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13일, 중국 허난성 정저우시의 한 명문 중학교에 근무하던 여성 교사가 사직서를 냈다. 그의 ‘사직 이유’에 쓰인 글자 수는 단 열 개. “세상은 아주 넓고, 나는 (그 넓은 세상을) 나가서 보고 싶습니다.”(世界那么大, 我想去看看.)
꼬박 10년을 근무한 안정된 직장을 박차고 나와 ‘넓은 세상’으로 떠났던 그는 당시 35살의 구사오창이다. 그의 사직서는 친구들을 통해 인터넷에 회자됐고, 그는 곧바로 ‘스타덤’에 올랐다. 누구나 하고 싶지만 아무도 감히 하지 못하는 ‘희망사항’을 단 열 글자로 압축해서 표현한, 한 편의 시구절 같은 그의 사직서는 아직도 중국에서 전설로 이야기된다. 구사오창은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 나왔다.
2020년 9월24일, 또 다른 여성이 길을 떠났다. 당시 나이 56살. 중년이지만 중국 농촌이나 소도시에선 이미 ‘노년의 반열’에 오를 나이. 또래의 중국 여성들은 대부분 손주를 키우거나 동네 공원과 광장에서 아침저녁으로 ‘광장무’를 추며 특색 없는 보통 중노년의 삶을 살 것이다. 그 역시 길을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딸이 낳은 쌍둥이 손주들을 돌보며 또래들과 비슷한 인생을 살았다. 하지만 손주들이 유치원에 갈 나이가 되자 그는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집 문을 박차고 나왔다.
수중에 모아둔 얼마의 돈과 대출, 딸이 보태준 돈을 다 긁어모아서 마련한 작은 폴로 자동차에 최소한의 짐을 싣고 ‘부~웅’ 정처 없는 여행길에 올랐다. 남편은 집 문을 나서는 그를 향해 비웃음인지 저주인지 모를 ‘예언’을 퍼부어댔다. “며칠도 안 돼서 금세 돌아올걸!” 하지만 그는 2년 동안 단 한 번도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남편이 지배하는 ‘인형의 집’을 떠나 더 넓은 세상이라는 ‘자신만의 집’을 떠돌았던 그는 지금 어떻게 됐을까? 그의 이름은 쑤민이다.
쑤민은 혼자 길 위를 여행하는 동안 스마트폰으로 자신의 여행 이야기를 찍어 틱톡과 콰이서우 등 동영상 플랫폼에 올렸다. 재미 삼아 올린 게 아니다. 그는 그것이 돈이 된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알았고, 자신도 운이 좋으면 동영상의 인기를 등에 업고 경제적 자유까지 얻으리라고 생각했다.
집을 나올 때 쑤민에게는 우리돈으로 200만원이 채 안 되는 여비밖에 없었다. 그가 찍은 길 위의 영상은 딸과 사위의 도움을 받아 수많은 인터넷 동영상 플랫폼에 올려졌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동영상 구독자 수는 폭증했고 ‘쑤민’이라는 이름이 중국 인터넷 검색창의 인기 검색어로 떠올랐다. 56살 여성의 ‘나 홀로’ 가출 여행과 그 뒤에 드리운 ‘은밀한’ 사연은 코로나19와 희망 없는 세상에 지쳐 있던 보통 사람들의 호기심과 열망을 자극했다.
20~30대임에도 쉽게 집이나 회사 문 밖을 나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무려’ 56살에 ‘그것도’ 빈털터리 아줌마가 달랑 낡은 자동차 한 대와 무모한 용기만을 가지고 집을 나가 혼자 세상을 여행한다는 ‘현실’에 환호했다. 그를 인터뷰하고 취재한 중국 매체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말했다. “쑤민의 나 홀로 가출 여행은 이제 모든 중국인의 ‘사건’이 됐다.”
쑤민은 지금 구사오창보다 더 유명한 ‘국제적인’ 스타다. 2021년 미국 <뉴욕타임스>가 ‘중국 페미니즘의 우상’이라고 소개하는 인터뷰 기사를 내보내면서 그의 명성이 더 자자해졌다. 중국의 주요 언론과 인터넷 매체는 앞다퉈 이 기이한 중년 여성의 ‘가출 여행기’를 다뤘고, 다큐멘터리 제작사는 그에 관한 다큐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자유 찾아’ 길을 떠난 쑤민은 이제 자유와 광명뿐만 아니라 명성과 돈도 한꺼번에 움켜잡았다. 사람들은 집 나간 쑤민을 중국의 ‘성공한 노라’라고 했다.
중국 작가 루쉰은 1923년 베이징여자사범학교에서 한 ‘노라는 집을 나간 뒤 어떻게 됐을까’라는 주제의 강연에서 헨리크 입센의 유명한 희극 <인형의 집>을 언급하며 이런 말을 했다. “노라에게는 두 가지 길밖에 없다. 하나는 타락하는 길이요, 다른 하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루쉰은 세상의 모든 노라가 남편과 가부장제가 지배하는 ‘인형의 집’을 떠나려면 ‘각성한 마음 이외에’ 핸드백 속에 돈, 즉 경제적 자유를 가져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쑤민은 핸드백 속에 넣을 두툼한 돈도 없었고 오로지 운전 기술과 작은 자동차 그리고 ‘각성한 마음’만을 가진 채 ‘자유를 향한’ 여행을 떠났다. 그는 타락하거나 집으로 다시 돌아오는 대신 경제적 자유와 인생의 빛을 찾았다.
“나의 전반생은 터널에 갇힌 것 같았어요. 빛을 볼 수 없었지요. 나중에 나는 빛을 찾아 떠났습니다. 그러자 빛이 내 앞에 나타났고 그것은 얼마나 아름답고 자유롭던지요!” 쑤민은 한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길을 떠나기 전 그의 전반생은 폭력적인 아버지가 군림하는 공포스러웠던 집, 그리고 애정 없는 결혼생활과 역시나 폭력적인 남편이 지배하던 중국판 ‘인형의 집’에 갇혀 있었다. 그 ‘집’은 빛이라곤 한 줄기도 볼 수 없는 ‘긴 어둠 속 터널’ 같은 세계였다.
2022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가 쓴, 자신의 엄마 이야기 <한 여자>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여자에게 결혼이란 삶 또는 죽음이었으니, 둘이 되어 보다 쉽게 궁지에서 벗어나리라는 희망일 수도 있고 결정적인 곤두박질로 끝날 수도 있다.”
스무 살에 남편을 만난 쑤민도 당시 처한 온갖 궁지에서 벗어나리라는 희망을 안고 결혼했지만 결과는 ‘결정적인 곤두박질’이었다. 자신보다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며 돈도 더 많이 벌었던 남편은 생활비를 주기는커녕 1원까지 철저히 계산해서 모든 생활비를 절반씩 분담하게 했다. 밖에서는 신사적인 품행으로 직장과 친척들 사이에서 ‘좋은 남자’로 통했던 남편은 집에선 쩨쩨하고 인색한 폭군이었다. 쑤민에게는 따뜻한 눈빛 한번 건넨 적이 없는 냉혈한이었다. 화나면 주먹도 휘둘렀다. 서른 살 이후 남편과 각방을 썼다. 같은 집에서 살 뿐 사실상 남처럼 살았다. 그래도 아이들의 장래와 다른 사람의 시선, 가족의 만류로 이혼만은 하지 않았다. 쑤민과 대부분 비슷한 처지인 주변 여성들의 “우리도 다 그렇게 산다”는 반응과 “그래도 바람은 안 피우지 않냐”는 엄마의 설득도 큰 영향을 미쳤다. 아니 에르노의 엄마가 ‘자기 앞에 있는 딸 속에 계급의 적이 있었다’고 느꼈듯이, 쑤민도 자신과 주변 사람들 그리고 사회적 인식의 한계라는 겹겹의 ‘적들’에 가로막혀 옴짝달싹 못했다.
‘그렇게 살다가’ 쑤민은 우울증에 걸리고 말았다. 우울증의 강도가 심해지면서 약성도 더 독해졌지만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급기야 그는 부엌칼로 자기 몸을 자해했다. 여러 번 자살을 생각했다. 어느 날 문득 ‘각성’이 왔다. 이러다 정말 죽겠구나! 그는 즉시 짐을 꾸려 자신의 유일한 재산이자 애마인 폴로를 몰고 집을 나왔다.
쑤민은 <뉴욕타임스>가 보도한 것처럼 애초 무슨 ‘페미니즘의 우상’이 되고 싶어서 치밀한 계획을 세워 떠난 게 아니었다. 페미니즘이 뭔지도 잘 몰랐다. 조남주 작가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중국에서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쑤민에 관한 다큐영화를 만드는 제작진이 쑤민에게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볼 것을 권유했고, 영화를 다 본 쑤민은 화가 잔뜩 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김지영은 너무 투정 부리는 거 아냐? 남편이 월급도 꼬박꼬박 갖다주고 생활비도 다 벌어다주면서 자신한테 지극정성으로 잘해주는데 무슨 우울증에 걸린다는 거야! 복에 겨워 투정을 부리는 거지….” 우울증은 자신과 같은 결혼생활과 인생을 살아보지 않은 ‘여자들’은 걸릴 자격도 없다는 듯이 말이다. 그랬던 쑤민이 ‘살기 위해’ 집을 나온 지 2년 만에 ‘중국 페미니즘의 우상’이 됐다. 여행길에서 우울증 약도 끊었다. 그리고 얼마 전, 쑤민은 언론매체에 공개적으로 ‘이혼 선언’을 했다. “남편과 이혼할 것이다. 그가 이혼해주지 않으면 이혼소송을 제기하겠다”면서. 그는 한창 여행 중일 때도 ‘이혼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혼’이라는 단어에 드리운 여러 가지 사회적 인식과 제약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자신이 세상 밖에 나와서 변했듯이 혹시 남편도 변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도 변하고 자신도 변했지만 유일하게 변하지 않은 건 남편뿐이었다.
2년 만에 잠시 집으로 돌아온 쑤민에게 남편은 “나가보니 더 이상 못 살겠으니까 돌아온 거냐! 넌 한평생 고통스럽게 살 팔자야!”라는 폭언과 함께 폭력을 휘둘렀다. 그 뒤 쑤민은 다시 짐을 들고 집을 나와 이혼을 선언했다. 그의 차는 더 이상 낡고 작은 폴로가 아니라 고급 기종의 커다란 캠핑카로 변해 있었다. 쑤민은 완전한 자유가 있는 자신만의 ‘집’을 비로소 찾았다.
2020년 쑤민이 여행할 때, 당시 80살의 ‘파파 할머니’인 양번펀은 또 다른 방식으로 ‘집을 나와’ 자신만의 긴 여행을 시작했다. 그는 연로한 탓에 쑤민처럼 차를 몰고 나 홀로 여행을 떠날 수는 없었지만, 대신 약 1.2평의 작은 부엌 식탁에 앉아 원고지를 펴고 한땀 한땀 수놓듯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풀어놓는 ‘글여행’을 떠났다.
그는 2022년까지 총 3권의 책을 펴냈다. 자신의 엄마 이야기에서 시작해, 가족과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담은 자전적 소설이다. 60살 무렵 당시 육아와 살림을 돕고 있던 딸의 집 부엌에서 처음 글을 썼고, 2020년 80살에 번듯한 첫 ‘작품’으로 출판됐다.
양번펀은 채소를 씻다가도, 가스불로 요리하다가도 순간순간 ‘쓰고 싶은 욕망’이 차오르면 바로 식탁 위에 원고지를 펴놓고 기억이 가물거리기 전에 글을 썼다. 그는 ‘그렇게 시작하면 다시 한번 긴긴 인생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라고 했다. 그가 ‘펜 여행’을 하게 된 중요한 계기도 행복하지 않았던 자신의 결혼생활과 그로 인한 온갖 쓸쓸함과 고통을 토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양번펀도 쑤민처럼 자신만의 ‘여행’을 통해 자신의 인생뿐만 아니라 새로운 중국 여성사를 썼다.
아니 에르노가 <한 여자>의 마지막에 썼던 말을 빌리면 ‘지배당하는 계층에서 태어났고 그 계층에서 탈출하기를 원했던 그들은 역사가 되어야 한다’.
베이징(중국)=박현숙 자유기고가
*북경만보는 베이징에 거주하는 박현숙씨가 중국의 숨은 또는 드러나지 않은 기억과 사고를 읽는 연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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