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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여름, 숨겨진 아시아!

등록 2004-08-19 00:00 수정 2020-05-03 04:23

이라크 침공과 중국 · 일본 뉴스에만 파묻힌 당신에게 드리는 동남 · 서남아권의 골치 아픈 화젯거리

▣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 아시아 네트워크 팀장

asianetwork@news.hani.co.kr

요즘 신문이나 잡지들 국제면을 보노라면, 아시아가 아예 실종된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지경이다. 그나마 일본이나 중국 관련 기사는 덩치 값한답시고 점점이 눈에 띄지만, 동남아시아나 서남아시아쪽 뉴스는 그야말로 가뭄에 콩 나는 듯하다. 올 한해가 반쯤 지났지만 국제면에 떴던 아시아 뉴스라는 건, 기껏 조류독감(SARS)이나 옮기고 태풍 소식이나 전하고 선거 결과나 통보한 기억 말고는 삼삼할 뿐이다. 지구 전체 인구를 통틀어 3분의 2도 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아시아가 이렇게 ‘구박’당해도 괜찮은가 싶은 걱정이 들 정도다.

그 대학살 사건을 아시나요?

이건 전통적으로 아시아에 관심이 없던 우리 언론들의 ‘고질병’이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이라크를 침공하고서부터 더욱 악화된 현상이다. ‘종이’를 팔아야 공장을 돌리는 언론사 입장에서 볼 때, 가장 잘 팔리는 상품인 ‘전쟁’을 놓칠 수 없다는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여전히 개운찮은 기분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21세기 들어 최대 뉴스거리인 이라크 침공 보도 자체를 탓하는 게 아니다. 이라크 관련 뉴스를 굳이 따지자면 양보다는 질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부정적인 측면이 전혀 없진 않지만, 문제는 이라크침공에만 매달려 아시아 뉴스를 포기해도 좋은가라는 점이다.

국제 뉴스판이 온통 ‘이라크 유행병’에 걸려 정신을 못 차리는 동안에도 아시아 각국에서는 시민사회의 운명을 가를 만한 심각한 일들이 벌어져왔다. 그사이 이라크에서보다 더 많은 아시아 시민들이 목숨을 잃었고, 아시아의 미래를 뒤흔들 만한 정치적 격변들이 터져나왔다. 타이에서는 마약과 전쟁을 한답시고 7살 먹은 아이를 비롯해 시민 2500여명이 길바닥에서 대량학살당했다. 단 1년 만에 탁신 총리 정부가 저지른 일이다. 또 분리주의 기운이 폭발한 타이 남부 무슬림 3개 주에서는 8개월 만에 400여명 가까운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런가 하면, 타이 전역에서는 사회운동가 16명이 쥐도 새도 모르게 살해당했다. 그렇게 탁신 정부 3년 만에 시민 3천여명이 살해당했지만, 그 학살 책임자는 여전히 큰 소리만 치고 다닌다. 그리고 20년 내전으로 10만명도 넘는 이들이 목숨을 잃은 스리랑카에서는 평화에 대한 시민들의 갈망을 짓밟고 쿠마라퉁가 대통령이 장기 집권을 획책하며 정치판을 뒤집어놓았다.

또 대만과 중국 사이에는 전멸적인 불기운이 서서히 달아오르고, 히말라야산맥 속에 자리잡은 네팔은 무장혁명투쟁 여파로 사회 전체가 절단난 상태다. 전통적인 마찰지대 인디아와 파키스탄 사이에는 폭풍 전야를 연상케 하는 핏빛 고요가 흐르고 있다.

말하자면, 아시아 전역에서 저마다 국제면 톱뉴스- 상식적인 언론이라면- 를 때리고도 남을 만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아시아를 그냥 내버려둘 수 없다는 뜻에서 ‘아시아 네트워크’는 몇주 전 아시아의 시민경제를 살펴본 데 이어, 이번주에는 아시아의 골치 아픈 정치판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이번주 ‘아시아 네트워크’는 그동안 이라크 뉴스에 파묻혀 ‘고생한’ 독자들이 커피라도 한잔 놓고 좀 편안하게 앉아, 저질스런 정치 탓에 울고 웃는 아시아 시민들을 함께 느껴보았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올린다.

참고로, 우리는 ‘아시아 네트워크’의 이번 작업이 결코 국제 뉴스면을 다채롭게 또는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고 ‘허풍’을 떨지 않는다. 대신 우린 이걸 ‘발악’이라 부르기로 했다. 이렇게라도 아시아 뉴스를 전해야 한다는 뜻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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