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신용불량자 문제의 해결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은 ‘도덕적 해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채무자의 빚은 절대 탕감해줘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쓰이기도 하고, 지금보다 채무자에게 유리한 제도를 도입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펼 때도 사용된다. 그러나 ‘채권자’의 도덕적 해이를 거론하는 사람은 적다.
만약 채무자가 반드시 모든 빚을 갚아야 한다면, 오늘날 대부분의 기업이 채택하고 있는 주식회사제도는 도덕적 해이를 조장하는 제도일 것이다. 주식회사는 유한책임 사원으로만 구성된 법인이다. 따라서 회사를 청산할 때 채권자들은 회사 재산으로만 변제를 받을 수 있다. 회사 재산이 빚 받는 데 부족하다고 해서, 회사의 주인인 주주들에게 대신 내라고 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이런 유한책임제도가 처음 도입될 때만 해도 소유주와 경영진이 지나친 위험을 감수하는, 도덕적 해이를 유도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주식회사의 유한책임제도는 위험을 사회적으로 분산시킨다는 것이 수세기에 걸쳐 증명되면서 오늘날 주식회사제도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주식회사제도는 말한다. “주식회사에 돈을 빌려줄 때 돈을 못 받을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하라.”
우리나라에서는 개인대출에 대해, 원칙적으로 이런 유한책임이 적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채권자들은 채무자의 여생을 담보로 돈을 빌려줬다. 돈을 갚지 않을 경우 채무자를 평생 괴롭힐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해 대출심사를 철저히 하지 않았던 것이다. 개인회생제도는 개인에 대해 일종의 유한책임을 적용하는 제도다. 일정 기간만 성실히 빚을 갚으면 나머지 빚은 탕감해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외국에서는 개인회생제도를 도입하면서 채무자가 3년 안팎만 돈을 갚으면 나머지 빚은 면책해주도록 했을까? 외국의 제도는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를 우리나라 제도보다 훨씬 더 조장하지 않을까? 이는 금융기관을 비롯한 대부분의 채권자가 채무자보다 훨씬 많은 경험을 축적하고 있어, 신용평가에 익숙하다는 점 때문이다. 마구 빌려다 쓴 채무자보다, 함부로 빌려준 채권자의 책임(도덕적 해이)을 더 중하게 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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