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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을 위한 사면법

대통령 ‘맘대로’ 휘두른 사면권, 1948년 이래로 98회
등록 2010-08-20 14:02 수정 2020-05-03 04:26
정치에 이용된 사면의 역사는 법 앞에서 만인이 평등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한다. 2010년 신년국정연설을 하는 이명박 대통령. 청와대사진기자단

정치에 이용된 사면의 역사는 법 앞에서 만인이 평등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한다. 2010년 신년국정연설을 하는 이명박 대통령. 청와대사진기자단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뒤 국회에서 가장 먼저 제정·공포된 법률은?

답은 정부조직법(법률 제1호)과 사면법(법률 제2호)이다. 오랜 식민지배와 극심한 좌우 대결 속에 출범한 정부가 광복과 정부 수립을 기념한다며 대규모 사면을 계획했기 때문이다. 실제 정부는 1948년 9월27일 건국 대사면을 통해 살인·방화·강도·성폭행범 등을 제외한 웬만한 범죄자는 모두 석방했고, 그 결과 전국 교도소의 절반이 일시에 비워질 정도였다고 한다. 최초의 일반사면(특정 죄목으로 복역 중인 사람 모두를 사면하는 것)이었다.

 

부정부패 특별사면의 역사

이후 일반사면은 5·16 군사 쿠데타와 3·5공화국 출범, 문민정부 출범 등을 계기로 국민의 환심을 사기 위한 목적에서 6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정치적 남용이라는 측면에서 특별사면(형을 선고받은 특정인의 형 집행을 면제해주는 것)은 그 정도가 더욱 심했다.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정권은 각각 15차례와 24차례에 걸쳐 특별사면과 특별감형 등을 남발하며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사면권을 정권 유지 수단으로 활용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문민화가 이뤄진 뒤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는 더욱 왜곡됐다. 대신 목적과 효과는 바뀌었다. 특별사면이 과거처럼 정권 유지를 위해서가 아니라, 정치적 거래로 활용된 것이다. 김영삼 정부는 여론의 강력한 반대에도 △안보 강화를 내세우며 뒤로 예산을 축낸 율곡 비리 사건 △청와대 수석비서관과 금융권 고위 관계자들이 거액의 뇌물을 챙긴 동화은행 사건 △슬롯머신 사건 관련자 등 질이 나쁜 부패사범들을 대거 특별사면했다. 김대중 정부도 12·12와 5·18 사건, 전두환·노태우 비자금 사건 관련자, 국정 개입 논란을 부른 김현철씨 등을 지역 화합과 국민 대화합이란 명분을 내세워 특별사면했다.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 또한 경제 살리기 등의 명분으로 수차례에 걸쳐 재벌 총수 등을 특별사면했다. 1948년 정부 출범 뒤 62년 동안, 올 8·15 사면을 포함해 모두 98회의 사면(감형 및 복권 포함)이 이뤄졌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유독 대통령의 사면권이 남용된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1948년에 제정된 사면법의 문제점을 들 수 있다. 당시 사면법의 사면 절차 규정은 “특별사면, 특정한 자에 대한 감형과 복권은 법무부 장관이 대통령에게 상신한다”(10조)가 전부였다. 김대중 정부 시절 사면 실무를 담당하는 법무부 형사기획과장을 지낸 한 변호사는 “청와대에서 사면을 준비하라는 지시가 내려와 사면법을 살펴봤는데 조문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또렷하다. 그냥 대통령이 아무나 알아서 사면해주라는 것과 같을 정도로 절차가 허술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청와대가 사면자 정해

법 제정 60년 뒤인 2008년 3월에야 법무부 장관 소속으로 사면심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여기서 심사를 거쳐 사면 대상자를 상신하도록 사면법이 개정됐지만, 사면심사위는 거수기 역할에 그쳤다. 법무부가 대통령에게 사면 대상자를 보고하고 재가를 얻도록 돼 있는 규정과 달리, 사실상 청와대에서 대상자를 정한 뒤 법무부가 이를 보고하도록 하는 것도 여전하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대한민국 헌법 11조 1항의 내용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면의 역사는 국민이 법 앞에 평등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역사와 다름없다. 부와 명예를 가진 이들에게 혜택이 집중됐기 때문이다. 어쩌면 역대 대한민국을 이끌어온 최고 권력자 모두는 헌법을 위반해온 것 아닐까.

이순혁 기자 한겨레 법조팀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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