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은 선거용이었나? 천안함의 진실은 온전히 드러났는가?
전자의 질문에 “설마”라고, 후자에는 “아직”이라고 답하는 이들은 고개를 갸웃거릴 것이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천안함의 진실을 추적하는 작업을 “이제 그만하자”고 한다. 지난 4월28일 국회 본회의를 거쳐 만들어진 ‘천안함 침몰사건 진상조사 특별위원회’가 변변한 활동도 하지 못한 채 막을 내릴 위기에 처했다.
은 815호 표지이야기에서, 폭발 사고의 증거를 감추고 희생양을 만들어 사건을 조작하려다 미국 의회의 집요한 조사 끝에 전모가 드러났던 미 군함 아이오와함 사례를 들어 “아이오와함의 교훈에서 배우라”고 보도한 바 있다. 정부·여당은 이를 충실하게 따르고 있는 것 같다. 엉뚱한 방향으로.
지난 5월20일 민·군 합동조사단(이하 합조단)이 천안함 침몰의 결정적 증거라고 제시한 어뢰 부품과 선체의 흡착 물질 분석 결과가 과학자들에 의해 부정당하고 있다. 합조단은 북한 연어급 잠수함이 침투해 폭발장약 250㎏의 중어뢰를 쏘았고 천안함 선체 아랫부분에서 폭발하면서 버블제트 현상으로 천안함이 두 동강 났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승헌 미국 버지니아대학 교수와 양판석 캐나다 매니토바대학 박사 등은 합조단이 제시한 자료를 과학적으로 검증하면서 “폭발의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12~14쪽 참조)고 주장한다.
과학자들의 합리적 의심은, 천안함 사고 직후와 합조단의 발표 이후 의혹을 제기해온 정치인이나 언론, 그리고 인터넷 누리꾼들의 주장과는 수준을 달리한다. 그렇다면 국회 천안함 특위는 과학자와 선박 사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검증하면서 실체적 진실을 찾는 데 주력해야 할 텐데, 한나라당은 반대한다. 천안함 특위 한나라당 간사인 황진하 의원은 “이미 감사원 감사를 통해 밝혀질 것은 다 밝혀지지 않았느냐”며 특위 활동 연장에 반대했다. 그러나 감사원 감사는 천안함 사고 이후 군의 대응이 적절했는지에 대한 감사였지 천안함 침몰 원인을 밝히는 감사는 아니었다. 황 의원은 천안함 특위 연장을 주장하는 야당을 향해 “7월 재·보궐 선거에 천안함 사건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목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공격하기도 했다.
“이미 다 밝혀졌으니” 이제 묻어야 할까? 정말 어뢰에 의한 폭발이 있었는지 과학의 영역에서 밝혀야겠지만, 이 밖에도 여전히 상식선에서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 많다.
1. 물기둥으로 바뀐 섬광천안함 특위 소속 최문순 민주당 의원이 최근 공개한 생존 장병 58명의 진술서를 보면, 어뢰에 의한 폭발과 버블제트 현상이 있었다면 당연히 동반해야 할 물기둥을 목격했다거나 화약 냄새를 맡았다는 이가 단 한 명도 없다. 진술서는 국방부가 1 대 다수 방식으로 자필 진술서를 받은 뒤 필요한 부문에서는 1 대 1 방식으로 추가 진술조서를 받는 방식으로 작성됐다고 최 의원은 말했다.
폭발 증거물인 물기둥의 존재 여부에 대해 군의 입장은 크게 바뀐 바 있다. 3월26일 천안함 침몰 직후, 그리고 4월 생존 장병 기자회견 때만 해도 물기둥은 없었다.
그런데 5월20일 합조단 발표 때는 물기둥으로 해석할 수 있는 ‘백색 섬광’이 등장했다. 최 의원은 이 ‘백색 섬광’에 관한 진술서도 공개했다. 백령도 초병인 박아무개 상병은 3월28일 쓴 자필 진술서에서 “오후 9시23분경 초소 4킬로 지점에서 갑자기 낙뢰 치는 것과 비슷한 ‘쿵’ 하는 소리와 함께 하얀 섬광 불빛이 보였다가 2~3초 후 사라졌다. ‘전방에 낙뢰 청취’라고 중대 상황실에 인터폰으로 보고했다”고 말했다.
박 상병의 ‘섬광 진술’은 사건 초기만 해도 ‘물기둥’으로 해석되지 않았는데 합조단 발표 때는 물기둥의 증거로 바뀐다. 군은 이 ‘섬광 진술’과 관련해 4월8일 “백령도 초병 1명이 뭔가 허연 게 솟구쳐오르는 것을 본 것 같다고 했으나 견시병이 물기둥을 본 바 없다고 한 만큼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다 5월20일 합조단 발표에서는 “충격으로 쓰러진 좌현 견시병의 얼굴에 물이 튀었다는 진술과 백령도 해안 초병이 2~3초간 높이 약 100m의 백색 섬광 기둥을 관측했다는 진술 내용 등은 수중 폭발로 발생한 물기둥 현상과 일치한다”고 발표했다. 4월8일 군의 발표와 5월20일 합조단의 발표를 겹쳐보면, 애초 신뢰성이 떨어진다던 ‘섬광 진술’이 6·2 지방선거에 임박한 합조단 발표에서는 수중 폭발의 결정적 증거인 ‘물기둥’으로 바뀐 셈이다.
합조단이 폭발 무기로 지목한 북한산 CHT-02D 어뢰는 폭발장약이 250kg이다. 오스트레일리아 해군이 1999년 폭발장약 295㎏의 미국산 중어뢰로 2700t급 퇴역 호위함을 대상으로 화력 시험을 했다. 이 시험 화면을 감안하면, 합조단이 지목한 문제의 어뢰가 폭발했을 경우 천안함 전체를 뒤덮을 정도의 최소한 100m 이상의 물기둥이 발생하는 게 상식이다.
2. 폭발 실험 해도 ‘1번’ 안 지워지나
폭발이 있었는지 여부를 제대로 규명하지 못한다면 합조단이 결정적 증거라고 내놓은 ‘1번 어뢰’의 실체 역시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우선 합조단이 ‘1번 어뢰’가 북한산이라는 증거로 언급한 ‘해외로 무기를 수출하기 위해 만든 북한산 무기 소개 책자’는 아무도 본 사람이 없다. 최문순 민주당 의원과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이 특위에서 책자의 존재 여부를 묻고 자료 요청을 했지만, 군이 제시한 것은 출처를 알 수 없는 서류 몇 장이 전부였다(815호 표지이야기 ‘북한산 문기 팸플릿 달랑 서류 한장’ 기사 참조).
공개된 설계도면은 또 어떤가. 설계도에는 ‘프로펠러’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우리와 표준어 철자법이 다른 북은 ‘프로펠라’라고 표기한다. 설계도면에 등장하는 의미 없는 일본어 표기에 대해서도 군은 여러 차례 설명을 바꾸다가 “설계도면상의 표기는 일본어가 아니며 컴퓨터 프로그램 호환상 문제로 발생한 무의미한 기호”라고 발표했다. 이는 원자료인 북한산 무기 소개 책자를 공개하기만 하면 사라질 논란이다.
어뢰 부품에 남아 있는 글씨 ‘1번’도 폭발 여부를 규명할 열쇠 가운데 하나다. 합조단은 애초 “어뢰의 동력장치는 철·알루미늄·스테인리스 등으로 이뤄져 있고, 재질에 따라 부식 정도가 차이가 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폭발을 겪었다면 1번이라는 글씨가 남아 있을 수 없다” “1번이라고 쓰여 있는 부분은 부식되지 않았다” 등의 의문이 제기되자 “1번 글씨는 부식을 방지하기 위해 강철에 칠해놓은 은색 페인트 위에 썼다”고 말을 바꿨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금속 전문가는 “합조단 구성이나 ‘1번’에 대한 설명을 보면 철강 쪽 전문가의 검증을 거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지금이라도 전문가의 검증을 거쳐 금속의 재질을 밝히고 실제 바닷물이나 고열에서 페인트와 어뢰 부품에 어떤 변화가 오는 금속인지를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많은 국책연구소가 있는데 같은 조건, 즉 같은 재질의 금속 위에 적힌 유성펜 글씨가 같은 온도의 수중 폭발에서 어떤 영향을 받는지 밝히는 실험이 그렇게 어려울까.
사실 이 모든 논란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결정적 증거는 열상감시장비(TOD) 영상이다. 어뢰에 의한 피격과 폭발 영상이 있다면 천안함이 폭발로 침몰했다는 결정적 증거가 된다. 군은 3월30일 가 TOD 영상에 관한 보도를 한 직후부터 여러 버전의 영상을 공개했다. 군이 발표한 사고 시각에 맞춰 김태영 국방장관이 TOD 영상의 편집을 지시한 사실이 감사원 감사 결과 드러나기도 했다.
군이 최초 공개한 1분20초짜리 영상(9시33분31초)부터 사고 발생 36초 직후부터 촬영된 마지막 공개본까지 그동안 공개된 TOD 영상의 특징은 ‘군이 없다던 영상이 새롭게 공개될 때마다 사고 발생 시각에 가까운 장면이 담겨 있다’는 점이다. 최초 공개 TOD 영상에는 함수만 떠 있는 장면이 있는 반면, 4월7일 생존 장병 기자회견 당시 공개한 영상에는 9시4분께의 정상 기동 장면, 함수와 함미가 분리된 장면(9시24분18초~9시25분19초), 함수 침몰 장면(9시25분20초~10시9분3초) 등이 담겨 있다. 국회 천안함 특위에서 공개된 가장 최근 버전에는 사고 시간대의 모습이 담겨 있으나 사고 발생 시각으로부터 36초가 지난, 천안함이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모습이 담겨 있다. 어뢰에 의한 피격과 버블제트 현상이 있었다면 이를 명확하게 드러내줄 ‘사고 순간’의 영상은 공교롭게도 없다. 정말 없을까.
4. 우리는 없고 미국만 가진 상세 보고서북한 어뢰에 의한 침몰이라는 합조단의 발표에 풀리지 않는 의혹이 많은데도 이명박 정권은 이제 그만 천안함 특위의 문을 닫자고 한다. 만약 한나라당의 주장대로 천안함 특위가 단 두 차례의 회의 끝에 활동을 종료한다면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은 ‘바지저고리’가 된다.
정부가 천안함 침몰 원인과 관련해 천안함 특위 위원들에게 제출한 조사보고서는 7쪽이 전부다. 5월20일 합조단의 중간조사 발표 때의 보도자료다. 그런데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5월26일 ‘400쪽짜리 조사보고서’를 언급했다. 김태영 국방장관은 특위 위원들이 이 ‘상세 보고서’의 존재를 묻자 “클린턴에게 물어보라”는 취지로 답한 바 있다.
그런데 상세 보고서는 존재했다. 국회 천안함 특위 위원들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251쪽짜리 상세 보고서를 주한 미국대사관은 갖고 있었다. 게다가 국방부는 미국대사관 쪽에 “이 보고서를 국회에 보고하지 않은 만큼 외부에는 알리지 말아달라”는 주문까지 한 것으로 전해졌다. 6월21일 미국대사관이 특위 소속 민주당 의원 보좌관을 상대로 연 비공개 설명회에서 이런 얘기가 오갔다고 한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이 상세 보고서의 존재를 알고 있었을까. 국민을 대표하라고 국회에 보낸 의원들은 구경조차 하지 못한 상세 보고서를 미국 대사관 쪽은 가지고 있는 현실을, 우리 국민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런데도 ‘천안함 침몰사건 진상조사 특별위원회’는 문을 닫아야 할까.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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