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은 해는 선거가 많은 해였다. 1월3일 남태평양의 섬나라 마셜제도공화국에서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 것을 시작으로 12월28일 아프리카 가나의 총선까지, 지구촌 전역에서 2012년 실시된 각종 선거는 모두 100차례를 훌쩍 넘겼다. 미국 ‘선거제도국제재단’(IFES)이 집계해 내놓은 자료를 보면, 2013년 예정된 세계 각국의 선거는 80차례 남짓이다.
2012 운명의 숫자는 51.6%
한반도 주변만 둘러봐도, 2012년이 ‘선택의 해’였음은 쉽게 알 수 있다. 지난해 말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으로 권력을 승계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 변화의 움직임은 새해 벽두부터 동북아 전역으로 번져갔다. 첫 사례는 대만이었다. 1월14일 치러진 대선에서 마잉주 대통령(총통)이 51.6%의 득표율로 무난히 재선에 성공한 게다.
이어 3월4일엔 러시아에서 대선이 치러졌다. 연임 제한 규정에 따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에게 사실상 대통령직을 ‘신탁’했던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는 이날 치른 선거에서 63.6%의 압도적 지지를 얻으며 지구촌에 ‘차르의 귀환’을 알렸다.
봄이 성큼 다가왔음에도, 그 무렵 러시아는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대선을 앞둔 2월21일 모스크바의 유서 깊은 성당에서 벌어진 ‘반푸틴 공연’을 문제 삼아, 여성 펑크록 그룹 ‘푸시라이엇’ 멤버 3명이 ‘난동죄’ 혐의로 선거 전날 경찰에 체포됐기 때문이다. 넉 달여가 지나도록 재판조차 받지 못한 채 갇혀 있던 이들은 결국 지난 8월 급조된 재판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이 사건은, ‘절대권력의 재림’ 이후 한 사회가 처할 수 있는 암담한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미국 대선은 해를 바꿔가며 불을 뿜었다. 그만그만한 후보들끼리 진흙탕 싸움을 벌였던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이 마무리된 이후, 버락 오바마 대통령(민주당)과 밋 롬니 후보(공화당)는 치열한 공방을 펼치며 초접전 양상으로 대선판을 이끌어갔다. 선거 전날까지도, 여론조사 결과는 ‘오차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 그야말로 ‘피 말리는 승부’로 점쳐졌다.
11월6일 막상 투표함이 열렸을 때, 상황은 생각보다 싱거웠다. 오바마 대통령은 51%의 득표를 올리며 47.3%에 그친 롬니 후보를 압도했다. 4년 전 ‘사상 첫 흑인 대통령’으로 취임했던 인물이 ‘사상 첫 재선 흑인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되는 순간이었다. 2012년 미 대선은 ‘국가의 역할’을 둘러싼 서구 민주주의의 고전적 논쟁이 21세기에도 여전히 현실태임을 일깨워줬다.
그로부터 불과 일주일 남짓 만에, 미국과 함께 이른바 ‘주요 2개국’(G2)으로 떠오른 중국에서도 ‘정권 교대’가 이뤄졌다. 시진핑 부주석을 필두로 리커창·장더장 등 ‘5세대 지도부’ 7명이 11월15일 국제 무대에 첫선을 보인 게다. ‘충칭의 붉은 별’로 불리던 보시라이 전 충칭시 당서기가 탐욕과 음모, 배신으로 점철된 ‘막장 드라마’ 속에 처절하게 몰락해간 것도 2012년 지구촌의 관심거리 중 하나였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12월16일 치러진 일본 중의원 선거에선 ‘보수 본당’ 자민당이 압승을 거두며, 3년여의 공백기를 딛고 권력의 중심에 다시 섰다. 이어 12월19일 치러진 한국 대선까지, 한반도와 그 주변국이 보낸 지난 한 해는 그야말로 ‘격동의 시대’였다.
모든 혁명은 배반당하나?
‘민주화는 한판의 승부가 아니다.’ 2011년 2월 반독재 민주화 혁명을 일궈낸 이집트의 올 한 해를 되짚어보면, 이 말의 ‘무게’를 쉽게 느낄 수 있다. 호스니 무바라크의 30년 독재를 무너뜨린 이집트에선 우여곡절 끝에 지난 6월 대선 결선투표가 치러졌다. 무바라크 정권 아래서 온갖 탄압에 시달렸던 무슬림형제단 출신 무함마드 무르시 후보와 맞선 상대는 무바라크 정권의 마지막 총리를 지낸 아흐마드 샤피끄였다. 결과는? 3.46%포인트, 꼭 98만3751표 차이로 무르시 후보가 당선됐다. 반독재 혁명 끝에 치러진 선거치고는 격차가 크지 않았다는 얘기다.
집권엔 성공했지만, 권력은 불완전했다. 감격 속에 취임한 무르시 대통령은 내각 임명권조차 제대로 행사할 수 없는 처지였다. 혁명 직후 혼란을 틈타 정국을 장악한 군부는 틀어쥔 권력을 내려놓으려 하지 않았다. 무르시 대통령이 무함마드 탄타위 최고군사위원회(SCAF) 위원장 겸 국방장관을 비롯한 군 수뇌부를 지난 8월 전격 교체한 것은 이런 현실을 타개하려는 고육책이었다. 문제는, 무르시 대통령이 거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갔다는 점이다.
새 나라의 설계도인 헌법 제정 절차는 지지부진하기만 했다. 무바라크 정권 시절 임명돼 사법부를 장악한 ‘옛 권력’은, ‘법’을 무기로 혁명의 대의를 꺾으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답은 쉽게도 얻어졌다. 혁명을 등에 업고 집권한 무르시 대통령은 스스로에게 ‘절대권력’을 부여했다. 독재의 유산이다. 11월 말 제헌위원회를 통과한 새 이집트 헌법은 국민투표에 부의됐지만, 이 과정에서 ‘혁명의 성지’인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은 다시 피로 물들었다. 모든 혁명은 배반당하고 마는가?
지구 반대편 베네수엘라에서도 10월7일 대선이 치러졌다. 여론조사에서 밀린다던 우고 차베스 대통령은 ‘보수 단일후보’ 엔리케 카프릴레스를 11%포인트 이상 따돌리며 손쉽게 승리를 거머쥐었다. 임기를 무사히 마친다면, 무려 20년을 선거를 통해 집권하는 기록을 남기게 된다. 당선 직후 재발한 암 때문에 수술까지 받았음에도, 차베스 대통령이 이끈 사회당은 12월16일 베네수엘라 전역에서 치러진 주지사 선거에서 전체 23개 주 중 20개에서 승리를 차지하는 대승을 거뒀다.
‘메멘토 모리.’ 두고두고 잊어선 안 될 죽음의 소식도 들려왔다. 재정위기로 국가 부도 직전까지 몰린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에서 지난 4월4일 오전 9시께 울린 한 발의 총성은 지구촌 전역에서 메아리쳤다. 아테네 중심가 신타그마 광장 한쪽 아름드리 나무 곁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드미트리 흐리스툴라스(77)가 남긴 유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다른 해법은 없다. 여기서 삶을 존엄하게 마무리짓겠다. 더 이상 주린 배를 채우려고 쓰레기통이나 뒤지고 다니지 않기 위해. 미래가 없는 젊은이들이 언젠가는 무장을 하고 조국의 반역자들을 신타그마 광장에서 교수형에 처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이탈리아 국민이 1945년 무솔리니에게 했던 것처럼.”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은퇴한 약사이자 평생을 치열한 좌파 활동가로 살아온 흐리스툴라스는 생의 막바지까지 무심한 대중을 질타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은 그가 스스로 목숨을 거두던 날 이웃 주민의 말을 따 이렇게 전했다. “며칠 전 흐리스툴라스가 친구에게 이런 말을 했단다. 사람들이 이토록 무관심한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어떻게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그저 앉아서 지켜보고만 있느냐고.”
그의 절규는, 우리 세기를 대표했던 ‘석학’이 남겨놓고 간 말과 맥이 닿아 있다. 지난 10월1일 향년 95살을 일기로 세상을 등진 영국의 역사학자 에릭 홈스봄은 2002년 펴낸 자서전 (한국어판 제목은 )를 이렇게 맺었다. 대선이 끝난 지금, 새삼 울림이 크다. “그렇지만 시대가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아직은 무기를 내려놓지 말자. 사회는, 여전히 규탄하고 맞서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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