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에 더 힘센 자가 없으니 누가 그와 겨루랴.”
토머스 홉스가 쓴 은 국가의 탄생을 이렇게 전한다. 성서 욥기 구절에서 따온 이 말은 ‘리바이어던’의 절대권력을 보여준다. 초판 속표지에는 수많은 이들이 모여 거대한 사람의 형상을 이룬 그 유명한 그림이 실려 있다. 국가이자 절대군주인 리바이어던은 교회의 첨탑과 집, 산과 들, 바다를 내려다본다. 왕관을 쓴 리바이어던의 오른손에는 날카로운 검이 들렸다. 폭력을 통할하는 국가의 힘이다.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몸통을 이룬 개개인들의 눈은 리바이어던의 얼굴, 즉 국가만을 ‘올려다보고’ 있다. “국가는 모든 사람이 포기한 권리, 모든 사람이 사용을 유보한 폭력의 집합적 구성물이다. 국가는 그 모든 폭력을 자신 안으로 흡수함으로써 그 자신이 폭력이 되고, 압도적인 힘의 비대칭성 속에서 감히 어느 누구도 폭력을 사용할 수 없게끔 함으로써 평화를 유지한다.”(공진성, ) 자신들이 양도한 작은 폭력들, 그렇게 모인 거대한 힘에 의탁해 생명과 안전을 보장받는다. 폭력의 합법적 독점체, 국가의 탄생이다.
철거와 파업, 용역들의 오랜 일터
“모든 높은 자를 내려다보며 모든 교만한 자들에게 군림하는 왕”(욥기 41장)이라던 리바이어던은, 이제 모든 것을 내다파는 왕이 되었다. 국가의 권능은 ‘민영화’한 수많은 영역들로 쪼개지고 대체됐다. 리바이어던이 내려다보는 것은 이제 ‘시장’이다. 마침내, 손에 든 자신의 검마저 좌판에 올려놓았다. 모든 것을 내다파는 시대에, 국가만이 소유했던 ‘폭력’마저 시장의 매대에서 돈으로 거래된다. 공권력의 민영화, 폭력의 외주화다.
지난 7월27일 새벽 4시50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반월공단에 있는 자동차 부품업체 SJM 공장에 진압봉과 방패, 헬멧으로 무장한 사설 용역경비업체 직원 200여 명이 “진격, 뚫어”를 외치며 ‘진압 작전’에 들어갔다. 사업주가 전격적으로 직장폐쇄를 단행한 공장 안에는 임금·단체 협상 문제로 농성 중이던 노조원 150여 명이 있었다. ‘CONTACTUS’(컨택터스)라는 용역경비업체명이 인쇄된 방패를 든 이들은 길이 1m 정도의 진압봉을 마구 휘둘렀다. 공장 안에 있던 쇳덩어리까지 집어 던졌다. 노조원들의 치아가 함몰되고 머리가 깨졌다. 흡사 1990년대 ‘구사대’를 연상케 하는 폭력이 이어졌고 노조원 수십 명이 쓰러졌다. 여성 노동자가 “살려달라”며 112 신고를 네 차례나 했지만, 출동한 근처 파출소 소속 경찰관들은 공장에 들어가지도 않은 채 용역경비업체와 회사 쪽 관계자의 말만 듣고 돌아갔다. 새벽 5시30분에야 경찰기동대 3개 중대가 공장 정문 앞에 배치됐지만 노조원에 대한 불법적인 폭력은 사실상 ‘묵인’됐다. 현장에 있던 경찰 중대장은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 등 현장 소란을 확인하고도 별다른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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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하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흔한 일이다. 낯설지 않다. 개발연대를 거치며 수없이 목격된 일이다. 1970년대까지는 도시 재개발 현장에서 국가가 직접 자신의 힘으로 밀어붙이던 철거폭력이 횡행했다. 그러던 도시개발사업이 1983년 합동재개발이라는 형식으로 민영화한다. 건설자본이 재개발사업에 끼어들게 되자 ‘빠른 회전’을 생명으로 하는 돈의 논리가 작동하기 시작한다. 철거폭력 역시 빠른 시간 안에 확실히 끝내는 무자비한 용역들의 완력으로 대체된다. ‘용역폭력’ 전성시대가 온 것이다.
노동 현장에서의 용역폭력은 철거 현장보다 시기적으로 조금 늦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이 밀어닥친 1990년대 말, 노동쟁의 현장에서 회사 쪽이 고용한 용역경비업체 직원들의 물리적 폭력 행사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노조집회 해산, 노조사무실 봉쇄 과정에 ‘용역깡패’가 난입해 폭력을 휘둘렀다. ‘시설 경비’라는 명목으로 각목과 자전거 체인을 휘두르는 용역경비업체 직원들이 공장을 점령하고 노동자를 내쫓았다. 지난해 충남 아산의 자동차 부품회사인 유성기업 노동쟁의 과정에서 용역경비업체가 저지른 폭력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됐다. 2010년에는 경북 구미의 반도체 회사 케이이씨(KEC), 대구와 경북 경주의 자동차 부품 회사인 상신브레이크·발레오전장에서도 직장폐쇄 뒤 곧바로 용역업체 직원들이 ‘작전’에 투입되거나 경비로 배치됐다.
‘노조 집단행동→직장폐쇄→용역 투입’은 회사 쪽이 노조를 파괴하는 시스템으로 자리잡았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폭력적으로 컨트롤하는 용역경비업체의 ‘전문성’이 시장에서 사고팔린다. 이계수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행정법)는 지난 1월 발간한 에서 “용역깡패들은 국가가 허가한 기업에 고용되어 영업의 일환으로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폭력을 행사한다”고 지적했다. “폭력·물리력의 행사가 하나의 자본주의적 사업이 됐다”는 것이다.
우리는 용팔이, 양아치가 아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컨택터스는 인터넷 홈페이지 등을 통해 자신을 ‘용역깡패·용역양아치’가 아닌 ‘시위·집회 솔루셔너·시추에이션 매니지먼트’로 불러달라고 했다. 세련되게 주먹질을 한다는 얘기다. 이들은 최대 3천 명까지 경비·경호 인력을 동원할 수 있으며 시위 진압용 물대포차, 손해배상 청구를 위한 불법행위 채증용 무선조종 헬기, 경비견 등 ‘국내 최대 규모의 시위 진압 장비’를 보유하고 있다고 선전했다. 파업 등으로 조업에 차질이 생기면 즉시 ‘대체 인력’을 투입할 수 있는 시스템까지 갖췄다고 홍보했다. 2009년에는 노동쟁의가 진행 중이던 자동차 부품업체에 자기네 직원들을 위장취업시켜 노조파괴 공작을 벌이기도 했다.
컨택터스는 징후적 현상이다. 한국 사회에서 거래되는 ‘폭력’이 파업 진압부터 대체 인력 투입까지 논스톱으로 처리해주는, 나름의 시스템을 갖춘 ‘기업형 폭력’으로 진화하는 어떤 지점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그때그때 일당을 주고 동네 깡패들이나 동원하던 기존 용역업체들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얘기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대 교수(인권법)는 “과거 용역깡패는 애교 수준”이라며 “경찰이 맡은 업무 중에 가장 폭력적 분야인 진압의 영역에까지 조직화된 형태로 뛰어들었다”고 평했다. ‘진화’를 했다는 것이다. “노사가 법적으로 대등하게 싸우도록 힘의 균형을 맞춰준 것이 파업권과 직장폐쇄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균형을 국가가 컨트롤하는 것이 노사관계의 룰이었다. 그런데 돈 있는 쪽이 공권력의 영역인 폭력을 사들이자 힘의 불균형이 극대화했다.”
제대로 된 혁명 한 번 일어나지 않았지만, 미국은 어느 나라 못지않게 유혈 낭자한 노동운동의 역사를 가졌다. 이를 폭력으로 찍어 누른 것이 용역경비업체들이었다. 급속한 경제성장 과정에서 소외된 노동자들의 반발이 극심해지던 19세기 중·후반부터 20세기 초, 용역경비업체 핑커턴사는 노조 파괴로 악명을 떨쳤다. 대표적인 것이 1892년 펜실베이니아주 홈스테드시에 있던 카네기 제철소 파업 진압이다. 깡패와 부랑자 등으로 구성된 핑커턴 소속 경비원 300여 명과 노동자들이 무력으로 충돌했고, 이 과정에서 10여 명이 숨지고 수백 명이 다쳤다. 탐정 업무도 했던 핑커턴의 로고는 커다란 눈이었다. 눈 밑에는 ‘우리는 잠들지 않는다’는 글귀가 쓰여 있었다. 핑커턴은 무력 진압 외에 공작원들을 활용한 노조 침투, 유령노조 설립, 폭력 선동 등을 전문적으로 수행했다. 한 세기 뒤 한국에 나타난 컨택터스가 하는 짓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후 미국 최대의 보안업체로 자리잡은 핑커턴은 1999년 세계적 보안업체인 스웨덴의 ‘시큐리타스AB’에 인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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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역경비업체의 폭력이 문제가 될 때마다 경비업체에 대한 허가·관리·감독 권한을 가진 경찰은 ‘허가·관리·감독을 강화하겠다’는 뻔한 답을 내놓는다. 지난해 9월 경찰청은 유성기업 용역폭력 사건의 대책으로 “앞으로 폭력을 행사한 경비·용역 업체는 조직폭력에 준해 엄정하게 처리, 고용한 사업체도 청부폭력에 준해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았다. “초기부터 경찰권을 발동해 용역폭력을 예방·제지·제압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불과 10개월 뒤 리바이어던에서 폭력을 떼어받은 컨택터스라는 ‘괴물’은 경찰이 보는 앞에서 흉기를 들어 사람들을 팼다. 이계수 교수는 “철거 현장, 노동 현장에서 폭력이 행사되거나 행사 가능성이 예견되는데도 경찰이 개입하지 않는 것은 경찰이 그 문제를 사적 소유권의 문제로 인식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폭력의 민영화는 책임과 처벌, 통제를 어렵게 만든다. 국가가 행사하는 폭력, 공권력의 일부로 경찰이 행사하는 폭력은 비교적 통제가 용이했다. 노사문제에 경찰력이 발동할 때, 국가는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인사·예산·정보공개 등 다양한 방식의 민주적 통제를 가할 수 있다. 홍 교수는 “경찰력을 통제할 수 있는 다양한 수단들이 계속 만들어져왔다. 반면 이윤 창출이 목적인 자본에 풀려버린 폭력을 제어할 수단은 마땅히 없다”고 했다.
“용역폭력 사들이는 사용자 처벌해야 근절”
직장폐쇄 등 법적·행정적 ‘절차’를 밟은 뒤 이뤄지는 폭력에 대해 경찰·검찰·법원은 무한한 관용을 베풀어왔다. 지난해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그전 3년간 처벌받은 노동자·철거민과 용역경비업체 직원 현황은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노동자 등은 무려 4197명이 입건된 뒤 3832명(91.3%)이 기소(구속 43명 포함)된 반면, 폭력을 휘두른 용역업체 직원들은 288명만이 입건됐고, 그나마 재판에 넘겨진 사람도 116명에 불과했다. 구속자는 단 1명도 없었다.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의 윤지영 변호사는 “폭력을 방기하고 느슨하게 조사하고 헐렁하게 처벌하는 경찰·검찰·법원의 책임이 크다”며 “용역폭력을 사들이는 사용자(회사)를 처벌하지 않는 이상 이런 폭력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국가는 기본적으로 노동보다 자본에 기울어져 있다. 자본은 이를 믿고 폭력을 사들이고 사병화한다. 방조와 묵인 아래 공공연히 폭력을 행사한다. 이계수 교수는 신자유주의가 본격화한 시기와 민간 경비산업의 ‘발흥’을 연결짓는다. 공진성 조선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서양정치사상 전공)는 ‘친자본’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그는 “국가성이 약한 사회부터 먼저 무력 독점이 약해지는 현상이 시작된다”고 설명했다. “그래도 유럽에서는 여전히 국가가 시장 통제를 하고 있다. 폭력 통제도 마찬가지다. 반면 미국은 건국 과정에서도 무력 통제를 담보하지 못했다. 미국식 자유주의 문화가 이식된 나라일수록 시장이 밀고 들어오면 쉽게 무장해제된다.” 공 교수는 “영주들이 사병을 거느렸던 중세라는 특권적 시대가 끝나고 근대국가가 등장하며 민주주의가 가능해졌다. 기업들이 공장이 사유지라는 이유로 마치 치외법권이 있는 것처럼 사사로이 폭력을 사용하는 것은 ‘국가 안의 국가’ ‘새로운 중세’가 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우파와 보수가 말하는 이른바 ‘국가 공권력에 대한 도전’은 경찰과 충돌한 서울 용산 참사나 쌍용차 파업보다, 오히려 폭력을 돈으로 사고팔아도 국가가 이를 문제 삼지 않는 용역폭력 현상에서 훨씬 더 심각하게 나타난다”고 했다.
2010년 9월 한국의정연구회가 국회사무처 정책연구과제로 제출한 보고서는 ‘경찰업무와 민간 경비업무의 상호협력 방안’이었다. 보고서는 용산 철거민 참사를 거론하며 “민간 경비업체 역시 민간 분쟁에 있어서 제3자에 해당하지만 경찰과는 다르게 좀더 원활하고 갈등 없이 민간 분쟁을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고 썼다. ‘노사분규 등에 경호경비 요원을 투입, 신속히 재산권 보호 및 신변안전과 시설보호 업무를 수행하겠다’는 컨택터스의 사업모델이 이에 대한 모범 사례로 제시됐다.
경비업계는 불만이다. 일부 불법적인 폭력을 휘두르는 업체들 때문에 본연의 경비·경호 업무를 맡은 자신들까지 싸잡혀 욕먹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안전의 시장화’는 ‘폭력의 민영화’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홍성수 교수는 “홉스부터 이어온 국가 정당성의 가장 기초는 국민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그 기능에 생긴 공백을 ‘에스원’이나 ‘세콤’을 통해 돈 있는 사람들이 사들이게 되면 안전에 대한 불평등이 나타나게 된다”고 했다. 시장보다 국가를 더 신뢰한다는, 혹은 그래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조차 누군가의 집에 달려 있는 보안벨과 폐쇄회로텔레비전(CCTV)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게 한때는 경찰의 영역이었다는 생각은 이제 들지 않는다. 돈만 있으면 더 안전해질 거라는 믿음은 무의식적인 그 무엇이 됐다. 공진성 교수는 “능력껏 자기를 지키는 세상, 자신들만의 보안 시스템을 따로 가지게 된다면 국가의 의미는 사라진다”고 봤다.
빈익빈 부익부, 안전의 양극화
국가만이 안전을 보장하고 폭력을 독점한다는 홉스·베버식 정치철학은 논쟁적 주제일 수 있다.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학 교수는 그의 책 에서 “우리가 모든 것을 사고팔 수 있는 사회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걱정”한다. 그는 폭력과 안전을 돈으로 전유하는 민간군사기업과 사설 경호원 등을 언급한다. “부유함이 지닌 유일한 장점이, 요트나 스포츠카를 사고 환상적인 휴가를 즐길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라면 수입과 부의 불평등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닐 것이다. 모든 것의 상품화로 인해 돈이 더욱 중요해지면서 불평등 때문에 발생하는 고통이 깊어지고 있다.” 이계수 교수도 같은 지적을 한다. “안전은 점차 각자가 알아서 챙겨야 할 그 무엇이 된다. 안전의 자기책임화가 초래하는 결과는 안전의 시장화와 상품화, 그로 인한 안전 향유의 양극화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누가 그와 겨루랴.” 리바이어던으로 탄생한 국가는, 그렇게 스스로 죽어간다. 국가의 자살이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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