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국세청의 검은 안개 속에서 종교인 소득세 공개의 길을 찾다

등록 2012-08-29 15:06 수정 2020-05-03 04:26
<한겨레21> 고나무 기자가 2011년 9월 국세청을 상대로 정보공개거부처분 취소소송을 서울행정법원에 제출했다. 한겨레21 정용일.

<한겨레21> 고나무 기자가 2011년 9월 국세청을 상대로 정보공개거부처분 취소소송을 서울행정법원에 제출했다. 한겨레21 정용일.


국세청과 기획재정부는 거대한 검은 안개였다. 새벽녘 비 내리는 습지 한가운데 있는 것처럼, 검은 안개는 교회와 절을 감싼다. 국세청은 성직자에게 소득세를 부과하지 않는다. 매년 원천징수로 근로소득세를 납부하는 중생들로부터 받은 헌금으로 성직자들은 밥을 먹는다. 법원이 이 ‘최근 2년간 종교인들의 소득세 납부 현황 자료를 공개하라’며 국세청을 상대로 낸 정보공개 청구소송에 대해 지난 8월16일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나홀로 소송 과정의 실수와 의식 있는 변호사의 무료 변론까지, 재판 전후 뒷이야기를 전한다._ 편집자

“그런 일이 있었어요? 처음 듣는 말인데요?”

중년 남자는 과장된 톤으로 답했다.

“그러니까 2006년 5월 국세청에서 기획재정부에 ‘종교인에 대한 과세가 가능한가’라는 질의서를 보내거든요. 기사에도 나옵니다.”

“전 모르고 있었네요. 아, 이거 도움을 드려야 하는데….”

짐짓 놀랐다는 투다. ㄱ 국장은 서울국세청의 이른바 ‘한겨레신문’ 담당이다. 언론 취재에 비공식적으로 도움을 주기도 하고 반대로 언론사 동향을 묻기도 한다. 사람들이 ‘채널’이라고 부르는, 그런 일을 한다. 2011년 8월20일, 한낮의 열기 때문에 휴대전화에 점점 땀이 묻기 시작한다.

“그래서 그 뒤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 어느 부서에 확인해야 하는지 전화한 건데… 다른 분께 여쭤봐야겠네요.”

“죄송합니다. 나중에 국세청 출입하는 ‘한겨레신문’ ○○○ 기자랑 소주 한잔 하시죠.”

수쿠크법 막은 개신교, 소송의 시작

대화는 그것으로 끝났다. 고개를 꺾고 어깨와 볼로 휴대전화를 고정시키고 두 손은 취재수첩과 펜을 들었다. 그러나 적을 게 없었다. ㄱ 국장은 넉살이 좋았다. 그는 기자와 소주잔은 주고받을 것이다. 그러나 결코 정보는 주지 않을 것이다. 내가 경제부를 출입했다면 좀 달랐을까? 유려한 말발과 넉살, 폭탄주를 마다하지 않는 술 실력은, 불행히도 여전히 한국 저널리스트의 실탄이다. 전화를 끊고 나서, 국세청은 그 실탄의 사정거리 너머에 있다고 느꼈다. 늪지 한가운데 검은 안개에 싸인 성처럼.

2011년 종교가 정치를 모욕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명박 정부가 ‘이슬람채권법’(수쿠크법)을 통과시키려 했다. 이슬람 석유자본을 유인하려는 목적이었다. 이자를 금지하는 이슬람 특유의 문화에 맞춰 세금 관련 법령을 손질했다. 수쿠크법은 그런 움직임의 일환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가 그해 2월24일 “만약 이슬람 펀드에 정부가 동의를 하면 나는 영원히 대통령과 싸우겠다. 대통령을 당선시키려고 기독교인들에게 많은 노력을 한 것만큼 하야시키기 위해 싸우겠다”고 말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도 정치인 낙선운동을 거론했다. 당시 한나라당은 법안 통과를 보류했다. 민주당도 수쿠크법에 반대했다. 개신교 눈치를 봤다는 말이 많았다. 지역구 국회의원에게 지역 교회는 표밭이다. 헌법 20조 2항은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고 규정한다. 합리적인 종교계 인사들 사이에서 반성이 나왔다. 한국 개신교가 정치에 개입할 만큼 사회적 책무를 다하고 있느냐는 자성이었다. 국세청이 성직자에게 소득세를 부과하지 않는 관행이 대표적인 사회적 무책임 사례로 거론됐다.

국가권력의 본질은 폭력이다. 청동기시대 이후 수천 년 동안 조세권과 형벌권이 권력의 뿌리였다. 그 폭력은 만인에게 평등하게 행사돼야 한다는 게 민주주의다. 21세기 한국에 예외가 존재한다. 국세청은 목사·스님 등 성직자에게 소득세를 부과하지 않는다. 천주교계와 일부 개신교·불교 종단 성직자들이 자발적으로 내는 소득세만 걷는다. 헌법 11조는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밝힌다. 국세청과 기획재정부가 헌법 11조를 파괴하고 있었다. 정치는, 적어도 이 주제와 관련해 무능했다. 2011년 9월1일 당시 민주당 국회의원에게 전화로 ‘성직자 소득세 문제를 당에서 논의한 적 있느냐’고 물었다. “그건 국세청이나 기재부에 물어보시죠. 정치인이 말하기는 좀….”

은 2011년 8월18일 국세청과 기재부에 정보공개 청구서를 보냈다. “2006년 5월 국세청이 기재부에 성직자 소득세와 관련해 보냈던 질의서 내용과 기재부 회신 내용 등을 공개하라.” 국세청과 기재부는 8월29일 “내부 검토 과정에 있는 사항 등으로서 공개될 경우 업무의 공정한 수행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한다”며 비공개했다. 이미 보도된 내용인데 어떤 지장이 생긴다는 걸까?

하마터면 재판도 못받고 기각당할 뻔

은 2011년 3월21일 국세청에 정보공개 청구를 했다. 성직자의 최근 10년간 소득세 납부 현황, 최근 10년간 국세청에 소득신고한 성직자 가운데 연소득을 1억원 이상으로 신고한 성직자가 있는지 등 모두 7개의 정보를 요구했다. 국세청은 ‘그런 자료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등의 이유로 공개를 거부했다. 국세청의 비공개 결정은 부당하다며 행정심판을 냈으나 또 졌다.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2011년 4월 “이 요구한 자료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국세청 주장에 일리가 있다”고 재결했다. 2011년 9월15일 나는 마지막 불복 절차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2011년 9월19일 판매된 878호에 ‘헌법 11조 파괴하는 국세청·기재부’(☞ 기사 보기)라는 제목으로 그간의 과정을 보도했다.

2011년 9월28일 아웃룩에 낯선 이름의 전자우편이 와 있었다.

‘기자님이 쓴 ‘헌법 11조 파괴하는 국세청·기재부’ 기사를 잘 읽었고 지금 진행하시는 소송에도 공감해서 제가 변호사로서 사건을 무보수로 대리해드리고자 합니다. 다만, 인지대 및 송달료 등 소송 비용은 부담하셔야 합니다. 진행 중인 소송 기록이나 자료는 저에게 제공해주셨으면 합니다. 이렇게 도움을 드리고자 하는 것은 최근 기자님의 기사와 대형 교회에 관한 을 보고 종교인들이 세속의 법을 너무 무시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오윤식 드림.’
검은 안개 낀 늪지에서 진흙에 빠진 발바닥이 돌을 밟은 것처럼 기뻤다. 시민단체 ‘새사회연대’ 조사를 보면, 2006년 민사소송 240만6348건 중 원고와 피고 모두 변호사 대리인을 세우지 않은 경우가 82.2%(197만3759건)에 달했다. 오 변호사에게서 연락을 받기 전까지 나홀로 소송으로 재판을 준비했다. 나홀로 소송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한겨레신문’ 관련 소송을 전담하는 법무법인 ‘한결’에서 조언을 얻었다. 행정소송 소장 서식을 얻었다. 도서관에서 정보공개 청구 소장 견본이 담긴 법학서를 빌렸다. 대법원 판례를 인용하는 등 열심히 흉내냈다.
악마는 각론에 숨어 있었다. 9월9일 어렵사리 소장을 완성했다. 법원으로 나서는 길에 노파심에 다시 소장을 읽어봤다. ‘원고 고나무’ 다섯 글자가 눈에 밟혔다. 정보공개 청구와 행정심판을 ‘고나무’ 개인 이름이 아니라 ‘한겨레신문’ 법인 이름으로 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이번 소송은 국세청의 비공개 결정에 대한 불복이었다. 정보공개 청구 및 행정심판 청구 명의와 소송 원고의 이름이 같아야 했다. 급하게 변호사에게 물었다. “큰일 날 뻔했네요. 그렇게 소장 냈으면 ‘각하’됐을 거예요.” 법원이 소송 자격 등이 없다고 판단해 원고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는 게 ‘각하’다. 만약 그대로 소장을 냈다면 ‘소송을 낼 자격은 ‘한겨레신문’이라는 회사에 있는데 자격도 없는 ‘고나무’ 개인이 소송을 냈으니 재판에서 따져볼 필요도 없다’는 경우에 해당됐을 것이다. 부랴부랴 소장을 고쳐 썼다. 오 변호사가 수임계를 쓰고 정식 대리에 나섰다. 내가 낸 어설픈 소장을 ‘소 취하’로 취소했다. 오 변호사가 제대로 소장을 작성해 2011년 11월2일 다시 제출했다. 정식으로 수임했다면 400만원을 줘야 했다. 오 변호사는 400만원 대신 다른 무엇을 택했다.


국가권력의 본질은 폭력이다. 청동기시대 이후 수천 년 동안 조세권과 형벌권이 권력의 뿌리였다. 그 폭력은 만인에게 평등하게 행사돼야 한다는 게 민주주의다. 21세기 한국에 예외가 존재한다. 국세청은 목사·스님 등 성직자에게 소득세를 부과하지 않는다.



타이밍 때문에 단독 보도 놓치다
재판 전망이 마냥 밝은 건 아니었다. 국세청은 재판 내내 ‘이 요구하는 자료는 없다’고 주장했다. 자료 부존재 논리였다. 그걸 깨야 했다. 그러나 상황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꼬여 있었다. 은 국세청이 성직자 소득세 자료를 갖고 있음이 분명하니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그 주장을 입증하려면 국세청의 성직자 소득세 자료 일부를 갖고 있어야 했다. 오 변호사가 입증 자료를 요청했다. 줄 게 없었다. 미안했다. 오 변호사도 조금씩 지쳐갔다.
2012년 5월17일 검은 안개로 들어갈 길이 조금 열렸다. 이날 재판부가 국세청에 전산시스템에 관한 자료를 내라고 지시했다. ‘국세통합시스템’(TIS)과 ‘국세정보관리시스템’(TIMS)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겠다는 취지였다. 재판부가 비공개로 검증하겠다는 조건을 내걸자 국세청은 자료를 제출했다. 책 두 권 분량의 문서 자료를 쌓아놓고 안철상(55·사법연수원 15기·사진) 부장판사는 서울 서초동 행정법원 사무실에서 여러 번 야근을 했다. 안 부장판사는 국세청이 인적 사항과 갖가지 납세 정보 등을 갖고 있으며 심지어 체납자 성향도 관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나 검증 절차는 모두 비공개로 이뤄졌다. 나와 오 변호사는 이런 정황을 알 수 없었다.
“고 기자님, 오 변호삽니다. 저희가 일부승소 했어요!” 8월17일 금요일 오전 11시 무뚝뚝한 남자의 목소리가 평소와 달랐다. 톤이 높았다. “법원 전산망을 검색해보니 ‘원고 일부승’이라고 나오네요. 아직 판결문을 못 받아봐서 구체적으로 재판부가 국세청에 어떤 정보를 공개하라고 지시한 건지는 모르지만요.” 이날 서울행정법원이 ‘최근 2년간 종교인 소득세 납부 현황’ 등을 공개하라고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주간지 마감은 금요일이다. 8월17일 오전 다음주치 용 기사는 이미 거의 다 작성돼 있었다. 지면 구성도 마무리된 상태였다. 굳이 단신으로 판결 결과를 좁은 지면에 욱여넣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기자라는 ‘기사 기계’를 굴러가게 만드는 석유가 있다. 단독 기사를 쓰겠다는 욕망이다. 독자 대중은 웬만해선 기사의 내용만 기억할 뿐 기자 이름은 기억하지 않는데도 기자들은 그 헛된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전화를 끊고 이번 판결 결과를 다음주에 ‘단독 보도’해야겠다는 생각에만 골몰했다. 내가 소송 당사자인 원고라는 사실도 시야를 좁게 했다. 그 때문에 다른 언론이 이번 재판 결과를 알고 있으리라는 생각을 아예 못했다. 8월18일 토요일 늦은 저녁, 버스에서 동료의 전화를 받았다. 판결 결과가 등 여러 신문·방송에 보도되기 시작했다고 알려줬다. ‘왜 미리 법원 기자단에 엠바고를 요청하지 않았을까’ 자책했다. ‘엠바고’란 언론사가 담합해 특정 팩트를 일정 시점까지 보도하지 않는 행위를 말한다. 주로 정부나 수사기관이 국익이나 수사 기밀을 위해 언론에 요청한다. ‘이번 소송은 오롯이 이 준비한 것이므로 이 보도하기 전까지 타 언론사에 엠바고를 요청해야 했나?’ 감정이 앞서 판단이 어려웠다.


국세청은 재판 내내 ‘이 요구하는 자료는 없다’고 주장했다. 자료 부존재 논리였다. 그걸 깨야 했다. 그러나 상황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꼬여 있었다. 은 국세청이 성직자 소득세 자료를 갖고 있음이 분명하니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그 주장을 입증하려면 국세청의 성직자 소득세 자료 일부를 갖고 있어야 했다.



국세청 항소, 소송은 끝나지 않았다
1시간 동안 침울했고 2시간 뒤 담담했다. 21개 통신·신문·방송이 판결의 사회적 의미를 인정해 판결을 보도했다. KBS는 다른 언론과 달리 ‘한 언론사’라고 보도하며 굳이 ‘한겨레신문’ 이름을 감췄다. 이 의미 있는 판결과 타사의 보도를 이끌어냈다는 게 중요한 것 아니냐고 한 선배 기자가 조언했다. 엄연히 공개재판이 원칙인데 이런 사유의 엠바고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의견도 줬다. 또 다른 소송 당사자인 국세청에서 판결 결과가 알려질 가능성도 있었다. 역시 엠바고가 성립될 상황이 아니었다.
국가의 본질은 강제하는 힘이다. 국세청은 가리지 않고 그 힘을 쓴다. 전직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었다. 목사와 승려만 그 힘의 사정거리 밖에 있다. 검찰은 국세청이 성직자에게 소득세를 부과하지 않는 것을 ‘건국 이래 관행’이라고 2006년 밝혔다. 범인은 ‘관행’이라는 검은 안개 속에 숨어 있다. 관행은 특정 국세청장 개인의 잘못이 아니다. 때가 되면 인사 발령으로 소득세 관련 업무를 떠날 세무관료 모두의 침묵의 직무유기는 검은 안개처럼 교회와 절을 감싸고 돈다. 책임자는 보이지 않고 잘못만 존재한다. 국세청은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오윤식 변호사 인터뷰
“부조리 시정하려 참여했다”

400만원 대신 그는 무엇을 얻었을까? 이번 소송을 정식으로 수임했다면 오윤식(39) 변호사는 400만원을 받았을 터. 오 변호사는 이번 소송이 공익적 의미가 있다고 보고 무료로 을 대리했다.
-일부승소할 거라 예상했나.
=확신하지 못했다. 국세청은 계속 “이 요청하는 자료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자료가 존재할 개연성이 있음을 증명하는 게 어려웠다. 세무 관련 자료를 찾기가 워낙 어려웠기 때문이다. 재판부에서 세무행정시스템을 검토했는데 비공개로 검증한 탓에 결과를 알 수 없었다.
-2심은 어떻게 전망하나.
=이변이 없는 한 1심 판결이 유지되리라 예상한다. 1심 재판부가 고민을 많이 했고 비공개 검증도 하는 등 치밀한 준비 끝에 판결했다. 1심 재판부가 국세통합시스템 등을 검증한 뒤 사실상 자료가 있다고 판단한 것도 대법원 판례를 따른 것으로 무리가 없다.
-자발적으로 공익소송에 참여한 이유는 무엇인가.
=용산 참사가 발생할 당시 ‘용산철거민 사망사건 진상조사단’의 법률지원팀장으로 참여했다. 최근엔 경기도의 한 골프장 캐디와 관련된 소송을 맡아 진행하고 있다. 이른바 ‘공기업 선진화’의 일환으로 진행된 골프장 매각의 걸림돌을 제거하려고 캐디들이 만든 노동조합을 와해시킬 목적으로 그 조합원들에게 무더기로 불이익을 준 사건이다. 캐디가 노동자에 해당하는지를 두고 다투고 있는 사건이다. 우리 사회의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부분을 시정하는 차원에서 본 소송에 참여했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