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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 제로 시대 선언

개성공단 폐쇄, 12년 만에 무너진 공든 탑…갈 곳 잃은 한국 중소기업의 절망북한군 전진 배치로 인한 정세 불안만 남을 것
등록 2016-02-16 15:07 수정 2020-05-03 04:28

개성(開城), 말 그대로 ‘성을 열다’는 뜻이다. 노무현 정부 때 통일부는 그 이름의 뜻을 개성공단의 홍보책자 제목으로 사용했다. 그동안 무엇을 열었는가? 경제특구로 북한의 시장경제 문을 열었고, 남북경제공동체로 인도했다. 개성은 닫힌 북한이 국제경제와 접촉하는 문이었다. 124개의 남한 기업과 5만4천여 명의 북한 노동자가 그곳에서 물건만 만들지 않았다. 분단의 세월 동안 굳어진 차이와 오해를 이해와 공감으로 재생했다. 접촉의 공간이고 통일을 만드는 공장이었다. 성의 문이 닫혔다. 닫힘의 의미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크고 오래갈 것이다.

2월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개성공단기업협회 긴급이사회가 끝난 뒤 참석 기업인들이 생각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2월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개성공단기업협회 긴급이사회가 끝난 뒤 참석 기업인들이 생각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4200개 남한 협력업체 죽이는 일

불안한 남북관계에도 불구하고 ‘개성공단을 건드리지 말라’고 경고한 것은 북한의 손해보다 우리 중소기업의 피해가 훨씬 크기 때문이다. 개성공단은 모든 원자재, 부자재, 식자재를 남한에서 조달한다. 개성에서는 조립만 한다. 그래서 물류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공단을 군사분계선 바로 북쪽에 만든 것이다.

북한에 주는 임금은 연간 1억달러 미만이지만 생산액은 5억달러가 넘는다. 124개의 입주업체와 거래하는 남한의 협력업체 수는 4200개가 넘는다. 원자재와 중간재를 포함한 직접적인 생산 효과는 최소한 20억달러 이상이다. 디자인, 기획, 금융을 비롯한 좋은 일자리는 남한에 생겼다. 북한에 주는 1을 없애기 위해 자기가 얻는 20을 포기하는 것, 그것은 제재가 아니라 자해이고 자살일 뿐이다.

박근혜 정부는 2000년 6·15 공동선언이 낳은 옥동자를 살해했다. 물론 우발적으로 벌어진 일은 아니다. 시련은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시작됐다. 2008년 초 김하중 통일부 장관이 개성공단을 북핵 문제와 연계하는 발언을 하자, 북한은 개성에 근무하던 남한 공무원들을 추방했다. 그때부터 공단은 시름시름 앓았다. 노무현 정부 때 약속한 기숙사 건립을 이명박 정부가 거부하면서, 개성 이외의 지역에서 노동력이 오지 않았고 입주업체는 늘어나지 않았다. 개성공단에는 자체적으로 기숙사를 지을 기업들도 있지만, 그야말로 영세해서 몇 개 기업이 합동으로 운영하는 아파트형 공장을 지을 여유가 없다.

2010년 5·24 조치로 이명박 정부는 개성공단에 대한 신규투자를 금지했다. 공장을 분양받고 입주를 위해 건물을 짓고 있던 어떤 업체는 그대로 도산했다.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덮을 차례인데, 정부가 건축자재 반입을 불허해서 그야말로 오도 가도 못하고 주저앉았다. 2013년에는 군사훈련을 이유로 개성공단이 몇 달 멈췄다. 기업들은 많은 피해를 입었다. 가동 중단으로 기계 설비가 고장 난 것이야 아무것도 아니다. 개성공단은 대부분 중소기업이고, 자체 상표 없이 대기업에 납품을 한다. 그때 끊어진 거래 관계는 회복이 잘 되지 않았다.

북, 공단 자리에 군대 배치 선언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은 그래도 문이 닫힐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비틀거려도 병이 깊어가도 그래도 쿵 하고 쓰러질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간단한 산수만 할 수 있어도 누구든지 개성공단 중단의 득실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에 주는 임금이 핵개발에 쓰인다는 주장도 아무런 근거가 없다. 임금 중 30%는 북한 정부가 사회문화 시책비로 공제한다. 주택, 교육, 의료를 제공하는 대가다. 나머지 70%는 현물과 현금으로 노동자에게 돌아간다. 도대체 어디서 핵개발 자금으로 전용할 수 있다는 것인지 아무런 근거가 없다.

개성공단을 중단하면 북한이 아파할까? 제재 효과가 없을 것이다. 중국이라는 뒷문이 열려 있기 때문이다. 2010년 5·24 조치로 남북 위탁가공을 중단시켰을 때, 북한은 곧바로 중국과의 계약으로 활로를 회복했다. 개성공단의 북한 노동자들은 숙련공이다. 북한이 숙련공을 활용할 방법은 널려 있다. 어떤 미친 나라도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제재의 대상으로 삼지는 않는다. 남한 기업들이 애써 육성한 노동자들인데, 결국 중국 좋은 일만 생겼다.


<i>남북한의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고, 툭하면 통행 시간이 제한되고, 거래하는 대기업이 겁을 줘도 왜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이 이탈하지 않았을까.</i>

개성에서 철수한 기업들에 남은 것은 절망뿐이다. 정부는 대체 부지를 제공한다지만, 그야말로 어이없는 발상이다. 공장 부지가 없어서 개성으로 간 것이 아니다. 남북한의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고, 툭하면 통행 시간이 제한되고, 거래하는 대기업이 겁을 줘도 왜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이 이탈하지 않았을까? 이유는 딱 한 가지다.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봉제와 신발, 그리고 단순 기계조립 업종으로 어디에 간단 말인가?

개성공단 입주기업들 중 큰 기업들은 대부분 해외투자 경험이 있다. 중국에서 인도에서 베트남에서 경쟁력을 잃고 마지막으로 찾은 곳이 개성이다. 월평균 임금 150달러(약 18만원), 모든 악조건을 상쇄할 만하다. 그리고 말이 통한다는 것, 누구든지 해외에서 공장을 운영해본 사람들은 그 말의 의미를 안다.

개성이 닫히면 대안은 없다. 비극적 현실이지만 그냥 망하는 수밖에 없다. 중소기업의 희망도 사라졌다. 경쟁력을 상실한 노동집약 업종의 출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남북관계 제로 시대다. 교류도 0, 교역도 0, 투자도 0인 시대, 북한은 곧바로 공단이 있던 자리에 원래대로 군대를 전진 배치한다고 선언했다. 북한군의 후방 배치로 얻은 개성공단의 조기경보 기능도 사라졌다. 말로만의 통일 대박도 실체를 드러내고 남은 것은 증오뿐이다. 군사적 긴장이 높아질수록 북한은 핵무기 개발에 매달릴 것이다. 한반도 정세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수단이 더 이상 없다.

12년 전 냄비공장 사장의 눈물

2004년 12월15일을 기억한다. 그날 개성공단의 첫 번째 공장 준공식이 열렸다. 필자는 당시 통일부 장관 정책 보좌관으로 현장에 있었다. 눈발이 휘날리던 추운 날, 허허벌판에 덩그러니 공장 하나,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냄비를 만드는 공장 사장은 그날 눈물을 흘렸다. 비싼 주방용품은 선진국에서 수입하고, 싼 냄비들은 중국에서 수입하고, 정말 힘들었다고 그래도 망하지 않고 이곳까지 올 수 있어 너무 기쁘다고 울었다. 그날 기념품으로 받은 냄비로 라면을 끓일 때마다, 사장의 눈물이 떠올랐다. 개성공단은 희망의 눈물로 만들어졌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 역경을 딛고 쌓은 공든 탑인가? 이리 허망하게 무너뜨릴 줄 몰랐다. 성이 닫히자, 희망도 사라졌다. 우리 앞에 놓인 것은 깜깜한 절망뿐이다.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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