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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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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미국 극우들의 천국 되나

기독교 국가 케냐·우간다 등에 동성애·낙태 금지 같은 미국 극우의 가치 이식하려는 미 기독교 단체들의 ‘막장 선교’
등록 2012-08-07 14:15 수정 2020-05-03 04:26

“선교사들이 찾아왔을 때, 우리는 땅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의 손에는 성경책이 들려 있었다. 선교사들은 우리에게 눈을 감고 기도하는 법을 가르쳤다. 기도를 마치고 눈을 떴을 때, 땅은 그들 차지가 돼 있었다. 우리의 손에는 성경책이 들려 있었다.”

우간다, ‘동성애자 살해법’ 발의

케냐의 독립운동가이자 초대 총리와 대통령을 지낸 조모 케냐타가 남긴 말이다. 본명이 ‘카마우 와 응엔기’였던 그 역시 1914년 기독교식 세례를 받고 한때 ‘존 피터’란 이름을 사용했단다. 2009년 말을 기준으로 케냐의 3860만 인구 가운데 기독교인 수는 전체의 83%에 이르는 약 3200만 명이다. 몸바사 등 동부 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전통적인 이슬람권이 형성돼 있긴 하지만, 케냐는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기독교 국가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케냐만이 아니다. 멀게는 15세기부터, 가깝게는 20세기 중반까지 아프리카 전역으로 유럽 출신 선교사들의 발길이 퍼져나갔다. 선교사들의 뒤를 따라 군대가 들어왔고, 이내 식민화가 이어졌다. 케냐타 전 대통령이 꼬집은 것도 바로 이것이다. 지금도 잠비아(98%), 라이베리아(87%), 우간다(84%), 말라위(82%), 짐바브웨(78%), 부룬디(75%) 등지는 압도적인 기독교 국가로 남아 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아프리카에서, 다시 선교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바람의 진원지는, 유럽이 아니라 미국이다.
미국의 진보적 싱크탱크 ‘정치연구협회’(PRA)는 지난 7월24일 ‘아프리카적 가치의 식민화’란 제목의 보고서를 펴냈다. 모두 68쪽으로 이뤄진 이 보고서는 ‘미국 기독교 우파는 아프리카의 ‘성 정치학’을 어떻게 바꿔놨는가’란 부제가 붙어 있다. 조지 부시 행정부를 탄생시킨 크리스천코얼리션(CC)과 그 후신 격인 티파티에 이르기까지, 21세기 미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극우 성향의 기독교 근본주의 세력이 최근 몇 년 새 아프리카에서 벌이고 있는 ‘선교활동’의 실체를 파헤친 게다.
시작은 우간다였다. 2009년 9월25일 우간다 제8대 의회에 ‘법률안 제18호’가 제출됐다. 대표 발의자는 집권 국민저항운동(NRM) 소속 무명의 정치 신예 데이비드 바하티 의원이었다. 우간다 관보에 게재된 법안의 ‘입법 취지’ 항목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전통적 가족제도 보호를 위한 포괄적인 법적 장치가 필요한바, (1) 어떤 형태든 동성 간의 성적 접촉과 (2) 동성애를 조장 또는 인정하는 단체나 기관, 장소 등을 금지하며 (3) 전통적인 이성애에 바탕한 가족관계를 위협하는 내적·외적 요인들과 맞서 싸울 수 있는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공식 명칭은 ‘반동성애법’이었지만, 언론에선 이 법안을 ‘동성애자 살해법’이라 불렀다. 법안을 들여다보면 쉽게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법안 제2조는 ‘동성애를 저지른 자는 종신형에 처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제3조에선 미성년인 동성과 성관계를 하거나, 동성에게 성관계를 강요하거나, 동성애로 처벌을 받은 뒤 다시 적발될 경우, 사형에 처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동성애를 시도(제4조)하거나, 동성애를 방조·묵인(제7조)하는 경우에도 최대 징역 7년형에 처할 수 있도록 했다. 이쯤 되면 처벌 수위가 가히 ‘살인적’이다. 영국 <bbc>은 2010년 1월7일 인터넷판에서 인권단체들의 추정치를 종합해, “우간다 인구 3100만 명 가운데 성적 소수자는 약 50만 명에 이른다”고 전했다.

케냐, 헌법에 낙태·동성결혼 금지 반영

우간다 의회가 한창 논쟁을 벌이는 새, 국제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미국에선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직접 나서 “성적 소수자를 박해한다면 원조를 중단하겠다”며 우간다 정부를 압박했다. 국제적인 비난 여론에 밀린 우간다 제8대 의회는 결국 법안을 표결 처리하지 못한 채 2011년 5월 임기를 마쳤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새롭게 들어선 제9대 의회에 지난 2월 똑같은 내용의 법안이 제출된 게다. PRA는 보고서에서 “원조 중단 등으로 강하게 압박한 미국 등 서방국가들의 행태를 두고 현지에선 ‘신(新)식민주의적 행태’란 비난이 일고 있다”고 전했다.
비슷한 시기, 기독교세가 강한 인근 나라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사형 등 극한 처벌 조항은 없지만, 부룬디(2009년)·말라위(2010년)·나이지리아(2011년) 등지에서 앞다퉈 ‘동성애 금지법’이 의회를 통과했다. 짐바브웨·잠비아·가나 등지에서도 유사한 입법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으며, 세네갈·말라위·라이베리아 등지에선 성적 소수자를 겨냥한 ‘혐오폭력’ 사건이 폭증하고 있다. PRA는 보고서에서 “이 모든 현상의 배후에 미국의 보수 기독교 단체가 똬리를 틀고 있다”고 지적했다.
PRA가 대표적으로 꼽은 단체는 ‘미국 법과 정의 센터’(ACLJ)다. 이 단체는 극우 성향의 개신교 목사로 크리스천코얼리션을 이끌어온 팻 로버트슨이 1990년 설립했다. 텔레비전 설교로 유명세를 탄 로버트슨은 전세계에 걸쳐 39개 언어로 방송되는 (CBN) 운영 등을 통해 막대한 자금을 끌어모았고, 이를 바탕으로 공화당 우파 정치인들을 좌지우지해왔다.
로버트슨은 ACLJ 창립 이유로 “미국적 가족의 가치를 파괴해온 ‘미국민권연맹’(ACLU)에 맞서기 위해서”라고 밝힌 바 있다. 1920년 창립된 ACLU는 미 진보 진영을 대표하는 풀뿌리 인권단체로 회원 수만 50만 명을 헤아린다. 소수자 인권운동에 집중하는 ACLU에 맞서 ACLJ는 △종교의 자유 보호·신장(공공기관 종교활동 허용) △인간 생명권 보장(낙태 반대) △남녀의 혼인관계를 통한 가족제도 보호·강화(동성결혼 금지) 등을 주요 활동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우간다에서 ‘반동성애법’을 둘러싼 논쟁이 격렬해질 무렵인 2009년과 2010년, 이 단체는 느닷없이 아프리카에 2개 지부를 잇따라 개설했다. 케냐에 본부를 둔 ‘동아프리카 법과 정의 센터’(EACLJ)와 짐바브웨에 본부를 둔 ‘아프리카 법과 정의 센터’(ACLJ)다. 두 단체는 “아프리카 각국의 의회 의원들이 입법활동을 함에 있어, 기독교적 관점을 숙고하도록 적극적으로 로비활동을 벌이는 것”을 활동 목표로 삼고 있다.
실제 2010년 케냐에서 개헌 논의가 진행되는 동안, EACLJ는 현지의 저명한 목사 등을 동원해 동성애와 낙태 금지를 헌법에 명시할 것을 케냐 정치권에 촉구했다. 안팎의 반발에 밀려 이에 실패하자, 개헌 국민투표 불참운동을 독려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해 6월 치른 투표에서 개헌안은 64%의 찬성률로 무난히 통과됐다.
그렇다고 EACLJ의 활동이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한 건 아니다. “생명은 잉태되는 순간 시작된다”거나, “모든 성인은 결혼할 권리가 있으며, 혼인은 성이 다른 두 성인의 결합”이라는 등의 문구가 헌법에 반영된 게다. 각각 ‘낙태 금지’와 ‘동성결혼 금지’를 상징한다. 미국 기독교 우파들에겐 그야말로 ‘복음’일 텐데, 정작 미국에선 거센 비난 여론에 밀려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만민 평등’ 조항도 문제 삼아

그래선가? ‘아프리카인의 얼굴을 한 미국적 가치’를 퍼뜨리려는 미 기독교 우파의 행태가 위험수위를 넘어서는 모양새다. PRA는 보고서에서 “케냐 개정헌법 제27조 1항은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며, 동등한 법적 보호와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EASLJ 쪽은 이를 두고 ‘동성애 합법화의 문을 열어둔 것’이라고 주장하며 해당 조항 폐기를 위한 캠페인을 이미 시작했다”고 전했다. 이쯤 되면, ‘막 가자’는 얘기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b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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