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에 북한이 수소폭탄 실험을 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한·미 양국에서는 수소폭탄 실험이 아니라며 북한의 발표를 부정하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수소폭탄의 전 단계인 증폭핵분열탄이라는 주장도 있다. 또 증폭핵분열탄이라고 하더라도 실패했다는 의견도 있다.
이렇게 북한의 발표에 대해 부정적인 것은 북한의 수소폭탄 실험을 사실로 인정할 경우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이 북한의 수소폭탄 실험 이후 곧바로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말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북한의 수소폭탄 실험 발표에는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 인정’이라는 문제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평양 시민들이 지난 1월6일 수소탄 핵실험에 성공했다는 방송을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은 1월6일 수소폭탄 실험을 발표하면서 “새롭게 개발된 시험용 수소탄의 기술적 제원들이 정확하다는 것을 완전히 확정하는 소형화된 수소탄 핵실험”이라고 발표했다. 여기에서 눈여겨볼 것은 ‘시험용 수소탄’ ‘소형화된 수소탄 핵실험’ ‘기술적 제원들이 정확하다는 것을 완전히 확정’이란 표현들이다. 이런 용어들을 꼼꼼히 살펴보면 북한은 미국이나 소련과 같은 방식으로 수소폭탄 실험을 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1950년대에 미국이나 소련이 수소폭탄 실험을 할 때는 그 파괴력 때문에 태평양, 알래스카, 시베리아, 북극해 등에서 실시했다. 북한과 같은 좁은 지역에서 미국이나 소련이 했던 수소폭탄 실험을 하는 것은 어렵다는 뜻이다. 따라서 북한의 수소폭탄 실험은 미국이나 소련과는 다른 ‘짝퉁 수소폭탄’ 실험일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지진 규모는 작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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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소폭탄은 핵융합에서 발생하는 대규모 에너지를 무기로 사용하는 것이다. 핵융합을 위해서는 높은 압력과 1만 도 이상의 고온이 필요하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원자폭탄의 원리로 알려진 핵분열이다. 수소폭탄은 핵분열에서 발생하는 열과 압력으로 핵융합을 시키고, 핵융합 과정에서 발생하는 에너지를 무기로 사용하는 것이다. 핵융합할 때 발생하는 에너지가 핵분열할 때 발생하는 에너지보다 1천 배 이상 크므로 수소폭탄이 원자폭탄보다 더 파괴적인 무기가 된다.
이번 북한의 핵실험은 이러한 일반적인 수소폭탄 실험보다는 핵융합에 필요한 중수소와 삼중수소를 소량 활용해 핵융합 에너지를 얻는 실험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소형화된 실험용 수소탄의 기술적 제원을 확정했다’고 발표한 것이다.
북한이 ‘짝퉁 수소폭탄’ 실험을 했다고 하더라도 이를 무시할 수는 없다. 북한의 수소폭탄 제조 기술이 그만큼 발전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핵실험도 하지 않았는데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를 고려한다면 북한은 수소폭탄 실험으로 핵보유국으로서 능력을 과시하려 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실험으로 북한은 핵보유국 지위를 더욱더 강조할 수 있게 되었다.
북한은 수소탄 실험의 성공을 발표하면서 ‘핵무기를 먼저 사용하지 않고 관련 수단과 기술을 이전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것은 북한이 핵보유국 선언을 넘어 핵국가로서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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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핵보유국 지위 문제는 미국의 인정만이 남아 있는 셈이다. 앞으로 미국과 북한의 관계는 핵보유국 인정 여부가 쟁점이 될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공식적으로 ‘핵보유국 지위’를 가진 나라는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인정한 미국·러시아·중국·영국·프랑스 5개 핵보유국뿐이다. 인도·파키스탄·이스라엘은 NPT 체제 밖에서 핵무기를 개발했지만 핵보유국으로서 ‘묵인’받는 나라들이다. 국제사회에는 공식적 핵보유국과 비공식적 핵보유국 등 8개의 핵보유국이 있는 것이다.
핵을 보유하지 않았지만 핵기술과 핵연료를 갖고 있는 일본 같은 나라들은 ‘문턱국가’라고 한다. 핵보유 일보 직전 상태에 있는 나라란 뜻이다. 북한은 핵무기를 보유한 나라이면서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나라에 해당한다.
핵보유국으로 인정받는다는 것은 핵폐기의 압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핵무기를 보유한 상태에서 핵무기 감축이나, 핵기술이나 물질의 이전을 통제하는 의무를 지닐 뿐이다. 핵무기의 합법적 보유나 핵무기 보유를 묵인받은 상태에서 핵국가로 국제사회에서 대접받게 되는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핵확산 방지에 가장 앞장서는 나라는 미국이다. NPT에서 인정한 5개국 이외에 다른 나라들이 핵보유국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기준이 국제법에는 없다. NPT 조약 제9조는 1967년 이전에 핵무기를 보유한 5개국만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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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이후 핵보유국으로 인정받는 방법은 국제사회의 묵인뿐이다. 핵확산 방지에 앞장서는 미국의 묵인이 필요하다. 미국은 국제사회에서 핵무기 보유 국가 감별사 구실을 하고 있다. 인도·파키스탄·이스라엘은 모두 미국의 묵인을 받고 핵보유국이 되었다. 미국의 묵인을 받게 되면 핵무기 실험을 하거나 핵무기를 보유했다고 해서 제재를 받지 않는다.
인도의 경우 2006년 ‘미국-인도 핵협정’을 통해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았다. 인도는 1998년 핵실험을 하고 핵보유국 선언을 했다. 미국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인도에 제재를 가했다. 하지만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으로선 대테러전쟁 수행을 위한 인도의 지원이 필요했다. 또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기 위해서도 인도와 협력이 필요했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인도와 핵협정을 통해 NPT가 아닌 다른 조약에 의해 핵보유를 인정하는 최초의 사례를 만들었다.
인도의 핵실험 이후 파키스탄은 곧바로 핵보유를 선언하고 1998년 핵실험을 단행했다. 미국은 파키스탄에 대해 처음에는 제재를 가했다. 하지만 대테러전쟁에서 파키스탄이 차지하는 지정학적 가치 때문에 결국 파키스탄의 핵보유를 인정하게 되었다. 버락 오바마 정부는 파키스탄에 대해 매년 수십억달러의 군사지원과 경제지원을 하면서 파키스탄의 핵보유를 묵인한 것이다.
파키스탄은 비확산을 위해 노력하는 국가가 아니다. 오히려 북한에 핵을 확산시킨 나라로 의심받고 있다. 또 미국은 파키스탄의 경우 인도와 같은 민주주의 국가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은 1973년 이후 핵무기를 개발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핵보유를 선언하지도 않았고 핵실험을 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은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핵개발 과정에서부터 미국이나 프랑스의 방조나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즉, 이스라엘은 핵을 개발하면서부터 핵보유국을 인정받은 일종의 ‘모태 핵보유국’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은 이미 핵보유국 선언을 했지만 미국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북한은 인도나 파키스탄과 달리 지정학적으로 미국에 전략적 가치가 있는 나라가 아니다. 이스라엘처럼 미국과 특수관계도 아니다. 미국이 핵협상을 한 이란처럼 석유가 풍부한 나라도 아니다.
그래서 북한이 택한 ‘인정투쟁’ 방식이 바로 핵능력 과시와 위기 고조이다. 하지만 한반도는 분단 상태이기 때문에 북한의 이런 인정투쟁은 북한을 고립시키고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며 남북한의 대결을 심화할 뿐이다.
북한은 1월6일 수소폭탄 실험을 발표하는 성명의 대부분을 미국에 대한 비난으로 채웠다. 미국이 북한에 대한 적대시 정책을 펼치기 때문에 핵무기를 보유한다는 것이다. 북한은 미국으로부터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고 그 후속 조치로 경제지원, 핵 군축 협상, 북-미 수교 등을 추진하려는 구상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의 위협을 한·미·일 삼각 군사협력 강화와 대중국 견제로 활용해온 미국으로서는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할 수 없다.
북한은 미사일 능력 향상과 추가적인 핵실험으로 핵능력을 계속 발전시켜나갈 것이다.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실험도 계속할 것이다. 미국에 실질적 위협이 된다는 것을 인식시키려는 것이 북한의 의도이다.
이같은 북한의 의도가 지속될 경우 결국 오바마 정부의 대북 정책인 ‘전략적 인내’가 실패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그럴 경우 대중국 견제가 핵심인 오바마의 아시아 회귀 정책도 냉정하게 평가받게 될 것이다. 벌써부터 미국 내에서는 ‘전략적 인내’를 실패로 평가하는 전문가가 늘고 있다.
2016년은 미국의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이다. 북한이 2016년 벽두에 수소폭탄 실험을 한 것은 미국 대선을 노린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이다. 2017년 출범하는 미국의 새 정부는 민주당이건 공화당이건 북한의 핵능력 강화를 방치해온 오바마의 ‘전략적 인내’를 재평가할 수밖에 없다. 결국 한반도의 긴장은 당분간 지속될 수밖에 없다. 북한의 핵을 폐기하기 위한 6자회담이 2008년 중단된 이후 북핵 폐기와 한반도 평화를 위한 너무나 많은 시간을 낭비해버린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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