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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웃, 전화 한 통이면 된다

‘사드 반대’ 연대한 성주·김천 농민회장… “무기와 폭력에 대응할 방법은 철저한 평화뿐” “무기와
등록 2016-09-18 11:58 수정 2020-05-03 04:28
경북 성주군과 김천시가 ‘사드 배치 반대’ 싸움에 힘을 모으기로 했다. 박경범 김천시 농민회장(위쪽)이 연대를 제안했고, 이재동 성주군 농민회장이 여기에 화답했다. 지난 9월7일 서울 세종로 주한미국대사관 앞에서 열린 ‘성주-김천 농민회 연대시위’가 그 시작이다.

경북 성주군과 김천시가 ‘사드 배치 반대’ 싸움에 힘을 모으기로 했다. 박경범 김천시 농민회장(위쪽)이 연대를 제안했고, 이재동 성주군 농민회장이 여기에 화답했다. 지난 9월7일 서울 세종로 주한미국대사관 앞에서 열린 ‘성주-김천 농민회 연대시위’가 그 시작이다.

정부가 마을을 파괴하는 방식이 대개 그랬다. 마을 주민들을 이간질하거나 보상금을 빌미로 공동체를 분열시켰다. 수십 년 된 이웃들의 사이를 벌리고, 그 틈으로 정부가 원하는 것을 가져갔다. 그렇게 제주 강정의 구럼비가 파괴됐고, 경남 밀양에 송전탑이 세워졌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문제가 터진 뒤, 한때 경북 성주도 그랬다. 한 주민은 “수십 년간 해오던 계모임에 나가기 무서울 정도다. 사드 때문에 이웃끼리 싸우고, 형제끼리도 싸우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정부가 ‘제3후보지’를 거론하자, 직접 피해지가 된 이웃 도시 김천과 성주도 갈등을 빚었다. 두 지역의 ‘사드 배치 반대 투쟁위원회’마저 이런 문제에 지리멸렬한 태도를 보였다.

성주·김천 농민회장들이 ‘전선 연대’를 선언했다. 박경범 김천시 농민회장이 9월4일 김천역 촛불집회에서 “성주 쪽에 ‘사드 철폐’를 위한 연대를 제안한다”고 했고, 이튿날 이재동 성주군 농민회장이 성주군청 촛불집회에서 “곧 예정된 성주군의 주한미국대사관 상경 항의 집회에 함께하자”고 화답했다.

김천에서 연대 제안, 성주 화답

박 회장은 김천 대덕면에서 오이농사를 짓고, 이 회장은 성주 명물 참외 농사꾼이다. 이들은 지난 9월7일 대형버스 두 대를 빌렸다. 성주·김천 주민 80여 명이 뒤섞여 서울 종로구 세종로 주한미국대사관에 연대 항의 시위를 했다. 연대 시위 전, 이틀에 걸쳐 두 농민회장을 성주와 김천에서 각각 만났다. 이들을 따로 만나 같은 질문을 던졌고, 대답을 하나로 편집했다.

정부가 ‘사드 제3부지 확정’ 단계에 있다. 지역 상황은 어떤가.

이재동 (성주군 농민회장) 성주군은 사드 배치 반대 촛불집회가 50일을 넘겼다. 매일 참석 인원이 500~600명 정도 된다. 군청 앞마당을 거의 매일 가득 채운다. 수십 년간 새누리당과 그 전신이던 보수당이 이 지역 정서를 완전히 지배했던 점을 감안하면 믿기 어려운 현상이다.

특히 최근에는 군청이 여러 농업 관련 단체 지도부를 압박해 ‘산하 단체와 회원들을 촛불집회에 나가지 못하게 하라’고 한다. 군청에서도 누구의 압력을 받았는지 겉으론 ‘촛불이 꺼지면 안 된다’고 하면서도 촛불을 약화시키려고 한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우리 싸움의 동력은 줄어들지 않았다. 정부가 ‘제3부지’를 확정 발표해도 똑같다. 지역은 관계없다. 이곳에선 한반도 사드 배치를 반대한다.

박경범(김천시 농민회장) 김천은 8월20일 ‘사드 반대 촛불’이 처음 켜졌다. 갓 보름 됐다. 아직 체계가 안 잡힌 상황이다. 게다가 김천시 사드 반대 투쟁위원회에 관변 중심적 인물이 많다. 실제 반대 집회는 민주시민단체협의회를 통해 주로 진행된다. 그래도 사드 반대에 대한 시민들의 요구 사항은 더 올라가고 있다. 투쟁위 산하에 시민 참여를 보장하는 기획·홍보 실무진을 꾸리는 문제도 추진하고 있다.

마을과 주민의 분위기가 언론 보도 이상으로 심각한 것 같다.

<i> “최근에는 군청이 여러 농업 관련 단체 지도부를 압박해 ‘산하 단체와 회원들을 촛불집회에 나가지 못하게 하라’고 한다.”
-이재동 성주군 농민회장
</i>

이재동 초기엔 더 심각했다. 주민들은 평화를 바라는 마음을 넘어 생명에 위협을 느낀다. 삶의 터전이 무너진다는 생각이 강하다. 성주·김천에서 반정부 집회는 유례가 없는 일이다. 일주일도 못 버틸 거라고 생각했지만 50일을 넘겼다. 그만큼 절실하다. 일부에서 집회 도중, 사드를 찬성하는 이들과 물리적 충돌 직전까지 갈 만큼 격앙됐다. 그러나 흥분하면 무조건 붙들고, (현장에서) 나간다. 무기와 폭력에 대응할 방법은 철저한 평화뿐이다.

박경범 김천은 이제 시작이다. 사드가 성주에서 김천 코앞으로 왔다. 위험해서 어딘가에 배치할 수 없다는 시설이 우리한테 온 것이다. 최소한의 설명이나 동의 절차도 없었다. 주민들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게다가 김천에는 경북혁신도시가 있다. 정부 정책에 맞춰 수도권 등에서 불가피하게 내려온 사람이 많다. 이미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어느 정도 감수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다. 느닷없이 ‘사드’라는 정부 시책에 의해 또 당하는 측면이 있다. 억울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어린 자녀를 둔 학부모가 많다.

“우리를 분열시키기는 어려울 것”제주 강정, 경남 밀양 등에서 정부가 주민 분열을 유도한 전례가 있다.

이재동 정부가 이미 성주에서 시도했던 작업이다. 그러나 사드 반대의 중심에 촛불이 있다. 아직 촛불 한복판은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것으로 본다. 강정·밀양의 사례도 잘 알고 있다. 이들의 소중한 경험을 활용하기 위해 연대의 필요성을 느낀다. 이들도 요청하면 언제든 올 거다. 그러나 보수 언론에서 쌍심지를 켜고 각종 꼬투리를 찾으려고 한다. 조심스럽게 방법을 찾고 있다.

박경범 정부가 ‘밀어붙이기식 정책’을 관철하는 일이 잦았다. 이 과정에서 특정 주민을 골라 보상하는 방식으로 분열을 조장한 것을 알고 있다. 사드 문제는 다르다고 본다. 주민 건강, 우리 아이들의 생명과 직결된 문제다. 우리를 분열시키기는 대단히 어려울 거다. 게다가 정부의 허무맹랑한 ‘사드 필요성 주장’이 더 잘 알려질수록 불리해질 것이다. 성주와 김천이 잘 버티면 정리될 것이다.

두 지역의 연대는 어떤 의미가 있나.

이재동 우리는 불과 30km 떨어진 이웃이다. 농민회(전국농민회총연맹)뿐 아니라 지역 민주시민단체협의회를 통해 오래 교류한 사이다. 전화 한 통만 하면 되는 거다. 정부가 김천과 성주를 갈라놓으려고 엄청 애썼다. 이번 연대는 ‘사드 배치 철회’에 대한 국민적 의지가 지역의 이익을 넘어설 만큼 엄청나게 강하다는 것을 외부에 보여준 일이다.

박경범 성주와 김천이 정부로부터 똑같은 피해를 당했다. 성주와 연대해야 한다는 것이 김천 시민의 요구다. 김천이 촛불을 밝힐 때, 성주가 지원을 많이 나왔다. 차 두 대밖에 안 되는 작은 상경 집회로 어깨를 결어보자는 것이다. 며칠 뒤 성주에서 ‘사드 반대 노래자랑’이 열린다. 김천이 함께하면 어떨까? 이렇게 확장해가면 된다.

함께하는 ‘사드 반대 노래자랑’해결책은 뭔가.

이재동 미국에서 주한미군에 사드를 설치 안 하겠다고 선언하면 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낮다는 것을 안다. 박근혜 대통령이 선언적으로 ‘성주 지역 사드 배치’를 발표했다. 결국 국내 정세로는 해결 안 될 단계다. 미국·중국·러시아와 연계된 국제 관계에서 해결할 문제다. 그 핑계를 만들어줘야 한다. 여론을 만들어가야 한다. 피해 당사자인 우리 지역에서 의지를 보이지 않으면 정부 뜻대로 흘러가게 된다.

박경범 2008년 ‘광우병 촛불’에서 이미 가능성을 보였다. 국민 전체가 힘을 모아 사드를 철회시켜야 한다. 촛불의 시작은 성주와 김천이다. 한편으로, 촛불 방식에는 많은 시간과 힘이 필요하다. 국민에게 피로감을 주는 일이기도 하다. 따라서 국회도 함께 움직여야 한다. 국회에서 사드 문제에 대해 충분히 검토하고, 연구해야 한다. 그 결과를 솔직하고 정확하게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

성주·김천=글·사진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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