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글 김대중
안녕, 은갈치?
주변에서 하도 ‘자전거, 자전거’ 하는 소리에 진작 맘은 갖고 있었다만, 사실 처음에 너를 사려던 건 아니었어. 너도 날 좀 겪어봐서 알겠지만, 난 항상 정말 갖고 싶은 건 선뜻 선택 못하는 타입이잖니. 그래, 결국 2지망을 택하고는 집에 와서 후회하는, 꽤나 알쏭달쏭한 인간형 말이다. 근데 이번엔 단박에 너를 선택해버렸네, 헤헤.
어쨌든 너와 함께한 2주 동안 나는 벌써 너무 많은 걸 알아버린 것 같은 기분이야. 처음 페달을 밟고 바람을 가르는 순간, 다른 시공간으로 들어가는 느낌이었지. 살살거리는 공기와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 속에 너는 나를 습관적인 일상에서 상념과 여백의 공간으로 초대했다.
양재천과 한강을 알게 되고, 건강한 정신이 머물고 있을 듯한 건강한 몸뚱이들을 만나고…. 한눈 가득 들어오는 풍경, 밤의 습기와 스산함, 바람도 좋고, 냄새도 좋아. 내가 살던 도시의 아름다움과 새로움을 발견했다. 더불어 내 육체의 가능성을 탐구하게 되었으니…. 담배 피우는 것도 줄고, 몸도 다부져지는 듯한 느낌이다.
너 그 얘기 들었니? 이번 추석에 친구들이랑 ‘투르 드 제주도’를 해보기로 한 거 말야. 난 벌써 은갈치 너와 함께 제주도 갈칫국 먹을 생각에 시원해진다.
아, 이렇게 좋은 이야기들을 늘어놓았으니 한 바퀴 돌고 와야겠지? 오늘은 간만에 날이 맑으니 과천∼잠실 구간이나 양재∼홍대 구간 정도 달려볼까나?
열심히 달려서 본전은 뽑겠다는 이 소시민스러운 마음가짐이 좀 부끄럽다만, 여하튼 앞으로 우리 한번 잘해보자, 친구. 좋은 차는 아직도 그랜저밖에 생각 못하는 나에게 너는 나의 그랜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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