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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코레일 간부, 현대로템에 3900억원대 입찰 정보 빼돌렸다

적발 뒤 유출 직원 감봉 조처만…현대로템 입찰가 99.9% 가격에 사업수주
등록 2025-10-29 00:24 수정 2025-10-29 05:20
케이티엑스(KTX) 동력분산식 고속철도 EMU-260(이음) 열차. 코레일 누리집 갈무리

케이티엑스(KTX) 동력분산식 고속철도 EMU-260(이음) 열차. 코레일 누리집 갈무리


한국철도공사(코레일) 간부가 2024년 고속철도 납품 입찰과 관련돼 있는 용역 보고서 등을 빼내 철도·방산 대표기업인 현대로템에 건넸다가 코레일로부터 징계를 받은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하지만 코레일은 이후에도 이 고속철도 납품 입찰을 그대로 진행하면서 사실상 ‘현대로템 용역수주 몰아주기’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앞서 현대로템은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를 통해 윤석열 정부에 로비를 한 뒤 1조7960억원 규모의 고속철도 차량 제작·정비 사업을 수주했고, 이후 코레일 고위직 5명을 자문역으로 특별채용한 사실이 한겨레21 단독 보도로 드러난 바 있다.

직무 관련 비밀유지 의무 위반에 ‘솜방망이’ 징계

2025년 10월28일 윤종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코레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와 한겨레21 취재를 종합하면, 2024년 1월 코레일 입찰 관련 부서 고위직(1급) 간부인 ㅎ씨는 차장급(3급) 간부 ㅅ씨에게 고속철도 입찰 정보가 담긴 용역 보고서 등을 공유했다. 이 용역 보고서 등에는 코레일이 2024년 5월 공고한 3900억원대 동력분산식 고속철도 EMU-260 78량 입찰과 관련한 조건과 평가 기준 등을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 담겨 있었다. ㅅ씨는 이 자료를 2024년 1월 전자우편을 통해 현대로템 쪽에 건넸다. 현대로템이 3900억원대 고속철도 사업과 관련한 내부 정보를 입찰 넉달 전에 미리 확보한 것이다.

코레일은 2024년 4월 전산 감사 과정에서 이 사실을 파악하고 ㅅ씨가 직무 관련 비밀 유지의무를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코레일은 일단 코레일 대전 본사에서 근무하던 ㅅ씨를 대전의 한 부속기관으로 인사 조처한 뒤 추가 조사를 진행했다. ㅅ씨는 감사 과정에서 감사실에 “용역 보고서 유출에 책임을 통감한다. 중요한 자료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해명했지만, 직무상 비밀 누설을 금지한 한국철도공사법 제8조 위반 등에 따라 ‘감봉’ 징계를 받았다. 철도 입찰의 주요 업무를 맡는 고위직 ㅎ씨 또한 직무 관련 자료 취급 소홀 책임을 물어 다른 지역으로 전보 조처됐다.

우선 ㅅ씨와 ㅎ씨가 감봉 징계와 전보 조처에 그친 것을 두고 ‘솜방망이’ 징계였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윤종군 의원은 “수천억원대 혈세가 투입되는 대형 입찰을 앞두고 내부 정보가 외부로 유출됐다면, 이는 ‘징계 사안’이 아니라 명백한 ‘수사 사안’”이라며 “제 식구 감싸기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 국토교통부는 즉시 감사에 착수하고, 입찰 전 과정을 전수조사해 실효성 있는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코레일, 사전 유출 인지하고 입찰 강행

 

문제는 두 사람의 비리로 끝나지 않았다. 코레일은 현대로템에 사전 정보가 유출된 3900억원대 동력분산식 고속철도 EMU-260 78량 입찰을 그대로 진행했다. 그러면서 납품 실적에 대한 입찰 기준을 현대로템에 유리하게 바꿨다. 발주자인 코레일이 입찰 참가 기업의 납품 실적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이냐는 입찰 여부를 가르는 결정적 요소다.

2024년 5월 코레일이 공고한 EMU-260 78량 입찰 기준을 보면, 입찰 기준으로 인정되는 납품 실적은 ‘동력분산식 전기철도 차량(단 고속철도 차량에 한함)’이라고 표기돼 있다. 즉 이전에 동력분산식 고속철도 차량을 납품한 실적이 있어야 점수를 주겠다는 뜻이다. 동력분산식 고속철도 차량은 각 차량에 동력기관이 분산된 열차로, 앞뒤에 동력이 집중된 동력집중식 열차와 다르다. 현재 동력분산식 철도차량을 만드는 기술은 현대로템 외에도 2~3개 회사가 보유하고 있지만, 동력분산식 ‘고속철도’를 납품한 실적은 현대로템밖에 없다. 이는 앞선 2021년 11월 코레일이 낸 고속철도 입찰 기준과 차이가 있다. 2021년에는 동력분산식 철도차량을 납품했기만 하다면 ‘고속철도’가 아니어도 납품 실적을 인정한다는 기준이 있었다. 철도업계 관계자는 “사실상 현대로템 외에는 입찰을 제한하는 조건”이라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2024년 5월 EMU-260 78량 입찰에는 현대로템이 단독으로 응찰했다. 이후 한 차례 유찰됐지만, 결국 현대로템이 사업을 수주했다. 이때 현대로템이 써낸 입찰금액은 3897억원이었다. 발주가 3900억원의 99.9%가 넘는 금액으로, 단독 응찰이기에 발주가를 거의 그대로 받으며 사업을 수주할 수 있었다. 보통 경쟁입찰에선 정부가 예정한 사업비의 90% 이하 가격을 제시하는 업체도 많아 경쟁으로 인한 예산 절감을 이룰 수 있다. 하지만 현대로템은 정부가 예정한 사업비에서 사실상 최대치의 가격을 제안하고도 이 돈을 그대로 가져가게 된 것이다.

입찰가 99% 금액으로 사업 수주…코레일-현대로템 사전 조율 의심

 

이 과정에서 코레일과 현대로템의 ‘사전 조율’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한 철도 전문가는 “입찰 정보를 사전에 습득하면 일차적으로 기업 입장에서는 준비 방향을 알 수 있고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최선의 제안서를 낼 수 있다”며 “또한 미리 입찰 정보를 공유받고, 그 이후 입찰에서 해당 기업에 유리한 공고가 났다는 것은 입찰 기준 자체가 ‘사전 조율’됐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현대로템에 유리한 쪽으로 입찰 기준을 변경한 방법은 앞선 2022년 10월 현대로템 쪽이 2023년 코레일 고속철도 차량 제작·정비 사업 입찰을 앞두고 명태균씨에게 “꼭 좀 부탁드린다”고 로비를 하며 기술평가 기준을 자사에 유리하게 정해달라고 요청한 문건을 건넸을 때와 수법이 같다. 당시 현대로템이 명씨에게 건넨 문건에는 경쟁사의 “동력분산식 고속철도 (차량) 제작 실적이 전무”하다며 동력분산식 고속철도 납품 실적이 없는 업체의 입찰 제한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 로비 문건이 전달된 이후 현대로템은 2023년에만 1조7960억원 규모의 고속철도 차량 제작·정비 사업을 수주했다. 이후 현대로템 대표이사 등이 명씨에게 감사 인사를 하며 난화분을 선물로 보냈고(제1564호 참고), 2023년 입찰 수주를 전후로 코레일 고위직 5명을 현대로템 자문역으로 특별채용한 사실도 한겨레21 취재로 확인된 바 있다.(제1568호 참고)

코레일 “유출 자료 입찰 기준과 무관…감사원 적정성 검증 완료”

코레일 쪽은 이에 대해 “(규정 위반자에 대해) 내부 규정에 따라 징계했다. 유출 자료는 차량운영에 관한 것으로 입찰 사전 규격(입찰 기준)과는 연관성이 없다”고 해명했다. 코레일은 현대로템에 유리한 입찰 기준이 있었다는 지적을 두고는 “납품실적 범위는 감사원 컨설팅 및 외부 기관을 통해 적정성 검증을 완료했다”고 밝혔다. 현대로템 쪽도 “2024년 5월 EMU-260 입찰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참여했다. 입찰 관련 정보를 전달 받은 바가 없고, 활용한 바 또한 없다”고 해명했다. 현대로템은 입찰 기준을 두고는 “코레일은 2021년부터 고속철 입찰의 참가 자격을 제한하지 않고 있다”며 특혜 의혹도 부인했다.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채윤태 기자 chai@hani.co.kr·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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