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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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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 재파병, 그러나 거긴 여전히 아수라다

무늬만 바꾼 민군 지방재건팀 사실상 군이 주도해 ‘충돌’ 우려 커…
민간 활동가 공격받고 유엔 파견단도 철수
등록 2009-11-12 17:51 수정 2020-05-03 04:25

아프가니스탄에 한국군을 재파병하겠다고 밝히면서, 정부는 “민간 주도의 재건사업을 위한 것”이란 점을 강조했다. ‘전투병 파병’에 관심을 두는 것에 대해서도 “지방재건팀(PRT)의 개념에 익숙지 않기 때문”이라고, “군은 민간요원들의 안전한 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경비병력일 뿐”이라고 애써 설명했다. 그런가?

10월28일 아프간 수도 카불 중심가에 자리한 유엔 게스트하우스가 탈레반의 공격으로 쑥대밭이 된 뒤 유엔 아프간지원파견단(UNAMA)은 직원의 절반 이상을 외국으로 대피시키기로 했다. 11월4일 열린 장례식에서 카이 아이드 UNAMA 대표가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추도사를 하고 있다. REUTERS/ OLEG POPOV

10월28일 아프간 수도 카불 중심가에 자리한 유엔 게스트하우스가 탈레반의 공격으로 쑥대밭이 된 뒤 유엔 아프간지원파견단(UNAMA)은 직원의 절반 이상을 외국으로 대피시키기로 했다. 11월4일 열린 장례식에서 카이 아이드 UNAMA 대표가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추도사를 하고 있다. REUTERS/ OLEG POPOV

PRT는 기본적으로 ‘군’이 주도하는 조직이다. 문태영 외교통상부 대변인도 10월30일 특별브리핑에서 “우리 PRT는 나토가 운영하는 국제안보지원군(ISAF)의 일원”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미 국무부에 딸린 국제개발처(USAID)의 자료를 보면, 2008년 말 현재 아프간에서 운영되고 있는 PRT는 미국이 운영하는 11개를 포함해 모두 26개다. USAID는 “각 지역 PRT는 통상 60~250명의 군 병력과 재건작업을 맡는 민간인력, 국무부 정무관료 등으로 구성된다”며 “PRT 병력이 전투작전에 가담하진 않지만, 민간인력의 활동을 ‘촉진’하기 위해 강력한 방어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소개했다. ‘방어능력’도 엄연한 ‘전투능력’이다.

미 평화연구소(USIP)가 2005년 10월 펴낸 관련 보고서를 보면, PRT의 군사적 측면은 그 기원에서도 찾을 수 있다. ‘항구적 자유’ 작전을 주도한 미군은 수도 카불에서 탈레반을 몰아낸 직후인 2002년 초 ‘연합군 합동 민사작전 태스크포스’(CJCMOTF)를 구성했다. 그 휘하에 아프간 각주 주도로 파견한 ‘인도지원 담당 연락장교 조직’(CHLCs)을 꾸렸다. PRT의 모체다.

그해 11월21일 첫 번째 PRT가 동부 파티카주의 가즈데르에 꾸려졌다. 애초 공식 명칭은 민간과 군이 함께 참여한다는 뜻의 ‘합동재건팀’(JRT)이었으나, 아프간 정부의 요청으로 ‘군’의 색깔을 빼낸 ‘지방재건팀’으로 이름을 바꿨다. 이듬해 중부 바미안을 시작으로 쿤두즈·마자리샤리프·칸다하르·헤라트 등에도 PRT가 잇따라 들어섰다. 이 지역은 △탈레반 강세지역 △파슈툰·타지크 등 주요 종족 거주지역 △미군을 지원한 군벌이 강세인 지역들이었다.

‘본명’은 민군 합동재건팀, ‘군’ 지우려 개명

기왕에 아프간에서 인도 지원 활동을 해온 국제 비정부기구(NGO)들은 애초부터 PRT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역시 PRT를 둘러싼 ‘군대’의 아우라 때문이었다. PRT가 재건복구에 투입되면, 현장에서 군과 민간요원의 구분이 모호해지면서 인도 지원 활동가들의 안전이 위태로워질 것이란 우려가 컸다. 군이 주도하는 PRT는 이른바 ‘민사작전’의 일환으로 재건사업을 상정한다. 민사작전의 목표는 ‘민심을 얻는 것’이다. 군벌이나 부족 지도자 등의 숙원을 들어주는 편이 가시적 성과를 내는 데 유리하다. 반면 인도 지원 단체는 주민들의 실제 필요와 요구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사이좋게 지내기는 힘든 구조인 게다.

일찌감치 PRT의 설립 목적에 대한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 것도 이 때문이다. 아프간에서 활동하는 민간단체와 유엔, 아프간 정부와 지원국 간 정책조율 기구인 ‘아프간구호조정국(ACBAR)의 바러라 스테이플턴 정책간사가 2003년 5월 펴낸 보고서를 보면, 당시의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다. 첫 PRT가 꾸려질 즈음인 2002년 말, 미국의 관심은 이미 이라크로 옮겨가 있었다. PRT는 이라크로 정책의 무게중심을 이동하는 데 따른 아프간 정부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생색내기용’이란 소문이 떠돈 것도 이 때문이다.

이 무렵 미군과 나토군 지도부는 아프간에서 ‘4단계(안정화 및 재건) 작전’에 들어갈 태세였다. 탈레반 축출과 함께 아프간은 사실상 ‘평정’했다고 봤기 때문이다. ‘테러와의 전쟁’에 집중됐던 재원을 재건 지원 쪽으로 이동시키겠다는 뜻을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지방 재건’을 통해 중앙정부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이를 통해 다시 치안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란 발상이었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지적은 정반대였다. PRT 활동의 성공으로 치안이 강화되는 게 아니라, 안전한 치안 유지가 PRT 성공의 전제조건이란 게다. ‘닭’이 먼저인지 ‘알’이 먼저인지는 이후의 역사가 말해준다.

PRT 출범 초기 아프간의 치안불안 요소로는 크게 네 가지가 거론됐다. 첫째, 강력한 중앙정부의 부재 속에 각종 범죄와 부족·종족 간 갈등이 불을 뿜었다. 둘째, 상이한 이해관계를 가진 정치세력 간의 알력도 극심했다. 원조금이나 아편 수익 등 이권과 관련한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 셋째, 세력은 약해졌지만 탈레반과 알카에다 등 ‘이데올로기’에 기반한 무장세력의 발호도 문제였다. 넷째, 이 모든 상황에 기름을 붓고 있는 아편 생산용 양귀비 재배가 늘고 있었다. 첫 PRT 출범 이후 7년여가 흐른 지금, 상황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탈레반 쫓겨난 뒤 쭈욱 풍년!’ 지난 5월5일 아프간 파라주의 골레스탄 지역에서 미 해병 병사가 아편 생산용 양귀비밭을 둘러보고 있다. 아프간은 전세계 아편 생산량의 92%를 독점하고 있다. REUTERS/ GORAN TOMASEVIC

‘탈레반 쫓겨난 뒤 쭈욱 풍년!’ 지난 5월5일 아프간 파라주의 골레스탄 지역에서 미 해병 병사가 아편 생산용 양귀비밭을 둘러보고 있다. 아프간은 전세계 아편 생산량의 92%를 독점하고 있다. REUTERS/ GORAN TOMASEVIC

도로 끊긴 아편 지옥에서 복구사업 마비

유엔 마약범죄국(UNODC)은 지난 10월21일 ‘중독, 범죄 그리고 저항세력-아프간 아편의 세계적 위협’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내놨다. 152쪽 분량의 보고서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다. UNODC는 보고서에서 “아프간은 헤로인의 원료가 되는 아편 생산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며 “전세계 아편 생산량의 92%의 원산지가 아프간”이라고 전했다. 아프간에서 해마다 생산된 약 900t의 아편과 이를 통해 만들어진 375t의 헤로인은 전세계 1500만 중독자에게 공급된다. “650억달러 규모의 시장”이다. 이로 인해 한 해 세계적으로 10만 명이 목숨을 잃고 있단다.

아프간에서 생산되는 아편의 주요 ‘수출 통로’는 단연 파키스탄 국경이다. 전체 생산량의 40% 이상이 이곳을 통해 ‘소비자’와 만나게 된다. 그곳에서 아편은 현금과 무기로 변신한다. 안토니오 마리아 코스타 UNODC 사무총장은 보고서에서 “아프간-파키스탄 국경은 마약과 무기 등 온갖 불법이 판을 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자유무역지대(FTA)가 됐다”고 꼬집었다.

1990년대 중반 군벌을 물리치고 카불에 입성한 탈레반은 아편용 양귀비 재배농가에 직접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재배면적을 통제했다. 당시 탈레반은 이를 통해 “한 해 7500만달러에서 1억달러가량을 거둬들였다”는 게 UNODC의 분석이다. 탈레반 지도자 물라 오마르는 2000년 여름 아예 양귀비 재배를 금지하는 칙령을 내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권좌에서 축출된 탈레반은 돌연 태도를 바꿨다. ‘군자금’ 마련을 위해 아편 생산에 적극 뛰어든 게다. UNODC는 보고서에서 “지난 2005~2008년 탈레반이 아편 생산과 유통을 통해 벌어들인 자금은 적게는 4억5천만달러에서 많게는 6억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했다. 탈레반의 ‘변신’에 덩달아 신이 난 건 아프간 군벌과 공무원들이었다. 이들 역시 아편 생산과 유통으로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단다. 중남미 마약 생산·유통의 거점인 콜롬비아 국경에서 물동량의 35%가 적발되는 반면, 아프간에선 적발률이 단 2%에 그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재건사업 진전의 가늠자로 흔히 ‘도로’를 꼽는다. 물자와 인력의 들고 남이 원활해야 재건복구 사업도 탄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안보개발위원회(ICOS·옛 센리스위원회)가 올 초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아프간 수도 카불로 통하는 길은 동서남북으로 모두 네 갈래다. 서쪽 관문은 아르다크와 칸다하르로 뻗어 있다. 하지만 카불에서 차량으로 30분 거리에 있는 와르다크주 들머리부터 ‘위험지역’이다. 더 이상 나아갔다간 신변 안전이 위태롭단다.

“재건복구 체계 전반이 무너진 상태”

로가르주로 연결되는 남쪽 길도 여행자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외국인뿐 아니라 아프간 주민도 통행이 자유롭지 못하다. 동쪽 잘랄라바드로 향하는 길목도 마찬가지다. 카불에서 차량으로 1시간 거리인 사로비 교차로에서부터 ‘위험’은 시작된다. 북쪽으로 가는 길은 둘로 나뉜다. 판즈시르 계곡과 마자르로 향하는 길목은 비교적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는 유일한 통로다. 반면 바그람 공군기지로 향하는 길목은 미군의 수송·보급로도 활용되다 보니 잦은 공세로 몸살을 앓고 있다. 카불은 ‘교량’이 하나뿐인 ‘내륙의 섬’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PRT가 주도하는 재건복구 사업이 제대로 될 리 없었다. 2001년 10월 침공 이래 미국이 아프간 민간 부문에 투입한 자금은 줄잡아 130억달러에 이른다. 하지만 이를 관리·감독해야 할 아프간 재정부는 미국을 포함한 국제 원조금의 총액이 얼마나 되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는 10월12일치에서 행정부 고위 당국자들의 말을 빌려 “아프간에서 미국이 추진해온 민간 부문의 전략 목표는 사실상 아무것도 이뤄진 게 없다”고 전했다.

“현재 아프간에 파견된 민간요원 절대다수는 수도 카불에 머무르고 있다. 대부분 숙소 바깥 출입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중앙정보국(CIA) 출신으로 스탠리 매크리스털 아프간 주둔 미군사령관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는 헨리 크럼프턴은 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재건복구 체계 전반이 무너진 상태여서, 극소량의 구호품만이 아프간 주민에게 전달되고 있다”고 말했다.

아프간에서 활동하는 국제 구호단체에 신변 안전과 관련한 정보를 제공하는 ‘아프간비정부기구안전국’(ANSO)가 지난 10월 초 펴낸 최신 보고서를 보면, 3분기(7~9월)에만 인도 지원 활동가를 겨냥한 공격이 모두 42차례나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활동가 8명이 목숨을 잃었고, 6명이 다쳤다. 사망자는 모두 현지인 활동가였다. “외국인 활동가들은 ‘위험지역’을 출입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올 들어 9월 말까지 인도 지원 활동가를 겨냥한 공격은 114차례 벌어져, 모두 18명이 목숨을 잃었단다.

인도 지원 활동가 18명·유엔 직원 5명 숨져

“철수가 아니다. 잠시 대피하는 것뿐이다.” 11월5일 유엔 아프간지원파견단(UNAMA)이 짤막한 성명을 내놨다. 전체 1100여 직원 가운데 절반이 넘는 600여 명을 아프간 밖으로 ‘재배치’한다는 게다. 지난 10월28일 새벽 카불 중심가의 유엔 숙소가 탈레반의 공격을 받아 유엔 직원 5명을 포함해 모두 9명이 숨진 데 따른 후속 조처다. 은 현지 유엔 관계자의 말을 따 “비슷한 사건이 한 번만 더 벌어져도, 전면 철수를 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유엔이 철수하면, 인도 지원 단체들도 짐을 쌀 게 뻔하다. 그 아비규환의 땅으로 우리가 빨려들고 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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