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중순 기자는 치타공 산악지대(CHT·Chittagong Hills Tracts) 반다르반으로 향했다. 랑가마티·카그라차리 등과 함께 치타공 산악지대를 형성하는 구역이다. 치타공 산악지대에선 1972년부터 약 25년간 줌마족으로 통칭되는 몽골계 원주민들의 무장투쟁이 벌어졌다. 1997년 정부와 평화협정에 서명한 이래 준자치구로 남은 이곳은 그들 고유의 부족장 통치가 이루어지고 있다. 1997년 협정 뒤 협정 서명파인 PCJSS(Parbatya Chattagram Jana Samhati Samity·Chittagong Hill Tracts People’s Solidarity Association)와 이를 거부했던 UPDF(United People’s Democratic Front) 간의 분파폭력이 간헐적으로 발생해온 산악지대 깊숙한 지대에는 공식적으로는 무장해제라지만 무기가 사라진 건 아니었다.
코란 모독 사진을 태그한 이 누구인가“이 지역 일대에서 무기를 구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1997년 협정이 실행되고 있지 않다고 지적하는 PCJSS 반다르반 대표 초바마웅마르마(45)는 ‘이대로 가면’ 무장투쟁 재개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며 그렇게 말했다.
아라칸군 니니마웅이 국경을 넘을 때 반다르반 타운을 지나 산악지대 깊숙이 거쳐갈 수 있는 건 이 지역 줌마족들과 라카잉들이 대체로 호형호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초바마웅마르마 대표는 아라칸주 라카잉들의 명분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줌마족 중 하나인 차크마족은 인도 쪽으로, 마르마족은 아라칸 쪽으로 이주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그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1997년 평화협정 조인 뒤 (방글라데시) 벵갈리들이 CHT 지역으로 이주하는 비율이 높아졌다. 벵갈리들의 인구 증가는 줌마족들이 아라칸이나 인도 미조람 등지로 이주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2012년 라무 사건 이후에는 이주가 더 늘었다. 수백 가구의 3천 명가량이 이미 아라칸 마웅도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농지도 제공받고 현지 도움도 받는 것으로 안다.”
그가 언급한 라무 사건은 2012년 9월29일 콕스바자르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타운 라무에서 발생한 무슬림들의 반불교도 폭동이다. 같은 해 아라칸주에서 6월과 10월에 발생한 반로힝야 폭동 사이 샌드위치 격으로 발생한 라무 사건은 아직껏 여러 의혹이 풀리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다. 폭동은 신원을 위장한 한 페이스북 사용자가 우탐 바루아라는 한 불교도의 페이스북에 코란 모독 사진을 ‘태그’하면서 시작되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정당을 초월한 무슬림 폭도들이 반불교도 폭동에 가담했다. 로힝야 난민도 일부 가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불교사원 12채와 가옥 50채가 불탔다. 방글라데시 사회는 충격에 빠졌고 대학생들을 필두로 여기저기서 ‘(불교도들에게) 부끄럽고 미안하다’는 반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그러나 우탐 바루아의 페이스북에 ‘의도적으로’ 코란 모독 사진을 태그한 이가 누구인지는 아직 미궁 속에 빠져 있다.
여하튼 초바마웅마르마의 말대로라면 라무 폭동은 평지에 사는 불교도뿐만 아니라 폭동의 영향이 거의 없던 치타공 산악지대 줌마족들의 이주까지 촉발한 셈이다.
‘피란’이라기보다는 ‘이주’이렇게 이주한 방글라데시 불교도들이 아라칸주에서 정착하는 곳은 다름 아닌 로힝야 주류 지역인 마웅도의 이른바 ‘모델촌’(1990년대 초반 군사정부가 개발하기 시작한 불교도 정착촌)이다. 지난해 초 아라칸주 정부 대변인 윈 미양인은 “방글라데시 치타공 지역을 떠나 아라칸으로 이주 오는 불교도들을 환영한다”며 “가구당 가옥 한 채와 2에이커의 농지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웅도 전역에는 40개 이상의 모델촌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석 달 전(2013년 5월께) 300가구 1500명 이상의 방글라데시 라카잉 ‘난민’들이 이곳으로 피란 와서 마웅도에 정착했다. 우리 단체 후원자들의 요청에 따라 난민들에게 현금과 식량, 옷가지 등을 두 번 제공했다. 교육받지 못한 테러리스트 벵갈리들의 공격 때문에 방글라데시에서 라카잉은 안전하지 못하다.”
지난해 8월 시트웨에서 인터뷰한 라카잉 비정부기구(NGO) 윈락(WinLak)의 우 카잉 콩 산은 그들을 ‘난민’이라고 했다. 치탁공 산악지대 줌마족들이 방글라데시 소수민족으로 차별받아온 건 사실이다. 그러나 방글라데시 쪽 상황을 종합 판단해본 그 현상은 ‘피란’이라기보다는 여러 해에 걸쳐 진행돼온 ‘이주’의 연장선이었다. 유엔난민기구(UNHCR) 다카 사무소 난민보호국장 스콧 폴은 라카잉족을 포함해 치타공 지구 불교도들이 ‘난민’으로 쫓겨날 만큼 급박한 상황이라는 말은 금시초문이라고 말했다.
“우리 난민캠프에서 NGO 차량을 운전하던 한 불교도 가족도 2012년 말 아라칸으로 이주했다. (국경과 인접한) 군둠 지역 불교도였는데 마웅도로 가서 농지를 제공받았다고 하더라.”
콕스바자르 쿠투팔롱 캠프 난민 샤피(20·가명)는 주변에서 불교도들의 이주 소식을 종종 듣는다며 그렇게 말했다.
“1989년에도 방글라데시 라카잉들이 이곳으로 넘어온 적이 있다. 그때는 버마 정부가 이 나라 시민이 아니라며 그들을 돌려보냈다. 그러나 지금은 정부가 그들을 환영하고 있다.”
대축출과 맞물려 진행된 불교도 정착윈락의 우 카잉 콩 산의 말은 현재 진행 중인 방글라데시 불교도들의 마웅도 모델촌 정착이 정부 정책의 일환임을 좀더 선명히 하고 있다. ‘나탈라’(Natala)라 불리는 아라칸주 모델촌이 개발되기 시작한 건 199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로힝야 대축출 작전과 맞물려 진행된 불교도 정착 정책은 방글라데시 라카잉은 물론 버마 내 다른 지방 불교도들의 라카잉 이주로도 이어졌다. 지난 20여 년간 몇 명이, 어떤 사람들이 모델촌에 정착했는지는 명확지 않다. 다만 지난 반세기 동안 ‘이슬라모포비아’를 통치 철학의 주요 모토로 삼았던 군사정권이 무슬림 주류 지역에 불교도 정착민을 정책적으로 이주시켜온 건 두 커뮤니티 간 갈등의 씨앗을 의도적으로 뿌린 거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방글라데시에서 소수민족으로 박해받으며 ‘벵갈리’에 치를 떠는 줌마족, 특히 마르마족들을 무슬림 지역으로 이주시키는 작금의 정책 역시 악화되는 종족·종교 분쟁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될 수 있다. 불교도 정착촌 주민들이 연루된 두치야단 학살 사태가 그 또렷한 교훈을 남겼다.
치타공 반다르반(방글라데시)=글·사진 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 Lee@penseur21.com취재지원 리영희재단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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