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원 승소 판결 후 명품 수선업체 사장님들이 ‘고맙다’는 인사 전화를 많이 걸어와서 뿌듯했다는 이경한 ‘강남사’ 대표.
“엄마가 15년 전쯤 처음 선물해준 명품 가방이에요. 버릴 수가 없더라고요. 소중한 추억이고 엄마의 애정이 담긴 터라 제겐 단순한 가방 그 이상의 의미거든요.”
2026년 3월2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명품 수선업체 ‘강남사’를 찾은 김예지(40)씨는 손잡이가 해진 루이뷔통 가방의 모노그램 무늬를 한참이나 쓰다듬었다. 김씨는 “뉴스를 통해 대법원 판결을 접하고 몇 년이나 벼르던 리폼을 하기 위해 대구에서 한달음에 달려왔다. 상식적인 판결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현대판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 불린 ‘강남사 대 루이뷔통’의 소송이 강남사의 ‘역전승’으로 끝났다. 세계적 명품기업이자 프랑스 시가총액 1위인 ‘루이뷔통’이 대한민국 최고 로펌 ‘김앤장’을 앞세워 한국의 소규모 수선업체 사장을 상대로 4년간 벌였던 상표권 침해 소송에서 2월26일 대법원이 1·2심 판결을 뒤집고 강남사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수선업자가 가방 소유자로부터 개인 사용 목적의 리폼 요청을 받아 리폼한 뒤 소유자에게 반환한 경우엔 상표권 침해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낡은 명품 가방과 택배 상자, 가죽과 가방 부품들로 어수선한 강남사에서 소송의 당사자인 이경한(59) 대표를 만났다.
소송 결과가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이씨는 몰리는 손님을 응대하느라 정신없다고 했다. 하루 20~30건이던 리폼 의뢰가 더 늘면서 손님들의 기다림은 기약 없이 길어지고 있단다. 앞서 대구에서 온 김예지씨에게도 “12월이나 돼야 완성된다”는 설명을 한 터다. 이씨는 “작업장 선생님(기술자)이 저를 포함해 8명인데, 한 사람이 하루에 리폼할 수 있는 가방은 한두 개에 불과해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도 인터뷰에 적극적으로 응한 이유를 묻자 이씨는 “소비자의 고쳐 쓸 권리와 그걸 도와주는 수선업자의 작업이 불법이 아니라는 사실을 널리 알리고 싶어서”라고 답했다. 4년간 거대 기업과의 소송에 시달리느라 몽유병 증세까지 생길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그는 “상식적인 판결을 얻어내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소송의 시작은 2022년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느 날 김앤장 로펌을 통해 루이뷔통 프랑스 본사에서 내용증명이 날아들었다. ‘루이뷔통 가방 리폼을 하는 것은 상표권 위반이고 적발되면 수천만원의 벌금을 물릴 테니 앞으론 절대 하지 않겠다는 확약서에 날인하라’는 내용이었다. “주변에 수소문해보니 동종 업계 사장님들이 죄다 같은 내용증명을 받은 겁니다. 깜짝 놀라고 겁먹을 수밖에 없죠. 모두가 확약서에 사인했어요. 전국에서 저만 거부했다더군요.”
몇 달이 지나 소장이 도착하면서 본격적인 소송이 시작됐다. “자기 돈 주고 산 가방이 낡아 수선하거나 리폼하고 싶은데 기술이 부족하다며 수선집을 찾는 건 소비자의 당연한 권리 아닌가요? 이를 도와주고 밥 벌어 먹고사는 우리 같은 수선공들이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는 루이뷔통의 주장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어요.”
자기 생각이 ‘일반의 상식’에 해당한다고 여긴 ‘죄’로 기나긴 소송에 휘말린 그는 1·2심 판결에 절망했다고 했다. ‘루이뷔통 고유의 로고가 박힌 가방을 리폼하는 것은 새로운 상품을 만드는 행위로 상표권을 침해하는 불법’이라는 루이뷔통의 주장을 1심(서울중앙지법)과 2심(특허법원)까지 모두 인정하며 이씨에게 “15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한 탓이다. “저는 배움이 길지 않아 법은 잘 몰라요. 하지만 소비자가 루이뷔통 가방을 살 때 이미 상표권을 넘겨준 거 아닌가요? 저는 소비자가 맡긴 가방을 리폼해서 의뢰자에게 그대로 돌려준 것뿐인데….”

2026년 3월2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강남사’ 사무실에서 만난 이경한 대표가 루이뷔통과의 소송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1심에서 패소한 뒤 억울해하던 이씨의 눈에 띈 것이 이 사건과 관련한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글이었다. 박 교수는 ‘무릎이 해진 바지를 잘라서 입고 다니면 바지 제조사에 로열티를 내야 하느냐’고 반문하며 루이뷔통과 1심 판결을 비판했다. “박 교수님께 전자우편을 써서 도움을 청했어요. 박 교수님을 통해 오픈넷 등 관련한 활동을 하는 단체가 서명운동을 하고, 국외 지식재산법 전문가들의 의견서를 제출하는 등 도움을 준다는 것도 알았어요. 박 교수님이 ‘절대 포기하면 안 된다. 세상을 바꾸려면 싸워야 한다’고 하셨어요. 그분 도움을 받으며 공부하면서 소송에 임했죠.”
1·2심에서 패소하면서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지만 절대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여든다섯 어머니와 국제결혼을 한 아내, 4살·8살·10살 세 아이까지 여섯 식구를 부양할 생업을 이어가야 한다는 절박함과 한국을 우습게 보는 루이뷔통의 행태에 대한 괘씸함 때문”이었다고 했다. 루이뷔통이 한국에서 한 해 1조7천억원(2023년 기준)의 매출을 올리면서도 에이에스(AS)에는 소극적이라는 게 이씨의 판단이다. “명품 수선공들은 과거 봉제산업이 활황일 때 도제식으로 기술을 배운 사람들이에요. 한국 명품 시장이 커지면서 2000년대 들어 명품기업들이 우리 같은 사설업체에 에이에스(AS·사후관리)를 맡기면서 비로소 ‘명품 수선업체’라는 말이 생긴 겁니다. 고가의 명품 가방을 파는 데만 급급하고 에이에스는 나 몰라라 했던 명품기업들이 이제 와 불법 운운하는 거죠.”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강남사’ 사무실에는 이경한 대표를 포함해 수선 기술자 8명이 일하고 있다. 짧게는 8년에서 길게는 50년이 넘는 경력을 자랑한다.
실낱같은 희망이 되살아난 건 대법원이 이례적으로 2025년 12월 ‘공개변론’을 진행하면서다. 이씨는 소송 시작 이후 그때 처음으로 “판사가 내 말에 귀를 기울여준다”고 느꼈다. 대법원 판결 당시 “악!” 하고 소리를 질러 법원 보안관리직원의 제지를 받을 정도로 기쁘고 놀랐다는 이씨. 그는 이번 판결을 통해 35년 수선 기술자로서의 자존심과 동종업계의 밥줄을 지켜낸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기쁜 것은 소비자의 추억과 권리를 지켜낸 일이라고 했다. “소송 과정에서 손님 30~40명이 의견서(사실확인서)를 써줬어요. ‘아내 생일 선물, 어머니 유품, 월급 받아 산 첫 명품’ 등 사연도 제각각이에요. 모두 추억이죠. 그냥 버리면 수백만원짜리 쓰레기가 돼 환경오염까지 시킬 물건이에요. 루이뷔통은 특히 피브이시(PVC) 재질이라 잘 썩지도 않는다고요. 비싼 가방 오래오래 아끼고 고쳐 쓸 소비자의 권리를 보장한 판결을 제 손으로 받아냈다는 게 뿌듯합니다.”
4년이라는 긴 시간, 6천만원이라는 소송 비용, 과도한 사회적 논란 등으로 지치기도 했지만, 힘내라고 응원해준 손님들과 단 한 명의 이탈도 없이 사무실을 지켜준 7명의 동료 덕분에 이겨낼 수 있었다는 이씨. “오늘 저녁 동료들과 삼겹살에 소주 한잔으로 승소를 자축하려 한다”고 했다. 그리고 소송을 건 루이뷔통엔 이렇게 일갈했다. “수선이나 리폼을 맡기는 가방은 버릴지 말지 고민할 만큼 낡은 상품들이에요. 루이뷔통이 앞으로 에이에스 기간과 폭을 넓혀주는 서비스를 하면 저 같은 영세 소상공인한테 시비 걸 일은 없지 않을까요? 대를 물려 오래오래 써서 명품이라면서요. 그게 이른바 ‘명품 브랜드’가 가져야 할 자세 아닐까 싶네요.”
글·사진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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