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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사당 앞, 국가가 가장 먼 곳

‘성역 없는 진상규명’ 요구하며 단식하다 5명 쓰러져 나간 유가족…

특별법 표류 중 유가족들은 국회의사당과 광화문 오가며 ‘거리 생활’
등록 2014-07-23 16:45 수정 2020-05-03 04:27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과 시민 등 약 1만5천 명이 7월19일 오후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린 ‘4·16 특별법 제정 촉구 범국민대회’에 참여했다. 한겨레21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과 시민 등 약 1만5천 명이 7월19일 오후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린 ‘4·16 특별법 제정 촉구 범국민대회’에 참여했다. 한겨레21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지난 7월17일 오후 3시께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단식농성을 하던 경기도 안산 단원고 2학년 5반 고 이창현 학생 아버지가 뙤약볕 아래서 정신을 잃었다. 같은 곳에서 단원고 학생들의 마지막 모습이 담긴 영상을 보던 2학년 4반 고 정차웅 학생 어머니가 통곡하다 실신했다. 2학년 7반 고 정동수 학생 아버지도 단식농성을 중단했다. 하루 전인 16일 안산에서 국회 앞까지 걸어온 생존 학생들을 맞으러 나갔다가 국회 출입을 막아선 경찰과 충돌하는 과정에서 늘어난 왼쪽 팔 인대 통증이 심해져서다. 7월18일 저녁 광화문 광장에서 단식을 이어가던 2학년 5반 고 오준영 학생 아버지가 쓰러졌다.

 

농성 뒤 정문 주위 경찰들 늘어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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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밝히려는 부모는, 길거리 생활도 모자라 목숨까지 내걸어야 한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들은 지난 7월12일부터 국회의사당 출입문 앞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14일부터는 유가족 15명이 곡기를 끊었다. 이들 중 5명이 단식을 더 이상 할 수 없는 상황이다. 100일 가까이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겠다’며 거리를 떠돈 사람들이다. 쓰러진 5명의 빈자리를 대신해 7월20일 또다른 유가족 5명이 단식농성에 합류하겠다고 나섰다. 국회의사당 앞에서 12명, 광화문 광장에서 3명이 물과 소금, 효소로 생을 지탱하고 있다(7월21일 기준).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이 요구하는 건 ‘성역 없는 진상규명’이다. 이들은 앞서 ‘세월호 사건 조사 및 보상에 관한 조속 입법 TF’에 여·야·피해자 가족 3차 협의체 구성을 요청했었다.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참관 요청조차 거부당했다. 가족들은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 뜻을 이루기 전까진 도무지 국회 밖으로 나설 수가 없다.

국회 안에서 농성이 시작되자, 정문 주위를 지키고 선 경찰 수가 늘어났다. 출입도 까다로워졌다. 7월19일, 충북 청주에서 혼자 상경한 24살 대학생은 이 모습을 보고 괜스레 위축됐다. 그는 세월호 유가족을 비난한 ‘엄마봉사단’ 기사를 읽고선, 진상이 밝혀지길 바라는 마음을 보태고 싶었다. “어떤 용무로 오셨느냐”는 물음에 “여기, 누구나 들어갈 수 있지 않나요?”라고 되물었다. 국회의장 지시로 명확한 사유가 없는 사람은 들여보낼 수 없다는 취지의 답변을 듣고 발걸음을 돌렸다. 국회 주위를 기웃거리다 국회도서관을 이용하겠다며 국회 안에 들어왔다. 혹시 문제가 생길까봐 국회도서관 이용권을 발급받아 문 닫는 시간까지 머물렀다. 그런 뒤에야 농성 중인 유가족들을 만나러 갔다. 국회경비대 쪽은 국회사무처의 요청과 유가족의 의사를 존중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농성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사람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의원회관과 국회도서관을 방문하거나 국회 관람을 원하는 시민들의 출입은 막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가족대책위 쪽은 경찰에 따로 출입 통제를 요청한 적이 없다고 했다.

국회 앞마당 초록색 잔디 위로 셀 수 없이 많은 노란색 종이배가 넘실거린다. 국회에 들어온 유가족들이 하나하나 손수 접어 띄운 배다. 국회의사당 계단을 올라서면 국회의장·국회부의장, 여·야 대표를 위한 주차장이 있다. 그 공간을 거쳐 더 올라가야 농성 중인 유가족들이 보인다. 조그만 폐회로텔레비전(CCTV) 카메라가 다닥다닥 달려 있는 국회의사당 출입문 앞이 유가족의 집이 되었다. 처마가 지붕이요, 은박 돗자리가 몸을 눕히는 방바닥이다. 더위를 견디며 앉아 있다. 모기에 시달리며 잠을 잔다. 본회의장으로 통하는 출입문 좌우로 곡기를 끊은 유가족들이 나뉘어 앉아 있다. 출입문을 막고 있으면 국회의원들이 아예 다른 문을 이용할까봐 그렇게 자리를 잡았다.

단식농성을 하는 가족 왼편으로 단원고 유가족들이 일렬로 둥지를 틀고 있다. 아이가 소속됐던 반은 부모의 반이다. 1·2·3반은 여자 인문계, 4·5·6반은 남자 인문계, 7·8반은 남자 자연계, 9·10반은 여자 자연계였다. 반별로 같은 티셔츠를 맞춰 입고 둥글게 앉은 가족들은 아이 이야기로 웃다 울다 다시 멍해지곤 한다. 출입문 오른편으로 의경들이 미동도 하지 않고 서 있다. 한 어머니는 의경들도 고생이라고 했다. 2학년 10반 고 이가영 학생 오빠도 의경으로 군 복무 중이다. 같이 지낼 때는 자주 투닥거리던 남매였다. 오빠가 군 입대를 하자 가영이는 제대 날짜를 손꼽아 기다렸다. 입대한 오빠도 가영이를 살뜰히 챙겼다.

 

심재철 “유공자보다 대우해달라는 특별법”

끼니때가 되면 단식장 옆을 지키던 가족들은 도시락을 챙겨들고 건물 왼쪽 모퉁이를 돌아나간다. 물과 소금, 효소로만 삶을 지탱하고 있는 이들을 지척에 두고 밥알을 넘기기가 힘들다. 찌는 듯한 날씨지만 물도 벌컥벌컥 마시기 어렵다. 화장실을 가려면 단식 중인 가족들을 거쳐 건물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땀으로 끈적이는 몸을 씻으려면 10여 분을 걸어 의원회관 샤워실로 가야 한다.

지난 7월12일부터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출입문 앞에서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이 ‘성역 없는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노숙 농성을 하고 있다. 장슬기 인턴기자

지난 7월12일부터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출입문 앞에서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이 ‘성역 없는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노숙 농성을 하고 있다. 장슬기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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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을 괴롭히는 건, 거리 생활의 불편함이 아니다. ‘세월호 침몰사고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위원장인 심재철 새누리당 의원은 유가족들의 요구를 왜곡하는 글을 카카오톡을 통해 지인들에게 보냈다. 7월20일, 가족대책위가 공개한 심 의원의 메시지에는 ‘수학여행을 가다가 희생된 사건을 특별법을 만들어 보상해달라는 것은 이치에도 어긋나는 것이라고 본다. 안전사고로 죽은 사망자들을 국가유공자들보다 몇 배 더 좋은 대우를 해달라는 것이 세월호 특별법’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동감하시면 다른 분께도 전달해달라’는 문장도 덧붙였다. 이날 저녁 특별법 제정 촉구 미사에 참여한 한 수녀는 말했다. “사람의 생명에 값어치를 매길 수 있는가. 언제 이 나라가 이 지경까지 됐는가.” 안철수·김한길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는 이날 “세월호 특별법은 박근혜 대통령이 결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새정치민주연합 남윤인순·유은혜·은수미 의원 3인방은 단식농성에 합류했다.

심 의원의 메시지가 외부로 알려진 7월20일 오후 3시께, 8·9·10반 부모 20여 명이 버스에 올라탔다. 굳어진 얼굴들은 말없이 창밖이나 스마트폰으로 눈을 돌렸다. 노숙 농성 중인 유가족들은 매일 순번을 정해 광화문 교보생명빌딩 건너편 광장으로 향한다. 특별법 제정 촉구 서명을 받기 위해서다. 버스에서 내린 이들은 먼저, 단식농성을 하고 있는 가족들을 찾는다. 9반 어머니들이 노란 우산을 펴들고 광장 내 보도 한쪽에 자리를 잡았다. 머리 위로 쏟아지는 한여름 햇볕을 막아내기엔 우산은 역부족이다. “우리 아이들이 있어야 할 곳은 여기인데….” 손에 쥔 피켓엔 텅 빈 교실 사진이 보인다. 시민들은 이들을 힐긋힐긋 보며 지나친다. 이대로 잊혀지는 것. 유가족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일이다.

김동협 학생의 마지막 절규

“내가 왜 수학여행을 와서. 나는 꿈이 있는데. 나는 살고 싶은데. 나 울 것 같은데. 나 무섭다고. 구조대가 오면 얼마나 위험한 상황이냐고요. 구조대 와도 300명을 어떻게 구합니까. 욕도 나오는데 어른들한테 보여줄 거라 욕도 못하고 진짜 무섭고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데. 난 살고 싶습니다. 나는 하고 싶은 게 많은데….”

주말 오후 광화문 광장 구석구석, 남학생의 긴박한 절규가 퍼져나갔다. 2학년 6반 고 김동협 학생은 세월호가 침몰하기 직전 오전 9시10분께부터 휴대전화로 긴박한 상황을 촬영했다. 횡단보도 바로 앞, 광장 초입에 설치된 모니터에선 동협의 마지막 순간이 재생되고 또 재생됐다. 울부짖는 소리에 시민들은 잠시 걸음을 멈춘다. 11살·8살·3살 난 아들을 데리고 나온 40대 주부는 차마 횡단보도를 건너지 못하고 한참이나 모니터 앞에 머물렀다.

“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안타깝고 속상해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것이 너무 많잖아요. 이 나라를 어떻게 믿고 아이들을 키우며 살아가야 하나. 만약 세월호 참사를 당한 아이들이 돈 있는 집 자식이었다면 저렇게 놔뒀을까요.” 그의 눈시울이 붉었다.

참사 뒤 스무 날이 지나서야 동협이는 부모 품으로 돌아왔다. 주검을 수습한 잠수부는, 아이가 휴대전화를 손에 쥐고 있었다고 전해주었다. 동협이는 연극부 친구들에게 ‘마지막 영상’을 찍었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가족들은 휴대전화 영상을 되살렸다. 잔혹한 순간을 마주한 건 5월 말이었다. 3살 터울의 형조차 비명에 간 동생을 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아버지 김창구(46)씨는 아들이 남긴 말이 자꾸만 걸렸다. “진짜 뉴스에 나오면, 이 영상 보낼 겁니다.” 김씨도 국회에서 머물고 있다.

“정치권에서, 특히 새누리당에서 진상 규명을 피하고 있잖아요. 사람들은 유병언만 잡으면 되지 않냐고 그러는데, 이 사람이 여기저기 로비한 것들 다 잡아내지 않으면 또 이런 사고가 나는 거예요. 그 뿌리를 뽑자고 하는 겁니다. 수사권·기소권이 없으면 뿌리를 뽑을 수 없잖아요. 특검도 있지만, 그동안 제대로 된 게 뭐 있습니까? 아이들 두 번 죽이는 나쁜 댓글이 많지만 용기를 냈어요. 우리 애가 죄인이 아니기 때문에, 모자이크 처리도 안 하고 실명을 공개해도 좋다고 했습니다.”

 

“빨리 학교에 입학시키지 않았다면…”

유가족들은 동협이 영상을 볼 때마다 가슴을 친다. 7월19일 저녁, 서울시청 광장에서도 그랬다. 600여 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는 이날 4·16 특별법 제정 촉구 범국민대회를 열었다. 시민 약 1만5천 명(경찰 추산 5천 명)이 광장을 노랗게 물들였다. 노란 물결 앞쪽에 유가족 200여 명이 자리를 잡았다. 지난 90여 일간의 기억이 영상으로 흘러나왔다. 동협이 육성이 다시 들리자, 유가족들은 오열했다. 2학년 8반 고 김제훈 학생 어머니 이지연(43)씨도 통곡했다.

“동협이 영상에 시간이 나와 있잖아요. 저희 아이는 오전 9시15분에 전화를 했어요. 배가 기울어졌다는 거예요. 제가 놀라니까 ‘농담이에요 엄마, 농담이에요’ 그래요. 아이들이 엄마·아빠가 걱정할 줄 알고 안심을 시켰거든요. 그렇게 전화를 끊었어요. 그때 생각이 새삼 또 났어요.”

186cm. 키가 훌쩍 큰 제훈이는 중학교 3학년인 남동생이 괴롭혀도 묵묵히 받아주던 아이였다. 형이 사고를 당하던 날, 동생은 졸업여행을 떠났다. “한 학년 빨리 학교에 입학시키지 않았더라면, 단원고에 보내지 않았더라면. 지금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였더라면….” 아버지 김기현(48)씨는 아들의 죽음을 막을 수도 있었던 순간순간이 그저 다 후회로 남는다. 속 깊던 아들은 부모 마음을 알았을까. 그날 밤, 어머니 꿈 속으로 제훈이가 찾아왔다.

정치권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약속한 날짜는 7월16일이었다. 그러나 법 처리는 7월21일 개회된 임시국회로 또다시 미뤄졌다. 18일 세월호 참사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 일반인 희생자 유가족 대책위는 대통령 면담을 요청하며 청와대에 편지를 전달했다.

“어제는 차웅이 엄마가 쓰러졌습니다. 대통령님께서도 정차웅군을 우리 시대의 영웅이라 부르셨죠. (중략) 우리 가족들은 국회 앞에서 다시 세월호에 탄 기분입니다. 연락망과 지휘체계가 흔들린다며 서로 책임을 미루고, 명령을 기다리느라 시간을 허비하고, 정작 사고 발생 현장에서 아무도 구조하지 못했던, 잃어버린 골든타임. 이번에는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대통령님이 결단하셔야 합니다.” 차웅이 부모는 ‘세금으로 치르는 아들 장례’라며 가장 값이 저렴한 장례용품을 선택했었다.

비를 머금은 먹구름이 몰려온다는데

애끊는 절박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청와대는 7월22일 정오까지도 가족대책위에 아무런 답변을 주지 않았다. 곡기를 끊은 유가족들 머리 바로 위로 ‘제66주년 제헌절’을 기념하는 거대한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세월호 희생자·실종자·생존자들에게 법은, 정치는, 국가는 멀었다. 비를 잔뜩 머금은 먹구름이 몰려온다는 일기예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김연희 인턴기자 kyhbb72@naver.com
서지원 인턴기자 iddgee@gmail.com
장슬기 인턴기자 kingka878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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