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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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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이 늙고 있다

고령화 속도 지방 추월하고, 실업률·일자리 질은 악화
인프라 정비해 사람도 도시도 ‘곱게 늙기’ 준비할 때
등록 2014-01-10 14:26 수정 2020-05-03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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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반세기를 보낸 세대의 은퇴 러시가 곧 시작된다. 이미 수도권에 사는 65살 이상 고령인구는 2000~2012년 120만 명에서 240만 명으로 증가했다. 금융회사가 주최한 은퇴준비포럼, 서울 구로 시니어팝 오케스트라, 종로 거리 풍경 (위부터).

젊은 시절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반세기를 보낸 세대의 은퇴 러시가 곧 시작된다. 이미 수도권에 사는 65살 이상 고령인구는 2000~2012년 120만 명에서 240만 명으로 증가했다. 금융회사가 주최한 은퇴준비포럼, 서울 구로 시니어팝 오케스트라, 종로 거리 풍경 (위부터).

그러고 보니, 이주는 청년의 것이다. 정확히는, 위험한 청춘의 것이다.

지난 1월2일, 해가 저물어 어둑한 기운이 덮치는 비탈길 계단을 노인은 난간을 잡고 오르고 있었다. 낙산성곽 바로 아래 서울 성북구 장수마을의 계단은 젊은이가 올라도 숨찰 만큼 빼곡하다. 두꺼운 누비옷을 입고 계단을 한 걸음씩 오를 때마다 노인의 주름살에 힘이 들어갔다. “할머니, 어디 가세요?”

길을 멈추고 노인이 답한다. “딸네 집에.” 말을 붙이자 맺힌 무언가를 풀듯 말이 터졌다. “저 아래 아들네 오막집에서 오는 거야.” 이 동네에 오래 살았냐 물었다. “한 삼십 몇 년 됐지.” 칠순이 넘었다는 할머니는 “사글셋방 사느니 여기가 낫다고. 영감이 여기 곧 허문다고 사가지고…”라고 되풀이했다. “동대문에서 저 아래로 도로가 난다고” 해서 산 집이 수십 년이 흘러도 재개발되지 않았다. “아들네는 둘이 누우면 꽉 차는 방 두 개짜리에 엉덩이 붙이면 없는 부엌이 전부야.” 손주들에게 공부방을 내주고 할머니는 산 위의 큰딸네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딸이 미싱일 하거든. 집 봐달라고 부른 거지.” 그러나 방 두 칸짜리에 손주가 둘이 있기는 딸네도 마찬가지다. “할머니, 고향이 어디세요?” “영일군.” 스물이 채 되지 않아서 상경해 산동네 마을에서 생애를 보낸 할머니는 다시 말했다. “저기 도로가 난다고….”

가난해도, 넉넉해도 못 떠나는 노인들

도시재생 성공 사례로 알려진 장수마을에는 최근 도시가스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오래된 비탈집을 부수고 재개발을 하는 대신 집을 고치고 길을 정비해 ‘마을’을 만든 것이다. 할머니가 잡고 오르던 난간도 도시재생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아직도 정비의 흔적이 채 가시지 않은 산동네, 불빛이 휘황한 발 아래 도심보다 겨울 한기가 한층 차가운 동네에 어둠이 짙어지니 허공에 개 짖는 소리만 들렸다. 어둑한 골목을 어쩌다 지나는 이들은 대부분 노인이었다.

마을을 내려오자 목장갑을 끼고 녹슨 무언가를 쓰레기 더미 위에 정리하는 할아버지가 보였다. “어르신, 저게 뭐예요?” “기름통이잖아요. 누가 우리 집 앞에 버리고 가서.” 성을 김씨라고 말한 그는 “아들이 마흔인데, 직장은 좋은데 장가를 안 가서” 아직 아들딸과 함께 산다고 했다. 병원에서 일하며 키운 자녀들이 직장을 얻었지만, 그는 병원 정년이 끝난 뒤에도 10년을 더 일했다. “노후 대책 해야지.” “많이 모으셨어요?” “해놨어.” 상경해 50년, “해놨어” 하는 말에는 세월만큼의 자신감이 배어 있었다. 말을 남기고 저쪽으로 갔던 어르신을 마을을 헤매다 다시 만났다. 손에 들린 검은 봉투. “뭐예요?” “막걸리.” 어르신은 집으로 들어가고 다시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한밤의 주유를 마치고 내려오는 비탈길, 털모자를 눌러쓴 할머니가 쪼그려 앉아서 병을 고르고 있었다.

장수마을에서 지하철 역사로 한참을 걸었다. 큰길이 나오자 택시를 타고 실버타운으로 향했다. 택시비 5100원. 장수마을과 같은 성북구인 종암동 대로변, ‘노블레스타워’ 사인이 선명했다. 건물은 종암로 50m 앞에서도 한눈에 들어올 만큼 우뚝하다. 도심형 실버타운 입구엔 ‘60세의 즐거움과 90세 이후의 편안함’ 글귀가 있었다. 건물 1층은 카페 기능을 곁들인 공용 공간, 저녁 8시 어르신 한 분이 신문을 보고 있었다. “여기 사세요?” 차분한 말투로 “강남에 오래 살다 2008년에 여기로 왔어” 하신다. 지하에 수영장, 헬스클럽, 노래방, 세탁실 등을 갖춘 노블레스타워. 어르신은 “관리비가 만만치 않지만, 자기가 이용하기 나름이야” 하신다. “노인들은 첫째 교통이 좋아야 돼. 병원도 가깝고. 옛날에는 늙어서 전원으로 가고 젊어서 도시라고 했지만 이제는 반대야.”

고령화 전문가에게 들었던 말들을 마치 복화술 하듯 그대로 하신다. 강남에 살다가 여기로 오기에 고민이 많았지만, “다니던 병원, 살던 동네로 바로 가는 버스도 있어서” 여기를 택했다. 가까운 곳에 대학병원도 있다. 한 달에 한두 번은 서울 근교로 실버타운 주민들과 함께 여행도 다닌다. 어르신은 “밥도 공동식당에서 먹지, 청소도 해주지 하니까 부인들이 너무 좋아한다”며 웃는다. 그는 “평생 고생한 아내를 위해서 왔다”고 했다. 강남 집을 처분하고 여기로 왔다는 그는 “국가가 해주는 것이 너무 없다”고 했다. “노인들한테 이런 실버타운에 들어오면 취득세나 양도세를 좀 줄여주든지, 전세 융자를 싸게 해주든지 하면 얼마나 좋아.”

고령화 대책 없는 수도권

이렇게 여유가 있든 없든, 노인은 도시를 떠나지 못한다. 최재헌 건국대 지리학과 교수가 2013년 에 발표한 논문 ‘수도권 고령인구의 공간 분포와 주거 특성’(윤현위 공저)은 “서울과 인천은 고령화가 도심부에서부터 외곽으로 진행되는 양상을 보인다”고 지적했다. 65살 이상 고령인구는 단독주택에 거주하는 비율이 높다. 그래서 구도심에 단독주택이 많은 종로구·관악구·중랑구 등에 고령층이 많다. 성북구도 예외는 아니다. 최재헌 교수는 “시골은 고령인구 비율이 높다고 해서 고령화에 맞춘 투자가 되는데 고령층 절대인구가 오히려 많은 수도권은 대책을 세우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노인인구와 노인시설 사이에 불일치가 있다”는 것이다. 가난한 고령층뿐 아니라 중산층을 위한 대책도 필요하다.


지방의 젊은이가 서울로 유입되는 ‘국내 이주’ 시스템이 붕괴하고 있다. 게다가 1960~80년대 상경한 세대는 일자리와 안정을 주었던 수도권에서 늙어가고 있다.


그리하여 ‘젊은 수도권, 늙은 지방’이란 관념이 깨지고 있다. 2013년 10월 이혜림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 ‘수도권이 늙고 있다’에 바탕하면, 2001년을 기점으로 수도권(서울·경기·인천)의 고령화 속도가 비수도권을 추월했다. 보고서는 “2000~2012년 수도권 고령층 증가율은 5.9%로 전국 평균 4.7%를 웃돌았다”고 지적했다(표1 참조). 수도권 노령인구는 같은 기간에 120만 명에서 240만 명으로 가파르게 늘었다. 고령화 속도와 달리 고령층 인구 비중은 2012년 수도권(9.6%)이 비수도권(13.6%)에 견줘 낮다. 하지만 비수도권보다 빠르게 늙어가는 수도권은 전국 평균을 따라잡을 기세다. 전망에 따르면, 초고령사회(고령층이 인구의 21% 이상을 차지하는 사회)로 진입하는 시기는 전국적으로는 2026년, 서울은 2027년이다.

반면 수도권으로 오는 젊은이는 줄고 있다. 수도권은 원래 출산율이 낮았지만, 지방 젊은 층의 유입으로 젊음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보고서는 “20~30대의 수도권 순유입 규모는 2000~2012년 사이 12만 명에서 4만 명으로 감소했다”고 지적했다. 40~50대는 수도권 인구 유입보다 유출이 오히려 많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7년 이후 연간 2만 명의 40~50대가 수도권을 떠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지방의 젊은이가 서울로 유입되는 ‘국내 이주’ 시스템이 붕괴하고 있다. 게다가 1960~80년대 상경한 세대는 일자리와 안정을 주었던 수도권에서 늙어가고 있다. 전환의 시기는 21세기의 첫해인 2001년이었다. 이해에 수도권 고령화 속도가 비수도권보다 빨라졌고, 경제성장률도 역전됐다. 보고서는 “2000~2011년 수도권의 평균 경제성장률은 6.5%로 비수도권의 7.0%를 하회했다”고 지적한다. 예전에는 물가가 비싼 수도권에 씀씀이가 커져도 먹고살 만한 ‘거리’들이 있어서 살았지만, 이제 수도권은 먹고살 기회도 줄어든 팍팍한 동네가 돼가고 있다.

서울 젊은이들의 탈출 러시

“지금은 업무 중이어서.” 지원(34·가명)씨는 그렇게 답했다. 나중에 통화하자는 것이다. 일을 마친 저녁에 통화가 됐다. 고향으로 돌아간 지 3개월, 그는 전북 군산의 한 병원 원무과에서 일하고 있다. 1999년 대학에 입학하며 서울로 올라와 14년을 살았다. 사회단체·신문사·국회 등에서 일했지만 벌이는 불안정했다. 지원씨는 “친구들끼리 통장에 월급이 들어와도 월세니 뭐니 금방 빠져나가서 숫자로만 존재하는 사이버머니라고 했다”고 말했다. 저축은 꿈도 꾸지 못하고 교통비도 만만치 않은 서울, 한번 탈출해보기로 결심했다. 마침 지인이 일자리도 소개했다. 고향으로 내려와 부모님과 함께 사니 주거비가 안 들고, 도시가 작으니 교통비도 줄었다. 그러나 여전히 친구들이 있는 서울로 가고 싶은 마음이 있다. 나이에 따른 서열 의식이 강하고, 삶에 지나치게 관여하는 직장 문화가 불편하다. 그는 “만족도는 5점 만점에 서울은 4점, 여기는 3점”이라며 “서울로 가려면 급여가 더 많아야 한다”고 못박았다. 통화 끝에 “만약 1년 있었다면 점수가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시골은 고령인구 비율이 높다고 해서 고령화에 맞춘 투자가 되는데 고령층 절대인구가 오히려 많은 수도권은 대책을 세우지 않는다.” -최재헌 건국대 교수


수도권은 경제적 기반을 잡지 못한 젊은이에게 더 팍팍한 지역이 됐다. ‘수도권이 늙고 있다’는 “2012년 수도권의 청년 실업률은 8.5%로 비수도권에 비해 1.7%가량 높다”고 지적했다(표2 참조). 일자리의 질도 떨어지고 있다. 보고서는 “수도권 지역의 정규직 취직 확률이 빠르게 하락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교육개발원의 대졸자 직업이동 경로 조사에서 대학 졸업 뒤 취직에 성공한 이들 중 정규직으로 취직한 사람의 비중은 2004~2009년 비수도권에서 9%포인트(48%→39%) 감소한 반면, 수도권에서는 11%포인트(55%→44%) 감소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학업을 위해 상경했던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고향으로 되돌아가는 상황도 빈번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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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씨가 말한 1년이 지난 사람이 있다. 여진(29)씨는 고향인 대구로 돌아온 지 1년3개월이 지났다. 서울에서 혼자 9년을 살면서 그는 “지쳤다”고 돌이켰다. 대구에 사는 부모님도 마음에 걸렸다. 외국계 회사를 다니며 틈틈이 고향의 교직원 모집 공고를 인터넷으로 확인하다 마침 기회를 잡았다. 그는 “월급은 30만원 줄었지만 일도 재미있고 사람들도 좋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바빠서 못했던 운동도 틈틈이 하고, 부모님과 영화관을 다니는 즐거움도 크다. 그는 “아파도 돌봐줄 사람이 곁에 있으니 심리적 안정이 된다”며 “어려서는 학교 다니러 서울로 갔지만 다시 하라면 못하겠다”고 말했다.

고향이 아닌 곳으로 떠나는 청춘도 있다. 전북 정읍에 사는 경은(31)씨는 생활 만족도가 떨어지는 서울을 탈출했다. 서울시민 11년차가 된 지난해 말이었다. 원래 고향은 충북 청주다. 그는 서울에 살면서 서울에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서울에서 대학을 나와 신문사 기자 생활을 1년간 하다 체질에 맞지 않아 유통 쪽으로 일터를 옮겼다. 축산 기술을 배워 지방에서 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2년 처음 상경한 그는 300만원으로 옥탑방을 구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모은 3천만원으로 2012년에 살 만한 집을 구하려 했다. 하지만 결국 2천만원짜리 옥탑방을 얻었다. 서울살이를 하면서 보증금을 10배 가까이 벌었는데, 똑같이 옥탑방 생활을 해야 하는 것을 납득할 수 없었다. 지금은 보증금 200만원에 월세 17만원짜리 18평 아파트에 살고 있다. 그는 “이 가격에 이런 집을 구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좋으면서도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학교를 따라 이주해 전공에 맞는 직장도 구했지만 이 거대한 도시는 그에게 10년이 넘도록 살 만한 공간을 제공해주지 않았다.

GDP 규모도 서울-지방 역전

우리가 몰랐던 수도권이 있다. ‘수도권이 늙고 있다’는 “비수도권 대비 수도권의 1인당 GDP 상대비율은 9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낮아져 90년대 평균 1.2에서 2011년에는 0.92까지 하락했다”고 지적했다. 서울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000년대 이전까지 줄곧 1~2등을 유지했으나 2012년에는 2500만원으로 전국에서 5위로 하락했다. 2011년 인천은 9위, 경기는 11위로 떨어졌다. 반면 소비지출은 여전하다. 보고서는 “2011년 기준 1인당 소비지출은 서울이 연간 1640만원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고, 다음으로 울산(1330만원), 경기(1300만원) 순으로 높다”고 전한다. 이런 결과로 2011년 수도권의 경제적 여유(처분가능소득-소비지출)는 49만원으로 비수도권의 204만원에 견줘 5분의 1에 불과하다. 이것을 체감하는 젊은이도 있다. 서울 소재 대학원에서 피아노를 전공하고 올해 부산으로 내려간 혜정(29)씨는 “개인 레슨을 해보면 여기가 오히려 페이(급여)가 높다”고 말했다. 그는 “생활비가 적게 들어서인지 지방 분들이 더 지갑을 잘 연다”고 전했다. 학자금 대출 상환에 월세에 서울에서 저축은 꿈도 못 꿨던 그는 “버는 돈은 늘고 쓰는 돈은 줄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유구한 서울·수도권 중심주의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도시가 늙는 게 반드시 나쁜 것일까

이주는 순간이동에 가깝다. 결심하면 떠나야 한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발목을 잡는 일이 많다. 경기도 평촌에 사는 허갑성(60·가명)씨는 인생의 절반을 부산에서, 나머지 절반을 서울에서 보냈다. 1986년 일하던 회사의 본사 발령을 받아 가족과 함께 상경했다. 대기업 영업부에서 일하던 그는 2007년 퇴직했다. 이후 비슷한 회사에 재취업했다가 2011년, 30년 넘게 해오던 일을 그만뒀다. 은퇴 뒤 오랜 친구와 가족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갈까 생각을 해봤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그만뒀다. 두 자녀가 서울에서 회사를 다니며 가까이 살고, 무엇보다 아내의 반대가 심했다. 허씨의 고향은 부산, 아내의 고향은 경남 마산이다. 아내가 연고도 없는 부산에, 그것도 거의 30년 만에 이주하자는 말에 선뜻 동의할 리 없었다.

그렇게 발이 묶이다보니 막상 허씨도 귀향하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도 든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쌓은 인맥이 있고, 퇴직해 다른 일을 도모하기도 좋기 때문이다. 지금은 작은 인쇄소를 차려 운영 중이다. 오래 다니던 직장 동기들도 대부분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허씨처럼 하던 일과 거리가 있는 일을 하는 사람도 있고, 본래 하던 일과 비슷한 사업을 꾸리는 이도 있다. 그가 보기에 아주 특수한 경우, 아내나 본인의 건강이 안 좋다거나 고향으로 꼭 가야 할 사정이 발생하지 않는 이상 모두 수도권의 경계를 넘지 않는다. 돌아보니 자신과 함께 도시도 나이가 들어가고 있다고 느낀다. 그가 요즘 하는 생각은, 도시가 잘 늙으려면 여전히 일할 준비가 되어 있는 은퇴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세월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 하는 것이다.

이상대 경기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돈도 있고 건강도 있고 문화를 향유할 의지도 있는 세대를 ‘액티브 실버’라고 부른다”며 “이제는 아파트 건축 기준에 어린이 놀이터 설치 규정처럼 노인 놀이터 규정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수도권 고령화 현상은 이제 시작에 가깝다. ‘수도권이 늙고 있다’는 “수도권에 약 49%가 거주하는 베이비부머 세대(1955~63년생)가 2020년부터 본격적으로 65살 이상 고령층에 진입하기 시작하기 때문에 한동안 수도권의 고령층 인구 비중은 지금보다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허씨는 베이비부머의 맏형·맏언니보다 고작 1살이 많다. 이제 그처럼 도시에 머무르는 고령층이 쏟아져나오는 시대다. 수도권은 늙어가지만, 늙는 게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사람도, 도시도 그렇다. 곱게 늙은 도시는 아름답다. 강호원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는 “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성장에 타격을 주지만 ‘반드시 사회는 성장해야 하는가?’라는 질문도 든다”고 말했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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