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화요일.’ 미국에서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는 해, 민주·공화 양당의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당내 경선이 몰리는 2월 또는 3월의 화요일을 흔히 일컫는 말이다. 사회·경제적으로 다양한 미 전역에서 한날 경선이 치러지는 슈퍼 화요일은 후보자의 ‘당선 가능성’에 대한 가늠자 구실을 해왔다. 현행 경선 체제가 확립된 1976년 대선 이후, 이날 선전을 한 후보가 ‘대세’를 거머쥐어 예외 없이 11월 본선에 진출했다.
종교적 성향이 대세론 가로 막아
미 정치권의 대선 후보 경선 방식은 독특하다. 인구비례(통상 하원의 지역구)에 따라 개별 주에 할당된 대의원을 각 후보의 지지율에 따라 배정하고, 이들이 전당대회에서 자기 후보에게 표를 던지는 일종의 간접투표 방식이다. 2008년 대선의 ‘슈퍼 화요일’(2월5일)에는 모두 23개 주에서 경선이 치러졌는데, 민주당 대의원의 51%와 공화당의 41%가 이날 결정됐다.
당시 민주당에선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12개 주에서, 버락 오바마 후보가 11개 주에서 각각 승리를 거뒀다. 하지만 확보한 대의원 수에선 오바마 후보(847명)가 클린턴 후보(834명)를 앞질렀고, 결국 그가 대선 후보가 됐다. 공화당에서도 존 매케인 후보가 9개 지역에서 대의원 511명을 확보해, 밋 롬니 후보(7개 주·176명)를 제치고 본선에 나섰다.
올해는 여러모로 사정이 달라졌다. 재선에 나선 오바마 대통령이 사실상 민주당 후보로 확정된 상황에서, 슈퍼 화요일은 공화당만의 행사가 됐다. 경선 지역도 2008년의 절반에 못 미치는 10개 주로 줄었다. 2월에서 3월로 시기가 늦춰진 것도 달라진 점이다. 하지만 가장 큰 차이점은 따로 있다. 슈퍼 화요일 이후에도 공화당 경선 판도가 여전히 안갯속이란 점이다.
공화당 전당대회에 참석하는 대의원은 모두 2286명, 이 가운데 1144명을 확보해야 후보로 확정된다. 지난 3월6일 슈퍼 화요일에 오하이오주 등지에서 치러진 경선에 걸린 대의원은 모두 419명이었다. 지난 1월3일 아이오와주를 시작으로 3월3일 워싱턴주에 이르기까지, 두 달여간 이어온 경선전에 걸린 대의원(374명)보다 많은 규모다. ‘분수령’으로 삼을 만했다.
결과는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꾸준히 선두를 달려온 롬니 후보가 10개 주 가운데 6개 주에서 승리를 거뒀다. 하지만 최근 거센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릭 샌토럼 후보가 테네시주 등 3개 주에서, 하원의장 출신인 뉴트 깅리치 후보가 고향인 조지아주에서 각각 1위를 차지했다. 3월7일 <ap>이 집계한 자료를 보면, 지금까지 롬니 후보가 확보한 대의원은 모두 415명이다. 그 뒤를 △샌토럼 후보 176명 △깅그리치 후보 105명 △론 폴 후보 47명이 좇고 있다. 이만하면 ‘대세론’이 거론될 법도 한데, 분위기가 전혀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 왜 그럴까?
해답의 실마리는 테네시주 경선 출구조사 결과에서 유추할 수 있다. ‘당선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서 롬니 후보는 샌토럼 후보를 18%포인트 차로 크게 앞질렀다. 하지만 응답자 4명 가운데 3명이 “후보자의 종교적 성향이 실제 투표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고 답했다. 개표 결과, 롬니 후보는 28.1%의 득표율로 샌토럼 후보(37.2%)에게 9.1%포인트 뒤졌다. 모르몬교(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 신자인 롬니 후보는 보수 개신교 성향이 짙은 남부 지역에서 아직까지 경선 승리를 경험하지 못했다. 슈퍼 화요일 직후부터 미 보수 매체들이 앞다퉈 롬니 후보 ‘흔들기’에 나선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실리는 오바마 차지?
타블로이드 일간 <뉴욕포스트>는 3월7일치에서 “롬니 후보가 본선 주자로 나설 수밖에 없는 쪽으로 분위기가 굳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그는 공화당원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격주간 <내셔널리뷰>는 같은 날 인터넷판에서 “후보가 될 만한 사람은 1명뿐인데, 그 후보가 너무나 약하다”며 “이런 상황은 처음”이라고 꼬집었다. 슈퍼 화요일 경선 결과를 ‘엇갈린 표심’이라고 규정한 <월스트리트저널>은 샌토럼 후보의 선전에 무게중심을 둔 사설을 내놓기도 했다. 정치평론가 에릭 에릭슨은 우익 정치 블로그 ‘레드스테이트’에 올린 글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2006년 이후 줄곧 대선 준비를 해온 롬니 후보는 최고의 조직과 최대의 자금을 확보하고 있다. 그럼에도 출신 지역인 미시간에선 단 3% 차이로 신승했고, 오하이오주에선 샌토럼 후보보다 5.5배나 많은 자금을 퍼붓고도 단 1% 차이로 간신히 이겼다. 승리는 승리지만, 롬니 후보는 묘하게도 승리를 거듭할수록 상처가 커지고 있다.”
롬니 후보에게 그나마 다행한 일은 깅리치 후보의 조지아주 승리다. 샌토럼 후보에게 가야 할 ‘보수본좌’의 표심을 분산시키고 있는 것이다. 3월6일 치른 10개 주 경선 가운데 가장 많은 대의원(76명)이 조지아주에 걸려 있었다. 깅리치 후보는 48%의 득표율로 1위를 차지했고, 롬니 후보와 샌토럼 후보가 각각 26%와 20%를 차지했다. 깅리치 후보는 3월7일 기자회견에서 “내일 아침 우리는 앨라배마로, 미시시피로, 캔자스로 달려갈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샌토럼 후보와 깅리치 후보의 지지율 격차를 보면, ‘계산’이 쉬워진다. 슈퍼 화요일에 치른 경선에서 △버몬트주 24% 대 8% △매사추세츠주 12% 대 5% △오하이오주 37% 대 15% △오클라호마주 38% 대 28% △테네시주 37% 대 24% △노스다코타주 40% 대 9% 등 보수파의 표가 결집됐다면, 샌토럼 후보의 입지는 달라졌을 게 뻔하다. 미 언론에서 “깅리치 후보의 정치적 영향력은, 경선 포기(와 함께 샌토럼 후보의 지지)를 선언하는 순간 최고조에 이를 것”이란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좀비와의 싸움이다.” 진보적 격월간지 <머더존스>는 3월7일치 인터넷판에서 롬니 후보의 경선 판세를 이렇게 표현했다. 이미 ‘죽은 후보’인 샌토럼·깅리치 후보와 끝없이 경쟁을 벌여야 하는 롬니 후보의 처지를 빗댄 표현이다. 그럼에도 싸움이 언제 끝날지 누구도 장담하기 어려운 사세다.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3월8일 인터넷판에서 “이번 슈퍼 화요일을 ‘슈퍼’하게 평가하는 것은, 공화당의 내부 갈등이 길어질수록 이득인 오바마 대통령뿐일 것”이라고 지적한 것도 이 때문이다.
6월까지 이어질지 모를 접전
앨라배마·캔자스·미시시피·미주리 등 중남부 권역에서 이어질 3월의 남은 경선은 롬니 후보에겐 ‘취약지구’다. 4월엔 텍사스(155명)·뉴욕(95명)·펜실베이니아(72명) 등 9개 주에서, 5월에도 노스캐롤라이나(55명)·인디애나(46) 등 6개 주에서 경선이 예정돼 있다. 끝까지 접전이 이어지면, 최악의 경우 6월5일로 예정된 캘리포니아(172명) 등 5개 주 경선에서 최종 주자가 뽑힐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공화당 경선은 오는 6월26일 유타주(40명)를 끝으로 막을 내린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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