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산 무기 구입·방위비 증액·파병 연장 등만 예측되는 ‘21세기형 전략적 동맹’이란 허상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정상회담이 갖는 상징성에 비춰, 특히 새로 취임한 지도자의 방문이라는 점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캠프 데이비드에서 숙박을 하게 됐다는 점만으로도 이미 이번 방미는 성공작으로 평가할 만하다. 이런 점을 빼고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괄목할 만한 내용이 나오지는 않을 게다.”
“어젯밤 만찬에서 미국산 쇠고기 즐겨”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지난 4월16일 내놓은 자료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이 연구소 데릭 미첼 선임연구원은 자료에서 “미국, 특히 의회의 처지에서 보자면 이 대통령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와 자동차 시장 개방폭 확대를 약속한다면 가장 이상적일 것”이라며 “반면 이 대통령 처지에선 한국이 비자 면제 프로그램에 올해 안에 참여하게 되는 것을 가장 큰 성과로 볼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첼 연구원의 지적대로라면, 4월18~19일 한-미 정상회담은 시작하기 전부터 이미 ‘성공’을 예감해도 좋았다.
“오늘 아침 수전 슈워브 무역대표가 한국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재개하는 데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캠프 데이비드를 방문하는 때에 맞춰 시의적절한 일이라고 본다.” 토니 프레트 백악관 부대변인은 4월18일 오후 정례브리핑 모두발언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이어진 “만찬 메뉴가 뭐냐”는 질문에 “쇠고기가 올라가면 좋겠다”며 웃었다. 싱거운 농담만은 아니었던지, 4월19일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공동 기자회견에서 조지 부시 대통령도 비슷한 언급을 했다.
“국제적인 기준에 맞춰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를 결정해주신 데 대해 감사드린다. 한국의 소비자에게도, 미국의 쇠고기 생산자에게도 좋은 소식이다. 사실, 이 대통령과 어젯밤 만찬에서 질 좋은 미국산 쇠고기를 즐겼다.”
회담이 시작되기도 전에 미국은 한국의 ‘쇠고기 시장’을 얻었다. 한국은 예상대로 ‘비자 면제’ 약속을 받아냈다. 분위기가 나쁠 리 없었다. 넥타이도 매지 않은 간편한 차림에 녹음이 우거진 캠프 데이비드 주변을 함께 걷던 이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의 모습에선 한껏 여유가 느껴졌다. 골프카트에 나란히 앉아 파안의 웃음을 흘리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공동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환대해 주실 줄 알았다면, 조금 더 일찍 올걸 그랬다”는 말로 만족감을 표했다. 이 대통령은 첫 번째 방미 외교에서 ‘합격점’을 받은 걸까?
해답의 실마리는 이 대통령이 방미 기간에 여러 차례 강조한 ‘21세기형 전략적 동맹’이란 표현에서 찾을 수 있다. 이 대통령은 4월15일 뉴욕에서 열린 코리아소사이어티 만찬 연설에서 ‘전략동맹’의 개념을 △가치동맹 △신뢰동맹 △평화구축동맹 등 3가지로 나눠 설명한 바 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지난 몇 년간 한-미 동맹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었다”며 “(이는) 한-미 관계가 이념과 정치논리에 의해 왜곡됐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무슨 뜻일까? 김명섭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4월24일 오후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주최로 열린 토론회에서 ‘전략동맹’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가치동맹은 ‘상호 가치와 비전을 공유할 때 동맹은 더욱 힘을 발휘한다’는 명제에 기초한다. 신뢰동맹이란 한-미 동맹관계를 군사동맹을 넘어 경제·사회·문화 등 포괄적 분야로 확대하는 것으로 설명될 수 있다. 평화구축동맹은 한국과 미국이 부시 행정부가 표방한 ‘테러와의 전쟁’이나 유엔 평화유지활동(PKO) 등 범세계적 차원의 전략적 이익을 공유함으로써 국제적 평화 구축에 기여하겠다는 개념이다.”
장황한 말 속에 동맹의 실체는 모호
정부 쪽 설명도 엇비슷하다. 군사 분야에 국한됐던 한-미 동맹의 범위를 정치·경제·사회 등의 분야로 확대하고, 지역적으로도 한반도를 넘어 국제안보를 포함한 범세계적 문제에 대한 협력 단계로 발전시킨다는 게다. 동맹의 포괄화·다층화를 통한 동맹의 성숙화라고 할까? 결국 “기존 한-미 관계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 것”이란 얘기다.
그럼 부시 대통령은 이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그는 캠프 데이비드 공동 기자회견에서 한국 취재진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이 대통령께서 한-미 동맹에 대해 잘 표현하셨다. 21세기 전략동맹, 적절한 표현이라 생각한다. … 전략적 동맹이란 핵물질 확산 방지 문제나, 어린이들이 생산적인 시민으로 성장하는데 필요한 교육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 또 경제적 번영을 위해 자유롭고 공정한 무역체제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과 같은 ‘21세기 문제들’에, 우리가 대처할 수 있는 방법으로 협력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첫단계는 21세기에 한-미 양국 국민이 직면한 문제들을 내다보는 것이다. 두번째 단계는 이와 같은 문제들에 대처할 실용적인 방법을 개발하는 것이다. 이게 바로 이번 회담의 주제였다.”
장황한 말 속에 실체는 모호하다. 총론은 있지만, 각론은 좀체 눈에 띄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전술적 차원의 ‘동맹’이 있을 수 없다. 모든 동맹은 애초 ‘전략’에 기반한다. 그러니 애당초 ‘이름 붙이기 게임’으로 흐를 수밖에 없었다. ‘전략동맹’의 실체가 있었다면, 이를 담아낼 ‘그릇’은 공동회견이 아니라, 공동성명이어야 했다.
그럼 ‘전략동맹’이란 허상을 얻기 위해 우리가 내준 건 뭘까? 정부가 내놓은 ‘정상회담 설명자료’를 들여다볼 일이다. “양 정상은… 한-미 연합방위 능력을 유지·강화시켜나가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경주해나가기로 합의했다.” ‘연합방위 능력 강화’란 말이 나올 때마다 우리 정부는 값비싼 미국산 무기를 대량 구입했다. 부시 대통령이 “한국에 대한 대외군사판매차관(FMS) 조건을 최혜국인 나토와 일본 수준에 준해 적용하도록 하겠다”고 밝힌 대목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방위비 분담’(SMA) 제도 개선도 약속했다. ‘개선’이 곧 ‘증액’을 뜻함은 자명하다. 이 대통령이 ‘성과’로 내세운 주한미군 감축 중단’도 같은 맥락에서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미군은 해외 주둔 병력 규모를 유연하게 관리한다. 주한미군 역시 특정 병력규모를 유지하는 게 아니라 특정 시점에 1천~2천 명 정도 많을 수도, 적을 수도 있다. 감축 중단 선언으로 애초 예상됐던 2만5천 명에서 3천 명 정도 더 주둔하게 되는 셈인데, 이 정도라면 일상적으로 용인되는 ‘변동폭’을 벗어나는 게 아니다. 게다가 미군은 이미 ‘전략적 유연성’이란 날개를 달았다. 언제든 한반도 입·출입이 자유로워졌다. 자칫 한반도 방위를 넘어 미국의 국익을 위해 세계로 향하는 미군을 위해 우리 정부가 뒷돈을 대줘야 하는 상황인 게다. 설명자료는 이어진다.
전쟁도 환경파괴도 적극 보조 맞춘다?
“양 정상은… 이라크·아프가니스탄 등 세계 주요 분쟁 지역에서의 평화 회복 및 재건 복구를 위한 양국 간 긴밀한 공조와 그간의 성과를 평가했다.” 이 대통령 귀국 직후부터 아프간 재파병이 거론된 이유를 알 만하다. 나아가 “대량살상무기 비확산, 대테러 국제연대, 유엔 평화유지군 활동, 기후변화, 에너지 안보, 환경, 재난구조, 초국가적 범죄 및 전염병 퇴치, 인권·민주주의 증진 등 범세계적 문제에 공동으로 대처해나가기 위하여… 긴밀한 협력을 지속해나가기로 했다”는 말도 등장한다. 이는 논란에 휩싸인 미사일방어(MD)는 물론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을 비롯한 미국의 ‘공세적 대외정책’에 적극 보조를 맞추겠다는 말이다.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은 어쩔 텐가?
“양 정상은 기후변화와 에너지 안보가 인류의 지속 가능한 발전에 중대한 도전임을 인식하고, 저탄소 청정기술 개발 및 재생에너지, 원자력을 포함한 에너지 분야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는 말도 있다. 이쯤 되면 ‘교토의정서’ 인준을 끝까지 거부해 국제사회의 비난을 사온 부시 행정부의 대외정책을 내놓고 ‘지지 선언’한 꼴이다.
또 ‘21세기’를 거론했지만, 여전히 ‘과거’에 얽매여 있다. 강대국과 ‘가치’를 일치시키고, 그들의 ‘신뢰’를 얻으려 애쓰고, 그들의 ‘평화구축’에 동참해 뭔가를 얻겠다는 건 낡은 ‘편승외교’, 냉전 시절의 동맹관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한-미 동맹에 대해 ‘복원’이니 ‘훼손해선 안 된다’느니, ‘자랑스럽고 소중한 자산’이니 하는 말만 난무한다. 한-미 동맹은 ‘문화재’가 아니다. 부시 행정부의 임기는 이제 고작 7개월여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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