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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의 라이벌, 강금실 vs 송광수

등록 2004-06-24 00:00 수정 2020-05-03 04:23

노무현 대통령도 못 말리는 두 사람의 뿌리깊은 갈등… 조직 대결 양상에 개인적 견해차까지

안창현 기자/ 한겨레 사회부 blue@hani.co.kr

17~18세기 유럽 과학사를 더듬어보면 영국의 뉴턴과 독일의 라이프니츠라는 두 거장을 만나게 된다. 이들은 각기 과학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지만, 당시 수학의 미개척 분야인 미적분학의 발견에서는 영원한 라이벌로 기록되고 있다. 누가 먼저 미적분학을 발견했는지 20세기에 들어서도 수학계의 논란거리로 남아 있을 지경이다.

촛불집회 처리, 감정싸움으로

이처럼 역사의 여러 분야 가운데 인기 있는 게 인물사이고, 인물사 가운데서도 라이벌 얘기는 더욱 흥미진진하다. 아직 참여정부 전반기가 끝나지 않았지만, 후세 역사가는 이 시기를 기록할 때 최고의 라이벌로 누구를 꼽을까. 전 분야를 통틀어 아마도 강금실 법무부 장관과 송광수 검찰총장이 아닐까 싶다.

최근 송 총장이 대검 중수부의 수사권 문제로 선제 공격의 칼을 뽑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강한 질책에 이어 강 장관의 발빠른 수습으로 일단 봉합이 됐다. 그러나 강 장관과 송 총장의 갈등이 이것으로 사라졌다고 보는 법조계 사람은 없다. 특히 두 사람이 검찰 개혁 문제를 둘러싸고 정부와 검찰을 각각 대표하고 있는 까닭에 갈등은 필연적인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게 법조계 안팎의 중론이다.

사실 검찰청은 법무부의 한 외청으로, 검찰청법에 따라 강 법무장관(47·사시 23회)은 법조 선배인 송 검찰총장(54·사시 13회)을 지휘할 수 있다. 법적 지위에서는 분명히 상하 관계다. 하지만 검찰총장은 법으로 임기가 보장된 자리여서, 실제 두 사람 사이는 긴장 관계에 놓여 있다.

게다가 진보적 성향의 민변 출신인 강 장관과 검찰 주류를 대변하는 송 총장의 개인적 인식차도 두 사람의 ‘거리’을 좁히지 못하게 하는 요소다. 노 대통령도 이런 대립 양상을 의식해 지난 5월 말 검사장 인사안을 보고받을 때에는, 이례적으로 두 사람이 함께 청와대에 들어오는 장면을 ‘연출’하도록 지시하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두 사람의 갈등은 일찌감치 시작됐고, 이미 몇 라운드를 거쳐왔다. 그 중에서도 가장 최근의 사례는 지난 3월 촛불집회 주도자들에 대한 체포영장 청구 사실을 법무부에 제때 보고했는지를 놓고 불거졌다. 당시 검찰은 촛불시위를 주도하는 시민단체 간부들에 대해 경찰의 영장 신청을 지휘하면서 법무부에 미리 보고하지 않아 강 장관이 불같이 화를 냈고, 법무부가 경위 조사를 벌이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에 용의주도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송 총장은 “조사하려면 나를 직접 조사하라”며 감정을 직설적으로 드러냈다. 단순히 사전보고를 빠뜨려 ‘검찰보고 사무규칙’ 제8조을 어겼느냐는 차원을 넘어, 해묵은 감정이 일거에 폭발하는 양상을 보인 것이다. 사태의 확산을 꺼리는 양자는 이틀 뒤 열린 법무부 업무보고 현장에서 만나 카메라 앞에서는 웃으며 악수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이 사건은 이번 중수부 문제처럼 며칠 만에 봉합됐지만, ‘검찰권 독립의 한계’라는 좀더 고차원적인 문제를 던졌다. 검찰은 “정치적 사안에 대해 법무부와 상의하던 관행을 벗어나 법대로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법무부는 “정부 시책의 통일성을 기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행정부인 검찰이 장관의 지휘를 받는다”라는 입장을 나타냈다.

또 촛불집회 영장 문제는 당시 정국의 핵심 사안인 탄핵 국면을 바라보는 양쪽의 시각차를 드러냈다는 해석도 있다. 이미 두 사람은 지난해 한총련 간부와 송두율 교수 처벌 문제에서도 뚜렷한 시각차를 드러낸 바 있다.

검찰 인사 둘러싸고 팽팽한 긴장 계속

드러나지 않았지만, 더 격렬하고 심각했던 적도 있다. 지난 1월 말 단행된 검찰 인사 문제도 두 사람의 대립 골을 깊게 한 계기였다는 것이 검찰 인사들의 전언이다. 매년 있는 2월1일자 정기인사를 앞두고 당시 강 장관은 1400여명의 검사 가운데 1천여명의 자리를 바꾸는 대규모 인사를 단행하려 했지만, 송 총장은 “대선자금 수사가 진행 중이고 총선을 앞두고 있어 연기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맞섰다.

겉으로는 충분히 타협 가능한 사안으로 비쳤지만, 내용상으론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송 총장쪽은 강 장관이 정기인사를 통한 대규모 물갈이를 단행해 검찰 조직을 장악하려 한다고 ‘확신’했고, 때마침 강 장관이 4월 총선에 차출된다는 정보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여 버티기에 들어갔던 것이라는 후문이다. 대검의 한 간부는 “당시 일촉즉발의 위기라 부를 만큼 양쪽이 팽팽히 맞섰다”며 “다행히 청와대가 중재에 나서 송 총장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사태가 마무리됐다”고 말했다.

인사를 둘러싼 대립은 지난해 8월 인사에서도 있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에 김태희 검사(현 성남지청 차장)가 배치되는 등 대규모 중간간부 인사에서 강 장관은 사실상 송 총장의 의견을 배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 장관은 그동안 서초동(대검과 서울중앙지검)과 과천(법무부)만을 오간 ‘주류 검사’들을 배제하고, 경향 교류와 고검 강화 방침으로 기존 형식을 파괴하는 인사를 단행했다.

감찰권 이양 여부도 뜨거운 감자

송 총장은 한 사석에서 “장관과 다른 갈등 요인은 없다”면서도, “다만 중간간부 인사에서 기존의 패턴을 무시하는 것에는 의견을 달리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법무부 검찰1과장-검찰국장 출신으로 기존의 검찰 인사 형식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로서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이런 견해차 때문에 대검은 검찰 인사 때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의 인사 협의를 제도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대검은 “인사협의 제도화를 법무부가 준비 중인 검찰청법 개정안에 포함해달라”며 법무부에 정식 건의문을 보냈으나 반영되지 않았다.

인사 문제뿐 아니라 감찰권 이양 여부도 뜨거운 감자다. 양쪽의 갈등이 고조된 첫 계기로는, 지난해 8월 대검이 강 장관의 최측근 간부에 대해 감찰조사를 벌여 징계를 재추진한 일이 꼽힌다. 이에 강 장관은 법무부 실무진한테 대검 감찰 결과에 대한 재조사를 지시했고, 이 결과를 토대로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 당시 강 장관쪽은 “검찰이 장관의 검찰 개혁을 막기 위해 표적 감찰을 벌였다”고 발끈했고, 송 총장쪽은 ‘혐의가 있으면 누구라도 조사해야 한다’고 맞섰다.

양쪽은 감찰권 이양 문제가 검찰권 독립과 ‘표리 관계’에 있다고 본다. 강 장관쪽은 검찰에 대한 견제장치를 마련한다는 차원에서 이 문제에 접근하고 있는 반면, 송 총장은 감찰권 외부 이양을 검찰 독립에 대한 중대한 위협으로 보고 대응해왔다. 감찰권 문제는 인화성이 강한 불씨로 여전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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