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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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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발영상’이 편파적이었다면 근거를 대라”

대기발령 3개월 징계받은 YTN 임장혁 기자
“권력 주시하다 비판할 점 발견해 보도하는 언론의 일반적 역할에 충실했을 뿐”
등록 2009-08-20 11:45 수정 2020-05-03 04:25

서울 중구 남대문로 YTN 타워는 멀끔하다. 입구 회전문은 부드럽게 돌아가고, 안내데스크 직원들은 싱그러운 정장 차림으로 웃는다. 오직 한 군데, 엘리베이터 버튼 옆에 흉터가 남았다.
“사건: 2008가3163
채권자: (주)와이티엔, 구본홍
채무자: 전국언론노동조합와이티엔지부, 현덕수, 노종면, 조승호, 임장혁, 정유신
가. 피신청인들은 신청인 주식회사 와이티엔에 대하여 (중략) ‘학살자는 물러가라’ ‘위선자는 물러가라’ 등의 구호를 외치거나 그러한 표현이 기재된 유인물을 배포하거나 벽보, 현수막 등을 게시하거나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는 등의 방법으로 신청인 구본홍을 모욕하거나 그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이하 생략)”

YTN 임장혁 기자

YTN 임장혁 기자

서울중앙지방법원 명의의 2장짜리 ‘고시’다. 벽보처럼 붙여놓았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를 때마다 YTN의 모든 기자들은 “…아니 된다”를 읽게 된다. 아니 되는 일을 하면 징계받고 쫓겨나고 손해배상청구를 당한 끝에 감옥에 갈 것이라는 공언이다. 그것이 공포스럽지도 않은지, YTN의 기자와 사원들은 또 다른 일을 꾸미고 있다. 8월13일 오전, YTN 노동조합 사무실 한켠에서 투표가 벌어지고 있었다. 배석규 사장직무대행에 대한 불신임 투표다.

지난해 7월 선임된 뒤 ‘낙하산 사장 퇴진’을 요구하는 노동조합과 갈등을 빚어왔던 구본홍 사장은 지난 8월3일 돌연 사임했다. 그 배경에 대한 추측이 분분했지만, ‘더 확실하게’ 사태를 정리하지 못한 책임을 졌다는 분석이 유력했다. 이튿날인 4일 새 대표이사가 된 배석규 사장직무대행이 이를 입증했다. 보도국장 3배수 추천제를 일방적으로 폐지하고, 새 보도국장을 임명했다. 간판 앵커를 모두 물갈이했다. 그리고 지난 8월10일, 담당 PD이기도 한 임장혁(사진) 기자에게 3개월 대기발령이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그는 지난 2004년 10월부터 YTN의 간판 프로인 을 맡아왔다. 그의 징계와 함께 은 전파를 타지 못하고 있다.

- 왜 징계받았나.

= 구두건 문서건 그 이유를 아직 설명 듣지 못했다. 이젠 왜 내가 이렇게 됐는지 따지기도 싫다. 구본홍씨가 1년 전에 낙하산 사장으로 오면서 비정상적인 일이 워낙 많아졌다. 그동안 배 대행의 발언이나 회사 중간간부들의 이야기를 전해 들어보면, 이 지나치게 정부 비판적이라는 게 이유인 것 같다.

- 청와대의 압력이 있었나.

= 설마 청와대 같은 거대 권력기관이 개별 프로그램의 특정 PD를 대기발령 내도록 개입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겠다. 아마도 청와대가 불편한 심기를 살짝 내비쳤고, 밑에서 알아서 움직이는 차원인 것 같다.

- 이 편파적이었다는데.

= 정부건 회사 간부건 하나하나 이유를 대줬으면 좋겠다. 그러면 조목조목 반박하겠다.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막연히 정부 비판이 많다고 하는데…. 국민 생활에 누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치나. 정부·여당이고 그중에서도 청와대다. 언론 본연의 기능은 이를 감시하고 비판하는 것이다. 없는 잘못을 만들어가면서 비판한다면 편향·왜곡 보도다. 권력을 주시하는 가운데 비판할 점이 발견돼 보도하는 것은 언론의 일반적 역할이다. 나는 그것에 충실했다.

“ 사태에 대해 (윗분들이) 매우 우려하고 있다. 윗분들 입장에서 매우 곤란히 여기고 있다.” 지난 7월 취재에 응한 YTN 간부의 발언이다.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재래시장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의 현장 발언을 그대로 전한 이 화제가 된 직후였다. 임 기자는 이 간부의 발언이 “결과적으로는 을 껄끄럽게 생각하는 간부들의 속내를 밝힌 ‘양심선언’이 됐다”고 말했다.

- 이 대통령이 재래시장을 찾아간 장면을 보도한 ‘살기 좋은 세상’(6월30일)편은 대통령이 보기에 불편했을 것 같다.

= 대통령이 재래시장을 찾아갔다. 이걸 ‘중립적’으로 보도하려면, 야당 총재가 민생 행보하는 것도 굳이 만들어 넣어야 하는가? 당시 촬영 화면 전체를 보면서 ‘현장 분위기’와 언론의 보도가 조금 다르다고 느꼈다. 그래서 그 현장 분위기를 제대로 전달하고 싶었다. 당시 카메라 기자는 발언 내용을 녹취하려고 근접 촬영하고 있었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공개된 장소에서 행한 공개적 발언이었다.

- 참여정부 시절에도 대통령의 언사를 그대로 다뤘는데, 그때는 항의나 압력이 없었나.

= 예전과 지금은 차이가 있다. 은 몰래 가서 찍는 게 아니라, 공개된 자리의 공개된 발언을 편집한다. 당연히 다른 언론사 기자들도 접근할 수 있는 소재들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거친 말을 조·중·동 등의 신문이 가만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 대부분을 문제 삼아 썼다. 덕분에 이 노 전 대통령의 ‘거친 발언’을 다룰 때는 뉴스로서 새로울 게 없는 시점이었다. 다만 평양을 방문해 정상회담을 한 직후 노 전 대통령의 어수룩한 표정을 내보낸 적이 있는데, 당시 청와대가 항의했다. 민감한 자리인데 그렇게 해도 되느냐는 취지였던 것 같다.

- 참여정부 때도 에 대한 항의는 있었다는 이야기인가.

= 그렇다. 그때나 지금이나 대통령의 모습과 발언을 그대로 보도하는 방식에는 아무 차이가 없으니, 참여정부 시절에도 일부 비서관들이 불만과 불평을 제기한 적이 있다. 그러나 압력으로 느낀 적은 없다. 그때는 (YTN) 간부들이 “이런 이야기 들었는데 신경 좀 써라”는 정도였고, 전적으로 내 자정 능력을 신뢰했다. 오히려 그런 불만과 불평이 외부에서 들리면 YTN의 영향력을 확인했다는 자부심을 느끼는 분위기가 많았다. 지금은 다르다. 간부들이 겁을 먹었다.

겁을 먹기로 치면, 간부들보다 임 기자의 공포가 더해야 옳다. 그는 지난해 구본홍 사장 임명 반대 투쟁을 벌이다 정직 6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지난 4월 복귀해 을 만든 지 넉 달여 만에 다시 중징계를 받았다. 그는 “언론 인터뷰가 이번이 처음인데, 아마 이것도 경영진이 문제 삼을 것”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 징계 이후 복귀했다면, ‘내면의 검열’ 때문에라도 별 탈 없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었을 텐데.

= 그런 생각을 안 했다면 거짓말이다. 나는 죽기 아니면 살기로 일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런데 그게 내 의지와는 별 상관이 없다. 왜곡 보도를 하지 않는 한, 은 이렇게 만들 수밖에 없다. 특별한 악의를 갖고 만든다거나, 순하게 다루겠다거나 하는 것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은 YTN 기자들이 취재 현장에서 찍은 화면을 모두 살펴 재분석한다. 팀이 어떤 소재나 주제를 정해서 직접 취재하는 것이 아니다. 뉴스 전문 채널의 특성상 정부, 여당, 청와대 등을 촬영한 분량이 훨씬 많다. 하루에 취재된 화면의 70%가 청와대와 국회에서 나온다. 청와대나 국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건 쳐다도 안 볼 거라는 식으로 일하면 을 아예 만들 수 없다.

그는 YTN 사태를 ‘솔로몬의 판결’에 비유했다. 두 여성이 한 아이를 두고 제 자식이라고 다툰다. 임금은 아이를 찢어 반으로 나누라고 한다. 한 여성이 통곡하며 아이를 포기하겠다고 한다. 그가 친엄마다. “회사가 아무리 이상한 결정을 내려도 YTN이 망할까봐 참고 또 참았습니다. 간판 프로그램이 방송되지 못하고, 간판 앵커들이 밀려나는 것은 아이를 두 동강 내려는 짓이지요. 누가 진짜 엄마입니까.”

글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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