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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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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밖 내쳐도 마음 열어주는 공동체


비바람 새는 천막의 가난한 삶에 녹아든 밀주의 살가움
등록 2009-10-29 14:54 수정 2020-05-03 04:25

“두두둥~, 두두둥~!”
오토바이 엔진음이 둔탁하게 머플러를 타고 빠져나간다. 몇 년 전에 비해 엄청나게 늘어난 프놈펜 시내 차량들 사이를 요령껏 뚫어가며 공항 방향 4번 국도에 들어선다. 상쾌한 바람이면 좋으련만, 매캐한 자동차 배기가스에 캑캑대며 서서히 타이분롱 마을 입구로 오토바이를 몬다.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나를 알아본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달려온다. 아이들은 마을 안쪽 ‘바’(Ba)의 집까지 내 꽁무니를 따라 환호성을 지르며 달려온다. 자기 사진을 달라는 아이들, 오늘은 내 차례라는 아이들, 또 찍어달라는 아이…. ‘어휴, 요 녀석들아. 숨 좀 돌리자.’
“쏨 짬 모이 플렛.”(잠깐만 기다려요)

‘가난해도 함께, 웃으면서 다 같이.’ 일가족의 사진을 찍어주려는데, 모여든 이웃 아이들이 떨어지지 않는다. 타이분롱 마을에선 이웃도 가족이다.

‘가난해도 함께, 웃으면서 다 같이.’ 일가족의 사진을 찍어주려는데, 모여든 이웃 아이들이 떨어지지 않는다. 타이분롱 마을에선 이웃도 가족이다.

화려한 프놈펜의 뒤안길

어느덧 이 마을을 찾기 시작한 지 두 달이 훌쩍 넘었다. 매주 금요일 오후면 어김없이 찾아가 반나절 동안 주민들과 얼굴을 섞는다. 처음엔 무뚝뚝한 표정으로 그다지 반기지 않던 주민들도 이제는 빙그레 웃어준다. 서두르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지속적으로 찾아오는 내게 그들은 조금씩 마음을 열어주었다. 한 번의 스침이 아닌, 몸을 들여 이어지는 관계의 연속성은 서로의 경계를 허무는 데 더할 나위 없는 처방인 듯싶다. 그래서일까. 처음에 가진 헛한 두려움이 점차 가라앉으면서 마을이, 주민들이 쏙쏙 눈에 들어온다. 고마운 일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전형적인 성장우선 정책을 펼쳐온 캄보디아는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외적인 변화를 이뤄냈다. 도심 여기저기 수십 층 높이의 빌딩들이 하늘로 치솟는 것은 물론, 웅장한 위용을 자랑하는 값비싼 수입차들을 비롯한 차량 행렬이 좁은 프놈펜 시내 도로 곳곳을 메웠다. 값싼 노동력 탓에 너도나도 찾아온 외국 산업자본의 대형 공장들. 그리고 관광객이 가득한 다운타운의 번쩍이는 네온사인에 눈이 부실 정도고, 언뜻 도시민의 얼굴 표정도 활기차게 주변을 물들인다.

그렇게 프놈펜의 외양은 지나칠 만큼 빠르게 바뀌고 있다. 하지만 마냥 좋아 보이지만은 않는 게 괜한 트집은 아니다. 도심 구석 여기저기에 놓인 또 다른 이들의 삶에 눈길이 닿기 때문이다. 시선의 사각지대에 놓인 도시 빈민들. 도심 바깥으로 몰아내기에만 급급한 정부와 그에 부합한 세력의 무관심 속에 내쳐진 이들. 그들의 삶은 화려한 변화의 속도만큼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흘러간다.

이미 훌륭한 동료가 된 바가 여전히 불콰해진 얼굴로 박스 속 사진 액자를 일일이 확인한 뒤 냉큼 어깨에 둘러메고 마을 한가운데로 나선다. 바깥에서 보기엔 아주 허름한 마을인데, 안으로 들어가니 작은 규모지만 시장도 들어서 있고 다양한 물건을 내놓은 구멍가게도 여럿 자리를 잡고 있다. 외부의 별다른 지원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주민들이 스스로 일궈낸 마을 살림이 어느 정도 구색을 갖추었다. 모든 집들이 나무로 얼기설기 기둥을 세워 천막을 씌운 조악한 형태인지라 비바람을 막기엔 다소 부족하지만 그나마 뜨거운 햇빛을 가릴 만은 하다.

바가 갑자기 자신의 친구 집에 가자며 팔을 잡아끈다. 들어가니 네댓 명의 젊은이들이 모여앉아 술상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미 얼굴을 익힌 이들인지라 어서 오라며 반갑게 맞이한다. 직접 만든 밀주 한 사발을 내미는데 ‘생알코올’ 냄새가 진동을 한다. 성의를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 눈 딱 감고 단번에 비워냈더니 좋아라 하며 또 한 잔을 권한다. 아이코 손사래를 치는데 바가 냄비에 담긴 안주를 권한다. 논에서 잡은 우렁을 얼큰한 맛으로 끓여냈는데 평소 좋아하던 것인지라 이게 웬 떡이냐는 기분이다. 입 안 가득 털어넣고 흐뭇하게 씹는 순간, 잔뜩 힘을 준 어금니 사이에 모래알이 살을 비비며 춤을 춘다. 그렇다고 도로 뱉어낼 수는 없는 노릇, 내색 없이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우물거리다 물 한 컵으로 꿀꺽 넘긴다.

빛바랜 사진 인화해달라는 아주머니
판자촌에 집집마다 수도가 있을 리 없다. 힘을 보태기엔 아직 어린 두 아들이 따라나섰으니 힘이 두 배로 들 텐데, 물 긷는 어머니의 표정은 환하기만 하다.

판자촌에 집집마다 수도가 있을 리 없다. 힘을 보태기엔 아직 어린 두 아들이 따라나섰으니 힘이 두 배로 들 텐데, 물 긷는 어머니의 표정은 환하기만 하다.

몇 잔의 술이 오가다 아쉬워하는 바를 끌고 집을 나선다. 머리가 띵한 것이 더 오래 끌다가는 그냥 주저앉을 판이다. 다시 마을을 도는데 한 아주머니가 사진 몇 장을 들고 와 보여준다. 워낙 손으로 매만졌던 탓일까. 누렇게 색이 발해 너덜너덜해진 것이 찍은 지 수십 년은 된 사진이다. 사진 속 젊은 청년이 자신의 아버지란다. 이 사진을 찍어 새로 인화해줄 수 있느냐는 부탁이었다. 곱게 화장한 그녀의 처녀적 사진까지 받아들고 보니 순간 코끝이 찡하게 시려온다. 이미 하늘로 간 부친과 꿈 많던 처녀 시절 자신의 옛 모습이 무던히도 그리웠나 보다. 어려운 일도 아니니 그러마 하고 카메라를 들자 다른 이들도 덩달아 집에서 오래된 사진을 꺼내온다. 두말할 것 없이 죄다 카메라에 담아주고 다음주에 만나자는 약속을 한다.

다시 7일이 흐르고 두둥거리며 마을을 찾아갔다. 이날은 어인 일인지 바의 얼굴이 어둡다. 집에 들어가니 그나마 있던 살림살이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아내인 ‘쏜타윈’이 아이들과 함께 보이지 않는다. 더듬거리며 어찌된 영문인지 물으니 돈벌이를 하지 못하고 매일 빈둥거리는 자신과 한바탕 싸우고는 아내가 집을 나갔다는 설명이다. 마을에서 가장 가난하게 사는 바는 여전히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던지라 아내의 이유 있는 바가지에 순간 화를 참지 못하고 대뜸 목소리를 높인 듯했다. 지난주에 들렀을 때 온몸이 피부발진으로 뒤덮인 한 살배기 막내 ‘쩨랑’을 안쓰럽게 바라보던 쏜타윈의 얼굴이 불현듯 생각났다.

그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잠시 시간을 보낸 뒤 둘이 함께 마을 골목길로 나섰다. 다시 아이들이 몰려들고 나를 챙겨주는 바의 몸짓에 힘이 조금 붙는가 싶더니 다시 고개를 파묻는다. 마을에 함께 사는 쏜타윈의 친정집이 저만치 보인다. 집 안에 있던 그녀와 눈이 마주친 것이다. 어색한 분위기를 애써 누르고 가까이 다가가니 평소 반갑게 웃어주던 그녀도 이날만큼은 고개를 돌린다. 가서 사과라도 하라는 속뜻으로 조용히 바를 놔둔 채 혼자 마을을 다니면서 기다리던 주민들과 만났다. 잠시 뒤 따라온 바는 여전히 얼굴빛이 좋지 않았다. 아무래도 둘이 화해를 하기에는 다소 시간이 걸릴 듯하다.

붉은 노을이 비추는 청년들의 땀

저녁 기운이 마을을 감싸안는 시간. 바와 함께 마을 입구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마을 안마당에서 떠들썩한 환호성이 들려왔다. 마을 청년들이 배구 시합을 하고 있었다. 온몸이 땀투성이가 된 채 배구 시합에 열중하는 청년들과 붉게 물들어가는 석양빛에 번갈아 시선을 건넨다. 전기 한 줌 들어오지 않는 곳인지라 공이 보이지도 않는데 청년들은 아랑곳없이 경기에 열중한다. 문득 마을 밖 큰 도로에 홀로 전기빛을 끌어안고 우뚝 선 한국의 아파트 건설회사 간판이 을씨년스럽게 눈에 들어온다.

오늘따라 말이 없는 바는 여전히 시무룩한 표정으로 줄담배만 피워댄다. 역광의 그늘 속으로 그의 눈빛이 발갛게 물들어 있다. 이틀 뒤엔 한 달여 여정으로 먼 길을 떠날 예정인지라 인사라도 해야 할 텐데 계속 말문이 떨어지지 않는다.

어느새 바와는 서로 안부를 나눌 만한 사이가 되었나 보다.

“쭈웁 크니어 뺄 크라오이. 므페악 크념.”(곧 다시 만나자구. 내 친구야)

프놈펜(캄보디아)=글·사진 임종진 사진작가 stephan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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