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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어린이, 설사로 죽는다

5살 미만 어린이 사망 원인 2위, 기후변화가 설사 발병을 부추겨
등록 2013-04-12 20:47 수정 2020-05-03 04:27

‘콜레라.’ 고열과 구토를 동반하는 전염성 감염 질환이다. 한 해 지구촌에서 300만 명가량이 감염돼, 이 가운데 10만 명 정도가 목숨을 잃는다. 빠른 전염력 탓에 특정 지역에서 콜레라가 창궐하면, 세계인의 관심을 끌기 마련이다. 그럼, 이건 어떤가?
한 해 전세계적으로 약 17억 명이 앓는 질병이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자료를 보면, 1년에 지구촌 5살 미만 어린이 66만 명이 이 병으로 목숨을 잃는다. 5살 미만 어린이 사망 원인 1위(약 120만 명)인 폐렴에 이어 두 번째로 치명적인 질병이다. 관심을 가질 만한가?
에티오피아 14%, 독일 1%
오염된 물과 음식 섭취가 주요 감염 경로다. 일단 발병하면 극심한 탈수 증세를 보인다. 영양실조 상태에 있으면 이 병에 걸리기 쉬운데, 발병 이후 영양실조가 급속도로 악화하면서 숨을 거두는 경우가 많다.
예방 대책? 적절한 위생 상태를 유지하고 깨끗한 물을 마시면 된다. 이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WHO 자료를 보면, 전세계적으로 25억 명가량이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다. 깨끗한 마실 물을 구하지 못하는 인구도 7억8천만 명이나 된단다. 이 질병이 창궐하는 이유다. 뭘까? 설사다.
유니세프는 지난해 6월 펴낸 보고서에서 가난한 나라와 부자 나라 어린이들의 ‘생존율 격차’를 분석했다. 2010년을 기준으로 지구촌에서 5살 미만 어린이 사망률이 가장 높은 에티오피아와 가장 낮은 독일을 견줘본 게다. 그해, 에티오피아에선 5살 미만 어린이 27만7천 명이 목숨을 잃었다. 1천 명 가운데 106명꼴이다. 독일에선 2900명이 숨졌단다. 1천 명당 4명꼴이다.
에티오피아에선 사망한 어린이 가운데 14%가 설사로 목숨을 잃었다. 독일에서 설사로 목숨을 잃은 어린이는 전체의 단 1%로 나타났다. 설사는 가난한 나라의 어린이에게 더욱 치명적이란 얘기다. 해마다 지구촌에서 설사로 목숨을 잃은 어린이의 절반은 사하라사막 이남 아프리카 국가에서 나온단다.
사하라사막 저 아래, 짐바브웨·남아프리카공화국 등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내륙국가 보츠와나가 있다. 그곳에서도 설사는 5살 미만 어린이 사망 원인 가운데 2위, 2살 이하 영유아의 영양실조 원인 가운데 1위란다. 캐슬린 알렉산더 미국 버지니아공과대학 교수(수의학) 연구팀은 1974년부터 2003년까지 30년 동안 보츠와나에서 설사 발병률과 ‘특정 요인’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논문을 지난 3월28일 에 발표했다. 연구팀이 발병률과 견준 ‘특정 요인’은 기온과 강수량, 곧 기후다.
높고 건조한 기간 발병률 높은 이유
전형적인 아열대 기후를 보이는 보츠와나는 건기와 우기가 뚜렷하다. 연구팀의 분석 결과, 해마다 기온이 가장 높고 건조한 기간에 설사 발병률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설사를 유발하는 미생물을 옮기는 파리의 활동이 이 기간에 가장 왕성하기 때문이란다. 알렉산더 교수는 논문에서 “기후변화가 진행되면서, 특히 건기에 기온은 갈수록 높아지고 강수량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며 “이 때문에 우기에 견줘 건기에 설사 발병률이 20%나 높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설사는 특히 가난한 아이들에게 치명적이다. 기후변화가 설사 발병을 부추기고 있다. 말하자면, 기후변화가 가난한 아이들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는 셈이다. 기후변화에 관심을 쏟아야 할 이유가 한 가지 늘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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