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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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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된 국무장관, 한반도의 봄 열까?

국제 분쟁에 적극적 외교와 인도적 개입 강조해온 존 케리 신임 국무장관 지명자… 꽉 막힌 북-미 관계에 돌파구 열릴지 주목
등록 2013-01-04 22:29 수정 2020-05-03 04:27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집권 2기 외교안보팀 인선에 착수했다. 그 첫 단추는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의 후임으로 2012년 12월21일 존 케리 민주당 상원의원(매사추세츠주)을 지명한 게다. 무려 27년째 상원에서 외교안보 정책을 다뤄온 케리 지명자는 2009년부터 상원 외교관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왔다. 오바마 대통령의 표현처럼 “어떤 면에선, (케리 지명자가 살아온) 그간의 삶 자체가 국무장관직을 준비하는 과정이었다”고 말할 만하다.
케리 지명자는 1943년 12월 콜로라도주 오로라에서 태어났다. 미 육군 항공대 소속으로 2차 대전에 참전했던 부친 리처드 케리는 외교관이자 변호사로 활동했다. 재벌가인 포브스 집안 출신인 모친 로즈메리 이사벨도 2차 대전 당시 간호장교로 참전한 경험이 있다.
베트남 참전 뒤 반전운동 뛰어들어
매사추세츠와 뉴햄프셔 등 미 동부의 가톨릭계 기숙학교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케리 지명자는 1966년 명문 예일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그해 해군에 자원 입대한 그는 1968~69년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세 차례나 전투 중 부상을 당한 그는 여러 개의 무공훈장을 받기도 했다. 전쟁의 참상을 목도한 케리 지명자는 1970년 1월 귀국과 함께 반전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는 1971년 4월 ‘전쟁에 반대하는 베트남 참전군인회’(VVAW) 대변인 자격으로 상원 청문회에 출석해, 리처드 닉슨 행정부의 베트남 정책을 ‘전쟁범죄’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모든 외교 노력 다한 뒤에야”
1972년 치러진 연방 하원 선거에서 접전 끝에 석패한 케리 지명자는 이듬해 보스턴대 법학전문대학원에 진학했다. 1976년 졸업과 함께 지방 검사보로 활동하던 그는 1982년 선거에서 마이클 듀카키스 후보의 러닝메이트로 매사추세츠 주지사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이어 1984년 11월 연방 상원의원에 도전해 당선된 그는 이후 내리 5선에 성공한 베테랑 정치인이다. 2004년 민주당 대선 후보로 지명돼, 재선 도전에 나선 조지 부시 대통령과 맞붙어 간발의 차로 패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정책 성향은 어떨까? 상원 진출 이후 케리 지명자가 보여온 행보에서 실마리를 찾아보자. 상원 진출 직후 이란 콘트라 스캔들을 파헤쳐 이름을 알린 그는 1990년대 초반 역시 베트남전 참전자인 존 매케인 공화당 상원의원과 함께 베트남과의 외교관계 복원에 적극 나섰다.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인 1995년 두 나라가 재수교 협정에 서명한 것이 그 결실이었다. 비슷한 시기 발칸반도에서 피바람이 몰아칠 때는 보스니아와 코소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종학살을 막기 위한 ‘인도적 개입’의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부시 행정부 시절에는 행보가 엇갈린다. 애초 2002년 미 의회가 이른바 ‘전쟁결의안’을 통과시킬 때만 해도, 케리 지명자는 이라크 침공에 대해 ‘비판적 지지’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그는 전쟁이 시작된 직후부터 태도를 바꿔,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증파 계획을 맹렬히 비판하는 등 ‘반전’으로 확실히 돌아섰다. 2004년 대선 당시 공화당 쪽은 이 부분을 집중 부각시킨 바 있다.
“케리 지명자의 ‘외교정책 독트린’이란 게 있다면, 적극적인 개입 정책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꼽을 수 있다. 적이든 동맹이든 간에, 국제 무대에서 끊임없이 상대방의 의도를 확인하고 대화를 모색한다.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다가 기회가 찾아오면 재빠르게 대응한다. 협상가에게 꼭 필요한 면모다.” 케리 지명자의 전기작가인 더글러스 브링클리는 2012년 12월21일 외교안보 전문지 인터넷판에 올린 글에서 이렇게 썼다.
현안에 대한 견해는 어떨까? 케리 지명자는 2009년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를 방문해 바샤르 아사드 대통령과 회담을 한 바 있다. 당시 귀국길에 취재진과 만난 그는 아사드 대통령을 “개혁적”이라고 평가하며 “적절히 설득만 한다면 시리아가 이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는 선택을 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시리아 내전이 시작된 이후 그는 일관되게 아사드 대통령의 즉각적인 사임을 촉구해왔다.
오바마 행정부 2기 외교정책의 큰 축을 이루게 될 이란 정책에 대해선 ‘외교적 해결’을 확고한 원칙으로 삼고 있다. 강력한 경제제재로 이란에 압박을 가해, 협상을 통해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게다. 반면 리비아 내전 당시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맹국을 중심으로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해 반군을 지원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카이로의 봄’이 한창일 때는 친미 성향의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시리아 내전과 관련해선, 반군 진영에 미국이 무기를 지원해줘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상황에 따라 ‘비둘기파’와 ‘매파’를 오가는 모습이다. 판단의 기준은 뭘까?
“미국이 모든 외교적 노력을 다했다고 모두가 동의할 수 있어야 한다. 외교적 노력을 더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가 남아 있다면, (섣부른 군사행동은) 치명적인 역풍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케리 지명자는 2012년 4월25일 대담 프로에 출연해 이스라엘의 독자적인 이란 핵시설 공습 가능성에 대해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반대론’을 에둘러 표현한 것으로 읽힌다. 그는 “이스라엘이 (자국 방어를 내세워) 이란을 공격할 권리가 있느냐”는 질문에는 즉답을 피했다.
앞서 케리 지명자는 2009년 6월10일 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이란과 미국은 공통의 이해관계가 있다. 이를테면, 미국과 마찬가지로 이란은 탈레반을 혐오하고 아프가니스탄 국경을 통해 유입되는 마약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란은 국제사회의 일원이자 중동의 강국으로 대접받기를 원한다.” ‘협상’의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얘기다.
‘마멋’을 굴 밖으로 끌어낼까?
북한에 대해서도 같은 생각일까? 북한이 ‘은하 3호’ 로켓을 쏘아올린 2012년 12월12일 케리 지명자는 성명을 내어 영화 를 언급했다. 빌 머레이, 앤디 맥도웰 주연의 이 영화는 매일 똑같은 일이 반복되는 마법에 걸린 주인공의 좌충우돌을 그리고 있다. 그는 성명에서 “북한이 또다시 유엔 안보리 결의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도발적 행동을 통해 지역 안정을 해치고 있다”며 “로켓 발사는 이미 고립된 북한을 더욱 심한 고립 상황으로 몰 아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미국은 동맹국들과 함께 국가 안보 에 필요한 적절한 조처를 취할 것”이 라고 덧붙였다.
‘적절한 조처’는 무엇을 뜻하는 걸까? 케리 지명자는 2012년 3월 뉴욕에서 열린 ‘동북아시아 평화협 력 국제회의’에 참석한 리용호 6자 회담 북쪽 수석대표를 따로 만난 바 있다. 그는 당시 과 한 인터뷰에서 “(리 수석대표가) ‘중대 한 발언’을 했다”며 “북한은 미국과 지금까지와는 다른 관계를 맺기를 원하고 있으며, 더 이상 미국과 다 툼을 벌이고 싶지 않다는 뜻을 분 명히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과 거에도 (북-미 관계가) 건설적인 수 준에 도달한 적이 있었지만, 뭔가 잘못되며 관계가 어그러지는 일이 끝없이 되풀이돼왔다”며 “상황이 다시는 그런 식으로 흘러가지 않도 록 (북-미 관계의) 역학을 바꿔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라운드 호그 데이’는 북미산 마 멋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날이다. 해마다 2월2일 미 전역에서 기념행 사가 열리는데, 당일 마멋이 겨울잠 에서 깨어 굴 바깥으로 나오면 봄이 일찍 찾아올 것임을 뜻한단다. 이 때문에 겨울을 빨리 떨쳐내고 싶은 이들은 굴 밖에서 연기를 피워올리 기도 한다. 케리 지명자의 성명에서 ‘북-미 관계’의 봄을 예감하는 건 성 급한 일일까? ‘마멋’을 굴 밖으로 끌 어낼 수 있을까?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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