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주시 양남면 월성 핵발전소를 향하는 좁은 길을 닮아 있었다. 지난 3월11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약 45km 떨어진 니더외스터라이히주 츠벤텐도르프 시내를 지나 굽이굽이 가다보니 도나우강을 내려다보고 있는 츠벤텐도르프 핵발전소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이곳엔 월성 핵발전소와 다른 결정적 한 가지가 있었다. 바로 ‘핵 없는 핵발전소’라는 점이다.
애물단지 된 1조4천억원 발전소
한겨레 김성환 기자
이곳은 1970년대 오스트리아 정부의 핵발전소 6기 건설 계획 가운데 가장 먼저 세워진 발전소다. 1972년 오스트리아의 8개 전력업체가 컨소시엄을 구성해 6년 만에 완공한 이 발전소는 공사비만 10억유로(약 1조4천억원)가 드는 초대형 사업의 산물이었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공업 시설이 많던 이 지역의 군부대 부지에 900MW 규모의 핵발전소를 세우고 도나우강 일대에는 700MW의 대규모 수력발전소 등을 세워 중앙 유럽에서 가장 큰 에너지 단지를 만들 계획이었다.
그러나 핵발전소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면서 오스트리아는 격렬한 논쟁에 휩싸였다. 핵의 안전성을 의심하는 ‘핵발전소를 반대하는 시민 모임’이 결성되고 빈에서는 대규모 반핵 시위가 열렸다. 약 50만 명의 사람들이 핵발전소 건립 반대에 나섰다. 정부는 경제 발전을 언급하며 핵발전소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격렬한 시위로 츠벤텐도르프 핵발전소 일대가 봉쇄되자 정부는 도나우강을 통해 우라늄 연료를 옮겼다. 갈등이 깊어지자 브루노 크라이스키 총리는 핵발전 폐기 법안의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를 제안하는 승부수를 띄웠다. 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출범한 오스트리아 제2공화국의 첫 국민투표였다.
오스트리아 츠벤텐도르프 핵발전소의 모습. 전광판에는 발전소 곳곳에 설치한 태양광 패널이 만드는 전기 발전량이 표시되고 있다.
투표 결과는 총리의 예상과 달리 ‘법안 반대’로 근소하게 기울었다. 1978년 11월5일 국민투표 결과 49.53%(157만6839명)가 찬성을, 50.47%(160만6308명)가 반대를 했다. 완공된 츠벤텐도르프 핵발전소는 시동 버튼을 누를 수조차 없게 됐다.
투표는 끝났지만 24만㎡ 부지에 지어진 츠벤텐도르프 발전소는 고스란히 남았다. 재가동에 대비해 발전소에는 200여 명의 직원이 8년 동안 시설을 지켰다. 시설 유지 비용만 5억유로(약 7200억원)가 들었다. 예정됐던 핵발전소가 문을 열지 못하자 화력발전소를 돌려야 했고, 오일쇼크(1978) 직후 전기료 폭등의 후폭풍은 주민들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다.
츠벤텐도르프 핵발전소가 새롭게 탈바꿈한 건 1986년 러시아 체르노빌 핵발전소 폭발사건을 겪으면서부터다. 사고 직전, 운영 업체가 유지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고 에파우엔(EVN)이라는 전력회사에 발전소를 매각했다. 중요한 부품은 독일 등의 핵발전소에 팔았다. “츠벤텐도르프 발전소는 오스트리아 역사의 일부분”이라며 매입 이유를 밝혔던 에파우엔은 부지 활용을 위한 여러 아이디어를 짜냈다. 오스트리아의 잘못된 정책을 알리는 박물관, 또는 오스트리아판 할리우드 스튜디오처럼 유명 영화 제작소를 유치하자는 논의 등 다양한 제안이 쏟아졌다.
현재 이 발전소는 아이러니하게 핵발전소의 모습을 띤 재생에너지 발전소가 됐다. 이미 발전시설 부지로 허가받은 땅에는 바이오가스 발전시설 등을 설치했다. 발전소 외벽에도 태양광 패널을 붙였으며, 건물 너머에는 대학과 함께 운영하는 태양광 시설도 들어섰다. 450kW를 생산하는 이 시설은 츠벤텐도르프 지역의 150~200가구가 사용할 수 있는 시설로 지역 주민들이 주주로 참여하는 시민발전소다. 1999년부터는 발전소 안에서 친환경 기업이 후원하는 음악 축제 ‘누크 페스티벌’(Nuke Festival)도 열린다. 내부의 원전 시설은 견학 프로그램이나 독일 등 핵발전소를 가동 중인 나라의 인력이 와서 교육받는 공간으로 쓰고 있다.
‘츠벤텐도르프의 교훈’은 주변 마을도 바꿔놨다. 당시 탈핵 운동을 직접 경험한 주민들이 재생에너지 사업에 적극적이기 때문이다. 헤르만 퀴트라이버 츠벤텐도르프 시장은 “지난 10년 동안 쓰레기 재처리와 연료에 쓰이는 바이오에탄올 사업 등을 해왔으며 마을 안에는 바이오가스 시설도 있다”면서 “2020년까지 모든 에너지를 재생에너지에서 공급받겠다는 전략을 우리 마을이 오스트리아에서 처음 세웠다”고 말했다.
오스트리아는 유럽연합(EU) 회원국 가운데에서도 일찌감치 탈핵을 선언한 국가다. 유럽에서는 그리스가 1975년 지진 발생시 안전성이 낮다는 이유로 핵발전소 산업을 폐기했으며, 오스트리아를 비롯해 스웨덴(1980), 노르웨이(1984), 이탈리아(1987~90), 스위스(1990), 네덜란드(1994), 아일랜드(1999) 등이 한시적·영구적 원전 건설 금지, 가동 중 원전의 단계적 폐쇄 등을 법제화하거나 정부 정책으로 삼았다.
이 가운데 최근 주목을 받은 국가는 독일이다. 러시아 체르노빌 핵발전소 폭발사건의 피해를 겪기도 했던 독일은 1980년대 녹색당이 빠르게 성장했으며 1988년에는 뮐하임케를리히 핵발전소의 가동 중지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2002년 사민당과 연정을 통해 재집권한 녹색당은 신규 핵발전소 건설 중단과 기존 핵발전소를 폐쇄하는 정책을 이끌어냈다. 특히 2009년 선거에서 승리한 앙겔라 메르켈 총리(기독민주당)는 다수당의 힘을 앞세워 핵발전소 수명을 평균 12년 연장하는 정책을 결정했지만,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뒤 “후쿠시마가 나의 생각을 바꾸었다. 우리에겐 안전이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결정을 번복하고 탈핵 정책을 고수하기로 해 전세계의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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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도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난 지 1년 뒤인 2012년 초 지방자치단체들의 ‘탈핵 선언’이 이어진 바 있다. 지난해 1월9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에서 에너지 소비를 줄여 원전 1기를 줄이겠다”는 정책을 발표했으며, 지난 2월13일에는 전국 228개 지자체의 21%에 해당하는 45개 지자체장이 참여한 ‘탈핵-에너지 전환을 위한 자치단체장모임’이 출범했다. 이들은 전력 소비를 줄여 핵발전소를 대체하고 재생에너지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탈핵 선언을 한 지 35년이 지난 오스트리아의 전체 발전량 가운데 재생에너지 비중은 67.9%, 탈핵 11년차 독일은 21%다. 그동안 이들 국가는 재생에너지 사업을 본궤도에 올려놓기까지 만만찮은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긴 논쟁을 벌여야 했다. 그럼에도 탈핵이 여전히 진행될 수 있는 건, 바로 ‘안전’이라는 가치를 가장 앞세웠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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