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당이 논쟁에 불을 지폈다. 종교의 사회참여는 진보와 보수 양쪽에서 늘 존재했다. 그러나 일부 보수 기독교인이 주도하는 한국기독당은 차원이 다르다.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는 지난 2월 “대통령 하야” 발언을 했다. 정교분리 헌법 정신의 위기라는 비판이 나오는 상황이었다. 이들은 이제 권력을 달라고 나선다. 개신교 내부에서 현실정치 참여를 외칠 자격이 없다는 반론이 나온다. 그들은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한다”는 헌법 11조의 위기를 언급한다. 이 종교인 근로소득세 납부 문제를 통해 헌법의 오늘을 조망했다. 법적 근거 없이 근로소득세를 ‘공식적으로’ 내고 있지 않은 목사, 신부, 승려 등은 법률 위에 존재하고 있다. 전직 대통령도 기획조사했던 국세청은 종교인 근로소득세 납부는 자율에 맡기고 있다. 이 종교인 소득세 납부 정보를 공개하라며 국세청과 6개월째 정보공개 싸움을 하고 있다. 국세청, 기획재정부, 국회가 헌법 11조를 파괴하고 있었다. _편집자
그날 정치부 기자가 할 수 있는 것은 문의 전화뿐이었다. 지난 3월31일 늦은 오후 정보공개시스템 홈페이지에서 정보공개 거부 처분 결정을 확인했다.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1조(목적)를 씁쓸하게 되읽었다. “이 법은 공공기관이 보유·관리하는 정보에 대한 국민의 공개청구 및 공공기관의 공개의무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을 정함으로써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국정에 대한 국민의 참여와 국정운영의 투명성을 확보함을 목적으로 한다.” 1조가 9조에 패배했다. “다만, 다음 각 호의 1에 해당하는 정보에 대하여는 이를 공개하지 아니할 수 있다.”(9조) 목적의 열정은 각론의 냉정에 종종 패배한다. 검찰과 법원을 출입하며 내가 느낀 법의 온도는 그러했다.
3월21일, 정보공개 청구서 제출“하다못해 종교법인이 소속 성직자의 근로소득세를 내는지는 공개할 수 있지 않나요?” 국세청 담당 직원의 목소리는 심드렁했다. “그건 제가 답변할 게 아니고요, 정보공개시스템에 들어가서 불복 절차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의 종교인 근로소득세 납부 정보공개 청구는 그렇게 패배했다.
싸움은 지난 2월24일 시작됐다. 이날 종교가 정치를 지배하는 상징적 사건이 벌어졌다. 2월 임시국회가 진행되던 서울 여의도에서 구제역,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주 문제를 두고 여야가 치열하게 공방을 벌이고 있었다. 정치부 기자 다수는 몰랐지만, 정부가 통과시키려던 법 가운데 이슬람채권법(수쿠크법)이 있었다. 이슬람 금융의 기본 원칙 가운데 하나는 이자의 청구와 지급을 금지하는 것이다. 돈만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것은 불로소득이라는 이유로 금지된다. 수쿠크, 즉 이슬람 채권은 이런 전통을 따르는 금융상품이다. 이 때문에 이슬람 채권 거래는 사실상 일반 채권 거래면서도 현물 거래 형식을 가졌으므로 취득세·등록세·양도세 등이 부과된다. 정부는 이런 이슬람 채권의 특수성을 인정해 일반 채권과 세금을 비슷한 수준에 맞추려고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 일명 수쿠크법을 제출했다.
개신교계는 이슬람 채권에 대한 특혜라고 맞섰다.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는 2월24일 “만일 이슬람 펀드에 정부가 동의를 하면 나는 영원히 대통령과 싸우겠다. 대통령을 당선시키려고 기독교인들에게 많은 노력을 한 것만큼 하야시키기 위해 싸우겠다”고 밝혔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길자연 신임 대표회장도 2월17일 한나라당 지도부를 만나 “수쿠크법(이슬람채권법)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찬성 인사의) 낙선운동도 불사하겠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2월 말 원내 대책회의에서 이슬람채권법 통과를 보류했다. 민주당도 개신교를 의식해 반대 의사를 밝혔다. 종교가 정치에 승리했다.
정교분리를 규정한 헌법 20조의 위기가 거론되기 시작했다. 때마침 손봉호 고신대 석좌교수 등 일부 기독교인들이 개신교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지 않다며 언론 인터뷰 등에서 비판적 발언을 했다. 종교인이 근로소득세를 납부하고 있지 않은 현실이 대표적인 사회적 무책임 사례로 언급됐다. 교계 비리와 교회 대형화를 비판해온 기독인들의 모임인 ‘교회개혁실천연대’가 몇 년 전부터 자발적으로 목사 근로소득세 납부 신고운동을 펼치고 있음도 새삼 주목받았다. 이들은 자발적으로 소득세를 내고 있는 교회 명단 리스트를 에 제공했다. 근로소득세를 자발적으로 납부하는 종교인과 납부하고 있지 않은 종교인의 현황을 파악해 독자에게 보여주는 것이 이 사태를 균형 있게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방법이라고 은 판단했다. 지난 3월21일 국세청을 상대로 정보공개 청구서를 제출했다.
‘없는 자료’라며 정보공개 거부한 국세청“1. 종교인의 최근 10년간 소득세 납부 현황- 교회, 절 등 소속단체 및 종교법인명, 신고소득, 납부세액, 세율 등. 2. 최근 10년간 전국 국세청에서 종교인에게 소득세를 납부할 것을 요구하고 알린 사례. 3. 최근 10년간 전국 국세청에서 종교법인에 소득세를 납부할 것을 요구하고 알린 사례. 4. 최근 10년간 전국 국세청에서 자진하여 소득세를 납부하러 온 종교인의 납부 의사를 거부하고 돌려보낸 사례. 5. 최근 10년간 국세청에 소득신고한 종교인 가운데 연소득을 1억원 이상으로 신고한 종교인이 있는지 여부. 있다면 이름, 소속 종교법인, 구체적 소득신고액, 세율, 납부세액 등. 6. 여의도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 등 목사와 직원들이 현재 소득세를 신고해 납부하고 있는지 여부. 납부하고 있다면 신고한 소득액, 납부세액 자료. 7. 조용기 목사 등 직원과 목사들이 소득세를 내고 있다면, 최초로 소득세를 납부한 시점과 납부세액.”
개별 종교인의 납세 정보를 요구하는 것이 과도하다는 생각도 했지만, 민사소송처럼 주위적 청구와 예비적 청구를 나눌 수 없는 상황에서 최대한 폭넓게 정보공개 청구를 할 수밖에 없었다. “비공개할 부분과 공개 가능한 부분이 혼합되어 있는 경우 두 부분을 분리할 수 있을 때에는 비공개 부분을 제외하고 공개하여야 한다”는 정보공개법 14조도 고려했다. 정보공개 청구서에 ‘조용기 목사’의 이름을 표나게 넣은 것은 그가 차지하는 한기총에서의 힘과 권위 때문이었다.
국세청은 3월31일 정보공개를 거부했다. 과세정보는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자료이므로 공개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이 청구한 자료는 ‘존재하지 않는 자료’라는 취지였다. 정보공개 청구 거부 처분에 불복하는 시민은 행정심판, 행정소송을 모두 낼 수 있다. 1984년 생긴 행정심판 제도에 기대어보기로 했다. “행정심판 절차를 통하여 행정청의 위법 또는 부당한 처분이나 부작위로 침해된 국민의 권리 또는 이익을 구제하고, 아울러 행정의 적정한 운영을 꾀함”을 목적으로 한다. 판결 대신 ‘재결’, 원고와 피고 대신 ‘청구인’과 ‘피청구인’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을 제외하면 사실상 법원 재판과 같다. 행정심판위원 다수도 변호사 등 법조인이었다. 당위보다 법리를 고민해야 했다.
4월20일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행정심판을 청구하며 변호사의 조언을 들어 논리와 자료를 모두 보강했다. 국세청은 5월19일 행정심판위원회에 낸 답변서를 통해 다시금 의 요구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세무서에서 근로소득 원천징수 때 목사·신부·승려 등 직업적 종교인을 별도로 구분하지 않아 ‘종교인 소득세 정보’는 존재하지 않으며, 순복음교회 목사의 납세정보는 누설이 금지된 과세정보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대한민국판 앙시앵레짐”도 5월27일 추가 답변서를 냈다. 국세기본법상 ‘과세정보’는 납세자가 제출한 자료이지 국세청이 세금을 부과한 세율, 부과 시점 등은 과세정보가 아니므로 공개해도 된다고 강조했다. 과세정보 가운데 개별 종교인의 인적 사항을 제외하고, 종교법인이 소속 종교인의 근로소득세를 냈는지 여부, 언제 얼마나 냈는지 등의 정보는 사생활 침해가 아니라고 항변했다. 종교인 및 종교법인의 소득세 납부 관련 대법원 판례가 없는 상황에서 공개 가능한 범위를 한정하지 아니하고, 무조건 공개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비례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민사소송 절차도 활용해 ‘주위적 청구’와 ‘예비적 청구’로 청구 취지를 가다듬었다. “주위적 청구: 종교법인별로 최근 5년간 소득세 및 법인세 납세 총액, 종교법인별 최초의 소득세 및 법인세 등 납부 연도,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의 최근 5년간 소득세 납부 여부. 예비적 청구: 전체 종교법인의 최근 5년간 소득세 및 법인세 등 납세 총액(연도별). 1948년 이후 최초로 종교법인이 소득세 및 법인세를 납부한 연도와 종교법인 이름.”
민사소송에서 원고가 우선적으로 주장하는 것이 주위적 청구이며, 예비적 청구는 주위적 청구가 기각될 경우에 대비해 청구한다. 납세정보가 민감한 개인정보임을 고려한 전술이었다. 첨부자료도 추가했다. 국세청이 과세정보를 보도자료로 기자들에게 공개한 사례를 제출했다. 국세청은 1990년 ‘부동산 상습 투기꾼 168명 명단’을 공개했다. 실명과 추징액을 모두 공개했다. 이날 국세청의 과세정보 누설은 도리어 국세청의 실적이었다. 교회개혁실천연대에서 확보한 자진 납세 정보도 제출했다. 12개 개신교 교회에서 이미 수년 전부터 관할 세무서에 소속 목사의 근로소득세를 원천징수해 납부하고 있었다. 이들은 관할 세무서에서 비영리법인에 해당하는 등록번호 ‘82’를 부여받아 사업자등록을 하고, 교회 이름을 법인명에 적시해 세금을 내고 있었다. 종교인 정보가 없다는 국세청의 주장을 인정하더라도, 종교단체의 근로소득세 납부 시점과 총액 등을 파악하지 못한다는 국세청의 주장이 비합리적이라고 느꼈다.
다시 패배했다. 행정심판법이 정한 재결 기한 90일을 훌쩍 넘긴 8월23일 행정심판위원회는 “청구인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재결했다. 논리는 두 가지였다. 국세청이 자료를 갖고 있음을 이 입증해야 하는데 “피청구인이 이 사건 정보를 보유하고 있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개연성이 있는 객관적인 자료도 없다”는 취지였다. 행정심판위원회는 순복음교회 목사와 직원들의 근로소득세 납부 여부 등은 공개가 불가능한 과세정보라는 국세청 주장도 인정했다.
행정심판에서 패배한 8월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숭인동의 허름한 사무실에서 종교권력감시시민연대 김상구 대표를 만났다. 그는 지난 7월 기독교의 사회적 책임 방기를 신랄하게 비판한 책 를 펴냈다. 그는 소득세를 내지 않는 한국의 종교인들을 “대한민국판 앙시앵레짐”이라고 묘사했다. 그는 헌법의 위기를 보고 있었다.
헌법 38조는 납세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소득세법 12조(비과세 소득)와 13조(세액의 감면)를 살펴봐도 종교인에 대한 소득세 면제 조항은 없다. 법률상 비과세 항목은 하나하나 열거된다. 비과세 열거주의다. 종교인은 비과세 대상으로 열거되지 않는다. 국세청은 법적 근거도 없이 세금 부과를 방기하고 있다. 그래서 ‘종교비판자유실현시민연대’(종비련)는 2006년 이주성 당시 국세청장을 직무유기로 검찰에 고발했다.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받은 당시 검찰의 무혐의 통지서에 “대한민국판 앙시앵레짐”의 근거가 숨어 있다.
“불교, 가톨릭, 기독교 등 종교인의 소득도 근로소득이므로 과세 대상이 된다는 견해, 종교인의 활동은 근로가 아닌 봉사활동이므로 과세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견해 등이 대립하고 있음. 국세청은 자발적으로 근로소득세를 납부하는 종교인에 대해서는 근로소득세를 징수하고 나머지 종교인의 소득에 대하여는 건국 이래 관행적으로 근로소득세를 부과하지 아니하였음.” 비밀은 ‘관행’이었다. 관행은 법 위에 있었다. 당시 종비련은 이런 관행의 기원을 일제 총독부로 추정했다. 3·1 운동 이후 종교인들이 일제에 협력하는 대신 종교인 근로소득세 면제, 종교법인에 대한 다양한 비과세 혜택을 누렸다고 종비련은 주장했다.
종교인의 활동이 근로가 아니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격렬한 반론이 있다. 근로인지 여부를 떠나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조세 평등주의, 유럽과 미국의 종교인들이 전부 근로소득세를 내고 있는 사실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반론이 나온다. 시민단체 등 다른 비영리단체 노동자들은 죄다 근로소득세를 내는 점도 거론된다. 한때 일부 보수적 종교인들이 주장했던 ‘이중과세론’은 수그러들었다. 법률상 이중과세란 동일한 소득에 대해 동일한 귀속자에게 이중과세함을 의미하는데, 교회 헌금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화부에 등록된 621개 종교법인의 모든 목사, 승려 등 성직자들이 ‘소득만큼’ 근로소득세를 낸다면 그 총액은 얼마일까. 김상구 대표도 그저 수천억원 정도일 것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추정할 근거 자료도 없다. 종교법인 등록 업무를 담당하는 문화체육관광부 종무과는 “종교의 자유가 있으므로 납세정보 등은 문화부가 전혀 갖고 있지 않으며 소관도 아니다”라고 밝혔다.
사회적 특수계급인 종교인들헌법 11조는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종교인과 종교법인은 헌법 11조 위에 있는 사회적 특수계급이다. 한국의 종교법인은 법률상 ‘비영리단체’에 해당한다. 그러나 교육기관과 시민단체 등 다른 비영리단체와 달리 유일하게 재무회계정보 공개 의무가 없다. 이 때문에 종교인 근로소득세 신고가 투명경영의 첫걸음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단, 종교법인이 종교인의 소득을 솔직히 신고할 때 그렇다는 말이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20여 년 전부터 소속 목사의 근로소득세를 납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모든 목사가 근로소득세를 내는지 여부, 소득금액은 믿을 만한지에 대해 김상구 대표는 의문을 제기했다. 종교인은 일반 직장인과 달리 ‘월급’이나 ‘급여’ 항목으로 돈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개신교의 경우 기본급에 해당하는 ‘사례비’ 외에 활동비, 본인과 자녀 유학비, 사택, 승용차 등이 담임목사에게 제공되지만 그 규모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김상구 대표는 “일본과 같이 종교법인의 투명한 경영을 위해 종교법인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모든 종교단체를 법인으로 등록하게 함으로써 투명경영을 유도하자는 취지다.
그러나 법을 제정할 권한을 가진 국회의원들에게 김상구 대표가 기대기는 어려워 보인다. 국회의원들은 종교인 소득세 문제에서는 국세청, 기획재정부와 같은 편이었다. 출입처 관행이 뿌리 깊은 한국의 언론 현실에서 ‘네트워크’는 종종 정보공개보다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작동한다. 아마 이 때문에 정치부 기자들은 심리적 거리를 줄이려 의원과 보좌관들에게 ‘선배’라는 호칭을 사용할 것이다. 종교인 관련 정보만은 네트워크가 작동하지 않았다.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의원 25명 대부분이 종교인 소득세 찬반 설문에 대해 답변 자체를 거부했다. “민감한 문젠데요”라는 말이 보좌관들로부터 여러 차례 돌아왔다. 종교인들은 유권자였다. 국세청, 기획재정부, 국회가 헌법 11조와 20조를 파괴하고 있었다. 국세청과 기재부는 언론에 보도된 내용마저 공개를 거부했다.
5년 째 검토만 하고 있는 기재부“2006년 5월7일 재경부와 국세청에 따르면, 국세청은 지난달 초 재경부에 ‘종교인에 대한 과세가 가능한가’라는 내용의 질의서를 보냈으며, 이에 따라 재경부가 유권해석 방향을 검토 중이다.” 이날 기사다. 국세청과 기획재정부에 당시 질의서와 유권해석 내용을 달라고 정보공개 청구했다. 두 기관 모두 “아직 검토 중”이라며 8월29일 공개를 거부했다. 기획재정부 소득세과 간부는 “과거 어떤 논의가 있었는지 공식적으로 확인해주기 어렵다. 다만 종교법인마다 급여 형태가 다르고 조직이 복잡해 종교인 소득세 문제에 대해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검토 중”이라고 답했다. 검토 작업은 5년째 진행 중이다. 전직도 입을 닫았다. 로펌 고문인 한 전직 국세청장에게 의견을 물으려고 메모를 남겼으나 답변은 오지 않았다. 국세청은 어디에나 있었으며, 동시에 아무 곳에도 없었다.
남은 것은 행정소송이었다. 소송의 핵심 고리는 ‘개연성’이라고 변호사는 조언했다. ‘국세청이 관련 자료를 갖고 있을 개연성이 있으며 원고는 이 개연성을 최대한 입증하려 노력했다’는 법적 논리를 강조해야 했다. ‘종교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당위는 소장 구석에 처박았고, 대신 ‘개연성’이라는 좁고 길고 지루한 법리의 길을 걸어야 했다.
변호사의 조언에 따라 당사자의 지위, 행정청의 처분(행정심판 과정 포함), 처분의 위법성 3가지를 위주로 소장을 서술했다. 대법원 검색 시스템을 참고해 떠듬떠듬, 정보공개 청구 관련 행정소송 대법원 판례를 뒤졌다. 지난 6개월간 취재한 내용도 입증자료로 포함시켰다. 천주교 등 근로소득세 자진 납부 현황, 국세청과 기획재정부가 과거 종교인 소득세 부과 검토 논의를 한 점을 강조했다. 정보공개법상 원고가 청구하는 자료의 존재를 입증할 책임이 있지만, “언론에 보도된 내용조차 공개하지 않는 국세청의 과도한 비밀주의 탓에 원고가 더 이상 정보공개 청구 취지를 구체적으로 특정하기 어려운 상황”임을 호소했다. “공개 가능한 정보와 그렇지 않은 정보를 분리”해야 함도 다시금 강조했다. 새로운 사실도 확인했다. 이미 천주교 16개 교구는 주교회의 결정을 통해 1994년부터 근로소득세 납부 신고를 해 근소세를 원천징수하고 있었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도 수십 년 전부터 목사들의 근로소득세를 원천징수해 납부하고 있다.
“종교법인의 소속 종교인 등 근로자의 소득세 최초 납부 시점, 납부액 등은 여러 정황과 자료로 판단할 때 국세청이 보유하고 있을 개연성이 상당하며 원고로서는 제한된 조건과 자료 안에서 이러한 개연성을 최대한 입증하였습니다. …그렇다면 국세청은 원고의 청구 가운데 공개 가능한 자료를 공개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소장에 지장을 찍고 11개 증거물 목록을 재확인했다.
‘경제 검찰’ 국세청도 두려워하는9월15일 날씨는 삼복더위에 가까웠다. 서울행정법원 종합안내실에서 인지대, 송달료 영수증과 함께 소장을 제출했다. 더웠다. 소장을 제출하고 나오는 오후 4시10분 등에서 땀이 흘렀다. 국가의 정보 은폐에 대해 부당함을 호소할 곳은 다시 국가였다. 기독교인이라면 “구하여라, 받을 것이다. 찾아라,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라는 7장을 희망차게 떠올렸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법조인도 기독교인도 아니었다. 법도 성경도 믿으면 안 된다는 직업적 회의주의자가 되라고 배웠다. ‘경제 검찰’ 국세청은 전직 대통령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대한민국 앙시앵레짐은 예외다. 싸움은 6개월째 지속된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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