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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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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보단 나쁘고 2년 전보단 낫다

앞선 2008년 대선에 견주면 나름 고전한 오바마… 2010년보단 나아졌지만 하원 다수당인 공화당의 발목잡기도 여전할 듯
등록 2012-11-13 10:08 수정 2020-05-02 19:27

방송인 빌 오라일리는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토크쇼 진행자다. 주중 5차례 저녁 황금시간대(8~11시)에 케이블 채널 를 통해 방송되는 는 15년째 시청률 정상권을 맴돌고 있다. 오라일리는 극우 성향인 의 ‘얼굴’로 통한다. 11월6일 대선 결과에 대해 그는 어떻게 평가할까?
“유권자의 50% 정도는 미국의 경제체제가 자기들한테 불리하게 짜였으며, 따라서 (정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사람들은 (정부로부터) 뭔가 바라는 게 있고, 두 후보 가운데 누가 그걸 내줄지 알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도 이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출구조사 결과 남성 유권자의 52%는 롬니 후보를, 여성 유권자의 55%는 오바마 대통령을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오바마 대통령으로선 2008년 대선 때보다 남성 유권자층에선 8%포인트, 여성 유권자층에선 2%포인트가량 지지율이 빠진 셈이다. 앞선 대선에 견주면 롬니 후보가 대단한 ‘선전’을 했다는 뜻이다.

롬니 후보의 대단한 ‘선전’

개표 결과가 속속 전해지던 11월6일 밤 오라일리는 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밋 롬니 후보가 비공개 선거자금 모금행사에서 내놓은 이른바 ‘47% 발언’과 닮아 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라틴계는 유권자 대다수가 오바마 대통령을 지지한다. 아프리카계는 압도적으로 오바마 대통령에게 표를 던진다. 여성 유권자도 오바마 대통령 편을 든다. …미국은 더 이상 전통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던 미국이 아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은 미국의 인구학적 구성이 바뀌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백인 주류층은 이제 사회적 소수자로 전락했다.”

‘깨달음’은 얻었으되, 시점이 늦었다. 이미 4년 전에도 비슷한 교훈을 얻을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퓨리서치센터’는 2009년 4월 내놓은 분석자료에서 “2008년 대선은 인종적으로 사상 가장 다양한 선거”라고 평가했다. 실제 빌 클린턴 대통령이 당선됐던 1992년과 2008년 유권자의 인종별 구성을 비교해보면, 백인은 81.6%에서 73.4%로 8.2%포인트 줄었다. 반면 아프리카계는 11.3%에서 11.8%로 소폭 늘었고, 라틴계는 4.9%에서 11.8%로 무려 6.9%포인트 늘었다. 아시아계 역시 1.5%에서 3.4%로 2배 이상 늘었다.

투표 결과는 어땠을까? 백인 유권자층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에 12%포인트 차로 뒤졌다. 반면 아프리카계의 95%가 오바마 대통령을 지지했고, 라틴계와 아시아계의 지지율도 각각 67%와 62%로 매케인 후보를 압도했다. 한 가지 변수가 더 있다. 당시 선거에서 여성의 평균 투표율(65.7%)은 남성(61.5%)에 견줘 4.2%포인트나 높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남성 유권자층에선 매케인 후보를 1%포인트 차로 앞선 반면 여성 유권자층에선 13%포인트나 격차를 벌렸다.

올해 선거는 어떨까? 이 11월6일 내놓은 출구조사 자료를 보면, 투표에 참여한 유권자는 △백인 72% △아프리카계 13% △라틴계 10% △아시아계 3% 순으로 나타났다. 2008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후보별 지지율을 보면, 백인층에선 롬니 후보가 59%의 지지를 얻어 오바마 대통령을 20%포인트나 크게 앞섰다. 오바마 대통령은 △아프리카계(93%) △라틴계(71%) △아시아계(73%)의 압도적 지지를 얻었다. 백인 유권자층의 이탈이 도드라진 가운데, 소수인종의 표심은 더욱 결집한 게다.
성별로 나눠본 투표 결과도 엇비슷하다. 이번 선거에 참여한 유권자의 성별 비율은 남성(47%)이 여성(53%)보다 6%포인트 적었다. 출구조사 결과 남성 유권자의 52%는 롬니 후보를, 여성 유권자의 55%는 오바마 대통령을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오바마 대통령으로선 2008년 대선 때보다 남성 유권자층에선 8%포인트, 여성 유권자층에선 2%포인트가량 지지율이 빠진 셈이다. 오라일리의 때늦은 ‘탄식’과 달리, 앞선 대선에 견주면 롬니 후보가 대단한 ‘선전’을 했다는 뜻이다.
이는 대선과 함께 치러진 연방의회 선거 결과와도 고스란히 들어맞는다. 먼저 상원을 보자. 임기 6년인 의원 100명으로 구성되는 미 상원은 2년마다 3분의 1씩 나눠 선거를 치른다. 2008년 선거에 앞서 민주당과 공화당은 나란히 49석씩 상원을 나누고 있었다. ‘오바마 열풍’에 힘입은 당시 선거에서 민주당은 의석을 8석이나 늘리며 명실상부한 상원 다수당 지위를 거머쥐었다. 오래가진 못했다. 2010년 중간선거에서 6석을 잃어 간신히 ‘다수당’ 지위를 지키는 신세로 전락한 게다. 하원은 더했다.
아직도 건재한 ‘티파티’
모두 435명인 연방 하원의원의 임기는 2년이다. 12년의 권토중래 끝에 2006년 하원을 장악한 민주당은 2008년 선거에서 의석을 21석이나 늘리며 공화당을 압도했다. 하지만 풀뿌리 극우단체 ‘티파티 운동’이 바람을 일으킨 2010년 중간선거에서 무려 63석을 잃어 하원을 공화당에 내줘야 했다. 오바마 행정부가 의회에 발목을 잡히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부터다.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은 상원에서 2석을, 하원에선 28석을 늘렸다. 상원은 다수당의 지위를 더욱 굳혔지만, 하원에선 여전히 40여 석이 밀린다. 경제 상황이 나아지긴 했지만, 오바마 대통령에겐 집권 2기의 출발이 4년 전 1기 때보다 ‘우호적’이라 말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러고 보니, ‘티파티’도 건재하다.
미 연방의원들은 정치 성향에 따라 일종의 정파 조직인 ‘코커스’를 구성해 활동한다. 2010년 선거로 의회에 진출한 극우 성향 공화당 의원들의 원내 구심점으로 ‘티파티 코커스’가 자리를 잡은 것도 이 때문이다. ‘티파티 코커스’ 소속 상원 회원 4명은 이번에 선거를 치르지 않았다. 하원 회원 58명 가운데 이번 선거에는 모두 49명이 출마했다. 결과는? 로스코 바틀렛(메릴랜드), 조 월시(일리노이) 의원 등 단 2명을 뺀 나머지 47명이 당선됐다. 하원 출마를 포기한 마이크 펜스(인디애나) 의원은 주지사에 당선되는 기염을 토했다.
의미 있는 변화가 없는 것은 아니다. 노동계를 대표하는 셰로드 브라운(오하이오), 태미 볼드윈(위스콘신) 후보가 연방 상원에 진출했다. 라틴계 연방의원도 상원 3명, 하원 28명 등 사상 최대 규모다. 이 가운데 상원의원 1명과 하원의원 23명이 민주당 소속이다. 상원의원 선거에서 티파티 쪽의 공식 지원을 받은 16명 가운데 당선된 후보는 단 4명에 그쳤다. 성폭행으로 인한 임신도 ‘신의 뜻’이라고 주장한 리처드 머독(인디애나) 후보와 ‘강제에 의한 성폭행으론 임신이 불가능하다’던 토드 아킨(미주리) 후보 등은 초반 우세에도 결국 낙마했다.
 
나머지는 오바마에게 달렸다
민주당 진보파의 상징이던 고 테드 케네디 의원의 지역구(매사추세츠주)에선 ‘소비자 운동의 기수’로 평가받는 엘리자베스 워런 후보가 공화당 강경파 스콧 브라운 의원을 꺾고 상원 의석을 거머쥐었다. 동성애자임을 당당히 밝혀온 태미 볼드윈 하원의원의 상원 진출은, 메인·메릴랜드·워싱턴 3개 주에서 동성결혼 합법화 법안이 통과된 것과 궤적을 같이한다. 2008년보다 나쁜 것은 분명하지만, 2010년보다는 분명히 나아졌다. 나머지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달렸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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