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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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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약은 찬성, 비준은 글쎄

전미총기협회, 헌법적 가치 운운 ATT 협상 극렬 반대… 끝내 ATT 지지 밝히지 않은 오바마 정부, 상원 비준도 쉽지 않아
등록 2013-04-12 23:32 수정 2020-05-03 04:27

미국 군수업계 입장에서, 2012년은 그야말로 호황이었다. 세계적인 경제위기 속에 2011년 250억달러 규모에 그쳤던 수출액이, 2012년 2배 이상 늘어난 530억달러까지 치솟은 게다. 중동의 산유국 카타르가 발주한 235억6천만달러 규모의 각종 무기 도입 사업이 결정적이었다.
미 군축협회(ACA)가 지난 1월 내놓은 카타르 정부의 미국산 무기 구매 목록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UH-60M 블랙호크 헬리콥터 12대, MH-60R 시호크 헬리콥터 10대, AH-64D 아파치 롱보 헬리콥터 24대, AGM-114K3A 및 AGM-114R3 헬파이어 전술 미사일 700기,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THADD) 발사장치 2대, 패트리엇 미사일(C-3) 발사장치 11대, 고기동 다연장 로켓 발사기(HIMARS) 7대.”
한국, 2012년 미국산 무기 수입 2위
지난해 카타르에 이어 미국산 무기를 두 번째로 많이 도입한 나라는 한국이다. 이명박 정부는 임기 마지막 해에만 시호크 헬리콥터 8대를 포함해 모두 88억1천만달러 규모의 무기체계를 사들였다. 그 뒤를 사우디아라비아(82억4천만달러)와 오스트레일리아(17억달러), 일본(15억9천만달러) 등이 잇고 있다. 경제위기 이전보다는 못하지만, 세계 무기시장은 이미 위기의 바닥을 친 것으로 보인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의 자료를 보면, 한 해 600억달러 규모를 훌쩍 뛰어넘는 지구촌 재래식 무기시장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40%에 이른다. 2011년을 기준으로 연간 매출이 464억9900만달러에 이르는 세계 1위 군수업체 록히드마틴을 비롯해, 매출 순위 상위 10대 군수업체 가운데 7곳이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다. 지난 4월2일 ‘무기거래 규제조약’(ATT)을 두고 이뤄진 유엔총회 표결에서 미국이 찬성표를 던진 게 ‘신기’하게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왜 그랬을까?
끝까지 ‘반대’를 굽히지 않았던 이란·북한·시리아가 비난의 표적이 됐지만, 기실 2012년 7월 열린 ATT 체결을 위한 ‘최종 협상’이 결렬된 것은 미국 때문이었다. 외교안보 전문매체 가 지난해 7월27일 인터넷판에서 토머스 컨트리맨 국무부 국제안보·비확산 담당 부장관의 말을 따, 당시 미국이 사실상 ‘거부권’을 행사한 이유를 이렇게 전한 바 있다. “제출된 협정문의 핵심 조항에 대해선 전혀 이견이 없다. 다만 협정문을 꼼꼼히 살펴보려면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다.”
올해, 달라진 건 대체 뭔가? 잘 알려진 것처럼 미 수정헌법 제2조는 ‘무기를 소지할 권리’를 ‘시민적 권리’의 하나로 명시하고 있다. 건국 초기인 1789년 작성된 ‘권리장전’에도 ‘총기 휴대’는 기본권으로 등재돼 있을 정도로, 미국인들의 ‘총기 사랑’은 유별나다. ATT 체결을 위한 지난해 협상은 7월2일 개막돼 27일까지 이어졌다. 미 대선을 불과 넉 달여 앞둔 시점이었다. 재선 도전에 나선 버락 오바마 대통령으로선, 군수업계와 총기를 소유한 보수층의 표심을 자극할 만한 ‘무리수’를 던질 이유가 없었을 터다.
“그 어떤 경우에도, 총기 소지라는 헌법적 권리를 포기할 수 없다.”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막강한 로비단체 가운데 하나인 전미총기협회(NRA) 쪽도 ATT 협상 반대운동을 적극적으로 벌였다. 웨인 라피에르 NRA 회장은 아예 유엔 협상장에 ‘증인’으로 출석해 이렇게 강조하기도 했다.
미 의회가 비준하지 않은 조약들
“1억 명에 이르는 미국 총기 소유자를 대표해 말한다. 정당방어에 필요한 우리의 권리를 침해하는 그 어떤 조약 체결에도 결단코 반대한다. 어떤 외부의 영향력도 미국민의 기본적 권리를 침해할 수 없다. 국제기구가 미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사태를 두고만 보지는 않을 것이다.”
미 의회도 바삐 움직였다. 캔자스주 출신 제리 모랜 상원의원(공화당)은 아예 동료 의원 50여 명과 연대서명한 공개 서한을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보냈다. 이들은 서한에서 “미국의 주권과 국민의 권리가 유엔 때문에 침해되는 일이 벌어져선 안 된다”며 “개인이 총기를 소지할 권리를 앗아가는 그 어떤 국제협정도 상원의 비준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못박았다. 그래서다. 협상이 한창이던 7월20일 콜로라도주 오로라의 ‘센추리16’ 극장에서 시사회 도중 무차별 총기 난사 사건이 벌어져 12명이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음에도, 오바마 대통령은 ATT 지지 입장을 끝내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기실 올해 협상 때도 분위기는 엇비슷했다. NRA는 ATT 체결 반대 여론몰이를 주도했고, 의회에선 연일 ‘기본권 침해’를 운운하는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협상 막바지였던 지난 3월23일엔 아예 관련 입법까지 찬성 53 대 반대 46으로 상원을 통과했다. 공화당 제임스 아인호프 상원의원(오클라호마주)이 ‘헌법이 보장한 총기소지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는 ATT’에 미국이 참여할 수 없도록 하는 조항을 2014년 예산안에 포함시킨 게다. 그래서다. ATT의 ‘앞날’에 대한 우려는 유엔총회 통과 이전부터 구체적으로 거론돼왔다.
“불법 거래된 무기가 유입될 가능성이 높은 국가들은 대체로 가난하다. 이 국가들은 이미 조약 비준 이후, 이를 이행하기 위해 국제사회의 자금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불법 거래된 무기류의 원산지 추적 등 조약 이행 능력도 미지수다.”
미 외교안보 전문단체 외교관계위원회(CFR)는 ATT 초안을 유엔총회에서 표결 처리하기로 결정한 지난 3월28일 내놓은 자료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정작 이 단체가 ATT의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할 것으로 꼽은 건 따로 있다. 조약 비준과 관련된 ‘법적 도전’이다. CFR는 이렇게 지적했다.
“한 나라의 협상단이 표결에서 찬성표를 던진 것과, 이를 자국 의회에서 비준받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미국이 대표적이다. 미국은 그간 다양한 국제조약 체결 협상에서 찬성표를 던졌지만, 의회가 이를 비준하지 않으면서 당사국 지위를 얻지 못했다. 유엔 해양법조약(UNCLOS)과 생물다양성협약(CBD), 여성차별근절협약(CEDAW) 등은 지금도 미 상원에 계류 상태로 남아 있다.”
미 헌법은 조약 비준권을 상원에 부여해놨다. 상원의원 3분의 2가 찬성해야 조약은 비로소 효력을 얻는다. 군수업계와 NRA가 워싱턴 정가에서 휘두르고 있는 막강한 영향력에 비춰, ATT가 상원 표결을 통과할 가능성은 아예 없다고 보는 편이 옳겠다. 이란 책을 쓴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언론인 앤드루 파인스타인은 지난 3월29일 독립방송 에 출연해 이렇게 꼬집었다.
오바마는 ‘기이한 동침’ 하게 될까
“지난해 12월 코네티컷주 뉴타운의 샌디훅 초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 이후 오바마 행정부는 강력한 총기 규제 입법을 추진 중이다. 정부가 마련한 총기법 개정안 가운데 대용량 탄창과 반자동 소총 규제 등 핵심 조항을 빠뜨린 의회를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나서 비판하기도 했다. …(오바마 행정부가) ATT와 관련해 군수업계와 NRA의 편에 선다면, 그야말로 ‘기이한 동침’을 하게 되는 셈이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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