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내 정체성을 찾고 싶었다”

등록 2007-07-06 00:00 수정 2020-05-03 04:25

재외동포 참정권 운동 12년만에 승리한 자이니치 2세 이건우씨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국민의 선거권 행사는 국민주권 원리의 현실적 행사 수단으로서 국민의 의사를 국정에 반영할 수 있는 중요한 통로다. …헌법은 국민의 기본권 행사를 납세나 국방의 의무 이행에 대한 반대급부로 예정하고 있지 않다. …주민등록을 할 수 없는 재외국민 또는 국외 거주자가 투표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한 것은 기본권을 침해한다.”

62년 만에 처음으로 국민이 되다

광고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주심 김종대 재판관)는 지난 6월28일 공직선거법과 국민투표법 일부 조항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기존 판례를 8년 만에 뒤집은 이날 결정으로 210만여 재외국민 유권자의 투표 참여 길이 열렸다. 헌재의 이번 결정을 이끌어내는 데 핵심 역할을 해온 조국참정시민연대 공동간사 이건우(55)씨를 6월29일 아침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충남 예산이 고향인 그의 부친은 일제 때 탄광노동자로 징용돼 일본 땅에 발을 들였고, ‘자이니치 2세’인 그는 오사카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왔다.

“일본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뒤 1971년 고려대 법대로 유학을 왔다. 대학 입학하던 해 가을 위수령이 내려졌고, 자연스럽게 학생운동에 가담하면서 정보기관에 체포되기도 했다. ‘조국’에 대해 새삼 깊이 생각할 수 있었던 시기였다.” 이씨는 “군사정권 시절 국민투표는 독재를 연장시키는 수단에 불과했지만, 한국 국민이면서도 나는 그나마도 참여할 수 없었다”며 “한국 유학을 택한 것도 내 정체성을 찾기 위해서였는데, 국민의 권리조차 행사할 수 없다는 걸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말했다. ‘국민 아닌 국민’이란 생각이 유학시절 내내 그를 괴롭혔다.

대학을 졸업하고 일본으로 돌아간 뒤에도 그의 고민은 끝나지 않았다. 그는 “재일동포들은 ‘나는 한국 사람도, 일본 사람도 아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야말로 정체성의 혼란이다. 유학생활을 통해 나는 그런 혼란을 어느 정도 극복했지만, 남아 있던 친구들은 엇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여권만 가지고 있을 뿐 실제 조국의 현실에 참여할 기회가 전무한 탓”이란 게 그가 내린 결론이었다.

광고

그는 “선거권이 주어지면 국가와 국민의 관계가 동등해진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군사정권 시절에는 엄두를 내지 못하던 재외동포 참정권 운동을 민주화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다. 1995년 재일동포를 중심으로 조국참정시민연대를 만든 그는 1997년 재외동포의 참정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의 첫 번째 헌법소원을 냈다. 2년여 만인 1999년 헌재는 각하 결정을 내렸다.

순순히 물러서지 않았다. 시민연대 회원 등 10명을 모아 2004년 다시 헌법소원을 냈다. 그리고 3년여의 기다림 끝에 마침내 헌법 불합치 결정이 내려졌다. 오랜 싸움 끝에 이룬 작은 기적이었다. 이씨는 “1995년 시민연대를 결성한 뒤 12년 만에 나온 결정이지만, 1945년 해방을 기점으로 따지면 62년 만에 처음으로 국민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라며 “역사의 ‘유산’에 머물러온 재외동포들이 ‘자산’으로 거듭날 수 있게 됐다”고 반겼다.

12월 대선과 내년 총선 참여 불투명

헌법 불일치 결정이 내려지긴 했지만, 오는 12월 대선과 내년 봄 총선에 재외동포 유권자들이 참여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헌재가 위헌 법률에 대한 개정 시한을 2008년 말까지 유예한 탓이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가능한 한 위헌상태를 개선할 입법이 빨리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며, 개선입법이 이뤄지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지만, 재외동포 ‘표심’의 향배를 둘러싼 정치권의 득실 계산이 길어질 경우 다음번 지방선거 때나 참정권 행사가 가능해질 수도 있다. 이씨는 “280만 재외국민 가운데 약 75%에 이르는 210만여 명이 유권자이며, 재일동포만 해도 유권자는 33만여 명에 이른다”며 “이들을 제외한 채 선거를 치른다면 진정한 대의민주주의라고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다가오는 대선에 ‘오로지’하고 있는 국회가 귀담아들어야 할 대목이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광고

4월3일부터 한겨레 로그인만 지원됩니다 기존에 작성하신 소셜 댓글 삭제 및 계정 관련 궁금한 점이 있다면, 라이브리로 연락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