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4월30일 오전 서울역 앞 버스환승센터의 한 버스 운전대 앞에 서울 시내버스 임금협상 결렬에 따른 노조의 ‘준법투쟁’ 안내문이 놓여 있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2004년 서울시에 도입된 시내버스 준공영제가 별다른 투자 없이도 안정적인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수단으로 변질되면서 ‘돈 먹는 하마’라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서울시가 버스 준공영제 개선을 위해 발주한 연구에서도 제도에 근본적인 문제점이 있다는 결과가 나온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시와 서울시버스운송사업조합(버스조합)의 준공영제 협약서에 개정 및 갱신 조항이 없는데다 재정 지원의 근거인 표준운송원가(시내버스 한 대를 하루 운행 및 유지하는 데 들어간 표준화된 비용)에 일부 항목이 과다 책정된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서울시는 2004년 7월 시내버스 회사들의 이익단체인 버스조합과 ‘시내버스 준공영제 시행 협약서’(협약서)를 근거로 행정협약을 맺어 준공영제를 시행했다. 민간 시내버스 회사들의 불법 운행과 과도한 수익 경쟁을 막고 비수익 노선 운행을 통해 공공성을 확보하겠다는 취지로 도입했다. 준공영제는 교통약자의 이동권을 보장하고자 수익이 떨어지는 노선을 운영하는 시내버스 회사에 적정 이윤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설계됐다.
서울시는 협약서에 표준운송원가 규정을 명시해 시내버스 회사의 이윤을 보장했다. 표준운송원가에 인건비와 연료비 외에 ‘기본 이윤’을 포함했다. 시내버스 회사가 버스 한 대를 하루 운행했는데 운송 수입이 표준운송원가(2025년 기준 86만5353원)에 못 미치면 그 차액분을 전액 서울시가 보전한다. 표준운송원가는 2년마다 버스조합이 제출한 자료를 외부회계기관이 검토한 뒤 산정되는데, 매번 상승했다.
이에 버스 이용객이 급감했던 코로나19 시기를 전후로 시내버스 회사가 ‘땅 짚고 헤엄치기’로 사업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시내버스 회사에 투입된 재정 지원 규모는 코로나19 시기(2022~2023년)에 연 8천억원을 넘어섰다. 2024년부터 연 4천억원대로 내려앉긴 했지만, 그간 재정지원금이 연 2천억원 중후반대에 머무른 점에 견줘보면 적지 않게 증가한 셈이다. 게다가 수도권 도시철도 확충까지 고려하면 버스 이용객은 더욱 줄어 재정 지원은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서울시가 적자를 무조건 보전해주는 사업이라는 인식이 굳어지자, 사모펀드마저 버스회사 인수에 열을 올렸다. 기존 버스회사들은 배당성향(순이익 중 배당금 지급 비율)을 2015년 30.5%(222억원)에서 2019년 83.9%(581억원)로 높였다. 이영수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은 2025년 11월11일 시민단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주최한 기자회견에서 “서울시가 적자를 이유로 버스요금을 인상했지만, 버스회사의 이윤과 배당은 계속 늘었다. 여기에 사모펀드가 물밀듯이 들어오고 있다”고 경고했다. 앞서 한겨레도 2023년 6월 ‘준공영제 버스 삼킨 사모펀드’ 탐사 보도를 통해 사모펀드가 준공영제 버스회사를 무더기로 사들인 뒤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받아 배당 잔치를 벌이는 실태를 고발한 적이 있다.
서울시가 뒤늦게 준공영제 시행 20주년을 맞아 ‘시내버스 준공영제 혁신 용역’에 착수해 2024년 9월 보고서를 냈는데, 여기서도 ‘사업 운영에 따른 각종 위험을 공공이 떠안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보고서는 표준운송원가에서 약 10%를 차지하는 연료비의 경우 유가 변동 위험을 전부 서울시가 부담했고, 70% 이상을 차지하는 인건비 역시 노사 간 자율 협상으로 조정하기보단 표준운송원가 한도 상향에 의존했다고 설명했다. 표준운송원가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연료비와 인건비를 공공이 책임지다보니 경영진의 경영 효율성 유인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물가감시센터의 남정기 회계사는 “서울시가 인건비를 모두 지원하다보니 노사 간 실질적인 협상이 이뤄지지 않는다. 그러다 협상이 틀어지면 노동자들이 파업하고 그들의 요구대로 (임금 인상이) 이뤄진다”며 “뒤늦게 준공영제를 도입한 청주시의 경우 이런 문제점들을 보고 인건비 인상 과정에서 공공기관이나 공무원의 임금 인상률을 고려하고 있다. 세금이 들어가는 준공영제인 만큼 임금 인상에도 공공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2025년 11월11일 서울 종로구 경실련 강당에서 서울시 버스 준공영제 개편안 분석 발표 기자회견에 앞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경실련 제공
보고서는 또 표준운송원가에 포함된 일부 항목이 과다 정산된 사례를 공개하며 새로운 산정 방안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구체적으로 2021년 기준 표준운송원가에 포함된 13개 항목 중 사무관리직 인건비 등 6개 항목에서 163억원이 과다 정산된 사실을 거론하며 “재정 지원 규모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표준운송원가 기준과 재정 지원의 적정성에 대한 논란이 발생할 수 있다”고 적시했다. 특히 44억원이 과다정산된 타이어비와 정비비를 놓고선 “차량유형을 구분하지 않고 버스업계에서 통상적으로 인정되는 사유를 서울시에서 인정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표준운송원가는 준공영제를 지탱하는 핵심 요소였지만, 현재는 재정지원금 폭증을 유발하는 주된 원인이 됐다. 서울시는 표준운송원가에 포함된 ‘기본 이윤’ 외에 성과평가에 따라 ‘성과 이윤’을 업체 간 차등 지급해 경쟁을 유도한다고 설명하지만, 이는 절반만 맞는 설명이다. 보고서는 “상대평가 방식으로 성과평가가 이루어져 하위권에 있는 버스 업체는 기본 이윤만 받고 서울시 평가매뉴얼 준수를 통한 개선 의지가 미흡하다”고 했다.
근본적인 대책으로 표준운송원가 정산 방식을 개선해야 하지만, 이는 준공영제 협약서를 개정해야만 가능하다. 문제는 준공영제 협약서에 개정·갱신 조항이 없어 서울시와 버스조합 간 논의가 20년째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재정 지원을 조건 없이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버스조합이 먼저 협약서 개정을 위해 나설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이영수 연구위원은 “민간 사업자는 협약 개정 때 자신의 이익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는 조항에 반대하며 협약 갱신을 거부할 것”이라며 “준공영제의 위기는 서울시가 법적 근거 없는 행정협약 체계에 의존하면서 공적 권한을 상실한 구조적인 결과”라고 말했다.
보고서는 “표준운송원가 산정에 전문기관의 용역 결과를 정기적으로 반영하는 조항을 추가할 필요가 있다”며 협약서 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또 “버스 업체들의 부실 운영을 방지할 수 있는 준공영제 퇴출 조항이 필요하고 정기적으로 협약서를 개선할 수 있는 조항도 추가해야 한다”며 개정 협약서 초안까지 제안했다. 시민단체를 중심으로는 ‘서울시가 공공에 불공정한 규정이 많은 협약서를 깨고 버스조합과의 소송까지 불사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서울시는 기존 협약서가 품고 있는 문제점에 공감하면서도 개정에는 소극적인 입장이다. 서울시 버스정책과 관계자는 한겨레21에 “20년 전 맺어진 협약이기에 버스회사들의 배당 등에 대한 검토는 불충분했던 게 맞다. 그래서 협약서 개정 역시 검토할 수 있다”면서도 “굳이 협약서를 개정하지 않더라도 업체 평가를 통한 재정 지원으로 준공영제 취지에 위반하는 업체들에 불이익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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