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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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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뱅이 500만원 결혼 대작전

‘노쇼핑’ 프로젝트 두 번째 리포트…

새로운 참가자 웰컴氏의 짜디짠 결혼식, 혼수는 십시일반·도배는 2만5천원으로 해결
등록 2010-06-24 22:18 수정 2020-05-03 04:26
‘1년 동안 쇼핑 안 하기’ 프로젝트의 두 번째 리포트다. 사치품은 사지 않고 필수품만 사면서 1년을 견디는 프로젝트다(800호 특집 ‘지름신이여 안녕, 쇼핑이여 안녕’ 참조). 2010년 1월1일 여덟 팀이 시작한 프로젝트에는 현재 두 팀이 더 합류했다. 일러스트레이터 ‘웰컴氏’와 서울 강동구 둔촌동에 동생 둘과 살고 있는 ‘레오이’다. 1년 동안 계속되는 프로젝트는 ‘노쇼핑 블로그’(blog.hani.co.kr/noshopping)를 통해 공유되고 있다. 은 계속해서 이들의 여정을 추적한다. 편집자
가난뱅이 500만원 결혼 대작전. 일러스트레이션/ 차화섭

가난뱅이 500만원 결혼 대작전. 일러스트레이션/ 차화섭

“일생일대의 지름 이벤트 500만원으로 끝냈습니다.”

‘웰컴氏’(32·노쇼핑 블로그 아이디·본명 차화섭)는 ‘더블피’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일러스트레이터다. ‘더블피의 뚝딱쿠킹’은 그의 사생활을 소소하게 읊는 인터넷 만화로 열혈팬이 많다. 웰컴氏가 노쇼핑 블로그에 가입 인사를 올리자마자 ‘우띠맘’은 팬이라며 열광했다.

웰컴氏는 5월8일 2살 연하의 남자와 결혼했다. 대통령이 중매를 했다. 둘은 2년 전 촛불집회에서 만났다. 만난 날 눈이 맞은 뒤 촛불집회는 강 건너 불구경하듯 했다는 후신이다. “꿈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척 대답하는 게 좋았다. 동영상 편집하는 비정규직이 무려 다큐멘터리를 만들겠다고 했다. 남자는 결혼을 졸랐고 여자는 “왜 결혼을? 사이좋게 둘이 잘 사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했다. 다른 경우의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결혼이었다. 두둥.

여자는 가난뱅이였다. 여자가 ‘가난’에 눈뜬 것은 충북 진천에서 서울로 유학온 대학 1학년 때. 언제나 쪼들렸다. 어느 날 라면이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절) 한 봉지에 500원이라니. 계산기를 들고, 라면·밀가루·쌀이 10kg당 얼마인지 계산해보았다. “밀가루가 제일 싸더라고요.” 그래서 수제비·칼국수 등 밀가루로만 음식을 해먹었다.

가난뱅이 500만원 결혼 대작전. 일러스트레이션/ 차화섭

가난뱅이 500만원 결혼 대작전. 일러스트레이션/ 차화섭

공짜로 잡지 보는 여자, 바지 두 벌 가진 남자

그래도 “굶어죽는데 우리 아빠가 가만있겠냐” 싶어 ‘벼랑 끝에 몰렸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대학 졸업 뒤 만화를 그리겠다고 결심하고 나서는 벼랑 끝 바람이 느껴졌다. “3년은 굶어죽을 각오를 하고 있었죠.” 어쨌든 만화를 그리려면 죽지는 말아야 한다. 생활비를 더 줄여야 했다.

자세도 바뀌었다. 대학 1학년 때는 심플하게 사는 게 최고였다. 덜 쓰면 그걸로 좋았다. 일단은 그랬다. 이단은 아니었다. 기업들이 상품을 팔아먹기 위해 혈안이 된 상술이 마음에 안 들기 시작했다. “기업들에 지지 않으려고 마음먹고 있어요.”

집에서 요리를 해먹었다. 연재하는 ‘뚝딱쿠킹’은 가난한 요리다. 싼 것으로 얼마든지 풍성한 식탁을 만들 수 있다. 또 라면과 비교해보자. (지금 현재) 라면 두 개면 1500원인데, 무는 1천원으로 온갖 요리를 해먹을 수 있다. 자칫 지겹기 쉬운데 몇 가지 버전만 알면 무한 변형이 가능하다. 쌀 때는 1천원에 3개도 주는 오이를 보라. 생으로는 아삭하고 소금에 절이면 달콤한 맛을 선사한다. 미역을 보라. 물에 넣으면 엄청나게 불어난다. 한 묶음에 1천원도 안 한다. 김도 있다. 구워서 이것만 놓으면 초라하다. 김국이 있다. 양파에 마늘 다져넣고 육수 있으면 넣고 없으면 말고 매운 것 좋아하면 풋고추 썰어넣은 데다 김을 넣으면 매생잇국 같다. 여기에 달걀프라이만 놔도 “정식 같은 한상차림”이다.

가난하니 문화생활이 취약하다 할 것이다. 집에는 텔레비전도 없다. 하지만 나름의 노하우가 있다. 진짜 보고 싶은 건 컴퓨터로 본다(월드컵 한국전도 그렇게 보았다). 책은 출판사 친구나 편집자가 보내주는 걸 본다. 그런데 정말 ‘스노브’(snob·허세)가 목마를 때가 있다. 스노브의 중심은 따끈따끈한 잡지. 그럴 때는 은행에 간다. “시원하고 물도 주죠.” 은행원이 눈치 주면 통장 정리를 한다.

특히 갈증나는 것은 여행잡지다. 그럴 때는 시내에 나갔을 때 갖고 온 항공사 공짜 잡지를 본다(요즘은 남편이 점심 식사 뒤 여행사 사무실로 가서 가져다준다). “워낙 하이퀄리티잖아요. 종이도 좋고 인쇄도 좋고. 전세계 관광정보가 다 있어요. 어머나 세상에, 오스트레일리아에 이런 스테이크바가 생겼대.” 외국 잡지가 보고 싶을 때도 완벽하다. 일본 잡지가 보고 싶을 때는 일본어 부분을 보고, 영국 잡지가 보고 싶을 때는 영어 부분을 본다.

최근에는 새로운 잡지도 발견했다. 대한지적공사에서 나온 국내 여행 잡지다. 전입신고하러 갔다가 봤다. 종이도 좋고 두껍다. “공공의 냄새 싫은데, 처음 고맙다 했어요.”

현금은 들고 다니지 않는다. 잘 잃어버려서다. 체크카드만 쓴다. 그래서 가계부를 쓰지 않는다. “가계부를 썼는데 체크카드 명세서 나온 거 보니까 똑같더라고요.” 가게에서 맥주 한 병을 살 때도 체크카드를 쓴다. 카드만 있으니 카드가 안 되는 자판기 커피나 길거리 음식 같은 군것질거리도 못 먹게 된다. 남이 사주면 모르지만.

남자는 바지 두 벌로 사는 사람이었다. “저는 ‘싼 거 사서 떨어질 때까지 쓰자’인데 남자아이(여자는 남자를 이렇게 부른다)는 ‘메이커를 사서 오래 입자’ 주의더라고요.” 바지 세 벌일 때 여자와 만났다. 면바지 하나는 너무 낡아서 속이 비쳤다. 여자는 면바지를 세탁소에 가져갔다. 세탁소 아저씨에게 이런 옷도 누빌 수 있느냐고 물었다. 아저씨는 의외로 그런 사람이 많다고 했다. “좋아하는 옷은 10년, 20년도 입어요. 10번을 같은 자리를 누비는 사람도 있어요.” 바지는 지금은 시댁의 장롱 안으로 들어갔다.

혼수 준비, 싸게 사서 비싸게 쓰는 냉장고라고?
가난뱅이 500만원 결혼 대작전. 일러스트레이션/ 차화섭

가난뱅이 500만원 결혼 대작전. 일러스트레이션/ 차화섭

바지 두 벌로 사는 남자와 기업에 지지 않으려고 사는 여자는 ‘짜디짠’ 결혼을 결심했다. 목표는 최대 500만원. 살던 오피스텔 전세금을 빼고 남자와 여자의 모아놓은 돈을 더하고 대출을 3500만원 받아 전세금을 마련하고 나니, 수중에 남는 돈이 500만원이었다. 처음에는 그랬다. 너무 많이 잡은 건 아닐까.

입술에 물집이 마를 날이 없었다. 청첩장 만들고 인쇄소에 맡기고 밤새워서 이름 써서 부치고, 싸구려 물건을 찾으러 다녔다. 청첩장의 문구는 “두 사람이 만나 인생의 희로애락을 함께 즐기기로 했습니다. 봄날, 좋은 자리 함께해주세요.” 싸울 게 뻔한데 “영원히 행복하겠습니다”라고 하기는 싫었고, 굴곡이 있을 텐데 “사랑하는 우리” 운운도 쑥스러웠다.

결혼식은 서울 운현궁 전통혼례로 하고 싶었다. 95만원이라고 했다. 무형문화재 선생님이 만든 수제 활옷은 옵션이었는데, 20만원이 들었다. 입고 싶었다.

가난뱅이 500만원 결혼 대작전. 일러스트레이션/ 차화섭

가난뱅이 500만원 결혼 대작전. 일러스트레이션/ 차화섭

예단은 하지 않았다. 혼수는 십시일반으로 마련했다. 웰컴氏는 첫째딸이다. 어머니는 고모랑 손잡고 가 혼수 고르는 ‘시뮬레이션’을 했다. 이거 사면 예쁘겠다고 다 보고 왔는데 웰컴氏는 같이 가지 않았다. 엄마는 이불을 해줬다. 신혼 이불은 원래 엄마가 해주는 거라 했다. 목화솜 이불이었다. 아빠의 카드포인트로 초특가 비데도 마련했다. 세탁기는 작은아버지가 해주셨다. 책장은 아는 출판사 에디터에게 부탁했다. 가스레인지는 친구들이 해줬다. 냉장고는 여자를 딸처럼 여기던 엄마 친구분이 해줬다.

남의 돈이라고 막 쓰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부탁하면 무작정 전자제품 전문매장으로 가자고 하더라고요.” 인터넷 검색을 하고 최저가를 확인하고 금액을 말해줬다.

냉장고는 양문형과 위아래문형 사이에서 난감했다. 옛날식 냉장고는 에너지 효율이 4등급이었다. 양문형 냉장고는 두세 배는 더 비싸긴 하지만 에너지 효율이 1~2등급이었다. 제조사에 전화를 걸었다. “위아래 문짝 냉장고는 1등급이 없습니까?” 상담원은 없다고 했다. “기준이 그래서 그렇습니다. 신형으로 나왔을 때는 1~2등급이었습니다.” “말씀드려도 의사는 잘 전달되지 않겠지만 작은 사이즈도 고효율 상품을 만들어주셨으면 합니다.” 기술은 발전했는데 가난한 이들이 사용하는 상품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싸게 사서 비싸게 써야 한다. 그래도 위아래 문짝 314ℓ짜리 냉장고를 골랐다. 30만원대였다. 대신 냉각커튼을 달았다. 전기를 30% 아껴준다고 했다.

전셋집의 벽에는 꽃무늬 포인트 벽지와 어린이용 유아 벽지가 발라져 있었다. 꽃무늬 알레르기가 있는데, 멀쩡하니 주인에게 다시 해달랄 수가 없었다. 페인트를 샀다. 한 번 발랐는데 꽃무늬가 여전히 비쳤다. 거실·부엌·방을 돌려가며 네 번씩을 발랐다. 4시간을 고생했다. 어쨌든 거실·방 벽을 다시 완비하는 데 든 돈은 2만5천원.

거지꼴 겨우 면했지만 그래도 재밌다!

전셋집은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풍산역 부근이다. ‘오래된’ 신도시의 집은 낡았고 나무들은 우람하다. 넝쿨장미가 한창인 여름 오후, 장미 한 송이만 삐죽이 울타리 소나무 사이로 올라와 있다. 이렇게 결혼식을 하고 나니 삐죽한 장미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결혼, 재밌더라고요. 한 번 더 해도 좋을 것 같아요.”

전통혼례의 결혼식에서 여자는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옆에서 보조해주는 아주머니들이 대신 눈이 되어주었다. “왼쪽 무릎 펴고 오른쪽 무릎 펴세요. 계단 조심하세요”라고 말해주었다. 노락당에서 식을 올릴 때는 박수 소리만 들렸다. “박수 소리가 포근하게 덮어주는 느낌이었어요.” 다른 결혼식과 달리 사람들은 식의 끝까지 함께했다.

500만원은 아슬아슬했다. 신혼여행 경비를 챙겨두자 수중에 0원이 남았다. 그리고 축의금이 들어왔다. 150만원 정도였다. 친구들과의 뒤풀이 추가 비용과 수고한 친구들에게 준 돈, 호텔 택시비 등으로 쓰고 모두 은행에 넣어두었다. 헐어서 집들이 비용으로 쓸 계획이다. “넘어질 듯하면서 결승선을 통과한 느낌이예요. 다 치자면 500만원을 더 쓰긴 했는데요. 거지꼴을 면하고 결혼식 할 수 있게 된 것은 주변분들의 힘 덕분이네요.”

‘남자아이’에게서 인터뷰 중 계속 전화가 왔다. 둘이 함께 결혼식에서 부른 노래는 이었다.




웰컴氏의 결산 내역
자잘한 살림살이 ‘깜놀’

웰컴氏의 결산 내역

웰컴氏의 결산 내역


1. 결혼식
서울 운현궁 전통혼례 95만원
수제 활옷 20만원
뒤풀이(항상 식이 끝난 뒤 신랑·신부는 훌쩍 가버리는 게 좀 썰렁한 거 같아서 그날은 다 같이 놀기로 결정) 장소 45만원 + 술과 먹을거리 20만원 + 2·3차 비용은 당일 들어온 친구들 축의금으로 지원사격
한국에서의 호텔 숙박료 명동 ○○○호텔 대략 15만원 정도(부가가치세 포함), 구체적인 건 기억이;;;
짐 옮겨준 친구에게 기름값 10만원(축의금으로 지불)
총 195만원

2. 신혼여행
항공료 100만원(2인) → 우리 예산으로
여행경비 120만원(2인) → 우리 예산 100만원 + 축의금 20만원으로 해결. 현지에서 예상 밖으로 쓴 항공료 35만원은 현재 갚고 있음
총 235만원

3. 살림살이
장롱 40만원, 페인트 2만5천원, 책상 조립품 2조 7만원(개당 3만5천원)
조립 원목 옷걸이(벽걸이·행거형) 5만원, 주방 수납 가구 대신 선반 달기 4만원, 기타 자잘한 것들(화분, 쓰레기통 등)로 30만원 정도 쓴 듯(은근히 많이 들어가서 ‘깜놀’)
총 88만5천원

합계 518만5천원
헉, 근데 이렇게 다 밝혀도 되나;;; 아, 조금 창피할지도….
*축의금으로 지불한 것은 총액에서 제했습니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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