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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소금꽃 나무가 위험하다

먹지도 자지도 못하는 김진숙과 ‘진보 노숙’하는 ‘트위터 특공대’ 한진중공업 노동자…한진 정리해고 끈질기게 취재해온 기자에게 “많이 불안하고 힘들다”고 토로한 소금꽃 나무, 김진숙
등록 2011-07-07 15:50 수정 2020-05-03 04:26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올라 있는 85호 크레인이 보인다. 그 아래로 8명의 조합원들이 크레인 중단부에서 점거농성을 함께 하고 있다. 한겨레21 박승화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올라 있는 85호 크레인이 보인다. 그 아래로 8명의 조합원들이 크레인 중단부에서 점거농성을 함께 하고 있다. 한겨레21 박승화

여기가 끝이다. 무정한 세계의 끝에서 일곱 번, 랜턴의 불빛이 돌았다. 빙, 빙, 빙…, 빙.

“와!” 환호가 일었다. 지상 35m 높이 부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 조종실에 올라 있는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팔을 힘껏 돌려 보낸 생존의 신호였다.

서로를 보는 김진숙과 노동자

“와!” 이번에는 김진숙 지도위원과 함께 85호 크레인을 지키는 동료 노동자 8명이, 조선소 밖으로 밀려나 길 건너편에서 집회를 하는 같은 작업복 차림의 동료 노동자들에게 함성으로 신호를 보냈다. 장맛비를 머금은 바닷바람에 불안하게 실려온 함성은 퇴근길 8차선 자동차 소리에 묻혔다. 차도 건너 조선소 담장 옆이라면 고함치면서라도 대화할 수 있을 텐데. 담장 앞은 촘촘하게 들어선 전경버스의 ‘차벽’이 가로막고 있다. 85호 크레인 아래도 노란 안전모를 쓴 회사 쪽 용역업체 직원들과 전투경찰들이 지키고 있다. 크레인 바로 아래는 두께가 2m는 족히 돼 보이는 에어매트가 깔려 있다. 크레인 위 노동자들의 ‘투신’에 대비한 안전장비일까, 경찰 진압을 염두에 둔 준비물일까. 확인할 도리가 없다.

지난 6월27일 채길용 민주노총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장이 이재용 한진중공업 사장과 ‘노사협의 이행합의서’에 서명·합의한 이틀 뒤인 6월29일, 한진중공업 부산 영도조선소를 찾았다. 그러나 전과 달리 김 위원이 175일째 올라 있는 85호 크레인으로 다가갈 수 없었다. 6월27일 법원의 결정에 근거를 둔 ‘행정대집행’으로 85호 크레인 주변에서 쫓겨난 한진중공업 노동조합 조합원들도 마찬가지였다. 회사 쪽의 허락을 받아 노란 비표를 달지 않으면 노동자는 그 누구라도 조선소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기자의 얼굴을 보자마자 한진중공업 사쪽 관계자는 “협조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라며 외면했다.

행정대집행으로 공장 밖으로 쫓겨난 조합원 가운데 100여 명은 85호 크레인이 보이는 조선소 길 건너에 자리를 잡고 집회를 열었다. 장맛비가 내리는데도 그들은 집에 가지 않았다. 35m 높이 85호 크레인 조종실에는 김 위원이 있고, 지상 15m 중단부에는 동료 8명이 함께 크레인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행정대집행 이후 크레인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 크레인 위와 크레인 아래 세상은 단절됐다.

6월28일 국가인권위원회는 회사 쪽과 협의를 거쳐 음식을 포함한 생필품을 85호 크레인으로 올려보냈다. 크레인 위 노동자들이 다섯 끼를 굶은 뒤에야 받아든 음식이다. 김 위원은 지난해 한진중공업 사태 해결을 위한 단식으로 위가 망가져 음식을 잘 소화하지 못한다. 죽을 먹어야 한다. 그런데 그동안 죽을 끓여 올려주던 동료는 지금 크레인에 없다. 85호 크레인으로 올라간 생필품 가운데는 휴대전화 배터리도 있긴 했다. 하지만 언제 닳아 없어질지 모른다. 인터뷰를 시도했다.

전기는 단순히 전기가 아니다

지난 6월30일 김진숙 위원이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사진 한겨레21 박승화 기자

지난 6월30일 김진숙 위원이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사진 한겨레21 박승화 기자

건강은요.
여기는 완전히 고립된 상태입니다. 말도 못하는 상태에요.

식사는요.
어제(6월28일) 저녁이 (이틀 만에) 올라오긴 했습니다. 그런데 죽을 먹고 있어요(지난해 정리해고 반대 단식 때문임). 죽을 만들어 올려주던 사람들이 회사 쪽 용역 직원들에게 붙잡혀서 나갔는데, 어찌됐는지 모르겠어요. 걱정입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와서 (죽을 올려 보내줘서) 먹기는 했는데….

아래도 덥습니다.
말할 수 없을 정도예요. 전기가 안 들어오니까요. 숨 쉬기도 힘들 정도입니다.

전기가 안 들어온 지는 얼마나 됐나요.
월요일(6월27일)부터요. 전기가 있고 없고가 차이가 큽니다. 마음이 많이 불안합니다. 힘들어요.

지난 1월6일 김진숙 지도위원이 85호 크레인에 올라간 뒤로 기자는 김 위원과 인터뷰하려고 10여 차례 전화 통화를 했다(845호 사람과 사회 ‘얼지마, 울지마, 죽지마, 철의 노동자여’, 856호 표지이야기 ‘외롭고 높고 쓸쓸한 당신, 노동자’ 참조). 김 위원은 하늘에 홀로 고립된 사람답지 않게 늘 여유로웠다. 크레인에서 세상으로 내려올 날을 기다리며 체력을 유지하려고 날마다 운동을 거르지 않았다. 하늘에서 치커리 등 채소를 재배하기도 했다. 기자에게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그런 그가 기자에게 처음으로 “불안하다” “힘들다”고 했다.

김 위원이 있는 강철 크레인의 조종실은 여름 햇볕에 달아올라 40℃를 넘어선다. 행정대집행 뒤 전기가 끊겨 크레인 안의 냉방설비를 돌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상상하기 힘든 더위다. 더위보다 더 견디기 힘든 건 ‘고립’이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으니 휴대전화를 충전할 수 없다. 바닷바람이 심해 크레인 중단부의 동료 노동자 8명과는 고함을 쳐야만 간신히 의사소통이 된다. “먹지 못하니 (고함치고) 그럴 힘도 없어요.” 또 다른 문제는 잠이다. “경찰특공대가 아래에 있는데 새벽에 올라온다고 해서 이틀 동안 10분도 못 잤어요.” 지상의 사람들이 깊은 잠에 빠진 밤, 그는 하늘에서 불면한다.

“그녀의 숨구멍이 막혔다”

김 위원은 크레인에 오른 뒤 주로 트위터로 세상 사람들과 대화했다. 그런데 행정대집행으로 크레인의 전기가 끊겼고, 김 위원이 쓰던 스마트폰의 배터리도 방전됐다. 6월28일 국가인권위원회를 통해 올라온 배터리는 스마트폰이 아닌 일반 휴대전화 배터리였다. 스마트폰이 아니니 트위터를 할 수 없다. 김 위원은 세상 사람들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직접 확인할 길을 잃었다. 실낱같던 소통의 길이 막혔다. 배우 김여진씨는 7월1일 “트위터는 그녀(김진숙)의 숨구멍이었다. 암흑…. 난 그녀의 숨을 틀어막는 데 합의한 국가인권위원회를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다”는 글을 자신의 트위터에 올렸다.

지난 6월27일 금속노조 한진중공업 지회 집행부는 회사 쪽과 협의해 ‘노사협의 이행합의서’를 작성했다. 노조 집행부는 파업을 접었다. 7월4일부터 회사를 정상화한다고 합의했다. 노조 집행부는 경영진의 정리해고 통보 이후 6개월을 끌어온 전면 파업을 그렇게 접으려 했다. 그러나 현장 조합원들은 반발했다. 영도조선소 25년차 용접공 이아무개씨는 파업 철회 기자회견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조합 집행부를 찾아 동료들과 달려갔다. 그러다가 회사 쪽 용역 직원들에게 두 팔과 두 다리를 들려 밖으로 쫓겨났다. 이씨와 함께 강제집행으로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던 조합원 100여 명이 85호 크레인과 닿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노숙농성을 벌였다. 조선소 안에 남아 있던 30여 명은 85호 크레인 중단부까지 올라 농성에 들어갔다. 7월1일 현재 크레인에는 김 위원과 동료 노동자 8명이 남아 있다.

이씨는 1991년 노조위원장으로 의문사한 박창수 열사, 2003년 85호 크레인에서 목매 세상을 뜬 당시 노조위원장 김주익 열사를 ‘창수 형’ ‘주익이 형’이라고 불렀다. 그에게 한진중공업은 인생 자체다. “나는 솔직히 창수 형님 그렇게 되고 주익이 형님 그렇게 될 때도, 미안하지만 일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어. 그런데 이번에는 아니야. 회사 사정도 그때와는 다르고.” 한진중공업 경영진은 적자를 주장하지만, 조선 부문은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내 기술이면 어디 가서도 먹고살지. 여기 남아 있는 사람들 보라고. 해고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고. 김 지도(김진숙 지도위원)가 저렇게까지 하는데…. 사람은 살아야지. 3명이나 죽었잖아. 이제 회사 쪽에서도 양보할 때가 됐잖아.”

조합원들은 노조 집행부의 파업 철회 결정 이후 서운한 감정을 감추지 않는다. 노조 집행부는 법원이 지난 6월13일 조선소를 점거하고 있는 파업 참가 노동자들에게 퇴거 및 출입금지 가처분 결정을 내린 게 경영진 쪽과 ‘노사협의 이행합의서’를 작성한 결정적 이유였다고 밝혔다. 법원 결정이 내려진 보름 뒤부터는 하루 100만원의 강제 이행금 부과가 있을 것이고, 6개월 동안 월급을 받지 못한 농성자들에게 과태료는 폭탄과 같다는 것이다.

밥조차 주지 않는 노조

그러나 거리의 조합원들은 조합 집행부의 생각에 공감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를 생각한다는 노조가 지금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100만원 과태료를 생각해주는 노조 집행부에 당장 서운한 것은 한 끼의 밥이었다. 김아무개씨는 지난 10년간 조합비를 냈는데, 노조로부터 밥조차 얻어먹을 수 없는 현실이 분하다고 했다. 뭐가 옳고 그르고는 나중 문제라는 것이다. “조합원들은 장맛비가 몰아치는 길거리에 나앉아 있는데, 노조 집행부는 다리 뻗고 잠이 온답니까.” 사흘째 라면만 먹고 있다고 했다. 기자가 답할 수 없는 질문이 이어진다. 기자는 경영진 쪽과 협상을 진행한 노조 집행부의 견해를 들으려고 노조 위원장 및 사무국장과 접촉·전화통화를 시도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밤 8시30분이 넘은 시각, 사위가 깜깜해지고 집회가 끝났다. 하지만 이씨는 집에 가지 않았다. 100여 명의 한진중공업 동료들도 마찬가지다. 집회를 하던 그 길 위에 잠자리를 폈다. 공장 생활관에서 쫓겨날 때 들고 나온 겨울 담요를 아래에 깔고 위로 덮는다. 덮으면 덥고, 차내면 바닷바람 탓에 한여름인데도 한기가 스민다.

6월30일 아침 7시. 노숙한 100여 명의 노동자들은 출근길 차량의 매연에도 자리를 털고 일어나지 못했다. 25년차 이씨를 그 자리에서 다시 만났다. “진보에서 노숙했네요.” 이씨가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노동자들이 노숙한 곳은 얄궂게도 ‘진보’부동산 앞이다. 이씨의 집은 진보부동산이 위치한 아파트 단지 안에 있다. “(집에) 들어가 자면 발 뻗고 못 잘 것 같아서”라고, 묻지도 않았는데 설명한다. 중학생인 아이는 이미 등교했을 것이다. 이씨는 함께 잔 동료 10명을 소개했다. “요는 해고자, 요는 비해고자….” 한뎃잠의 불편함보다 크레인 위 동료들을 향하는 마음의 빚이 더 컸다.

노동자들은 자신을 “트위터 특공대”라고 소개했다. “여기도 전쟁터니까”라며 스마트폰을 내민다. “동영상이나 사진을 올리면 사람들이 한진이 그런 줄은 몰랐다며 그제야 우리를 이해해준다”고 전했다. 허허로운 웃음이 이어졌다. “(아랍권 언론인) 알자지라도 우리 트위터를 보고 있을 것”이라며 또 웃는다. 그런데 트위터 얘기를 하니 노동자들의 눈빛에 생기가 돈다. “김 지도를 대신해 세상과 소통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시작했는데, 이제는 그냥 재밌다”고 말한다. 스마트폰을 폼으로 갖고 다니던 사람들이 지금은 집회 현장에서 사진을 찍고 자판을 두드려 세상과 소통한다. S.O.S, 여기 사람이 있다고 외치는 구조 요청 신호다.

7월9일 2차 희망의 버스 185대가 영도로 달릴 예정이다. 민주노총 금속노조가 조직적으로 함께하기로 했고, 시민들의 참가 신청도 이어지고 있다. 7월1일 사흘간의 노숙을 마치고 거리의 비해고자들은 조선소로 복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해고 노동자들은 85호 크레인이 보이는 그곳을 계속 지킬 것이다. 복귀를 결정한 비해고 노동자들은 받은 월급 중 50만원씩을 해고자 복직을 위한 기금으로 모으겠다고 약속했다. 그들은 85호 크레인에 오른 김진숙 지도위원과 ‘영도의 8인’을 외면할 수 없다고 했다.

희망은 소멸하지 않는다

7월1일 현재, ‘김진숙’이라는 글자를 포털 검색어 빈칸에 넣으면 ‘김진숙 트윗 멈췄다’라는 연관검색어가 뜬다. 그러나 전기를 끊고 출입을 통제하며 85호 크레인을 세상에서 고립시키려 해도, ‘희망’은 소멸하지 않는다. 6월30일, 방전 직전의 스마트폰 배터리에 가슴 졸이며 김 위원이 트위터에 올린 글은 이랬다.

김진숙의 트위터(twitter.com/#!/JINSUK_85)
크레인 위에서 전기는 그냥 불을 밝히는 수단만은 아니었다. 깜깜절벽, 절해고도. 세상이 깊은 바닷속이다. 한두 모금 숨쉴 용량만 남은 산소통 같은 트윗은 불안하다. 오늘밤도 길 건너편 보도블록 위에 앉아 긴긴밤을 밝히는, 누가 부르지 않아도 오는 저들. 불꽃 같은 사람들.

부산=글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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