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대 동북아연구소 송성유 소장… “중국 내에서도 상이한 관점들 모두 내놓고 합일점 찾아야”
▣ 베이징= 글 · 사진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역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 역사학자는 철저히 사실에 근거해 역사를 서술해야 한다.”
‘중국 역사학계의 거두’로 알려진 송성유 베이징대 동북아연구소장은 요즘 한-중간 최대 현안으로 떠오른 고구려사 왜곡과 관련해 이를 주도한 중국 내 일부 역사학자들의 비뚤어진 역사관을 에둘러 비판했다. 그는 “어떤 역사적 사실을 보는 시각은 학자들마다 다를 수 있다”며 “그러나 지난 시기의 역사적 사실을 올바르게 정립해 후세들에게 전달하는 게 역사학자들의 더 중요한 임무”라고 말했다.
송 소장은 이번 남북한 학자가 동시에 처음으로 참석하고, 미국 그리고 중국 학자들이 모여 ‘항일건국 이상과 동북아 국가의 개혁발전’이라는 주제로 연 국제 학술세미나의 성사에 핵심 역할을 했다. 그는 “분단의 고통을 함께 겪고 있는 남북한과 중국은 21세기의 새로운 기회와 도전을 맞아 개혁발전을 끊임없이 추진해야 한다”면서 “지난 역사의 경험과 교훈을 바탕으로 새 세기 동북아 국가의 평화발전에 공헌하기 위한 학자들간의 토론과 교류가 절실히 요구된다”라고 이번 회의의 취지를 설명했다.
한-중 우의, 항일투쟁 공동 연구로
-이번 행사 개최의 목적과 의의는 무엇인가.
=우리 베이징대 동북아연구소는 아주 개방적인 학술 교류를 지향한다. 이런 국제회의는 해마다 열리긴 하나 남북한 학자들이 동시에 참석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옌볜대학교와 협력해 북한 학자를 초청했고, 북한쪽이 ‘항일건국 이상과 동북아 국가의 개혁발전’이라는 주제에도 흔쾌히 동의해 국제 학술세미나가 성사될 수 있었다. 항일건국 이상과 동북아 국가의 개혁발전이라는 주제는 높은 학술적 가치와 현실적 의의를 갖고 있다. 남북한과 중국은 지난 시절 공동의 적인 일본에 맞서 싸운 경험이 있다. 일본 제국주의를 타도하고 나라를 다시 바로 세운 공통점이 있는 것이다. 비슷한 건국 이념과 가치도 공유하고 있다. 이런 사실은 현 단계 동북아 나라들의 개혁발전과 관련해 탐구해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중국 공산당의 모택동 ‘사회주의 초급단계 이론’이나 ‘신민주주의론’ 등의 항일 건국 이상은 오늘날에도 동북아 국가의 개혁과 발전에 계몽적인 의의를 갖는다. 항일투쟁은 곧 민족해방운동이었다. 지금도 이에 대한 더 심도 깊은 연구와 많은 교류협력이 필요하다. 이는 통일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지금 고구려사 문제가 한-중 관계를 어렵게 만들고 있으나, 내가 보건대 공동의 이익과 공동의 항일투쟁 이상 등을 생각하면 남북한과 중국이 이 문제도 지혜롭게 풀어갈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상호협력하고 우의를 다지는 게 아주 중요하다.
-기본적으로 역사학자는 어떤 자세로 역사를 보고, 또 역사에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무엇보다 역사학자는 사실을 존중해야 한다. 또 객관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그리고 연구는 가급적 1차 원시자료를 활용해야 한다. 이는 더 사실에 근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학술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 특정 정치적 목적이나 이념에 유리하게끔 역사를 왜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학자는 개방적이고 솔직해야 하며 진실 앞에 겸허해야 한다.
“동북아 번영의 틀은 평화교류였다”
-한국과 중국 사이 고구려사 전쟁이 뜨겁다. 지금 벌어지는 한-중간의 논쟁을 어떻게 보나. 한-중간의 역사인식 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은 없나.
=고구려사 문제는 기본적으로 학술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를 외교 혹은 정치 문제로 쟁점화하는 것은 서로 득이 안 된다. 그렇게 해서는 앞으로 해결이 더욱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외교·정치적으로 해결된다 해도 이는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에 그칠 것이다. 학술적으로 제대로 진실을 규명해놓지 않으면 언제든 다시 불거질 문제다. 학술적 차원에서 서로의 다양한 관점이 소개되고, 충분히 토의해야 한다. 감정적으로 맞설 경우, 이 문제는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서로 다른 관점을 발표하고, 심도 있는 토론을 거친다면 결국 언젠가는 역사적 진실이 드러날 것이다. 사실 중국 내에서도 (고구려사와 관련해) 여러 상이한 관점이 존재한다. 그래서 다른 관점을 드러내놓고 활발하게 교류해야 합일점을 찾을 수 있다.
-구체적인 실천 계획이 있는가.
=지난해 한국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 초청을 받고 서울을 방문해 특강을 한 적이 있다. 그때도 한-중 학자들 사이에 서로 다른 관점과 견해를 나누는 등 학술 교류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생각이 있다고 밝혔다. 당시 한국쪽에서도 한-중 두 나라뿐 아니라 북한 학자들까지 포함해 교류하면 더욱 좋겠다고 얘기하기에, 나도 기꺼이 참여하고 돕겠다는 뜻을 밝힌 적이 있다. 특히 고구려사처럼 한국과 중국이 서로 공유하고 있는 역사는 한층 더 심도 있는 학자간 토론과 견해차 해소가 필요한 대목이다.
지금 한국과 중국은 서로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때다. 한국은 앞으로도 중국과 교류하고 협력해야 지속적인 발전을 할 수 있다. 이는 중국도 마찬가지다. 모두들 알다시피 고대 동북아의 여러 민족들은 세계의 다른 문명이나 민족에 견줄 수 있는 찬란한 문화를 창조해 인류의 진보와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비록 지난날 동북아 국가들 사이에 끊임없는 충돌과 나아가 전쟁도 치렀지만, 평화적인 왕래와 문화교류는 시종 일관되게 상호 관계의 주류였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고대의 평화발전에 대한 역사적 경험은 동북아 국가와 민족이 생존하고 공동 번영할 수 있는 기틀이었다.
-이번 회의에서 발표한 ‘연합정부를 논함’에서 사회주의 개혁·개방을 위해서는 우선 ‘사상을 해방’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말의 오늘날 의미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특히 북한에도 이 이론을 적용할 수 있다고 보나.
=물론이다. 나는 개혁·개방을 위해서는 모든 나라가 사상을 해방해야 한다고 본다. 북한은 물론 한국도 중국도 끊임없이 사상해방을 지속해나가야 한다. 중국의 경우, 초기 개혁·개방 방침과 노선 결정의 전제조건은 극좌적인 사상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사상을 해방하는 것이었다. 이런 사상해방은 1978년 상반기에 펼쳐진 진리의 표준에 대한 토론에서 시작됐다. 당시 사상해방에서 인용된 경전은 40여년 전 마오쩌둥이 ‘실천론’에서 되풀이해 강조했고, 모든 당이 익히 알고 있는 ‘실천은 진리를 검증하는 표준이다’라는 저명한 논문이었다. 사상을 해방하고 개혁·개방 방침을 정한 이후 중국의 개혁·개방은 나래를 활짝 펼치고 창공을 날기 시작했다.
각론 연구 · 교류 촉진으로 논의폭 확대
-앞으로의 계획을 말해달라.
=우선 이번 회의에서 논의된 내용들을 논문집으로 만들어 공개 출판할 생각이다. 이를 통해 관련국 사이의 공동연구 역량을 강화하고 한 단계 더 발전시켜나가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특히 남북한 학자 사이의 학술적 교류 협력을 촉진하는 데도 한층 더 노력할 생각이다. 다른 한편으로 동북아 공통의 역사와 관련된 논문의 질을 한 단계 더 높일 필요가 있다. 앞으로는 원론에 머물 게 아니라, 각론에 들어가 연구를 더 심화하는 등 앞서나가는 학자간 교류와 확대가 필요하다. 앞으로도 북한 학자들을 초청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으나, 이들도 나라 사이의 학술 교류와 공동 연구의 필요성을 잘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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