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져보자. 이란은 핵확산금지조약(NPT) 회원국이다. NPT 회원국은 핵무기 개발에 나서지 않는 조건으로, 크게 두 가지를 보장받는다. 첫째, 핵 영구보유국(P5)은 회원국에 핵무기를 사용하거나, 사용하겠다고 위협하지 않겠다는 약속(소극적 안전보장·NSA)을 하게 된다. 둘째, 회원국은 핵에너지를 평화적으로 이용할 수 있으며, 핵 영구보유국들에 이에 필요한 기술 지원 등을 요청할 수도 있다. 이란은 어떤가?
제재 논의는 명분 약하고 실효성도 없어지난 4월9일은 이란 정부가 정한 ‘핵기술의 날’이었다. 이란 관영 <irna>은 이날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중부 이스파한에서 열린 기념식에 참석해 최근 이란의 핵기술이 두 가지 측면에서 큰 진전을 이뤄냈다고 치하했다”고 전했다. 핵연료 생산 능력을 자급 가능한 수준으로 끌어올렸고, 우라늄 농축을 위한 원심분리 시설을 크게 확충했다는 게다. 이스파한에선 이날 핵연료생산공장(FMP)이 문을 열기도 했다.
국제사회는 격하게 반응했다. 왜?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필요한 것은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통한 ‘검증’이다. 검증이 효과를 거두려면 불시에, 그리고 세밀하게 이뤄져야 한다. 이런 절차를 규정하고 있는 게 ‘NPT 추가의정서’다. 하지만 이란은 추가의정서에서 탈퇴한 상태다. 의심을 하는 쪽과 받는 쪽 모두 ‘법대로’를 고집하면 실마리를 풀 수 없다. 어쩔 것인가? 만나야 한다. ‘협상’이 필요하단 얘기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도,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도 ‘만남’에 이견이 없다. 좋은 징조다.
북한 미사일 문제는 어떤가? 국제사회는 핵 등 대량살상무기 운반 수단 확산을 막기 위해 지난 1987년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를 출범시켰다. 2001년 정회원국이 된 우리나라를 포함한 34개 회원국들은 탄두 500kg 이상, 비행거리 300km가 넘는 미사일 개발을 스스로 포기하는 대신 우주개발 관련 기술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했다. 북한은 MTCR 회원국이 아니다. 국제법적으로 탄두의 무게나 사거리에 제한을 받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지난 2006년 10월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했을 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추가 핵실험은 물론 탄도미사일 관련 활동도 금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 결의안 1718호를 통과시켰다. 지난 4월5일 북한이 예고한 대로 ‘로켓’을 쏘아올리자 안보리가 즉각 비상회의를 소집하고 대응 방안 마련에 나선 것도 이에 따른 것이다. 왜? 북한이 ‘로켓’ 머리에 핵탄두를 장착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활용할 것이란 ‘의심’ 때문이다. 해답은? 역시 의심을 하는 쪽과 받는 쪽이 만나, 협상을 통해 문제를 풀어야 한다. 다른 해답은 없다. 북핵을 둘러싼 지난 역사가 이를 증명해왔다.
종합해보자. 북이 로켓을 발사한 지 닷새가 지난 4월10일 오후 현재까지 알려진 바는 이렇다. 첫째, 북한은 인공위성을 장착한 것으로 보이는 로켓을 쏘아올렸다. 둘째, 북쪽 주장과 달리 위성을 궤도에 진입시키는 데는 성공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셋째, 그럼에도 1·2단계 추진체까지는 성공적으로 비행해 사거리(약 3200km)가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넷째, 이는 향후 북한의 미사일 기술 진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다섯째, 북이 탄두 소형화에 성공한다면 향후 핵탄두를 장착한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도 가능해질 전망이다.
“북 위협 강조할수록 북 협상력만 높여”
유엔 안보리가 즉각 비상회의를 소집한 것은 당연했다. 수전 라이스 유엔 주재 미 대사는 4월5일 오후(현지시각) 기자들과 만나 “(미사일이건 위성을 장착한 로켓이건) 중요한 건 탄도미사일 기술이 발사에 활용됐으며, 이는 명백한 안보리 결의 1718호 위반”이라며 “분명하고 강력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미국 정부는 이 정도의 위중한 사안에 대한 가장 적절한 대응은 안보리 결의안”이라고 강조했다. 예상보다 조금 앞서나간 발언이었다.
하지만 이후 안보리의 논의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일본 쪽에선 ‘독자적인 대북 제재’ 카드까지 꺼내들었지만,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는 줄곧 “신중한 움직임, 적절한 반응”을 강조했다. 논의가 지지부진한 사이 중국 쪽에선 더욱 강한 메시지를 내놨다. 장위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4월9일 정례브리핑에서 “압력과 제재는 한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안보리가 ‘결의안’을 내놓으면 ‘거부권’을 행사할 수도 있다는 경고로 읽을 수 있다.
미국의 태도도 조금씩 바뀌는 듯한 모양새다. 로버트 우즈 미 국무부 대변인은 4월9일 정례브리핑에서 ‘여전히 안보리 결의안 형태를 고집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형식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강력하고 효과적인 대응이다.” 무슨 말인가? 적극적으로 해석하자면, ‘결의안’이란 형태에 더 이상 연연하지 않겠다는 뜻이 된다. 때맞춰 일본 이 4월10일 외교 소식통의 발언을 따 뉴욕발로 이렇게 전했다. “미국이 북한의 로켓 발사에 대한 대응책으로 안보리 결의안 대신 ‘의장 성명’ 채택을 제안했다.” 조심스럽게 ‘대화’로 나아가는 길목, 조짐이 나쁘지 않다.
“제재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 북쪽은 2차 핵실험을 하는 등 얼마든지 (긴장을 고조시키는) 추가 도발에 나설 수 있다. 제재를 거론하는 건 좋게 말해 ‘무용지물’이고, 나쁘게 말해 부작용만 낳을 뿐이다.” 대북전문가인 리언 시걸 미국 사회과학원 동북아협력안보프로젝트 국장은 지난 4월6일 국제뉴스 전문 인터넷매체 에 출연해 이렇게 지적했다. 그는 이어 “지금 시점에서 북의 핵과 미사일 위협을 강조할수록 되레 북의 협상력만 높여주는 꼴이 된다”며 “북의 핵과 미사일을 포기시키기 위해선 위협의 크기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은 이미 미국에 미사일 협상을 제안한 바 있다. ‘불능화’ 단계에서 멈춰선 핵 문제를 매듭짓기 위해 6자회담에 복귀하겠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로켓이 발사대를 박차고 창공으로 치솟으며 만들어낸 진동과 소음이 잣아든 뒤엔 대화가 시작될 게다. 북쪽은 준비를 끝마쳤다. 4월9일 최고인민회의 제12기 1차 회의를 열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재추대하고, 국방위원회의 지위를 “국가 주권의 최고 군사지도기관”으로 격상시키는 등 이른바 ‘김정일 3기 체제’를 공식 출범시킨 게다. 유엔 안보리의 북한 로켓 발사 대응책 논의도 예상보다 빨리 ‘의장 성명’ 쪽으로 가닥을 잡는 모양새다. 북-미 맞대면은 이제 ‘시점의 문제’가 된 듯 싶다.
‘결의안’은 구속력 없는 ‘의장 성명’으로 대신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단하기 어렵다. 다만 언제든 필요한 때가 오면 평양에 갈 준비가 돼 있다. …미사일 발사로 인한 흥분이 가라앉을 시점이 되면, 6자회담 재개가 우선 과제가 되는 상황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본다.” 스티븐 보즈워스 미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북한의 로켓 발사 이틀 전인 지난 4월3일 오전 11시께(현지시각) 미 워싱턴 외신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 국무부가 홈페이지에 띄운 동영상을 보면, 회견 내내 보즈워스 특별대표는 ‘발사 이후’를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는 “지난 15년 동안 꾸준히 대북정책에 관여해왔기 때문에 성급한 ‘좌절’은 금물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며 “북과 상대하려면 무엇보다 인내와 끈기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답에 가깝운 발언이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ir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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