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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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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카에다 제2의 고향, 예멘의 복잡한 뿌리



한국석유공사 송유관 폭발 등 잇따른 테러의 거점이 된 예멘…

종파 갈등과 부족 분열로 찢어진 중동 최빈국의 가난이 테러를 키워
등록 2010-11-10 16:54 수정 2020-05-03 04:26

“해발 2200m의 산악계곡에 위치한 이곳은 25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도시다. 7~8세기에는 이슬람교 확장의 주요 거점이었다. 이런 종교적·정치적 유산은 11세기 이전에 지어진 103개의 이슬람 사원과 14개의 터키식 목욕탕, 6천 채의 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진흙으로 지어진 많은 다층의 집들은 이 도시의 아름다움을 더한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가운데 하나인 사나, 곧 아라비아반도 남단에 위치한 예멘 수도의 옛 시가지에 대한 유네스코의 설명이다. 안타깝게도, 수천 년간 아프리카와 중동, 아시아의 향신료가 오가는 교차로였던 예멘의 오늘날 현실은 고풍스런 문화유산과는 거리가 멀다. 10월29일 예멘발 미국행 항공화물에서 폭발물이 발견된 데 이어, 11월2일 예멘 샤브와에서 한국석유공사 송유관이 폭발하면서 예멘은 테러의 핵심 근거지로 각인됐다. 지난해 3월 자살폭탄 테러로 한국인 관광객 4명이 목숨을 잃고 같은 해 7월에는 국제의료봉사단체 소속 엄영선씨가 납치·살해된 채 주검으로 발견됐을 때 이미 예멘의 현실은 드러났다.

지난 11월2일 예멘 남부 샤브와주에서 한국석유공사 송유관이 테러로 폭발한 현장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다.연합 AFP

지난 11월2일 예멘 남부 샤브와주에서 한국석유공사 송유관이 테러로 폭발한 현장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다.연합 AFP

지배 자이디파 안의 갈등

“한국은 예멘 등과 함께 전세계의 몇 안 되는 분단국으로….”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중·고등학교 시절 교과서에 이와 비슷한 대목이 있었다. 분단국 예멘, 1990년 남북통일을 이뤘지만 예멘의 오늘은 분열과 대립의 과거와 그 유산에 발목 잡혀 있다. 지금의 예멘 지역은 1530년대부터 오스만제국의 지배를 받다가 예멘 남부가 1830년대 영국 식민지로 떨어진다. 오스만제국의 해체로 북예멘이 1918년 독립한 뒤 1962년 이슬람 정통 예멘아랍공화국(YAR)이 선포된다. 남부에는 1967년 영국군이 물러간 뒤 사회주의 예멘인민민주주의공화국(PDRY)이 세워진다.

소련의 붕괴로 PDRY가 위기에 빠지면서 1990년 흡수통일된 뒤 북쪽 YAR를 이끌던 알리 압둘라 살리흐는 부족과 군부의 지지를 업고 대통령에 오르지만, 남북 화합에 실패한 ‘껍데기 통일’이었다. 살리흐는 이슬람 수니파가 다수인 예멘에서 시아파 소수 분파인 자이디파 출신인데다, 예언자 무하마드의 정통 직계로 인정되는 사이드(sayyid)가 아니다 보니 다른 전통적 지도자와 같은 권위가 없다. 또 북부 출신의 살리흐가 이끄는 예멘에서 남부와 동부의 다양한 부족이 자치를 요구하며 중앙정부의 통제를 따르지 않았다. 남북은 결국 1994년 내전으로 치닫는다.

북예멘의 승리 이후 무력으로 진압된 남쪽의 자치권이 빼앗기면서 불만은 커졌다. 남부는 경제적 혜택이 북부에 집중되고 자신들은 소외됐다는 반감을 갖고 있다. 내전이 끝난 지 16년이 넘었지만, 북예멘 안에서조차 북서부 사다주 일대에서는 자이디파의 한 갈래인 알후티 반군과 정부군이 교전하고 있다. 반군은 살리흐가 같은 자이디파 출신이지만, 자신들의 자이디파 부활운동을 통치 걸림돌로 여기고 사다에서 수니파를 지원하는 분리통치를 편다고 반발하며 6년째 정부군에 맞서고 있다. 사회 인프라가 대부분 파괴되고 정부의 사다 지역에 대한 배려도 미흡하다 보니, 주민들의 반군 가입이 늘어나고 있다. 남부에서는 아덴 지역을 중심으로 무장분리운동이 계속되고, 알카에다 지도자 빈라덴 일가의 고향인 하드라마우트주와 마브리주 일대의 빈곤지역에선 알카에다가 날뛰고 있다. 이웃 국가의 환경도 나빠서 20만 명에 이르는 소말리아 난민이 예멘 남부의 불안정을 키우고 있다. 최악의 상황이다.

예멘

예멘

국가보다 부족 우선 전통

남·동·북으로 쪼개진 예멘의 갈등은 1700여 개 부족 및 씨족사회의 강한 전통 탓에 또 한 번 갈라진다. 예멘은 남자들이 기백의 상징으로 ‘잠비야’라 부르는 반달형 전통 단검을 아랫배에 차고 다닐 만큼 산악부족들의 투쟁 전통이 강한 나라다. 예멘 성인 1인당 평균 3정의 총기를 지녔다는 통계도 있다. 중앙정부보다는 부족 간 연대가 더 큰 영향을 미쳐서 소수부족들의 차별과 불만 등이 외국인을 상대로 한 테러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1월에는 알카에다 사우디아라비아 지부와 예멘 지부가 통합돼 알카에다 아라비아반도 지부(AQAP)가 출범했는데, 중앙정부의 통치력이 미치지 않는 예멘의 아비안·샤브와·마리브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예멘은 이제 아프가니스탄만큼 알카에다의 영향력이 지대한 곳으로 분류된다. 결국 분단과 내전의 역사와 현실은 산악부족이라는 전통과 맞물려 예멘인의 삶을 극단으로 내몰고 있다. 서정민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예멘은 중앙정부보다는 부족에 대한 충성이 더 강해, 영토적 국가 정체성이 서 있지 않다”며 “농경정착 생활을 한 우리와 달리 중동 지역은 대부분 유목사회로 부족적 연대가 강하고 가부장적 부족의 전통이 많이 남아 있어서 국민 통합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가 통합에 나서야 할 살리흐 대통령은 딴 데 정신이 팔려 있다. 1978년 중령 신분이던 그는 쿠데타로 YAR의 권력을 잡은 뒤 32년째 최고 권력을 누리고 있다. 그는 자신의 친인척을 요직에 앉힌 것도 모자라 아들을 후계자로 삼을 계획에 빠져 있다. 북부 사다 반군과 남부 분리주의자 및 알카에다 세력에 따른 치안 불안과 테러 위협을 자신의 폭압적 통치를 정당화하고 미국의 지원을 받아내는 수단으로 쓰고 있다. 부패로 나라가 썩어가고 있지만, 30년 넘게 권좌에 앉은 살리흐는 손을 놓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말하는 전형적인 ‘불안정 국가’, ‘취약한 국가’(failing state)다. 나라 꼴이 아니라는 얘기다. 분단과 갈등, 부실한 정부가 낳은 최악의 유산은 가난이다. 중동 최빈국 예멘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009년 구매력지수 기준 2500달러로 세계 178위다. 수도 사나에서조차 정전이 일어나고,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하루 2달러 이하의 임금을 받으며 살아간다. 실업률이 35%에 이르러, 그나마 직업이 있으면 다행이다.

예멘발 미국행 항공화물에서 폭발물이 발견된 다음날인 10월30일, 예멘 수도 사나에 위치한 화물운송업체 UPS 지사 앞에서 군인 등이 삼엄한 경비를 서고 있다.REUTERS

예멘발 미국행 항공화물에서 폭발물이 발견된 다음날인 10월30일, 예멘 수도 사나에 위치한 화물운송업체 UPS 지사 앞에서 군인 등이 삼엄한 경비를 서고 있다.REUTERS

가난을 파고드는 알카에다

아라비아 사막에 위치한 예멘은 지난해 극심한 기후변화를 겪었고, 향후 20년 안에 생활용수가 바닥날 것이라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석유 수출이 전체 수출의 90%, 조세수입의 75%를 차지하지만, 예멘의 석유는 2017년이면 고갈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약탈, 마약, 총기 밀매는 일상사다. 인질극과 납치극, 테러가 판치는 상황에서 해외 기업들의 투자가 예멘을 외면하는 것은 당연하다. 서정민 교수는 “중동에서 테러가 자주 벌어지는 지역은 민족국가 형성 자체가 안 됐다”며 “예멘도 정치 발전적 측면에서 민족국가가 형성 중인 나라여서 혼란을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프가니스탄, 수단, 이라크, 소말리아, 파키스탄 등은 중앙정부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테러는 가난을 먹고 똬리를 튼다. 불안한 국가경제 현실은 테러세력이 침투하는 토양이 된다. 굶주린 소말리아 해적들이 ‘밥벌이’로 해적질에 나서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정부의 공백을 틈타 알카에다는 경제적 지원을 약속한다. 가뜩이나 이곳은 알카에다 지도자 빈라덴의 조상의 고향이자 이슬람 원리주의의 뿌리가 깊은 곳이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때 미국 디트로이트행 여객기 테러기도 사건의 용의자는 예멘의 AQAP에서 테러 훈련을 받았다. 최진태 한국테러리즘연구소 소장은 테러와 반정부 무장운동은 경제적 여건과 밀접히 연결돼 있다고 설명한다. 최 소장은 “과거 자신들을 식민지배하며 폭력적으로 착취한 서구국가에 폭력적으로 대항하는 것은 정당하다고 여긴다”며 “지금도 예멘의 부존자원을 서방국가들이 빼가는데 자신들은 일자리 없이 살아가는 현실에 불만이 큰 상황에서 알카에다는 피부에 와닿는 물질적 지원 등을 해주다 보니 가난하고 소외된 예멘인에게 유일한 희망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예멘을 글로벌 테러기지로 지목하고 지난해 약 7천만달러를 지원했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살리흐 정부가 9·11 테러 이후 서방의 대테러 전선에 동참한 뒤, 반미 감정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알카에디즘’이라 부를 만큼, 알카에다의 이름으로 저지르는 수많은 테러가 줄을 잇고 있다. 서정민 교수는 “중동에서 이슬람 과격세력의 지도부를 분석하면 60% 정도가 대졸 실업자로, 종교적 광신주의자가 아니라 소외되고 희망 없는 삶 속에서 사회적 반감과 불만이 높은 이들”이라며 “가문이 통치하는 걸프 국가들은 석유라는 부를 적절히 배분하면서 통합된 틀을 유지하는 반면, 예멘은 지배 가문이 절대적 부를 갖지 못해 다른 걸프국처럼 부를 나눠주며 국가를 통치하는 가부장적 아버지의 지위도 갖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경제지원이 근원적 해결책

결국 관건은 예멘에서 테러가 싹트는 토양을 없애는 데 있다. 테러조직은 정부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지역에서 자라는 만큼, 빈곤 해결 등 장기적 전략을 세우는 게 절실하다. 특히 과거 테러조직은 피라미드식 계층구조여서 수뇌부만 제거하면 뇌가 없는 몸뚱이처럼 무너졌지만, 지금은 그물망 같은 네트워크 구조를 갖고 있다. 알카에다와 느슨하게 연결된 채, 지도자급 1~2명이 제거돼도 그물코처럼 언제든지 채워진다. ‘다운로더블 테러’라 부를 만큼, 인터넷에서 테러 정보를 다운로드한 뒤 테러 감행 계획을 짤 수 있는 시대가 됐다. 미국 최고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는 지난 1월 한 보고서에서 “예멘에서 알카에다 세력을 억누르려면 꾸준한 경제적 지원과 좋은 통치 프로그램을 통해 국가 능력을 키워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제사회의 지원에 의존하는 예멘은 2006년 이후 500억달러의 개발 원조를 약속받고도 극히 일부 예산만 집행해, 예멘 정부의 개혁이나 부패 방지 없이 국제사회의 추가 지원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미국 는 지난 11월1일 빈곤과 부패, 반미주의, 분리주의, 부족주의, 예멘 출신 급진 이슬람 지도자 안와르 알올라키의 영향력 등을 예멘에서 뿌리 뽑아야 할 대상으로 지적했다. 최진태 소장은 “이슬람 국가 가운데서도 아랍에미리트 등 경제적으로 자유로운 나라는 테러가 싹틀 토양이 없다”며 “박탈감과 격차를 메울 수 있는 경제적 프로그램을 마련해 교육과 일자리 창출, 의료서비스 지원 등 비폭력적 접근을 하지 않으면 예멘과 같은 나라에서 테러는 근원적 해결 없이 악순환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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