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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같이 발뺌만… 법정에 선 내란범들

문상호·박안수·여인형·이진우 등 군 고위 지휘관 재판 시작… 곽종근만 유일하게 혐의 인정
등록 2025-04-05 09:35 수정 2025-04-07 07:42
대통령 윤석열이 자신의 탄핵심판 사건 마지막 변론기일인 2025년 2월 25일 저녁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최종의견을 진술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제공

대통령 윤석열이 자신의 탄핵심판 사건 마지막 변론기일인 2025년 2월 25일 저녁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최종의견을 진술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제공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윤석열 탄핵심판 사건 선고를 2025년 4월4일까지 질질 끄는 사이에,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이 최고 지휘자로서 일으킨 12·3 내란사태에서 주요 역할을 담당했던 현직 군 고위 지휘관들 형사사건이 공판 심리 절차를 시작했다. 내란 중요임무에 종사한 혐의, 그리고 직권을 남용해 부하들에게 위법한 명령에 따르도록 지시한 혐의로 기소된 장성급 장교들의 유·무죄를 가리는 절차인 증인신문이, 기일 변경이 없다면 4월10일을 시작으로 차례로 진행될 예정이다.

 

내란중요임무종사·직권남용 등으로 기소

그에 앞서 군검찰이 윤석열의 위헌·위법한 비상계엄 선포 전후로 각 피고인이 저지른 범죄가 무엇인지를 설명하고(공소사실, 죄명, 적용 법 조항 낭독), 군검찰이 밝힌 공소사실의 인정 여부를 피고인 또는 그의 변호인이 진술하는 첫 공판이 3월21일과 26일, 28일 서울 용산구 중앙지역군사법원 심리로 열렸다.

윤석열과 전 국방부 장관 김용현이 기소된 형사사건 못지않게 군 고위 지휘관들 재판 역시 중요하다. 군이 더는 국군통수권자와 국방부 장관, 사령관 등 상급자의 위법한 명령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이 잘못된 행위인지를 명확히 규명하고, 이를 통해 군이 위법한 명령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 시민, 그리고 시민의 뜻을 대의해 운영되는 민주주의 제도는 군인이 총을 겨눌 대상이 아니라 지켜야 할 대상이라는 사실이 군에 상식으로 깊이 뿌리내리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피고인 호칭은 생략했다.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이 2024년 12월10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이 2024년 12월10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 정보사령관 문상호가 구속기소된 사건 첫 공판은 3월21일 약 2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윤석열이 2024년 12월3일 비상계엄을 선포하자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 과천청사 인근에서 대기하던 정보사령부 부대원 10여 명에게 선관위를 점거하고, 부대원 30여 명에게 선관위 직원을 체포하라고 지시했다는 것이 문상호의 공소사실 요지다.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 수사 결과, 문상호는 비상계엄 선포 전인 2024년 11월9일과 17일, 12월1일 경기 안산시에 있는 패스트푸드점과 카페에서 전 정보사령관 노상원을 만나 ‘비상계엄이 선포될 것이고, 계엄 선포 후에 설치되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에 부정선거 의혹을 수사할 제2수사단이 설치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선관위 점거와 선관위 직원 체포를 사전에 준비한 것으로 조사됐다.

첫 공판에서 군검찰이 약 120쪽 분량의 발표자료를 화상기로 띄워 모두(첫머리) 진술을 했다. 윤석열이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2024년 3월 말부터 4월 초에 김용현 당시 경호처장 등 참모들에게 ‘비상대권’(국가비상사태 때 대통령이 계엄과 같은 비상조치를 할 수 있는 권한)을 언급한 일부터 시작해 윤석열이 2024년 9월 김용현을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하고 이후 비상계엄 선포를 사전에 계획한 일, 윤석열과 김용현이 수도방위사령관 이진우와 육군특수전사령관 곽종근, 국군방첩사령관 여인형 등 주요 군 고위 지휘관들과 경찰청장 조지호, 서울경찰청장 김봉식에게 비상계엄 선포 후 할 일을 명령한 일, 비상계엄 선포 후 각 주요 군과 경찰이 한 일의 주요 내용을 모두 설명하느라 첫머리 진술에만 약 1시간이 걸렸다. 이는 다른 군 고위 지휘관 재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문상호는 두 팔을 피고인석 책상에 올려놓고 손깍지를 하거나 왼손 손바닥을 오른손 위에 포개면서, 입을 꾹 다문 채 군검찰 발표자료를 띄운 피고인석 모니터 화면을 응시했다.

 

‘내란 고의, 실제 폭동 없었다’는 문상호

미수범(범죄를 실행하려다가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범죄 또는 그런 범인)도 처벌하는 내란죄를 구성하는 요건은 다음과 같다. 헌법 질서를 파괴할 수 있을 정도로 상당히 조직화한 다수인의 공동 범행이어야 하고, 그것은 다수인이 결합해 상대방을 폭행하거나 협박하는 ‘폭동’ 행위로 나타나야 한다. 그리고 이런 폭동 행위가 국토를 참절(어떤 국가 영토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점거해 그 국가의 주권 행사를 사실상 배제)하거나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국헌을 문란할 목적’이란 헌법 또는 법률에 정한 절차에 의하지 않고 헌법 또는 법률 기능을 소멸시키는 일, 또는 헌법에 의해 설치된 국가기관을 강압에 의해 전복 또는 그 권능 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일을 뜻한다. 여기서 ‘권능 행사를 불가능하게 한다’고 하는 것은 그 기관을 영구히 폐지하는 경우뿐만 아니라, 사실상 상당한 기간에 걸쳐 그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만드는 경우도 포함한다.(대법원 96도3376 전원합의체 판결)

문상호 변호인은 공판 전 법원에 제출한 의견서를 통해 ‘피고인에게는 내란의 고의(다수인이 집합해 폭동을 일으킨다는 인식과 의사)가 없었고, 국헌문란 목적이 없었으며, 폭동으로 볼 만한 행위가 없었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다. 내란죄 구성 요건을 모두 부인한 것이다. 변호인은 첫 공판에서도 “(공소장에 적힌) 사실관계 중에 세부적인 내용이 사실과 다른 부분이 많이 있다”며 “향후 증인신문을 통해 (군검찰의 공소사실을) 탄핵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옆에서 변호인 말을 듣고 있던 문상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재판부는 군검찰의 의견을 받아들여 증인 7명을 대상으로 하는 신문을 다음 공판기일인 2025년 4월10일 내내 진행하기로 했다. 이들은 문상호에게 선관위 점거와 선관위 직원 체포 지시를 받고 선관위에 출동한 부대원이다.

비상계엄 선포 후 계엄사령관으로 임명된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이 2024년 12월5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한겨레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비상계엄 선포 후 계엄사령관으로 임명된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이 2024년 12월5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한겨레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포고령 발령, 정치인 체포조 편성했는데도…

3월26일엔 전 계엄사령관 박안수곽종근이 구속기소된 사건 첫 공판이 2시간 가까이 열렸다. 박안수는 △국회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하는 내용을 포함하는 위헌·위법한 포고령 발령 △비상계엄 선포 후 계엄사령부 구성 △경찰청장 조지호에게 국회 주변 경력 증원과 국회 출입 차단 요구 △육군특수전사령부(특전사) 헬기의 국회 비행을 승인한 혐의 등을 받는다. 곽종근은 특전사 병력 460여 명을 국회로 출동시켜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요구안 의결 방해를 시도하고, 다른 특전사 병력을 선관위 과천청사(130여 명)·선거연수원(130여 명)·관악청사(180여 명) 등에 출동시켜 해당 기관 봉쇄를 시도한 혐의 등을 받는다.

1시간 가까이 이어진 군검찰의 첫머리 진술을 피고인석에 앉아 자세 변화 없이 듣던 박안수도 문상호와 같은 취지로 혐의를 부인했다. ‘윤석열, 김용현 등과 함께 비상계엄을 사전에 모의한 적이 없고, 비상계엄 선포가 법에서 정한 요건을 위반한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명령을 수행했기 때문에 국헌문란 목적과 폭동의 고의가 없었다. 또 김용현이 비상계엄 선포 후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주재하며 명령 위반 시 항명죄로 다스린다고 강요했기 때문에 이런 강요로 한 행위는 벌할 수 없다’는 것이 변호인의 주장이었다.

재판부는 박안수 사건 다음 공판을 4월24일 열기로 했다. 이날은 특전사 헬기가 서울 상공에 진입할 수 있도록 박안수에게 건의한 인물인 육군본부 정보작전참모부장 조종래, 특전사 헬기의 서울 상공 진입 승인 요청을 계엄사령부에 전달한 수도방위사령부(수방사) 작전처장 김문상에 대한 증인신문이 진행될 예정이다.

3월28일, 3시간 가까이 진행된 여인형, 이진우 구속기소 사건 첫 공판에서 두 피고인의 변호인도 ‘내란죄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여인형은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 후 우원식 국회의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대표 등 주요 인사 10여 명을 체포해 수방사 지하 구금시설로 이송할 체포조 편성을 지시하고, 방첩사령부 병력 110여 명을 선관위 과천청사로 보내 전산실 내 서버 반출을 시도한 혐의를 받는다. 이진우는 수방사 병력 210여 명을 출동시켜 국회를 봉쇄하고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요구안 의결 방해를 시도한 혐의를 받는다.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이 2024년 12월7일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이 2024년 12월7일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이 2025년 1월14일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에 출석하기 위해 국회에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이 2025년 1월14일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에 출석하기 위해 국회에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여인형의 변호인은 공소장에 적힌 사실관계는 대체로 인정한다면서도 “대통령이 ‘비상대권’을 말하는 자리에 피고인이 함께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비상계엄 선포 사전 모의에 참여하고 계엄에 동조했다고 평가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피고인을 포함한 군인들은 계엄령 선포 배경과 목적, 대통령이 계엄령 선포 후 어떤 조치를 한다는 것인지 사전에 인식하지 못했다”며 “대통령과 장관 명령에 따라 계엄 임무를 수행한 군인들을 내란범으로 처벌하는 것은 법리와 상식에 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진우의 변호인은 “국헌문란 목적과 폭동의 고의가 없다. 피고인은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티브이(TV) 생중계를 보고 알았고, 그 전까지 비상계엄 선포를 위한 사전 모의나 준비에 관여한 사실이 없다”며 “비상계엄 선포 후 긴박한 상황에서 국회에 병력을 출동시키라는 명령이 위법한지를 판단할 능력이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피고인은 국회에 출동한 병력에 생명과도 같은 소총을 차에 두고 내리라고 지시했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훈장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 사람이 왜 구속됐는지 저는 알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곽종근 전 육군특수전사령관이 2024년 12월10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단상에 서서 의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곽종근 전 육군특수전사령관이 2024년 12월10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단상에 서서 의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곽종근 “저의 과오를 부인하지 않겠다”

혐의를 인정한 피고인은 곽종근이 유일했다. 곽종근은 ‘피고인은 국헌문란 목적과 일련의 폭동 행위들을 다 인정하는지’를 묻는 재판장 질문에 “예, 그렇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는 변호사가 법원에 제출한 의견서를 통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저는 비상계엄 작전에 참여하면서 그것이 위헌인지, 위법인지 판단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그것이 저의 과오였습니다. 적어도 병사를 지휘하는 사령관이라면 위법 부당한 명령이 무엇인지 판단하고, 위법 부당한 명령이라면 제가 죽는 한이 있어도, 그것을 거부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러지 못하고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의 위법 부당한 명령에 따라 부하를 사지로 몰았습니다. (…) 부하들에게 정말 미안합니다.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저는, 저의 과오를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어떤 법적 책임도 달게 받겠습니다.”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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