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공덕동 한 작은 식당의 주방 도마 위에 앉아 있는 저는 햄입니다. 부대찌개를 주문한 손님 상에 나가기 직전이지요. 저를 주재료로 한 부대찌개는 소주 안주로 최고고, 크래커·치즈와 몸을 맞대면 카나페로 변신하는 것은 물론 제사상에 오르는 모둠전에 김밥, 샐러드까지 안 들어가는 데가 없는 ‘인기짱’ 재간둥이 가공식품이랍니다. 하지만 그런 저도 늘 마음이 편한 건 아니에요. 요즘처럼 멜라민 사태다, 먹을거리 안전이다 온 나라가 시끄러울 땐 저한테 식품첨가물이 너무 많이 들어 있어 건강을 위협한다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쳇.
음, 그런데…. 기왕 부대찌개 육수에 몸을 담그기 직전이니, 속 얘기라도 좀 하고 갈까 봐요. 실은 저도 가끔 이상한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제 주원료인 돼지고기 얘기부터 들어보실래요?
브랜드마다 다르긴 하지만 대체로 저는 국내산과 외국산 돼지고기의 뒷다리살이 6 대 4 정도의 비율로 섞여 있어요. 국내산은 전국 각지, 외국산은 덴마크·네덜란드·폴란드·미국·캐나다 등에서 건너온 것들이죠. 몸값이 낮은 햄엔 닭고기가 좀 섞이기도 하고요. 국내산 돼지고기라니 안심되시나요?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2006년 3월 발표한 ‘식품 중 식중독균 항생제 내성 모니터링’ 보고서를 보면, 육류의 40%에서 대장균, 장구균, 황색포도상구균 등 식중독 세균이 검출됐답니다. 더 큰 문제는 이 식중독 세균들이 항생제보다 힘이 세다는 건데, 대장균은 테트라사이클린이라는 항생제에 92.5%의 내성률을 보였고, 장구균의 내성률도 90%를 넘었어요. 황색포도상구균의 페니실린 내성률도 71.7%였고요. 식중독 세균 10마리 가운데 9마리가 항생제를 먹어도 살아남는다는 이야기죠.
왜 이렇게 식중독균들이 강하냐고요? 우리나라 축·수산업의 항생제 사용량은 연간 1500t가량 되는데, 이는 우리나라보다 축산물 생산량이 2배나 많은 일본(1천t)보다 많은 수치입니다. 축산물 생산량이 우리의 1.2배가량인 덴마크(94t)에 비하면 무려 16배나 많은 항생제를 쓰고 있는 셈이죠. 그런데 이 항생제의 절반가량은 농민들이 수의사 처방 없이 가축을 치료하는 데 쓰이고, 40% 이상은 배합사료를 만드는 데 쓰입니다. 외국보다 가축이 자라는 축사의 공간이 좁아(‘밀식사육’이라고 합니다) 전염병 등 질병 발병률이 높기 때문에 항생제를 안 쓸 수가 없다는데, 실은 수의사 처방이 없어도 손쉽게 항생제를 쓸 수 있고, 배합사료의 부패·변질을 막으려고 항생제를 쓰는 탓에 이렇게 사용량이 많은 거죠. ‘항생제 샤워’를 한 식중독균들은 당연히 갈수록 강력해지고, 이런 육류를 먹는 사람 몸에도 축적돼 면역 기능을 저하시킨다고 걱정들이 많지요. 유럽연합에선 2006년부터 배합사료에 항생제를 쓰지 못하도록 금지했을 정도니까요.
초국적 농식품복합체가 시장 장악‘낙농 강국’에서 온 돼지고기들은 어떨까요. 임두성 한나라당 의원은 유럽연합 식품안전청이 2006년 10월부터 2007년 9월까지 도축용 돼지를 조사한 결과 살모넬라균 감염률이 10%가 넘었으며, 이 기간에 우리나라에 들어온 돼지고기가 120만여t에 이르렀다고 최근 공개했습니다. 그런데 이 수입분 가운데 미생물 모니터링 검사를 받은 건 전체 수입량의 4.6%에 그쳤대요. 특히 우리나라 정부는 유럽연합로부터 이런 위험을 알린 공문을 받고도 국민에게 알리거나 수거검사를 하지 않았다죠. 설사, 두통, 복통, 구토 등 식중독을 일으키는 살모넬라균 감염 돼지고기가 국내에 유통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깁니다.
게다가 유전자조작 사료와 성장촉진 호르몬 문제 등은 국내산·외국산을 가리지 않지요. 그 배경엔 농·축산물 생산과 가공, 유통의 모든 단계를 장악한 몇몇 초국적 농식품복합체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더 빠르게, 더 많이 판매하려고 갖은 방법을 동원하기 때문입니다. 세계 최대 농식품복합체인 미국 카길의 중역 짐 프로코판코는 한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대요. “카길은 미국 플로리다주의 탬파에서 인산비료를 생산한다. 이 비료로 미국과 아르헨티나에서 대두를 생산하고, 이 대두를 타이로 보내 닭 사료로 사용하고, 이 닭을 가공 처리해 일본과 유럽의 슈퍼마켓으로 출하한다.” 우리나라만 보더라도 축산사료 시장 1위가 카길 소속인 ‘카길애그리퓨리나’고, 수입 곡물의 60%는 카길이 들여오고 있죠.
종자 시장만 봐도, 세계 최대 종자 회사인 몬샌토는 세계 종자 시장의 20%를 지배하고 있어요. 세계 상위 10대 기업의 시장점유율은 2006년 기준으로 57%에 이른다고 해요. 우리나라 청양고추 종자조차 몬샌토 자회사에서 사와야 할 지경이라니까요. 이런 회사들은 유전자조작 기술 회사와 인수·합병을 하거나 경쟁 업체와 전략적 제휴를 맺어 새로운 유전자조작 기술 회사를 만들기도 해요. 유전자조작 옥수수 재배면적 가운데 97%가 몬샌토의 종자를 쓰고 있고, 유전자조작 대두 역시 몬샌토가 91%를 차지한대요. 이들은 자신들이 개발한 종자를 판매하고, 그에 맞는 농약과 비료를 팔고, 수확된 작물을 사들여 가공·판매하고 있지만, 유전자조작 작물의 위험성 논란엔 모조리 입을 꾸욱 다물고 있습니다.
말이 나온 김에 한마디 더 보태자면, 이 초국적 농식품복합체의 힘은 정말 대단합니다. 카길의 전 부회장인 대니얼 암스터츠는 1987년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농업협상 때 미국이 제출한 ‘예외 없는 관세화’ 방안의 초안을 작성하고 미국 쪽 대표로 나선 바 있습니다. 2005년부턴 미국 정부의 이라크 재건사업 농업 부문 단장으로 활동했고요. 사기업이 국제 무대에서 미국 정부의 농업 정책 대표로 나선 셈이죠. 그뿐만이 아니에요. 지난 2003년 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협상 때도 카길이 미국 정부의 의견서를 작성했다고 알려져 “WTO 협상은 ‘카길 협상’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비판이 일기도 했대요.
개별 시장도 한번 볼까요. 미국 쇠고기 시장의 85%는 타이슨푸드와 카길 등 4개 업체가 장악하고 있고, 대두도 ADM 등 4개 업체가 80%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유통·가공 시장을 이들이 휘젓고 있기 때문에 가격이 아무리 올라가더라도 실제 생산자는 아무런 이익을 얻지 못하는 거죠. 실제로 카길이 주요 투자자인 비료회사 모자이크는 지난해 이익이 2배 이상 늘어났고 캐나다의 포타시도 70% 이상 늘어났는데, 지난 4월 비료 가격 인상을 단행했습니다. 이 때문에 인도는 비료값을 지난해보다 130%, 중국은 227% 더 감당해야 한답니다. 이들 업체가 시장에서 힘을 떨칠수록 ‘진짜 생산자’들은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거죠.
진공포장 보존식품 통해 전염후유~. 이제 ‘세계 평화’ 걱정은 접고, 제가 돼지고기에서 햄으로 가공되는 ‘식품첨가물의 향연’을 한번 보시죠. 햄이 되려면 아질산나트륨·질산칼륨 같은 발색제와 설탕, 소금을 섞은 물에 고기를 절이거나 발색제를 첨가한 소금을 직접 고기에 뿌린 뒤 훈연을 해요. 이때 구연산나트륨·초산나트륨 같은 산도조절제, 콩에서 단백질만 따로 추출해낸 분리대두단백, 흔히 MSG로 알려진 L글루타민산나트륨이나 아미노산 등의 조미료, 소르빈산 같은 보존료, 소르빈산나트륨 같은 산화방지제, 옥수수 전분이나 소맥(밀) 전분, 점도·안정성·촉감을 높이는 카라기난 등의 안정제도 함께 들어가게 됩니다. 이름만 들으면 뭐하는 녀석들인지 당최 정체를 알 수 없죠.
그런데 아질산나트륨은 아민이라는 단백질 성분과 만나면 니트로소아민이라는 발암물질을 만들어내고, 특히 어린이들한텐 빈혈증, 호흡기능 악화, 급성구토 등을 일으킬 수 있다고 알려졌어요. 그래서 캐나다는 아질산나트륨을 식품첨가물에서 뺐고, 미국은 이게 들어간 제품엔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경고문을 표기하도록 했습니다. 카라기난은 일본에서 식품첨가물 위험등급 4등급으로 분류됩니다. 4등급에 속한 첨가물은 태아의 장기가 기형이 될 수 있는 최기형성, 발암성 등의 문제가 우려되는 독성물질을 뜻한다고 하죠. 미국에서도 암 유발 논란이 있는 물질이지만, 우리나라에선 별다른 연구가 없습니다. L글루타민산나트륨은 두통와 메스꺼움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선 천식·고혈압 등의 환자에게 섭취 제한을 권고할 뿐 아니라, 신생아가 먹는 음식엔 넣지 못하도록 하고 있어요.
생각해보면, 식품가공 공장에서 만난 제 친구들 모두가 첨가물의 힘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간장, 고추장, 과자, 빵, 아이스크림, 음료수…. 공장에서 대량으로 만들어져 몇 단계 유통 과정을 거쳐 여러분의 입속까지 들어가려면 방부제·보존제는 필수고요, 여러분의 선택을 받으려면 조금이라도 더 맛있고 자극적이어야 하니까요.
물론 식품첨가물이 몽땅 위험하다고 얘기할 순 없습니다. 우리나라 식품위생법은 2400여 가지의 화학물질을 식품첨가물로 인정하고 있고, 식품첨가물을 관리하는 식약청은 안전성 검사를 거쳐 1일 허용 섭취량도 정해두고 있습니다. 문제는 음식을 먹는 여러분이 첨가물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 쉽게 알기가 어렵고, 관련 연구도 제대로 안 돼 있다는 거죠. 1일 허용량이 정해져 있다고는 하지만, 하루에 먹는 음식이 대체 몇 가지인데 그걸 다 계산해서 먹을 수 있겠어요? 2년 전, 맛과 향을 보존하려고 건강음료에 첨가한 안식향산나트륨이 비타민C와 화학반응을 일으켜 발암물질인 벤젠으로 변한 사실이 드러나 한바탕 난리를 겪었던 것처럼 첨가물끼리 식품 안에서, 혹은 몸 안에 흡수된 뒤 어떤 상호작용을 하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잖아요. 게다가 첨가물이 흔히 쓰이기 시작한 게 30년 남짓이고, 화학물질 섭취로 인한 인체의 반응은 대체로 한 세대를 지나서야 나타난다는 점을 감안하면 양치기 소년도 “식품첨가물은 절대 안전하다”고 장담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제가 공장을 떠나 여러분의 손에 들리기까지는 또 어떻고요. 진공포장되거나 통조림에 담기는 저는 보톨리누스균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보톨리누스균은 공기를 싫어하기 때문에 진공포장된 보존식품이 주된 전염 경로인데요, 자칫 포장재가 완전히 소독되지 않으면 사달이 나죠. 복어독의 1만 배에 이르는 독성을 지닌 이 균은 신경마비, 시력장애 등을 일으킬 뿐 아니라 치사율이 30%에 이르는, 식중독균 가운데 가장 무서운 균입니다. 2003년 6월 대구에 사는 한 가족이 제 사촌인 소시지를 먹고 온몸이 마비되고 호흡곤란을 일으켜 신문에 난 적도 있었죠.
신선도 유지 위해 농약 처리사실 좀 억울하긴 해요. 외국에서 들여온 농산물들은 더 무서운 녀석들인데 말예요. 뭐라고요? 가공식품 주제에 신선식품을 질투하느냐고요? 들어보세요. 2006년 수입식품 가운데 64%가 농·임산물입니다. 가공식품은 절반인 33%였고요. “푸드마일이 길어지면 식품의 위험성이 커진다”는 얘기 들어보셨나요? ‘푸드마일’이란 생산지부터 여러분의 식탁까지의 거리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미국산 오렌지는 5968마일(9605km), 칠레산 포도는 1만2726마일(2만481km), 인도네시아산 꽃게는 3278마일(5275km)이래요. 2000년 기준으로 볼 때 우리나라 국민 한 사람의 푸드마일은 3228km인데, 미국보다 6.4배나 높다죠. 쌀을 제외하면 식량 자급률이 5%밖에 안 되기 때문에 그만큼 수입 식품이 많을 수밖에 없는 거래요. 이 ‘신선식품’들이 머나먼 여행에서도 신선함을 유지하는 비결은 ‘수확 후 농약’과 방부 처리, 방사능 처리 등입니다. 미국은 아예 수출용 작물이 유통 과정에서 변질되지 않도록 수확 뒤 농약 처리를 법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살균제·살충제·방부제 등 21가지를 쓸 수 있다고 합니다. 이 농약들은 신경계 질환, 위장질환, 어지럼증, 구토 등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졌고요.
칼집 낸 뒤 데쳐야 그나마 안전아, 벌써 다른 재료들도 다 준비가 됐네요. 이제 육수에 몸을 담그고, 앞서 소개해드린 L글루타민산나트륨이 들어간 화학조미료로 감칠맛을 더해야겠죠. 요즘은 천연조미료도 많지만, 저희 식당처럼 작은 곳에선 값이 싼 화학조미료를 쓸 수밖에 없답니다. 우리나라 도시가구가 지출하는 식료품비 가운데 외식비가 절반을 넘게 차지한다더군요. 식당, 그러니까 식약청 통계용어로는 ‘식품접객업소’가 2007년 3/4분기 현재 71만 곳을 넘는데 대부분 우리 식당처럼 영세 업소래요. 윤석용 한나라당 의원이 식약청 국정감사 때 낸 보도자료를 보면, 서울시 특별사법경찰지원과가 올해 두 차례 배달전문 음식점과 중식당 180곳의 위생실태를 점검해보니 55%에 이르는 71곳이 무허가 식품 제조, 유통기간 경과 식재료 보관 등으로 식품위생법을 위반했고 위반 사례는 84건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식품위생법의 공통시설기준도 ‘영업장은 연기, 유해가스 등의 환기가 잘되도록 해야 한다’고만 나와 있을 뿐, 구체적으로 어떻게 환기 시설을 갖추고 어떻게 환기가 돼야 하는지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고 해요. 게다가 전국의 식품접객업소 식품 위생 감시·단속 인력은 2037명에 불과해 1명이 458곳을 관리해야 하는 등 인력도 턱없이 부족하답니다. 상황이 이러니 식중독 발생률이 가장 높은 곳이 일반 음식점으로 지목되죠. 기본적인 식품첨가물 문제에 원재료·조리과정·조리시설의 관리·감독이 허술하니까요. 올해부터 원산지표시제가 강화돼 모든 식당이 사용하는 재료의 원산지를 표시해야 하지만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일 테고요.
아아아, 이제 정말 가야 할 시간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알려드릴게요. 그래도 저나 소시지를 드셔야 할 땐 칼집을 낸 뒤 끓는 물에 잠시 데쳐 요리해서 드세요. 발색제나 보존료는 대부분 수용성이라 뜨거운 물에 들어가면 제 몸에 파고들었던 이 녀석들이 많이 빠져나온다네요. 물론 ‘맛’도 떨어지겠지만요. 어쨌거나 여러분, 건강하세요.
글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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