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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기도만 하고 있을 수 없기에

[미얀마의 연대 메시지] 한국 유학이 꿈이었던 학생 ‘초희’ “꿈과 미래를 접어두더라도 등교 거부”
등록 2021-07-14 13:59 수정 2021-07-15 00:10
초희(가명) 미얀마 MZ세대 수험생

초희(가명) 미얀마 MZ세대 수험생

저는 미얀마에서 대학입학시험을 앞둔 수험생입니다. 제 목표는 좋은 성적을 받아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고 한국 유학을 하는 것입니다. 꿈이 있기에 입시 준비와 한국어 공부를 병행하면서도 힘들기보단 항상 새로운 흥미와 열정을 얻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코로나19 감염병이 창궐했습니다. 학교는 문을 닫았고 수업은 비대면으로 전환됐습니다. 바이러스가 전국에 퍼지며 온 나라가 휘청거리는 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찬탈했습니다. 2021년 2월1일 당시 전화선과 인터넷이 모두 차단돼 라디오를 통해 쿠데타 사실을 알았습니다. 국민이 투표해 선출한 민주정부가 한순간에 무너졌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느낀 참담함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부모님이 자주 말씀하시던 ‘8888항쟁’ 시절 이야기가 떠올라 저는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제가 꿈꾸는 미래가 사라질까 걱정됐기 때문입니다.

14살 비구니까지 성폭행하는 무자비한 만행

미얀마 시민은 맨손으로 거리에 나섰습니다. 팻말을 높이 들고 평화롭게 행진하며 민주주의를 되찾으려 목소리를 냈습니다. 돌아온 건 머리를 노리고 날아드는 총탄이었습니다. 군경은 백주대로에서 시민에게 총격하고 밤이면 동네로 쳐들어와 난동을 부렸습니다.

한번은 군경이 우리 동네 골목까지 총을 쏘며 들어와 이웃집 청년 여럿을 체포했습니다. 집회에 참여했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총성이 매섭게 울려퍼지자마자 동네 사람 모두가 집 안에 켜놓은 전등을 끄고 숨죽인 채 몸을 웅크렸습니다. 소리 내거나 행패를 부리는 군경을 쳐다보다 들키기라도 하면 바로 공격 대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문을 열어주지 않고 버텨도 그들은 대문을 부수고 들어와 욕하며 마구잡이로 사람을 두들겨 패고 끌고 갔습니다.

그날 가련한 제 동생은 군경이 우리 집에도 쳐들어오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뜬눈으로 밤을 새웠습니다. 평소 하도 까불어 혼나기 일쑤였던 동생은 이 일이 있고 나서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말수도 부쩍 줄었습니다. 동생이 느낀 두려움과 마음속 상처가 얼마나 클지 헤아리기조차 힘듭니다. 이후로도 밤마다 총소리는 멎을 줄 몰랐습니다. 군경이 내뱉는 욕설과 총성에서 벗어날 길 없는, 그야말로 생지옥이 따로 없었습니다.

군부는 상상하기조차 끔찍한 만행을 계속 저질렀습니다. 여성과 아이에게 성범죄를 저지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심지어 출가해 수행하는 14살 비구니까지 성폭행했습니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는 쿠데타 이후 끊일 줄 몰랐고, 소식을 접할 때마다 제 가슴은 찢어지는 듯했습니다. 미얀마 여성들은 집 안에 머무를 때조차 안전하지 못합니다. 이런 만행을 보고도 우리는 기도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만 하는 일을 선택한 우리

때로는 우리 청년이 꿈꾸는 미래가 점점 멀어지는 듯합니다. 코로나19 사태와 쿠데타 탓에 학교에 가지 못한 지 벌써 1년이 지났습니다. 저는 학교가 너무 그립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선량한 시민을 학살한 군부가 국민을 노예로 길들이기 위해 만든 교육제도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꿈과 미래를 잠시 접어두는 한이 있더라도 저는 등교를 거부합니다.

지금 우리 MZ세대는 교실에서 평화롭게 공부해야 할 나이에 거리로 나가 민주주의 혁명에 뛰어들었습니다. 미얀마 청년 모두가 MZ세대라는 이름으로 연대하며 시민방위군을 조직해 항쟁을 이어온 지 두 달이 훌쩍 지났습니다. 부모 세대가 시민방위군에 참여하는 걸 걱정하며 말리더라도, 저는 MZ세대 한 사람으로서 또래 친구들이 무장투쟁을 선택한 이유와 신념을 완전히 이해하고 지지합니다. 머지않아 우리 청년과 시민의 힘으로 민주화 혁명을 이룩하면 모두가 꿈과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학교로 돌아갈 날이 반드시 오리라 믿습니다.

우리는 친절한 이웃 한국 국민이 미얀마를 힘껏 도와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와 비슷한 나이인 한국 청년들이 어떻게든 미얀마를 도와주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큰 힘을 얻습니다. 정말 좋은 친구를 뒀구나 싶어 마음이 뿌듯합니다. 미얀마 국민은 한국이 베푼 은혜를 절대 잊지 않고 가슴에 영원히 간직하겠습니다. 미얀마의 민주주의로 향하는 여정이 무사히 종착지에 이를 때까지 부디 한국 국민 여러분이 우리 곁을 지켜주길 부탁드리며 이만 줄입니다. 아예더봉 아웅야미!(혁명은 반드시 승리한다!)

초희(가명) 미얀마 MZ세대 수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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