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정권 교체를 이룬 일본 민주당은 기대와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중의원 의석 480석 중 308석 획득이라는 압도적 승리를 거둔 민주당을 보며 일각에서는 제2의 ‘55년 체제’, 즉 민주당의 장기 집권 체제를 맞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전망을 조심스럽게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집권 3년째에 접어든 민주당을 보며 그런 관측을 하는 사람은 거의, 아니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리더십 부재로 무당파층 증가
지난 3월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과 원전사태에 대한 대응 실패로 물러난 간 나오토 총리에 이어 노다 요시히코 전 재무상이 제95대 총리에 취임했다. 민주당 정권 들어 세 번째 총리다. 자민당 정권에서 민주당 정권으로 바뀌기 전, 자민당 정권하에서 일본 국민은 총리의 잦은 교체로 인해 자민당 정권의 무능과 무책임에 실망한 상태에서 자민당에 대한 대안으로 민주당에 투표했다. 그러나 정권 교체 전 자민당 정권의 모습을 민주당 정권이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5년5개월 동안 재임했던 고이즈미 총리의 뒤를 이은 아베, 후쿠다, 아소 총리(이상 자민당)는 각각 1년씩 총리를 지냈으며, 민주당이 집권한 2009년 9월 이후도 하토야마 총리가 9개월, 간 총리가 15개월간 재임했다. 즉 고이즈미 총리가 사임한 2006년 9월 이후 5년 동안 총리가 무려 5명이나 바뀐 것이다. 더욱이 5명의 전 총리 중 정권 교체로 물러난 아소 총리를 제외하면 자민당, 민주당을 막론하고 아베, 후쿠다, 하토야마, 간에 이르기까지 4명의 총리가 자진 사퇴했다. 2008년 2월 취임한 이명박 대통령은 재임 중 5번째 일본 총리를 상대하게 되었으며, 내년 이맘때에 여섯 번째 총리를 상대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잦은 총리 교체는 일본 국민의 실망으로 이어져 정치 문제에 대한 무관심층과 무당파층의 증대로 나타났다. 총리의 리더십 부재가 일본 정치의 가장 큰 문제로 부상한 것도 이 때문이다.
간 총리의 사임에 따라 8월29일 실시된 민주당의 당대표 선거에는 5명의 후보가 입후보했다. 선거 결과는 예측과 달랐다. 여론조사에서 차기 총리 후보로 40% 이상의 지지를 받던 마에하라 전 외상이 투표 결과 3위에 머물렀고, 오자와 그룹의 전면적 지원을 받은 가이에다 경제산업상이 2위, 여론 지지율이 8%에 불과하던 노다 재무상이 1위를 차지했다. 당대표 선출 과정에서 오자와 그룹과 반오자와 그룹 간 힘겨루기의 결과로 반오자와 그룹이 노다를 지지함으로써 노다가 당대표, 총리에 취임하게 된 것이다. 즉 누가 총리로 가장 적합한가에 대한 민주당 내의 철저한 토론과 경쟁에 의해서가 아니라 당내 세력투쟁, 계파 간 이해관계의 결과로 새 총리가 정해진 것이다. 간 총리의 사퇴로 민주당 대표가 된 노다 총리의 잔여 임기는 1년여이며, 따라서 1년 뒤 총리가 다시 바뀔 가능성이 크다. 이번 당대표 선거에서 당내 지지 기반이 약한 가이에다 경제산업상이 2위로 선전한 것도 1년 뒤 당대표, 총리를 노리는 오자와의 지원에 의한 것이었다.
노다가 넘어야할 오자와, 자민당
당대표 선출 과정에서 내홍을 겪은 민주당 내 오자와 그룹과 반오자와 그룹 간의 대립과 갈등을 어떻게 중재할지가 당면한 과제다. 노다 총리가 반오자와 그룹의 지원으로 당대표로 선출되었지만, 당 장악과 원활한 국정운영을 위해서는 오자와 그룹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노다 총리는 오자와 전 대표와 가까운 고시이시 참의원 의원회장을 당 간사장에 기용한 것과 같은 초파벌적 인사, 오자와 그룹을 포용하는 거당일치 인사를 주장하고 있지만, 당 운영의 중심을 오자와 그룹에 둘 것인가, 반오자와 그룹을 활용할 것인가는 노다 내각 최대의 과제가 될 것이다.
또한 자민당이 과반수를 확보한 참의원의 여소야대의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과제도 동시에 안고 있다. 자민당 정부 시절 아베, 후쿠다 총리는 참의원에서의 여소야대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사퇴했다. 지금의 민주당 정권은 역으로 자민당이 지배하는 참의원에서 법안을 통과시켜야 하는 난제를 안고 있다. 따라서 민주당으로서는 자민당의 요구를 상당한 정도 입법 과정에 반영해야 하고, 이런 점에서 민주당의 고유한 색깔보다 친자민당화한 정책들이 양산될 가능성이 있다. 민주당 정권의 장점을 살리지 못하고 자민당에 끌려간다면 차기 정권 창출은 어려워질 것이다.
노다 정권의 출범은 한국 정부가 우려하던 선거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노다 총리는 민주당 내 대표적 우익 인사다. 그의 언행은 난징대학살 부정,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 지지, 재일외국인의 지방참정권 부여 반대, 미-일 동맹 중시,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라는 일본 보수우익의 주장과 일치한다. 그는 더 나아가 A급 전범은 전쟁범죄자가 아니라고 부정해왔다. 노다 정권 출범에 대해 한-중 양국이 모두 예의주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노다 정권하에서 한-일 관계가 악화 일변도일 것이라는 일반적 전망에 대해 약간의 희망 섞인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무엇보다 지금 일본의 국내 사정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일본은 지진 복구, 원전사태 해결, 엔고 등 선결과제가 산적해 있으며, 경제회복에 필요한 재원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따라서 내정을 안정시키는 것이 노다 정부의 중심 정책이 될 것이므로 배타적 내셔널리즘이 분출될 가능성은 낮다고 할 수 있다.
국가수반 코드에 맞출 수밖에
또한 총리가 되면 개인적 인기나 유권자를 의식하는 국회의원 때와는 달리 국가수반으로서 국가 간 관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노다 총리는 총리 지명 직후에 전범 문제에 대해서는 정부의 공식 견해를 따르겠다고 표명했다. 한 명의 정치인으로서 표출해온 정치적 성향과 역사인식을 총리으로서의 노다가 그대로 관철시킨다면 주변국과의 관계가 어려워지리라는 건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일본 내의 산적한 문제 해결에 집중해야 하는 노다 총리로서는 대외관계에서 갈등을 최소화하려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총리로 선출되기 이전의 역사인식을 전면에 내세울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오히려 한국 언론 등에서 노다 총리의 역사인식을 과도하게 보수우경으로 부각시켜 여론을 선도하는 것이 갈등을 부추기는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 보수 인사인 노다의 총리 취임으로 우리 정부의 외교력 또한 시험대에 올라 있다.
전진호 광운대 교수·국제협력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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