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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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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파워인가 반혁명인가

탁신 축출 2주년에 이루어진 총리의 하야, ‘반탁신’ 주역 PAD는 괴상한 ‘타이식 민주주의’ 행보
등록 2008-09-26 17:55 수정 2020-05-03 04:25

“각기 다른 직업을 가진 시민들이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해 틈만 나면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우리를 탄압하고 친탁신파들은 무기를 들고 공격하고….” 지난 7월 마지막 주말 저녁 무렵이다. 타이 수도 방콕 중심가 정부 청사 주변 랏차담논 대로를 두 달 가까이 점령해온 반정부 시위대 ‘민주주의인민동맹’(PAD)의 ‘현장 약국’. 이곳에서 자원봉사를 하던 40대 여성 짤라우는 눈물을 쏙 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자신을 ‘대학 졸업자’라고 소개한 그의 눈물샘을 자극한 것은 이틀 전인 7월24일 북동부 우돈타니 지방 PAD 시위 현장에서 친정부(고로 ‘친탁신’) 조직원들이 몽둥이와 칼을 휘두르며 벌인 유혈극이다. 그날의 폭력 장면이 무대 스크린을 통해 반복 재생되면서, 두 달 동안 고루하던 시위는 활기와 분노로 술렁거렸다. 감정을 추스르느라 잠시 거리를 두던 이 ‘대졸 여성’은 다시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왕을 위해 싸운다.”

‘국왕 만세, 새 정치 만세.’ 반탁신을 기치로 내건 민주주의인민동맹(PAD) 주최 집회에선 “우리는 왕을 위해 싸운다”는 말이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국왕 만세, 새 정치 만세.’ 반탁신을 기치로 내건 민주주의인민동맹(PAD) 주최 집회에선 “우리는 왕을 위해 싸운다”는 말이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군부가 거부한 긴급조치령

9월2일 새벽 방콕에서 발생한 친정부-반정부 세력 간의 충돌은 이렇게 두 달 전 우돈타니가 수상한 기운을 풍기며 예고한 것이었다. 벌건 대낮 우돈타니의 경찰과 칠흑 같은 밤 방콕의 경찰이 친정부 진영의 폭력을 사실상 방관했다. 이어 선포된 비상사태에서 군부는 왕실을 상징하는 노란 깃발을 휘날리는 PAD를 건드리지 않겠다며 긴급조치령 수행을 사실상 거부했다.

“군이 공공의 이익을 염려하고 무력 사용을 거부함으로써 사회 분열을 막았다.” 2006년 쿠데타 세력이 임명한 과도의회(NLA) 의원으로 활동하다 자진 사퇴한 바 있는 수리차이 완가오 출랄롱콘대 교수는 군의 선택을 완곡하게 치하했다. ‘친탁’과 ‘반탁’으로 갈린 타이 사회의 지독한 분열상은 지역과 계층 간의 갈등은 물론 군과 경찰이라는 두 치안 세력의 ‘전통적인’ 갈등 양상도 살짝 드러낸 셈이다. ‘경찰’ 간부 출신인 탁신 전 총리를 축출한 것도 (‘피플파워’가 아닌) ‘군부’였으니까.

“당시로선 달리 방법이 없었다. 우리는 (쿠데타 하루 뒤인 2006년) 9월20일 20만 명 규모의 시위를 계획하고 있었는데, (친탁신 세력과) 충돌 가능성이 있었다. 그래서 군부가 나선 것이다.”

PAD 5인 지도부가 체포 이후를 대비해 임명한 차기 지도자 7인 중 한 명인 샤로챠 폼누돔삭(33). ‘PAD의 얼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미디어 재벌 손티 림통꿀(61)의 토크쇼 공동 진행자로 자연스럽게 반탁신 운동에 발을 들인 인물이다. 그는 PAD가 쿠데타를 ‘용인했다’고 말하는 건 정당하지 않다고 반박했다.

“저 군중들, 저 함성을 들어봐라. 사회 각계각층이 시위 현장으로 몰려들고 있다.”

샤로챠의 관전평이다. 약 5천여 명, 방콕 시민을 중심으로 모인 시위 현장 앞머리는 ‘오늘도 어제처럼’ 열광하는 여성들(다수가 중년이다)로 채워져 있다. 이들이 환호와 열광을 토해내는 무대 위로 다양한 연설자와 밴드들이 오르락내리락 한바탕 분위기를 돋우고 나면 저녁 9시 중년 남성 지도부 5인이 낯간지런 음악과 함께 한껏 폼을 잡으며 등장한다. 그리고 한 명씩 장황한 연설을 이어간다.

2006년 9월 쿠데타는 반탁신 운동이 최고조에 이르던 시점에 터졌고, PAD는 탁신 축출이라는 목표를 달성했다며 사라졌다. 그러나 지난해 중반 탁신의 ‘콜’을 받은 사막 순다라벳(73) 전 총리는 타이락타이당 의원들을 ‘피플파워당’으로 규합한 뒤, 12월 총선을 승리로 이끌면서 정권을 잡았다. 탁신은 손티의 말발에 맞설 인물로 거침없이 내뱉는 사막 전 총리를 골랐고, 부패정치의 상징 탁신과 극우정치의 상징 사막이 맺은 최악의 결연은 PAD의 재출현을 불렀다. 그러나 PAD 운동 제2라운드에는 한때의 동지들이 많이 사라지고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신임 타이 총리에 오른 탁신 친나왓 전 총리의 매제 솜차이 옹사왓이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회견을 하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신임 타이 총리에 오른 탁신 친나왓 전 총리의 매제 솜차이 옹사왓이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회견을 하고 있다.

PAD, 극우와 보수 사이 갈지자 걸음

“쿠데타가 분기점이었다. PAD는 쿠데타에 호의적이었고, ‘임무 완수’를 선언했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상 가장 민주적 헌법이던 1997년 헌법을 뒤집은 그 쿠데타를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다. 게다가 여러 인터넷 사이트가 폐쇄됐고, 군부가 임명한 NLA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만한 여러 법안을 통과시켰다.”

언론운동가 수피냐 클랑나롱(35)은 PAD와 결별한 이유를 그렇게 설명했다. 탁신 전 총리가 재임 기간 자신의 비판 세력을 겨냥해 남발했던 명예훼손 소송에 걸려 3년을 싸운 끝에 힘겨운 승리를 거둔 그다. 수피냐는 “정치에 무관심하던 타이 사회에 정치적 의제와 경각심을 불러온 점은 긍정적”이라며 “하지만 PAD는 최근 부쩍 국가·종교·왕실 등 1970년대 극우세력들의 단골 구호를 들고 나오는 등 흑백논리식 편가르기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수피냐가 지적한 PAD식 편가르기의 위험성은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9월 방콕의 한 극장에서 영화 시작에 앞서 나오는 ‘왕실의 노래’ 연주 때 일어서지 않았다는 이유로 왕실 모독죄에 걸린 ‘반쿠테타’ 운동가 초티삭 온숭과 지트라 코차데. 이 두 젊은이는 PAD 지도부 손티의 ‘매니저 그룹’ 웹사이트와 프로그램인 의 도마 위에도 올랐다. 그들의 집주소와 사진이 호전적 메시지와 함께 웹사이트에 공개됐다. 또 의 진행자는 지난 5월 초 라디오를 통해 초티삭이 참여할 예정이던 탐맛삭대학의 포럼 현장에 가서 “그를 공격해야 한다”는 선동도 서슴지 않았다. 신변에 위협을 느낀 초티삭은 포럼에 참여하지 않았다. 급기야 5월16일, 130명의 진보적 지식인과 활동가들이 손티에게 공개 항의 서한을 보냈다. 이들은 서한에서 노동운동가 솜삭 코사이숙, 시민사회 원로인 피폽 통차이, 빈민운동가 솜키앗 퐁파이분 등 PAD 지도부 3명이 나서서 매니저 그룹을 비판할 것을 촉구했다.

하지만 이제 단호한 목소리는 온데간데없다. 작금의 PAD 운동은 보수와 극우를 오가며 갈지자 행보를 보이고 있다. PAD 내 시민사회 출신 지도부들의 ‘사상’이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PAD의 조직가인 수리야사이 카타실라가 지난 7월 초부터 언론에 흘리기 시작한 이른바 ‘새 정치’ 안에 주목하는 이유다. 보수적 엘리트주의를 노골적으로 반영한 그의 ‘정치 개혁안’에 따르면, 교육 수준이 낮은 농촌 인구와 도심 빈곤층의 표가 탁신처럼 부패한 정치인의 돈에 매수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한 ‘서구식 민주주의’는 타이 사회에 맞지 않는다. 하여 ‘타이식 민주주의’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인데, 의회 의석의 30%만 투표로 선출하고 70%는 임명으로 하자는 안이다. 누구에게 투표권이 있는 건지, 어떤 기구가 임명을 하는지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없지만, 그들이 ‘멍청하다’고 간주하는 시골과 도심의 빈민계층이 동등하게 투표권을 행사하는 안이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방콕 시내 중심가에서 민주주의인민동맹 주최 집회가 한밤에도 계속되고 있다.

방콕 시내 중심가에서 민주주의인민동맹 주최 집회가 한밤에도 계속되고 있다.

총리를 하야시킨 건 요리 프로그램

“서구인들은 우릴 이해 못한다. 타이 정치의 부패상은 너무나 심각하고 우린 지금 새 정치가 필요하다.” 인권변호사 출신 솜차이 홈라 역시 ‘새 정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PAD 운동 초기 외신 대변인을 맡기도 했던 그 역시 쿠데타에 대한 반대 입장으로 더 이상 PAD와 함께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PAD의 비판적 지지자로 남아 있다.

“정면 대응으로 일관했던 사막 정부가 시민들을 시위로 몰아넣었다. PAD 주장에 모두 동조해서가 아니다. 이 정부가 싫어서 동참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솜차이처럼 PAD의 비판적 지지세력은 개혁적 성향의 지식인층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타이 공산당의 무장투쟁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1970~80년대 밀림에서 7년을 보낸 바 있는 인류학자 촐띠라 사띠야와따나(61)도 그중 한 명이다.

“PAD를 비판만 할 게 아니다. ‘탁시노믹스’로 통칭되는 천박한 자본주의·소비주의와 맞서기 위해 군부와 왕실을 활용하는 영리한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 그게 아니었다면 이미 유혈사태가 커졌을지 모른다.”

출띠라는 PAD의 보수화 경향을 우려하면서도 “대중 동원력이 없는 시민사회가 수많은 팬을 확보한 손티와 손잡음으로써 운동이 유지될 수 있었고, 100일을 훌쩍 넘긴 PAD 운동은 놀라운 피플파워”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그러나 ‘놀라운 피플파워’가 ‘제2라운드’에 접어들면서 100일 넘게 외쳤던 사막 순다라벳 전 총리의 하야는 뜻밖에도 피플파워가 아닌 요리 프로그램이 불러왔다. 지난 9월9일 헌법재판소는 사기업을 통한 공직자의 이윤추구 금지법에 따라 요리 프로그램 출연으로 이윤을 챙긴 사막 총리의 자격 박탈을 결정했다. 그날 이래 타이 정치권은 초를 다투며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헌재 결정 직후 만난 민주당의 부라낫 스뭇다락(42) 대변인은 “민주당 주도의 연립정부 구성도 가능하다”며, 소수 정당과 접촉할 뜻이 있음을 부인하지 않았다. 피플파워당은 현재 결정 이틀 만에 사막을 차기 총리로 재지명하는 배짱을 보였지만, 결국 집권 연정 내 6개 소수정당들이 정부 참여 거부를 선언하면서 무위에 그쳤다. “민주주의를 위해 총리직을 고수하겠다”고 버텨온 사막은 결국 “민주주의를 위해 최선을 다했노라”는 말을 남기며 당 대표직을 사임해야 했다.

문제적 인간 탁신의 여전한 활약

그리고 9월17일 오전, 탁신의 매제이자 총리 권한대행이던 솜차이 옹사왓(61)이 신임 총리로 선출됐다. 그러나 그의 당선은 소수정당만이 아니라 피플파워당 내 철새 정치인 네윈 치촙의 정파, 일명 ‘네윈의 친구들’의 반란을 겨우 진정시킨 뒤에야 가능했다. 앞날이 결코 순탄할 수 없다는 말이다. 위태롭기 짝이 없는 정치권 건너편에는 물론 PAD가 끄떡없이 버티고 있다. ‘사막 하야’를 외쳤던 그들은 “피플파워당 출신은 아무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주장에서 아예 ‘타이식 새 정치’를 하자는 쪽으로 성큼성큼 나아가고 있다. 그러는 새 탁신을 축출했던 쿠데타는 9월19일 만 2주년을 맞았고, 문제적 인간 탁신 친나왓은 망명지인 영국의 런던에서 여전히 방콕 정치권으로 전화를 해대고 있다.

방콕(타이)=글·사진 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 penseur21@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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