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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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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플레이 정신도 모르시나

경제 살리기·동계올림픽 유치가 사면 사유?…
그들 없을 때 경제 회복됐고, ‘묻지마 사면’은 올림픽 정신에도 어긋나
등록 2009-12-31 16:38 수정 2020-05-03 04:25

경제범죄를 저지르고 사법부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경제인들에 대한 사면 논의가 솔솔 배어나오고 있다. 경제 5단체가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 이학수 전 부회장,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등 경제계 인사 70여 명의 사면을 건의한 데 이어, 정부도 신년초에 특별사면을 계획하고 있다는 보도가 연이어 터져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나 그랬듯 이번 사면의 논거도 모호하다. 경제 살리기를 위함이라는 것이 큰 구호이고, 난데없는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가 또 다른 지방방송이다. 그냥 무조건 봐달라는 것으로밖에 이해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모두 말이 되지 않는다.

민주노총·민가협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2009년 12월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운동 주민센터 앞에서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사면을 철회하라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한겨레 박종식

민주노총·민가협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2009년 12월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운동 주민센터 앞에서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사면을 철회하라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한겨레 박종식

정말 이들이 없으면 경제 살리기 안 될까

먼저 경제 살리기 논리부터 검토해보자. 이 구호의 논리는 아마도 ‘이들이 없으면 경제 살리기가 안 되고 이들이 있으면 경제 살리기가 잘될 것이니 이들을 사면해서 안 되는 경제 살리기를 되게 하자’는 정도일 것이다. 정말 이 말이 맞는가?

현재 사면 대상으로 거론되는 사람들은 대부분 2009년 8월 이전에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들이다. 따라서 사실상 이들은 최근의 경제 살리기에 동참할 수 없었다. 그런데 적어도 현재의 정부 홍보에 따르면 2008년 하반기의 경제위기는 올해 들어 잘 진정되었고, 2010년 경제는 상당한 성장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의 논리대로라면, 이들이 없어도 경제 살리기는 잘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삼성그룹의 경우 이건희 전 회장과 이학수 전 부회장은 자발적으로 경영 일선에서 퇴진하겠다고 선언했으니 그 약속을 뒤집지 않는 한 정부가 사면해 줘도 경제 살리기에는 동참할 수 없다.

다음으로 동계올림픽 유치 논리다. 우리나라가 동계올림픽을 유치하는 것은 중요하다. 필자 역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런 일이 무리 없이 잘 추진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러나 우리가 그토록 유치하려는 올림픽의 정신이 무엇인가. 바로 페어플레이 정신 아닌가. 그런데 경제 비리로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을 특별사면해 올림픽 유치 운동을 한다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 페어플레이는 상관없고 올림픽만 유치할 수 있다면 그만인가. 아니다. 올림픽은 승패를 떠나 페어플레이가 주는 참뜻을 되새기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경제 살리기도 아니고 동계올림픽 유치도 아니라면 남는 논리는 ‘무조건 봐달라’는 것뿐이다. 필자는 솔직히 이것이 이번 사면 논의의 유일한 논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에 반대한다.

필자는 법률가가 아니기에 다른 범죄와의 형평성이나 사법부의 판단에 대한 대통령의 권한 남용 등의 논의에는 더 보탤 말이 없다. 그러나 적어도 경제적 논리로 보면 이번 사면은 말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가 앞으로 지향하는 경제체제는 시장경제 체제이기 때문이다.

시장경제 체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경제주체가 경기 규칙을 잘 지키는 것이다. 그래야 경제주체들이 가격과 품질로 경쟁하는 것이 가능해지고, 그래야 소비자의 후생도 올라가고 경제의 효율성도 제고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경기 규칙을 지키지 않고 비리를 저지른 경제주체들은 시장경제의 장점을 훼손하는 사람들이고 따라서 경기장에서 퇴장해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의미의 ‘경제 살리기’가 될 수 있다.

과거 우리 경제가 관치경제의 수준에 머물렀을 때에는 비리 경제인을 사면해주고도 경제가 일정한 성과를 낼 수 있었을지 모른다. 어차피 의사 결정은 관료가 하고 경제인은 이를 실행하는 도구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지향하는 시장경제 룰과도 어긋나

그러나 우리가 관치경제를 청산하고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모든 사람이 경기 규칙을 지킬 때 한 사람만이 경기 규칙을 어기고도 처벌받지 않는다면 결국 모든 사람이 경기 규칙을 어기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시장은 그 자리에서 붕괴하고 만다. 이런 점에서 시장경제는 페어플레이를 강조하는 올림픽과 유사하다. 경제를 위해서건, 올림픽을 위해서건 사면을 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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