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대선 예비주자로 꼽히는 손학규 경기도지사… 수도권 집중이 한국의 경쟁력
▣ 박창식 기자 cspcsp@hani.co.kr
손학규 경기도지사를 8월14일 경기도청에서 만났다. 국가 정체성 논쟁이 여름 정국을 달구고 있고, 신행정수도 논란도 갈피가 잡히지 않는 상황이 그를 찾은 이유였다. 그는 박근혜 대표, 이명박 서울시장과 함께 한나라당의 차기 대선 예비주자로 꼽힌다.
우선 국가 정체성 논쟁과 관련해 손 지사는 “불필요한 논쟁이 제기됐다”며 “우리가 마치 훈고학 시대를 사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로, 사색당쟁에 빠진 듯해 참으로 안타깝다”고 비판했다. 그는 “우리는 절실하게 실학의 정신으로 새로이 전개되는 세상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포괄적 감세보다 중소기업 대상으로
그는 “한나라당의 몇몇 인사들이 거론하는 것처럼 손 지사도 현 정부를 ‘좌파 포퓰리즘 정권’이라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그런 이념적 논쟁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계가 탈이념으로 가는 마당에 우리는 계속 훈고학파가 되고 노론벽파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정체성 논쟁은 서해 북방한계선(NLL) 사건, 의문사위원회 사태 등이 빚어지면서 박 대표가 “국가 정통성이 흔들리고 있다”며 ‘선제’ 문제제기를 한 데서 비롯됐다. 그러나 손 지사는 “정부가 시급히 해야 할 일보다 자꾸 다른 정치적인 일에 신경쓰고 말꼬리를 만들고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나라당의 ‘소모적 논쟁’ 책임과 관련해선 “야당은 해봤자 비판밖에 할 게 없다. 대안을 제시하려 해도 구체적인 정보가 없고 제시한 대안이 받아들여지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런 발언은 논쟁에 참여한 여야 지도부를 함께 비판하면서 자신은 그와 거리를 두려는 태도로 해석됐다. 또 박 대표의 대여투쟁 방식에 공감하지 않되, 같은 당 지도부와 정면으로 대립하진 않겠다는 원려도 읽혔다.
박근혜 대표가 경제난 해법으로 제시한 ‘과감한 감세’ 처방에 대한 견해도 물었다. 박 대표는 기업 법인세, 근로소득세, 부가가치세 등을 포괄적으로 감세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그는 “감세를 긍정적으로 검토할 수 있지만 국가 재정이 해야 할 몫이 있기 때문에 재정과의 균형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세금을 내면서도 이윤을 충분히 내고 있는 대기업은 논외로 하자”며 “대신에 지금 내수가 힘든 건 중소기업이 허약하기 때문인 만큼 중소기업에 대해선 한시적으로 전면적인 면세를 하든지 대폭 감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근로소득세와 관련해 “봉급생활자의 절반이 현재 면세점 이하”라며 “그 상위 계층은 세금 부담이 그리 큰 것도 아니기 때문에 소비 촉진 효과도 의문”이라고 유보적 견해를 밝혔다.
2007년 대선에서 ‘시대 정신’이 무엇이 될 것으로 보는지를 물었다. 이에 그는 “누가 국민을 편안하게 먹고살릴 수 있는 사람이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를 위해선 민심을 편안하게 하는 ‘민심 인프라’가 중요하다”며 “자꾸 싸움을 붙이기보다는 국민을 통합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치개혁 · 햇볕정책 이어져야
노무현 정부의 정책 가운데 다음 정부에서도 계승돼야 할 것을 묻자, 그는 정치개혁과 햇볕정책 두 가지를 꼽았다.
그는 “정치적 목적이 개입되지 않는다는 전제는 필요하다”며 “그러나 부패와 정경유착을 끊어나가는 작업은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YS 정부에 속하고 DJ 정부 때는 반대 당에 있었지만 햇볕정책을 일관되게 지지해왔다”며 “현 정부의 대북 정책이 아직 가시적 성과가 없지만 남북간 긴장 완화와 평화 체제를 구축하는 일은 발전시켜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1970년대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에 참여했으며 서강대 정치학과 교수를 거쳐, 김영삼 정부 때 신한국당에 영입돼 국회의원과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냈다. 따라서 유신정권이나 5·6공화국의 전통과는 태생적으로 거리를 둘 만한 인물이다.
인터뷰에선 신행정수도 건설과 국가 균형발전에 대한 견해도 집중적으로 물었다. 지금은 수도권 광역단체장이지만 차기 대선을 겨냥하고 있음이 분명한 터에, 행정수도 이전을 강한 톤으로 반대해왔기 때문이다.
그는 이와 관련해 “대한민국은 ‘수도권 집중’이 경쟁력”이라는 말로 자신의 아이디어를 요약했다. 수도권 집중을 부정적으로 볼 게 아니라 국가 경쟁력의 원천으로 보고 좀더 키워줘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행정수도 반대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정부 계획은 많이 있는 것을 잘라 작은 데에 나눠준다는 점에서 네거티브 어프로치다. 1국 경제라면 그렇게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세계적인 경제 속에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기존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향을 잡아야 한다. 수도 이전은 수도권 경쟁력과 대한민국의 경쟁력을 동시에 약화시킨다.”
그의 주장은 ‘수도권 집중=대한민국 경쟁력론’으로 요약된다. ‘수도권 과밀 해소’를 중시하는 참여정부의 정책 기조와는 정반대이다. 이와 관련해 그는 “2300만의 인구가 수준 높은 소비시장을 형성하고 인력자원과 물류가 집중된 수도권이 일본, 중국, 유럽, 미국과 경쟁할 수 있는 바탕을 이루고 있다”며 “대한민국 안에서는 수도권 편중이 압도적이지만 수도권 자체의 절대적인 힘은 아직 도쿄권이나 상하이권, 광둥권, 베이징권, 뉴욕권에 훨씬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수도는 단순히 경제적·행정적 역할만 하는 게 아니라 그 나라의 브랜드 이미지 효과를 지닌다”며 “수도권이 가진 규모의 경제와 경쟁력을 억지로 분산시키면 새로운 국가적 코스트를 유발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웰빙 투자’ 지방격차 해법
신행정수도 계획이 수도권에서 무엇을 빼앗아서 충청권으로 옮겨심는 것이라고 정부 당국자들은 말하진 않는다. 대신에 정부는 신행정수도를 건설하면 수도권에 공장총량제 등 기존의 규제를 완화해줄 여지가 생긴다는 ‘윈-윈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이에 손 지사는 “규제를 풀 수 있는 것이라면 그냥 풀지 왜 교환조건을 붙이느냐”라고 반박했다.
손 지사에게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를 어떻게 해소해야 할지를 물었다. 이에 그는 “비수도권에서 인구가 계속 빠져나가는 것을 피폐화의 근거로 들지만 인구나 공장의 수 기준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며 “요즘 사회적으로 중요한 화두인 웰빙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영국도 공업화 이후 농촌 인구가 급격히 감소했지만 도시민들이 농촌에 농장을 두는 등의 방법 때문에 농촌의 생활수준은 높다”며 “도시 생활자가 가진 부를 농촌에 투자할 때 농촌이 잘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좀더 구체적인 정책 대안으로 그는 “중앙정부가 수도권 기업에서 국세를 걷어 지방에 인프라와 교육시설 투자를 집중적으로 하는 게 해법”이라고 말했다.
이런 차원에서 그는 신행정수도 계획뿐 아니라 지난해 말 정기국회에서 국가균형발전법안이 통과될 당시에도 반대 의견을 낸 바 있다. 그의 주장은 수도권에 근거를 둔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를 대변하는 것인 동시에, 최근 삼성반도체 공장 증설과 파주의 필립스전자 외자 유치 등 수도권에 첨단산업이 집중되는 흐름을 반영하는 성격도 담겼다.
그러나 그가 제시하는 ‘수도권의 부를 비수도권으로 흘려주는’ 방식을 지방의 전문가들도 흔연히 받아들일지는 다소 의문스럽다. 비수도권쪽에선 ‘수도권에서 국물을 얻어먹기보다는 지방 스스로 발전 전략을 짜는’ 패러다임에 좀더 관심이 많은 편이다.
그는 나란히 수도권 광역단체장을 맡은 탓에 이명박 서울시장과 종종 비교된다.
그에게 이 시장이 △청계천 복원 △서울시청 앞 광장 조성 △대중교통 체계 개편 등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그에 견줄 프로젝트가 무엇인지를 물었다. 이 시장의 그것들이 잘잘못 평가는 엇갈리되 어쨌든 ‘뭔가 하고 있다’는 느낌은 분명한 반면에, ‘손학규가 한 일’은 가시적인 게 덜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에 손 지사는 “서울시는 25개 구가 집중화되어 시가 사업주체가 되지만, 경기도는 31개 시·군이 네트워크를 형성한다는 점에서 행정의 기본 성격이 다르다”며 “독자적인 사업주체가 되기보다는 각 시·군이 스스로 발전하도록 인프라를 구축해주는 게 경기도의 주된 일”이라고 말했다.
이런 차원에서 그는 △평택항 건설 △고양 국제전시장 조성 △광역철도 공사 등을 예시했다. 또 농어촌 거점 학교를 선정해 고교 한곳에 3년간 35억원씩 지원하는 사업을 교육 인프라 차원에서 강조했다. 그는 “어느 시·군이나 대표적인 학교가 있다가 해체되던 것을 복원하자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는 “제가 취임한 뒤로 벽지 소규모 학교가 경제적 효율성이 없다고 폐교되는 일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경기도 기업 인프라 구축
이어 그는 △나노기술 센터(1500억원) △황우석 교수의 무균돼지 사육사(100억원) 등 추진 중인 기술개발센터 사업을 죽 설명하면서 “기업하기 좋은 경기도를 만들기 위해 기업 인프라를 구축하는 게 경기도정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3.1%인 반면에 경기도 지역경제 성장률은 6%에 이르렀다고 그는 밝혔다. 손 지사는 “전국적으로 지난 1년간 28만개의 일자리가 늘어난 가운데 경기도에서만 35만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겼다”며 “다른 데서 마이너스 성장한 것을 경기도가 커버한 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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