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영화 ‘인턴’, ‘암살자(들)’, ‘타짜: 벨제붑의 노래’ 포스터. 워너브러더스코리아, 하이브미디어코프, CJ ENM 제공
‘2026년 한가위, 제대로 된 한국영화 대진표가 완성됐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오랜 침체기를 겪었던 극장가에 ‘훈풍’이 불고 있다. 2026년 설 명절을 겨냥해 개봉한 ‘왕과 사는 남자’(1692만 명)가 역대 박스오피스 2위에 해당하는 성적을 거둔 데 이어 여름 시즌 영화인 ‘오디세이’가 또다시 천만 클럽에 이름을 올렸고,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도 장기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극장가가 관객의 발걸음으로 모처럼 북적이는 셈이다.
‘오디세이’의 공세를 피해 한가위 시장을 준비해온 한국영화들은 ‘해볼 만하다’는 판단 아래 일제히 개봉을 예고했다. 추석 연휴가 나흘(9월24~27일)로 비교적 짧지만, 이어지는 개천절 연휴와 한글날 연휴가 기다리고 있어 흥행 조건은 나쁘지 않은 편이다. 씨제이이엔엠(CJ ENM) 관계자는 “연휴가 길면 국내외로 여행이나 나들이를 가는 사람이 많아 오히려 개봉 영화 흥행엔 불리할 수 있다”며 “추석 연휴에 승기를 잡는다면 뒤이은 10월 연속 연휴에 추가로 관객몰이를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한가위 대진표에 이름을 올린 한국영화 세 편은 장르가 각양각색이다. 가장 먼저 포문을 연 리메이크 영화 ‘인턴’은 힐링 드라마, 육영수 저격 사건을 다룬 ‘암살자(들)’은 역사·스릴러, 시리즈 완결판인 ‘타짜: 벨제붑의 노래’는 범죄·오락물이다. 취향에 따라 ‘골라 보는 재미’가 쏠쏠할 듯싶다. 장르가 겹치지 않는 만큼 ‘중복 선택’도 좋다. 최민식·박해일·변요한 등 연기파 배우들의 진검승부를 보고 싶다면 세 편 모두 관람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영화 ‘인턴’은 동명의 할리우드 흥행 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패션업계 다크호스 선우(한소희)가 실버 인턴 기호(최민식)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힐링 오피스 드라마다.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쫓기듯 하루하루를 살아내다 모처럼의 연휴를 맞아 삶에 쉼표를 찍고 싶은 직장인에겐 영화 ‘인턴’이 제격이다. 경쟁작들보다 한 주 일찍(9월16일) 개봉한 ‘인턴’은 동명의 할리우드 흥행 영화를 ‘한국식’으로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2015년 개봉한 원작은 로맨틱코미디의 거장인 낸시 마이어스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로버트 드니로·앤 해서웨이가 주연을 맡아 국내에서도 36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바 있다. 주옥같은 대사는 물론 70대의 완숙한 지혜와 기품을 뽐낸 로버트 드니로의 연기가 극찬을 받았다.
‘성공한 원작과의 경쟁’이라는 숙명을 안고 출발한 한국판 ‘인턴’은 최민식(기호)과 한소희(선우)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원작의 큰 줄거리를 그대로 따르면서도 한국식 오피스 정서를 더했다는 것”이 김도영 감독의 설명이다. 창업 3년 만에 패션계 다크호스로 떠오른 우투투(WOO22)의 시이오(CEO) 선우의 회사에 경력 37년차 실버 인턴 기호가 입사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출판사에서 매년 크게 달라질 것 없는 전국 지도를 만들었던 기호와 자고 일어나면 유행이 변하는 패션업계에서 일하는 선우는 과거와 현재의 ‘속도감 차이’와 ‘세대 차이’를 드러내는 설정이다.
영화 속에는 부하 직원의 공을 가로채는 얄미운 상사, 카드만 주고 회식엔 빠지는 ‘낄낄빠빠’ 눈치, 일과 가정 사이에서의 갈등, 유명인의 비위를 맞춰야 하는 비애 등 한국의 직장인이라면 공감할 수밖에 없는 장면이 많다. 세제 혜택을 받기 위해 실버 인턴을 뽑는다는 설정이나, 일 때문에 과부하가 걸려 ‘딩크’(결혼 뒤 의도적으로 자녀를 갖지 않고 맞벌이를 유지하는 부부) 상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이를 고민하는 주인공의 상황 등도 한국적인 각색이다. 다만 각각의 에피소드가 유기적으로 결합하기보단 다소 작위적인 나열식 상황 설정으로 느껴져 조금 아쉽다.
‘인턴’의 가장 큰 장점은 전 연령에 부담이 없을 잔잔한 힐링 영화라는 것이다. 자극적 설정이 거의 없어 연령과 세대를 아우를 수 있어 가족끼리 봐도 무리가 없다. 특히 오랜만에 힘을 쫙 뺀 ‘생활 연기’로 돌아온 최민식이 영화의 무게중심을 잘 잡는다. 한국판 리메이크를 고민하며 최민식 외에 더 좋은 선택은 없었을 듯싶다. 최민식은 “로버트 드니로와 비교는 하고 싶지도 않고 감히 언급하고 싶지도 않다”고 강조했지만 “연기를 물처럼 하고 싶었다”는 그의 바람처럼 담담하고 담백한 모습에서 연륜과 내공이 느껴진다.

‘암살자(들)’은 1974년 발생한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을 다룬다. 제목이 암시하듯, 진짜 범인이 한 명이 아니라 공범이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둔다. 하이브미디어코프 제공
한국 현대사의 명암과 밝혀지지 않은 진실에 관심이 많은 관객, 스릴러나 추리물을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9월23일 개봉하는 ‘암살자(들)’을 권한다.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의 미스터리와 동아일보 기자들의 ‘자유언론실천선언’ 발표라는 1974년의 두 가지 사건을 엮어낸 작품이다. ‘내부자들’(2015), ‘남산의 부장들’(2020), ‘서울의 봄’(2023) 등을 만든 하이브미디어코프가 제작했다.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은 “조총련의 사주를 받은 재일교포 문세광의 단독범행”이라는 수사당국의 수사결과 발표에도 수많은 의문점을 남겼다. 사건 발생 15년 뒤인 1989년, 수사에 참여했던 이건우 당시 서울시경 감식계장(1999년 사망)이 월간 ‘다리’(1989년 9월호)와 한 인터뷰에서 “육 여사는 문세광의 총탄에 죽은 것이 아니다”라는 양심선언을 하며 다시 공론화된 바 있다. 영화 역시 실제 제기된 ‘5대 의혹’을 뼈대로 한다.
1974년 8월15일 티브이를 통해 생중계된 광복절 기념식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겨냥한 총성이 울린다. 아수라장 속에 대통령은 저격을 피했으나 영부인이 총에 맞고, 행사에 참석했던 여고생 합창단원도 쓰러진다. 용의자는 현장에서 제압당한다. 하지만 수많은 눈과 귀, 카메라까지 지켜본 가운데 벌어진 사건임에도 도리어 의혹은 증폭된다. ①총성은 여섯 발이 울렸지만, 문세광(극 중 문태광·박정민)이 쏜 탄환은 네 발뿐이라는 점, ②탄피가 청와대 경호팀에 의해 수거됐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은 받지 않았다는 점, ③비표도 없는 문태광이 기념식장에 입장했다는 점, ④한국과 일본의 수사결과가 전혀 달랐다는 점, ⑤문태광이 일본 파출소에서 권총을 훔쳤다고 진술했지만, 현장의 지문과 족적이 문씨의 것이 아니었다는 점 등이다.
영화는 사건의 배후는 누구인지, 진실을 숨기려는 이유는 무엇인지 등을 추적하는 미스터리 스릴러의 외피를 쓰고 숨 가쁘게 진행된다. 진실을 좇는 과정에서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쳤’지만 군사독재의 현실을 맞닥뜨리는 중부서 형사 철구(유해진), 재벌가의 자식이지만 정론직필이라는 기자의 본분을 다하려 고군분투하는 영일(이민호), 정권의 폭압적 언론탄압에 맞서 자유언론실천선언에 앞장서는 재환(박해일)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교차시키며 영화는 ‘결론 없는 사건’의 전말을 상상하게 한다.
시나리오의 밀도가 높은 덕에 지루할 틈이 없다. 주연배우는 물론 정우성·박해준·심은경·오정세·신현빈·엄태웅 등 특별출연 배우들의 쟁쟁한 연기력도 볼거리 중 하나다. 다만 후반부 언론인들의 자유언론실천선언으로 극의 중심축이 옮겨가는데, 연출이 과장되고 기시감도 들어 다소 아쉽다. 허진호 감독은 “당시 자료와 사실에 남아 있는 의문점·한계에서 시작해 그 시대를 뜨겁게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타짜: 벨제붑의 노래’는 허영만 작가의 ‘타짜’를 원작으로 한 시리즈물의 최종판이다. 이름(태영)이 같은 두 친구의 운명적 대결을 질투와 열등감, 욕망에 휩싸인 포커판을 통해 펼쳐낸다. CJ ENM 제공
‘명절엔 호쾌한 오락영화가 최고’라 외치는 사람에겐 추석 단골 영화 ‘타짜’의 최종편인 ‘타짜: 벨제붑의 노래’(9월23일 개봉)를 추천한다. 최동훈 감독의 ‘타짜’(2006), 강형철 감독의 ‘타짜: 신의 손’(2014), 권오광 감독의 ‘타짜: 원 아이드 잭’(2019)에 이은 4편이다. 앞선 2·3편 모두 1편의 ‘명성’에 기대어 야심 차게 개봉했지만 흥행성·작품성 모두 1편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 만큼, ‘벨제붑의 노래’ 역시 기대감과 동시에 위험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는 처지다.
4편은 화투 대신 ‘홀덤’을 들고나왔다. 사람을 사로잡는 매력과 타고난 운을 가진 장태영(변요한)과 불행한 가정환경에도 노력으로 모든 것을 극복해온 박태영(노재원)은 학창 시절부터 우정을 나눈 사이다. 비상한 두뇌와 수완을 가진 둘은 온라인 카지노 사업에 함께 뛰어들어 성공 가도를 달린다. 하지만 사업이 커질수록 박태영의 마음속에는 노력보다는 항상 ‘운’이 좋아 사람을 끄는 장태영에 대한 질투와 열등감이 폭발한다.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의 진폭은 결국 배신을 낳고, 박태영은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한다. 모든 것을 잃고 목숨까지 위태로웠던 장태영은 ‘타고난 운’ 덕분에 살아남아 전설의 카드 타짜 곽동욱(조우진)에게 포커를 배운다. 일본 야쿠자의 일원인 가네코(미요시 아야카)와 ‘복수’라는 공통분모로 손을 맞잡은 장태영은 마지막 도박판을 설계한다.
영화의 주요 관전 포인트는 변요한과 노재원의 연기 대결이다. 상업영화 첫 주연을 맡은 노재원은 사이코패스적 면모를 지닌 박태영 역을 작은 표정 변화와 목소리의 떨림으로 섬세하게 표현해낸다. 러닝타임 내내 검증된 연기력을 뽐내는 변요한에게 밀리지 않고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한다. 조우진, 윤경호 등 검증된 조연의 연기도 안정감을 준다.
‘벨제붑의 노래’의 또 다른 볼거리는 욕망으로 점철된 홀덤판 그 자체다. ‘스페이드A’가 상징하는 ‘루시퍼’와 ‘스페이드2’가 상징하는 ‘벨제붑’은 타고난 재능과 운을 소유한 장태영과 노력으로는 그를 넘지 못한다는 열등감에 빠진 박태영을 각각 상징한다. 최국희 감독은 “프로 포커 플레이어의 철저한 검수를 거쳐 실제 성립 가능한 판으로 정교하게 설계해 리얼리티를 살리는 데 공들였는데, 분량이 넘쳐 편집을 많이 하게 돼 아쉽다”고 말했다. 다만 홀덤 룰을 잘 모르는 관객에겐 빠른 전개 속 순식간에 지나가는 포커판이 되레 관람 장벽으로 작용할 수도 있겠다. 여기에 더해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임을 고려해도 과도하게 잔인한 장면이 많은 점, 가네코·린다 박(스테파니 리) 등 여성 캐릭터가 복수를 위한 자극적 도구로 소모되는 점 등은 마이너스 요소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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