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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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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8만원 세대의 씁쓸한 초콜릿

독자편집위원회가 뽑은 ‘올해의 표지’, 6개 표지가 끝까지 경합
등록 2009-12-25 13:31 수정 2020-05-03 04:25

마니아클럽 연말 시상식입니다. 소박한 시상식입니다. 상장은 책을 오려서 활용합니다. 상품은 오랫동안 남을 ‘기억’으로 대신합니다. 독자편집위원회 18·19기 11명이 ‘올해의 표지이야기’와 ‘디자인과 제목이 인상적이었던 표지’를 뽑았습니다. ‘표지이야기’ 분야에서 6개가 끝까지 경합을 벌여, 선정자의 머리에 땀띠 나게 했습니다. 결국 완전한 순서를 가리진 못했습니다. 공동 1위 두 건, 공동 3위 네 건입니다. 이제 공개합니다. 두두둥~.

공동 1위 6표 ★★★★★★

<한겨레21> 745호

<한겨레21> 745호

745호 ‘초콜릿은 천국의 맛이겠죠’ 2009년 상반기 의 야심찬 기획은 ‘Why Not’이었습니다. 산업화된 소비에 저항하는 새로운 움직임을 찾아나선 기획입니다. 공정무역과 공정여행 등 ‘착한 소비’를 권하고, 사회적 기업을 찾아다니며 ‘왜 안 되겠어?’라고 물어보았습니다. ‘Why Not’을 열어젖힌 ‘초콜릿은 천국의 맛이겠죠’는 카카오 열매를 따는 소년을 찾아 조혜정 기자가 멀리 아프리카를 다녀온 뒤 쓴 기사입니다. 바싹 마른 주머니 사정으로 취재기자 홀로 아프리카행을 감행, 똑딱이 카메라로 표지사진까지 찍어왔습니다. 표지의 말간 얼굴의 에브라임은 경력 6년의 카카오 열매 농장 일꾼, 매일 수십 바구니의 카카오 열매를 따지만 초콜릿을 먹어본 적은 없습니다.

“기차 안에서 읽었는데, 당장 공정무역 초콜릿을 사기로 마음을 돌리게 했다. 바로바로 실천하게 하는 매력을 가진 기사였다.”(나혜윤·19기)

“공정무역에 대한 관심을 불러와 앞만 보며 달려가던 사람들에게 잠시라도 뒤돌아볼 수 있게 해주었던 표지입니다.”(K·18~19기)

<한겨레21> 772호 표지

<한겨레21> 772호 표지

772호 ‘88만원 세대의 슬픈 사랑’ 시작은 소박했습니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이들에게 사랑이라니, 한번 던져보았습니다. 실제 젊은 연인들을 취재한 결과는 더 절절했습니다. 시대를 감수성으로 포착했기에 많은 독자들의 열렬한 반응을 얻어낸 것 같습니다. 표지사진은 한 예술대학에 다니는 실제 연인 사이인 남녀를 섭외해 찍었습니다. 한겨레신문사가 위치한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앉히니 그대로 ‘가난한 연인’의 그림이 되었습니다. 표지사진에 대해서는 ‘신선하다’라는 의견과 ‘연출 사진에 대한 거부감’이 엇갈려 나왔습니다.

“독립영화 포스터를 보는 듯해 신선했다. 인상적이긴 했지만 내용은 뻔하지 않을까 하는 느낌도 들었다. 결과적으론 전혀 뻔하지 않았다.”(이오주은·18기)

“서글픈 공감과 회의적인 세대론의 명암이, 조금은 어색한 설정과 숙달된 구도의 묘한 조화 속에서 어우러졌다.”(최고라·18기)

공동 2위 5표 ★★★★★
<한겨레21> 753호

<한겨레21> 753호

753호 ‘자본주의 이후’ 경제위기를 겪은 뒤 자본주의에 대한 반성이 고개를 들고 있던 때였습니다. 새로운 경제 질서는 어떤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하는가에 대한 모색이 한창이었고, 은 ‘폴라니’를 풍문으로 들었습니다. 기자 일동은 의견을 들어볼 겸 폴라니의 저서를 번역 중인 홍기빈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원을 초빙했고, 홍 연구원의 ‘말발’에 빨려들어가고 말았습니다. 이리하여 역사상 가장 ‘지적’인 표지를 창간 15주년 특대호에 싣는 ‘모험’이 감행됐습니다. 폴라니 강좌가 문화센터에 만들어지는 등 대내외적으로 ‘공부 열풍’을 이끌어내기도 했습니다.

“증권사 애널리스트와 폴라니의 가상 대화가 인상 깊은 기사였다. 특히 증권사 애널리스트가 자신의 과거부터 현재의 삶까지 자세히 이야기함으로써 폴라니의 사상을 우리나라 현실과 잘 연관지을 수 있도록 했다. 알찬 내용이라는 바탕에 참신한 구성이라는 양념을 잘 버무려놓았다.”(정유진·19기)

<한겨레21> 762호

<한겨레21> 762호

762호 ‘아주 떠나보내지는 말아요’ 불과 6주 전 756호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표지로 올리면서 뒷모습을 넣었습니다. 762호가 인쇄까지 끝난 뒤인 토요일 오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기자들은 피 묻은 손을 보는 듯한 참담함에 빠졌습니다. 제본이 중단됐고 주말 동안 특별판이 만들어졌습니다. 표지에는 아무런 글자도 넣지 못했습니다. 763호 통권으로 기획한 노 전 대통령 추모기획(1표)과 762호 ‘굿바이 노무현’(1표)을 합치면 올해 최고의 이슈는 노무현 대통령이었습니다.

“영원한 휴식을 떠나는 그를 우리는 끝끝내 불러세웠지. 그의 좌절에 엄혹한 756호가 있었기에, 아직은 눈물 나는 올해의 표지이야기.”(최고라·18기)

“‘무엇이 그를 죽음으로 몰게 했는가’에 대한 생각의 전환과 그 답으로 향한 길을 보여주는 기사들로 구성되었고, 그냥 이 자체가 충격이었기에 더욱 기억에 남는 표지이야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나혜윤·19기)

<한겨레21> 769호

<한겨레21> 769호

769호 ‘완전정복: MB시대 수사받는 법’ 매일 누군가 잡혀가고 소환당했습니다. 차도에 내려서는 현장을 채증당한 사람들이 닭장차에 실려 경찰 유치장에 분산 수용됐습니다. 광장은 폐쇄됐습니다. 그래서 즐겁게 접근해야 했습니다. ‘쫄지 마!’ 누군가는 기사에서 말한 대로 실제 기사가 실린 부분을 오려서 다녔다고 합니다.

“기사 내용도 재미있었고 한겨레다운 기사였다고 생각한다.”(홍부일·19기)

“굉장히 유익한 정보였다. 물론 최근호에서 따라 했다가 된통 당한 사람의 이야기가 실렸던데, 이 경험을 교훈 삼아 ‘2탄’을 기획해보는 것도 좋겠다.”(정유진·19기)

“공권력이 남용되는 때, 실전 매뉴얼로서 손색없었다.”(권순부·18기)

“난세를 극복할 수 있는 구원의 손길을 뻗어준 표지.”(K·18~19기)

< 한겨레21 > 778호

< 한겨레21 > 778호


778호 ‘9번 기계의 노동일기’
‘한 달 불법 취업’이라는 의 야심찬 기획은 778호를 통해 개시됐습니다. ‘기자가 한 달 동안 최저임금 직장에 취업해 그들과 똑같이 산다’는 ‘노동 OTL’ 기획을 ‘살린’ 것은 실제 현장의 참혹함이었습니다. 임인택 기자가 난로공장, 임지선 기자가 식당, 전종휘 기자가 가구공장, 안수찬 기자가 마트를 다녀와 현장을 세밀하게 포착했습니다. 다른 ‘노동 OTL’ 표지이야기도 2표를 얻었습니다.

“올해 가장 임팩트가 큰 표지이야기였다. 표지를 봤을 때 ‘이 독한 사람들’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비정규 노동자의 현실을 가장 가까이서 드러냈다.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전태일의 절규가 나온 지 30년이 지났지만 사람들은 아침이 두려운 ‘○번 기계’의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시사주간지 독자가 원하는 탐사 저널리즘의 또 다른 형태를 실현했다고 평가하고 싶다.”(박준호·19기)

“과 를 처음 읽던 날의 냉기가, 들고 다니는 내내 마음 한켠을 옥죄던 문제적 표지.”(최고라·18기)

“어둠 속에서 로봇들이 노동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렬했다. 그리고 그들이 바로 인간이기 때문에 역설적이었다.”(박홍근·18기)

<한겨레21> 764호

<한겨레21> 764호

‘올해의 표지 디자인’은 764호 ‘나의 투쟁’이 6표를 얻으면서 1위, 778호 ‘9번 기계의 노동일기’가 5표로 2위, 762호 ‘아주 떠나버리지는 말아요’가 4표로 3위를 차지했습니다.

“보자마자 집어들 정도로 임팩트가 강했다. 히틀러의 을 과감하게 빗댄 것이 용기 있어 좋았다.”(박지숙·19기)

“의 최대 강점이 이렇게 재치 있으면서도 풍자적인 표지 디자인이 아닐까 싶다.”(권순부·18기)

“이명박을 운동권 느낌이 물씬 나는 한 편의 노동화로 만들었다는 것만으로 이미 풍자는 끝났다.”(이오주은·18기)

“이해력이 낮으며 잊어버리는 능력은 엄청난 대중으로서 화를 내기 전에 반성하게 하는 표현이다.”(김승미·18기)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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