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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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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의 MBC 사냥이 시작됐다

등록 2008-08-19 00:00 수정 2020-05-03 04:25

<font color="darkblue">한국방송의 정 사장을 겨냥했듯 약한 고리인 〈PD수첩〉을 계기 삼아…방송법 개정 통해 거대 방송사를 무력화시키는 PP출현 가능성</font>

▣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이건 정권에 대한 경영진의 굴복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한 문화방송 기자)

지난 8월12일 밤 문화방송이 〈PD수첩〉의 미국산 쇠고기 보도와 관련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통심의위)가 명령한 1분30초짜리 사과방송을 기습적으로 내보낸 뒤, 문화방송 내부에서 위기의식이 높아지고 있다. 그날 밤 열린 긴급 조합원 총회에 모인 문화방송 노조원 200여 명 가운데 60여 명이 기자였는데, 휴가를 가거나 불가피하게 외부 출입처에 남아 있던 인원을 감안하면 매우 많은 수라는 게 안팎의 평가다. 김재용 문화방송 노조 민주방송실천위원회 간사는 “특히 젊은 기자들의 분노의 목소리가 컸다”고 전했다.

비겁한 투항, 깔끔한 굴복

당시 문화방송 경영진은 사과방송을 저지하려는 사원들에 의해 주조정실과 방송준비실이 가로막히자 자회사인 MBC플러스 주조정실에서 본사 주조정실로 방송 내용을 송출하는 편법을 쓸 정도로 무리수를 뒀다. 문화방송기술인협회는 다음날 낸 규탄성명에서 “‘해킹방송’이 경영진에 의해 자행됐다”고 비난했다. 노조는 특보에서 사과방송을 “비겁한 투항”으로 규정하고 “비겁한 엄기영 사장은 공영방송 수장 자격이 없다”고 비판했다.

이번 경영진의 행위를 정권에 대한 굴복으로 받아들이는 이유가 송출 방식 때문만은 아니다. 방통심의위에 재심을 요구하지도 않았고, 재심 요구를 고민할 수 있는 여유 기간이 20일 이상 남아 있는 상황에서 사과방송을 내보냈고, 사과방송 다음날 〈PD수첩〉의 조능희 책임PD를 보직해임하고 진행자인 송일준 부국장이 마이크를 놓도록 하는 인사 조처까지 함께 취해졌기 때문이다. 깔끔한 굴복인 셈이다.

이로써 정연주 사장의 해임 등을 둘러싸고 주로 한국방송에서 벌어지던 공영방송의 독립성 지키기 싸움은 문화방송으로 전선을 넓히게 됐다. 동시에 문화방송 노사 간에도 새로운 전선이 형성됐다.

이는 이미 예고된 일이다. 문화방송 노조는 한국방송 이사회가 친여 성향 이사 6명만 참석한 채 정연주 사장의 해임제청안을 가결한 8월8일 한국방송 이사회와 함께 정 사장 해임을 수수방관한 한국방송 노조를 비판한 뒤 “이제 곧 다음 칼날은 MBC를 향해 들이닥칠 것”이라고 예상하는 성명을 낸 바 있다.

물론 그 칼날이 겨누는 1차적인 대상은 〈PD수첩〉이다. 검찰이 이번에 인사조처된 조 책임PD와 송 부국장, 미국산 쇠고기 보도 첫 편을 만든 김보슬·이춘근PD 등을 강제 구인하는 한편, 취재 원본 테이프 등을 가져가기 위한 압수수색을 할 것이란 전망이다. 문화방송 노조가 8월12일 즉각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하면서 검찰의 행동 개시에 대비해 ‘공영방송 사수대’를 만들기로 한 까닭이다.

새 정부가 한국방송 정연주 사장 해임과 문화방송 〈PD수첩〉 탄압으로 방향을 잡은 이유를 ‘약한 고리론’으로 설명하는 시각도 있다. 문화방송 사장 출신인 최문순 민주당 의원은 “정 전 사장과 〈PD수첩〉은 두 방송사의 약한 고리”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정 사장과 〈PD수첩〉이 정권에 눈엣가시 같은 존재이기도 하지만, 각 방송사 안에서 지지 못지않게 비판을 받고 있는 약한 고리를 집중적으로 건드리고 있다는 것이다. 내부 여론의 분열을 적절히 활용하면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계산도 엿보인다. 정 사장의 경우 전임 노조부터 시작해 현재 노조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사퇴 압력에 시달렸고, 그가 시행한 팀제 개편 등으로 불이익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간부 사원 등에게도 불만의 대상이었다. 〈PD수첩〉도 정치적 시비에 휘말릴 때마다 드라마나 예능 PD들로부터 내부 비판을 받아왔다. 최근 사태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어느 누가 겁먹지 않겠는가”

문화방송 예능국 한 PD의 말이다. “근래 들어 문화방송 시청률이 좋지 않다. 이를 놓고 경영진과 일부 PD는 〈PD수첩〉이 영향을 줬다고 보기도 한다. ‘제발 좀 그만 하라’는 것이다. PD들에게는 기본적으로 센세이셔널리즘이 있고 이번 일도 그런 과정에서 그야말로 실수를 한 것인데, 예능이나 드라마 PD들은 심정적으로 〈PD수첩〉이 너무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하고 있다. 경영진이야 〈PD수첩〉 문제를 빨리 처리하고 시청률에 신경 쓰겠다는 생각일 수 있다.”

일부에서는 문화방송이 8월15일 밤 정부가 주최한 ‘대한민국 건국 60년 큰울림 한강축제’를 녹화방송한 것을 두고 문화방송이 벌써부터 정권에 구애의 손을 내밀기 시작한 게 아니냐고 의심하는 눈초리도 있다. 예능국의 한 PD는 8월14일 “지난주에 갑자기 편성이 됐는데, 국무총리실을 통해 얘기가 됐다고 한다”며 “문화방송이 정권의 나팔수가 되기로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백종문 TV편성부장은 “한 달 전부터 총리실에서 여러 차례 요청이 왔으나 올림픽 방송 때문에 안하려다 한국방송과 SBS도 관련 프로그램을 방송하는데 공영방송으로서 광복절 관련 프로그램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있어 급하게 결정했다”며 “그밖에 정치적 고려나 이런 것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최근 사회적으로 ‘건국 60년’ 주장을 놓고 논란이 이는 것과 관련해서는 “우리도 내부 논란 끝에 화면상 세트 제목은 어쩔 수 없이 그대로 나가되 우리가 붙인 타이틀은 ‘대한민국 60년…’이라고 다르게 나가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아직까지는 한국방송이나 문화방송에서 드러나게 보도 및 시사 프로그램의 목소리가 위축되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게 내부의 평가다. 하지만 엄기영 사장이 시사 프로그램의 가이드라인을 강화하고 데스크 기능을 도입하는 등 방송 전 내부 통제를 강화할 방침을 내놓은 부분은 주목된다. 〈PD수첩〉의 오동운 PD는 “(그런 조처가) 사전 검열이나 제작의 위축으로 나타나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새 정부가 공영방송을 장악하기 위해 벌이는 일련의 작업들이 방송사 구성원들에게 심리적 공포를 불러일으키고, 자기 검열 강화를 통해 비판 정신을 후퇴시킬 것이라는 우려는 지극히 상식적이다. 김창룡 인제대 교수(언론정치학부)는 “문화방송의 사과방송은 경영진이 정치권의 압력에 굴복한 것이다. 앞으로 문화방송에서 누가 민감한 보도를 만들려고 하겠느냐. 지금 방송계에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어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최문순 의원은 “이 정권이 언론에 겁주고 공포 분위기 조성을 통해 굴복시키려 하고 있다. (정 사장이 해임당하는 것을 보고) 어느 방송사 사장이 겁먹지 않을 수 있겠냐”고 물었다.

민영화 압박과 정수장학회

하지만 정부의 강공 드라이브는 방송사 내부를 단결시키는 ‘효과’도 내고 있다. 문화방송 내부에는 직종간 다양한 이견이 존재하지만, 그것이 표면화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PD수첩〉 압수수색 얘기가 계속 흘러나오는 등 수사기관을 통한 정권의 공영방송 장악 압력이 노골화하면서 오히려 단결의 목소리가 훨씬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방송보다 내부의 생각 차이가 훨씬 컸던 한국방송도 외침을 계기로 내부 통합의 분위기가 강해졌다. 그동안 노조는 정연주 사장 해임에 찬성하는 반면 PD연합회와 기자협회 등 각 직능단체는 이런 노조에 비판의 날을 세워왔으나, 지난 8월8일 유재천 이사장의 요청으로 본사 건물에 사복경찰이 투입된 뒤부터 분위기가 상당히 바뀌었다. 한국방송 직원들은 1990년 4월 방송민주화 투쟁 이래 경찰력이 회사 내부로 들어온 건 처음이라는 점 때문에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은 상태다. 노조와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KBS사원행동’은 8월13일 본관 3층 회의실에서 열릴 예정이던 이사회를 함께 막았다. 이들은 현재의 이사회를 인정하지 않는 한편 이사회가 앞으로 진행하는 사장 공모 절차도 함께 막기로 했다.

〈PD수첩〉을 둘러싼 정권과 문화방송 구성원들의 싸움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는 알 수 없지만, 이후 정권이 문화방송을 옥죄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은 또 있다. 우선 민영화 협박이다. 민영화되면, 문화방송은 대대적인 조직개편이 불가피한데다 상업방송의 성격상 지금보다 훨씬 강한 시청률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다만 문화방송 민영화는 함부로 추진하기가 쉽지 않다. 자산 20조원대의 거대 기업 민영화에는 적어도 5년 안팎의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데다, 30% 지분을 갖고 있는 정수장학회는 사실상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것이라 볼 수 있어 자칫 박 전 대표를 민영화된 문화방송의 대주주로 만들어주는 꼴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뉴라이트전국연합이 7월29일 연 ‘MBC 위상정립 방안 토론회’의 발제를 맡은 김우룡 한국외대 교수는 3단계 민영화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문화방송의 지방 계열사를 매각한 뒤 정수장학회 지분 모두를 방송문화진흥회가 인수하고 이 가운데 60%를 일반 국민에게, 10%를 사원들에게 매각하는 방안이다. 결국 방송문화진흥회가 30% 지분을 가진 대주주로 남게 하자는 것이지만, 박 전 대표 쪽의 반발이라는 현실적 제약 요인은 여전히 남을 수밖에 없다.

이보다는 방송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거대 종합편성 채널사업자(PP)를 출현시킴으로써 공영방송사들에 타격을 가하려는 움직임이 더 직접적으로 다가온다. 종합편성 채널사업자는 보도, 오락, 교양 등 모든 부문의 방송 콘텐츠를 만들어 케이블TV나 위성방송에 공급하는 업체이기 때문에, 지상파방송 사업자처럼 별도의 송신시설을 갖출 필요 없이 기존 방송사와 비슷한 구실을 할 수 있다. 이미 80% 가까운 가구가 지상파가 아니라 케이블과 위성방송을 통해 텔레비전을 시청하고 있는데다 ‘인터넷 멀티미디어 방송’(IPTV) 서비스도 눈앞에 다가온 상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프로그램의 질만 확보된다면, 케이블과 위성방송 등을 통해 한국방송이나 문화방송 만큼의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다. 광고시간도 이들 공영방송에 비해 더 길고 중간광고도 할 수 있다. 광고영업도 지상파 방송사와 달리 한국방송광고공사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 그렇잖아도 매년 1천억원 가까이 방송광고 시장이 줄어 골치가 아픈 공영방송들과 SBS에게 거대 종합편성 채널사업자의 탄생은 엄청난 광고매출의 감소라는 의미로 다가온다. 기존의 한국방송, 문화방송, SBS 3사 체계를 뒤흔들 파괴력을 가진 것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8월14일 방송법 시행령 개정을 위한 공청회를 열려고 했으나 관련 단체들의 반발로 무산됐다. 정부가 이를 강행할 경우 공영방송사 2곳과 SBS가 함께하는 동반 총파업도 가능하다는 게 방송계의 시각이다.

이제 문화방송 노조가 8월18일 오후 열기로 한 조합원 총회에서 어떤 목소리가 표출될 것인지가 관심사다. 이 총회에서는 사과방송에 대한 대처 방안이 집중 논의될 전망이다. 또 8월21일이 마감 시한인 남부지법의 정정보도 판결에 대한 회사 쪽의 항소 여부도 현재 국면에 미칠 영향이 크다. 항소를 한다면 일단 공영방송 수호 투쟁이 정권 대 방송사 구도로 흘러가겠지만, 항소를 포기하게 되면 문화방송 노조로서는 엄기영 사장 퇴진을 비롯해 회사를 상대로 한 전면적인 투쟁 선언이 불가피하다. 이렇게 되면 구도가 복잡해진다. 한국방송의 경우도 이사회가 사원행동과 노조의 반대 속에서도 8월25일 새 사장을 이 대통령에게 임명제청하기로 해 충돌은 불가피하다. 올림픽과 휴가철이 끝나는 8월 말이면 공영방송 지키기 투쟁이 본격화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양 방송사 “투쟁이 불가피하다”

새언론포럼 회장을 맡고 있는 최용익 문화방송 논설위원은 “싸움은 이제 시작이다. 사원들과 노조가 들고 일어나는 상황에서, 정권이 여기에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방송 장악 기도가 얼마나 먹힐지를 알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성제 문화방송 노조위원장은 “내가 잡혀가도 제2, 제3의 박성제가 나타날 것”이라고 했고, 한국방송 사원행동 내부에서도 “옥쇄를 각오한 투쟁이 불가피하다”는 말이 흘러나온다. 공영방송을 손아귀에 넣으려는 새 정부의 거침없는 행보 속에, 이를 지키려는 방송사 내부 구성원들의 힘다지기에도 갈수록 가속도가 붙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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