아닐 거다. 2024년 12월은 잔혹했다. 난생처음 계엄령의 밤이 지나갔고, 연말에는 제주항공 참사의 충격으로 세밑이 캄캄하기만 했다. 일상이 뒤틀릴 때 나는 최대한 나무 가까이 다가가 나무에 기댄다. 나무가 ...2025-01-11 17:30
겨우살이 발견하면 폭격도 멈췄다지우살이는 다른 나무에 뿌리 내리고 사는 기생식물이다. 기생식물이지만 나무다. 그것도 상록수다. 나무 꼭대기에 있으니 주변 식물과의 빛 경쟁에서 대체로 앞서는 편이다. 스스로 광합성을 하고 양분을 만든다. 그래서 겨우살이를 정확하게는 반(半)기생식물이라 부른다. 한겨울에...2024-11-09 22:08
어디에 쓰여도 괜찮은 풀, 겐티아나용담이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가을이 온 것이다. 초록색 잎을 배경으로 트럼펫을 닮은 푸른 보라색 통꽃 대여섯 송이가 하늘을 바라보며 피는 용담. 짙은 파랑과 보라 사이, 좀처럼 인간이 흉내낼 수 없는 강렬한 색감과 빛깔이다. 그런데 그 통꽃을 한 번 활짝 피우고 마는...2024-09-14 17:39
붉나무 얼굴아 붉어져라, 가을 오게붉나무는 야생에 정말 흔하다. 누가 돌보거나 보살피지 않아도 알아서 큰다. 억척스러운 기질로 뿌리를 내리고 양분을 모아 군락을 이루는 식물이다. 산을 깎으면 으레 생기는 비탈진 곳이나 척박한 땅에서조차 기세등등하게 자란다. 특히 도로를 내거나 건물을 짓기 위해 깎아낸 ...2024-08-17 20:24
“너도 외롭지 마” 너도밤나무가 건네는 위로와 감탄나도밤나무와 너도밤나무는 실제로 우리 땅에 사는 나무 이름이다. 한 식물의 이름을 새롭게 정해야 할 때 식물학자들은 접두어 ‘나도’와 ‘너도’를 종종 갖다 붙였다. 기존에 이름이 있던 식물과 생김새가 닮았거나 혈통이 같은 경우에 그랬다. 나도바람꽃과 너도바람꽃, 나도개...2024-07-20 23:38
노래하는 가문비나무의 깊은 울림악기가 되는 나무들이 있다. 그랜드피아노 한 대에는 여러 종류의 나무가 들어간다. 향판은 울림이 좋은 가문비나무, 금속 현을 단단하게 잡아주는 부분은 너도밤나무, 다리는 튼튼한 참나무류, 흰건반과 검은건반은 결이 부드러운 목재 중에 색을 고려해서 각각 피나무와 흑단을 ...2024-06-15 20:12
뭉게뭉게 구름꽃 피우는 5월의 나무귀룽나무를 서양에서는 ‘메이데이트리’(May day tree)라고 부른다. 노동절 무렵에 꽃이 활짝 피기 때문이다. 귀룽나무는 벚나무와 가깝다. 우리나라 산기슭에 그렇게 많이 자라도 가로수로 많이 심지 않으니 사람들이 잘 모른다. 그런데 귀룽나무를 알게 되면 그 화려한...2024-05-04 19:33
팽나무에는 뭔가 좀 특별한 구석이 있다팽나무와 느티나무가 서로 닮아서 헷갈린다고 그 둘을 어떻게 쉽게 구분하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내 답변은 이렇다. “열매가 아예 달라요. 팥알을 닮은 빨간 열매가 달리면 팽나무입니다. 열매가 달리기나 한 건지 아리송하다면 느티나무예요. 느티나무 열매는 잎에 바짝 붙어...2024-03-31 16:53
아야! 나무는 아픈데 인간은 ‘약수’라며 벌컥벌컥캐나다 갔다가 들어올 때 너나없이 메이플시럽 참 많이 사 온다. 그 먼 곳에 직접 가지 않아도 우리는 다양한 종류의 메이플시럽을 지금 당장 골라 쇼핑 바구니에 담을 수 있다. 나도 메이플시럽을 종종 택배로 시켜 먹는다. 갓 구운 핫케이크나 와플에 조르륵 달콤한 그 시럽...2024-03-02 16:49
비우고 또 비우다, 먼 곳으로 날아가려…겨울에 꽃이 없다고 방 안에 틀어박혀 한숨을 내쉴 필요는 없다. 마른 넝쿨이 질서 없이 우거진 곳을 지나가다보면 꽃보다 진기한 박주가리 씨앗을 만날 수 있다. 이보다 우아하게 비행하는 생명체가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고운 깃털을 달고 둥둥 떠다니는 박주가리 씨앗 말이다....2024-01-27 20:22
꾸미려 애쓰지 마라, 찔레꽃은 말한다겨울날 숲으로 들어가다보면 길섶에 팥알만 한 크기의 빨간 열매를 단 덤불을 만난다. 찔레꽃이다. 찔레꽃은 북한 식물분류학자들이 쓴 식물도감에서는 들장미로 통한다. 실제 장미 품종을 만들기 위해 접붙일 때 찔레꽃의 도움을 받는다. 장미와 같은 계보라는 건 가지에 돋은 뾰...2023-12-24 1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