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로봇, 무인항공기…. 애플과 구글, 아마존 등 정보기술(IT) 기업들의 상상력은 어디까지 닿을까. 애플과 구글은 ‘스마트카 프로젝트’에 가속페달을 밟고, 아마존은 ‘드론’이라는 무인항공기를 이용해 택배를 배송하는 시스템을 준비하고 있다. 구글도 최근 로봇병사인 ‘펫맨’을 개발한 보스턴 다이내믹스 등 8개의 로봇업체를 인수했다. 얼마 전에는 페이스북까지 ‘드론’ 제조업체를 인수한다는 소문이 솔솔 흘러나왔다. 웹과 모바일 생태계를 지배하는 ‘절대강자’들이 제조업까지 넘나들며 미래를 선점하려 드는 것이다.
자동차와 IT의 ‘융합’? 알고 보면 전쟁
지난 3월4일(현지시각) 스위스 제네바에서 개막한 ‘제네바 모터쇼’. 수많은 자동차업체의 틈에서 돋보인 건 애플이었다. 애플은 모터쇼에서 아이폰의 주요 기능을 차량에서 구현할 수 있는 운영체제인 ‘카플레이’(Car Play)를 공개했다. 지난해 6월 개발자대회 때 공개한 ‘iOS in the car’를 상용화하는 데는 1년도 안 걸렸다.
“우리 집으로 가는 길을 알려줘.” 아이폰을 케이블로 자동차에 연결하면, 차 안의 대시보드에 익숙한 아이콘이 떠오른다. 아이폰에 저장된 스케줄은 내비게이션과 연동돼 가장 빠른 길을 찾아준다. 애플의 음성인식 프로그램인 ‘시리’(Siri)를 통해 음성명령으로 전화를 걸거나 문자를 보낼 수도 있다. 페라리, 메르세데스벤츠, 볼보의 일부 차종에서는 당장 적용이 가능하다. 현대·기아자동차, BMW, GM 등도 카플레이를 도입할 예정이다. 애플의 그레그 조즈위악 제품·마케팅 부사장은 “주행에 끼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차량에서도 아이폰과 같은 기능을 사용하는 놀라운 경험을 제공한다”고 강조했다. 한마디로 애플의 다양한 애플리케이션과 서비스를 자동차 안에서도 더 많이, 편하게 쓰라는 손짓이다.
| |
자동차 시스템에 IT를 결합시키는 ‘스마트카’에 먼저 시동을 건 것은 구글이다. 지난 1월 미국에서 열린 소비자가전박람회(CES)에서 구글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로 구동되는 ‘구글카’를 선보인 바 있다. 구글은 아우디, GM, 현대·기아차, 혼다 등 자동차업체들과 ‘열린자동차연합’(OAA)을 결성했고, 안드로이드로 차량을 제어하는 새로운 시스템을 조만간 선보일 예정이다. 구글의 꿈은 더 담대하다. 차량에 내장된 정보에 따라 스스로 운전하는 무인자동차를 개발 중이다. 도요타의 프리우스를 개조한 구글카는 2012년 시각장애인을 태우고 30만 마일 자율 주행에 성공했다. 삼성전자도 CES에서 ‘갤럭시 기어’를 통해 BMW의 전기차 i3을 원격 점검할 수 있는 기술을 시연한 바 있다.
“자동차는 가장 큰 모바일 기기가 될 것”(루퍼트 슈타들러 아우디 회장)이라는 예언이 현실이 될 날도 머지않았다. 표면상으로는 자동차와 IT 사이의 ‘융합’이다. 융합이라지만, 알고 보면 전쟁이다. 주도권을 둘러싼 물밑 다툼이 치열하다. “구글이 차량 제어 OS를 장악하고 자율 주행 차까지 선점한다면, 스마트폰 산업에서처럼 완성차 업체들이 하드웨어 제조사로 전락할 수 있다”(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 )며 자동차 업계는 바짝 긴장하는 분위기다. 물론 애플이나 구글은 협업 관계일 뿐이라고 손사래를 친다. 로봇이나 무인위성 인수가 자신의 몸값을 높이려는 ‘이벤트’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스마트카뿐만이 아니다. 미래 신기술로 산업계는 하루가 다르게 요동친다. 기술 발전 속도를 따라잡기에도 숨이 찰 지경이다. 지난해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이 10대 신기술로 선정했던 3D 프린터만 해도 올해는 열 손가락에 꼽히지 못했다. 세계경제포럼은 2014년 10대 신기술로 ‘입는 컴퓨터’인 웨어러블 제품, 생각만으로 컴퓨터를 움직이는 뇌-컴퓨터 간의 인터페이스 등을 선정했다.
3D 프린터는 3차원으로 설계한 디지털 데이터를 인쇄하듯이 실물 모형으로 만들어낸다. 플라스틱, 금속 파우더나 종이 등의 물질을 층층이 쌓아 물건을 만드는 방식이다. 국내에서도 현대차·두산인프라코어 등이 3D 프린터를 이용해 부품 생산 과정의 시행착오를 줄이고 정밀도를 높여왔다. 올해는 미국이 주로 보유하고 있던 제작 기술 관련 핵심 특허 기간이 만료됨에 따라, 수억원대에 이르던 산업용 3D 프린터 가격이 수천만원대 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1980년대 처음 개발된 3D 프린터가 새삼 주목받는 이유다. 국내에서도 개인용 3D 프린터가 속속 보급되고 있다. 한국인 최초의 우주인 후보였던 고산씨가 대표로 있는 기술창업 컨설팅업체인 타이드인스티튜트도 이르면 3월 안에 200만원대 개인용 3D 프린터를 선보일 예정이다. 고산 대표는 “지금까지 인터넷이나 모바일에만 접근성이 열려 있었다면, 3D 프린터는 누구나 하드웨어에 쉽게 접근해 제조할 수 있는 시대를 열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식품의 영양분을 가루로 넣어서 음식을 만드는 프린터도 연구 중이라고 한다. 는 3D 프린터가 제조업의 혁명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내다보며 ‘3차 산업혁명’이라고 일컫기도 했다.
지난 1월 열린 세계경제포럼의 주제는 ‘세계의 재편’이었다. 그중에서도 세계를 뒤흔들 5대 변화의 첫 번째로 꼽힌 주제는 ‘초연결사회’였다. 모든 사물에 인터넷을 연결시킨다는 뜻의 IoT(Internet of Things)는 초연결사회의 핵심 기술이다. 자동차와 스마트폰을 연결해주는 스마트카, 전력 공급자와 소비자가 실시간으로 정보를 교환해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스마트 그리드’(지능형 전력망), 혈압·당뇨 등을 실시간 관리해주는 ‘스마트 헬스케어’도 모두 IoT다.
그렇다면 어떤 기업이 IoT 시대를 이끌게 될까? “기술이 중심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이해가 확실한 기업이 살아남을 거다. 휴먼 인터페이스가 중심이라는 말이다. 기술에만 집중한 소니·노키아·파나소닉 등이 무너진 반면, 인간의 특성을 이해하는 제품을 내놓은 애플·구글·페이스북이 계속 성장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최재붕 성균관대 교수(기계공학)의 전망이다.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온몸에 걸치고, 각종 정보에 민감한 ‘스마트 신인류’의 마음을 읽어내는 기업이 미래를 주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해’만으로 충분하진 않다. 새로운 기술은 달콤하지만 치명적인 ‘독’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3D 프린터는 열쇠나 지문을 무단 복제하는 데 악용될 수 있고, 무인자동차는 시스템 오작동으로 언제 ‘살상무기’로 돌변할지 모른다. 디지털 세계에 기록된 우리 일상은 이미 ‘빅브러더’의 손아귀에 들어가 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전 직원인 에드워드 스노든은 구글과 페이스북 등이 미국 정보기관에 개인정보를 넘겼다고 폭로한 바 있다. 지난 3월6일엔 KT 홈페이지에서 고객 1200만 명의 개인정보가 통째로 해킹당한 사실이 뒤늦게 경찰 수사로 알려졌다. 롯데·농협·KB카드를 통해 1500만 건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사건이 일어난 지 한 달여 만에 ‘또’ 일어난 사고다. 스마트 신인류가 되는 건 좋다. 그래도 우리 괴물은 되지 말자.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이승환, ‘구미 사태’ 후 공연 요청 줄이어…“7월까지 ‘헤븐’ 투어”
[단독] 입법조사처 ‘한덕수, 총리 직무로 탄핵하면 151명이 정족수’
[단독] ‘총선 전 계엄’ 윤석열 발언 당일 신원식, 김용현 불러 대책 논의
‘내란 비선’ 노상원 수첩에 정치인·언론인 ‘사살’ 표현 있었다
대만 전자산업노조 “삼성 반도체 경쟁력 부족은 근로시간 아닌 기업무능 탓”
북 충돌 빌미로 계엄 노린 듯…노상원 수첩엔 ‘NLL서 공격 유도’
[단독] 윤석열, 3월 말 “조만간 계엄”…국방장관·국정원장·경호처장에 밝혀
세계서 가장 높이나는 새, ‘줄기러기’가 한국에 오다니
12월 24일 한겨레 그림판
윤석열 쪽 “엄연한 대통령인데, 밀폐 공간에서 수사 받으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