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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계산 노동자들이 컴퓨터의 어원?

와트의 증기기관, 배비지·러브레이스의 해석기 등 과학적 호기심 넘어 시장의 필요로 ‘발전’
등록 2024-07-27 14:09 수정 2024-08-02 16:42
증기기관을 발명한 제임스 와트(오른쪽)와 조속기. 위키미디어

증기기관을 발명한 제임스 와트(오른쪽)와 조속기. 위키미디어


앞서 살펴봤듯이, 오늘날 인공지능 개발에서 획기적인 계기를 열어낸 컴퓨터 비전은 인공지능의 한 분야로서 이미지에서 의미 있는 데이터를 추출해 머신러닝을 수행하는 방식이다.(제1521호 ‘딥러닝 새 시대 진짜 열어젖힌 건 누구일까’ 참조) 이제 우리에게 더 친숙한 거대언어모델(LLM) 역시 합성곱신경망을 활용하지만 인간 언어(자연 언어)의 수행 과정에서 데이터를 추출한다는 점이 다르다. 처음에 둘의 차이를 부각하면서 어떤 방식이 진짜 인공지능인지 논란이 있기도 했다. 이미지는 언어보다 더 안정적인 데이터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컴퓨터 비전이 인공지능의 전망을 밝게 한 것도 사실이다.

인공지능에 몸 만들어주기

그러나 페이페이 리가 이미지넷의 문제 해결 방식을 워드넷을 참조해서 찾아냈듯이, 빅데이터 구축과 컴퓨터 하드웨어 발전으로 점점 그 차이가 무의미해질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1948년 미국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에서 열린 힉스 심포지엄에서 워런 매컬러가 했던 유명한 발언처럼, 산업혁명이 더 크고 나은 폭탄을 만드는 일로 귀결한 것과 다르게, “지적 혁명”이 궁극적으로 더 크고 나은 로봇을 만드는 목표를 지향한다면, 결국 인공지능도 인간처럼 말하고 생각하는 로봇으로 완성될 것이다. 향후 자신의 과제는 인공지능에 몸을 주는 것이라는 페이페이 리의 발언은 이런 매컬러의 예언에 대한 오마주처럼 들린다.

그러나 이런 인공지능의 미래에 대한 논의 자체가 호사 취미로 느껴지는데, 지금 현재 인공지능 개발을 둘러싼 경쟁이 순수한 과학적 호기심보다도 시장 동향에 더 영향받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무엇이 진리인지 따지는 “비평”은 대다수에게 의미 없는 일이 돼버렸다. 물론 이렇게 시장 논리가 과학적 호기심을 압도하면서 기술 개발의 방향을 설정하는 경향은 딱히 지금에 와서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다.

산업혁명 이후 19세기에도 비슷한 상황을 목격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은 소형으로 만들어지기 어려웠고 발명자인 와트 자신도 항해를 위해 자신의 증기기관을 개량하는 것에 회의적이었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증기기관을 적용한 증기선이 만들어졌다. 와트가 증기선 제작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이유는 과학적 관점에서 봤을 때 효율성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런 와트의 생각은 당시 성장 가도를 달리며 전세계를 식민화했던 영국 경제의 요구를 이길 수 없었다. 증기선 개발이 성공하리라 믿지 않았음에도 와트는 프로펠러 설계도를 남겨서 결과적으로 후일 증기선의 등장에 기여했고, 자연의 순리를 거스를 수 있게 된 증기선들은 자유롭게 대양을 오가며 서구 문명의 헤게모니 확장에 일익을 담당하게 된다.

이처럼 식민지 개척으로 늘어난 물류는 기존 범선으로 감당할 수 없었고, 선박에 장착하기 위한 증기기관의 개발은 시장의 압박을 받아 와트가 과학적으로 계산했던 효율성 문제를 무시한 채 ‘성장’해갔다. 범선에서 증기선으로 나아간 과정을 “발전”이라고 믿는 이들에게는 미안하지만, 19세기 증기선의 열효율은 6%에 불과했다. 제1차 세계대전 무렵이 돼서야 겨우 증기선 열효율은, 빌헬름 슈미트가 발명한 슈퍼히터 덕분에 11%로 나아질 수 있었다.

와트의 조속기와 자동화

이런 걸 보면, 특정 기술의 등장과 확산이 반드시 합리적인 이유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런 사정은 오늘날 인공지능 개발 경쟁에서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인공지능 작동을 가능하게 하는 에너지 문제나 여러 조건의 한계에 대한 의견은 시장 논리에 밀려서 거의 주목받지 못한다. 자본주의가 발흥하던 시기에 이질적으로 결합한 증기기관과 증기선의 관계는 그 뒤 이어진 기술 발전에 개입하는 자본의 논리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원초적 장면 같은 것이라 볼 수 있다.

와트가 설계한 증기기관은 인간의 손으로 작동시키는 단순한 장치가 아니었다. 증기의 원리를 이용해 실린더를 움직이는 증기 펌프는 이미 상용화돼 있었다. 와트의 증기기관은 실린더의 직선운동을 회전운동으로 만드는 “개선”의 결과물이었다. 이와 같은 기술적 전환에 필수적이었던 것이 바로 조속기(Governor)의 발명이었다. 조속기는 증기기관의 회전운동을 일정하게 조절하는 자동제어 장치다. 와트의 증기기관이 획기적이었던 이유는 바로 이 “자동제어”라는 개념을 기계장치로 실현했기 때문이다.

자동제어는 추상화라는 일반화 과정을 거친다. 와트의 증기기관으로 인해 그 추상적 원리에 근거한 다른 기술의 실험이 이어질 수 있었다. 와트의 조속기는 하나의 기계를 발명한 차원이 아니라, 최초로 정보의 피드백을 통해 내적 메커니즘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자동화 시스템을 세상에 출현시킨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감탄하는 인공지능의 원리가 이처럼 산업혁명의 시원에 이미 기입돼 있었던 셈이다.

이런 까닭에 카를 마르크스는 와트의 증기기관 장치를 가리켜 특수한 목적을 넘어서서 산업 전반에 적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위대한 발명이라고 평가했다. 마르크스는 이런 생각을 기술적 전문성과 사회적인 일반 지식의 결합을 의미하는 “일반 지성”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기도 했다. 인공지능 역시 마르크스적인 개념에서 일반 지성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와트의 증기기관과 자동화에 대한 마르크스 논의는 지금 읽어봐도 고개를 끄덕일 만하다. 마르크스의 진단이 틀리지 않은 것이, 와트의 조속기 모델은 최초로 현대적인 컴퓨터의 원리를 창안한 영국의 수학자 찰스 배비지의 차분기(Difference Engine) 설계에 영감을 줬다. 차분기는 기계식 계산기로, 수학적 계산을 자동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설계한 장치였다.

원거리 항해를 위해 가장 중요했던 것이 항로를 바르게 찾아가기 위한 천문표였는데, 계산원의 작업에 의존하는 방식으로는 정확한 수치를 얻기 쉽지 않았다. 거듭 오류가 발생하는 당시 천문표의 계산을 두고 배비지는 “증기의 힘으로 이 모든 계산이 이루어지기를 신에게 기도한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가 바랐던 것은 당시에 값싼 여성 인력을 고용해서 처리하던 계산 과정을 증기기관을 통해 자동화하는 것이었다.

19세기 여성 계산원과 컴퓨터의 관계
찰스 배비지가 고안한 해석기(왼쪽)와 해석기의 알고리즘을 개발한 최초의 컴퓨터 프로그래머 에이다 러브레이스. 위키미디어

찰스 배비지가 고안한 해석기(왼쪽)와 해석기의 알고리즘을 개발한 최초의 컴퓨터 프로그래머 에이다 러브레이스. 위키미디어


흥미롭게도 오늘날 우리가 전자기계로 인식하는 컴퓨터라는 명칭은 배비지가 차분기를 구상하던 19세기에 여성 계산원을 의미했다. 후일 시인 바이런의 딸인 에이다 러브레이스가 차분기를 한 단계 발전시키는 구상이었던 배비지의 “해석기”(Analytical Engine) 알고리즘을 개발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19세기 영국에서 계산처럼 지루하고 반복적인 작업은 남성보다 “자연”에 가까운 존재인 여성이 담당하는 것이라 믿었다. 이들 계산원은 주로 정부나 천문학회, 또는 해군에서 일하거나 원거리 재택근무를 하기도 했다. 이들 기관은 당시 영국의 제국 경영을 위해 필수적인 작업을 수행했는데, 이때 세계 각지에서 수집된 데이터는 우편으로 주고받았다.

이런 모습은 전자화라는 차이를 제외하면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당연히 우편으로 데이터를 처리하는 과정은 느리고 중간에 오배송이 일어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계산원 역량에 따라 오류가 쉽게 발생할 수도 있었다. 이런 시공간적 편차에 따른 불안정성을 해소하기 위해 배비지는 차분기를 설계했다. 그러나 배비지의 꿈은 시대적 한계 때문에 실현할 수 없었고, 거의 170년이 지난 뒤인 1990년대에 와서야 비로소 퍼스널 컴퓨터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처럼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디지털 기술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래전부터 인류 문명에 배태해 있던 생각들이 새로운 사회적 조건을 만나 현실화한 것이다. 어떤 이들은 현대적 기술에 대한 상상을 고대 신화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이런 관점에서 보면 근대 이후의 세계는 이 유구한 상상을 과학적으로 정식화하고 기술적으로 실현한 결과다.

한때 우리도 개인 컴퓨터의 보급 이전, 신문이나 잡지에 기고하려면 원고지에 일일이 수기로 작성해서 우편으로 보내야 했다. 피시(PC)통신으로 불렸던 전화기 모뎀을 활용한 통신 방법이 처음 등장했을 때 경험했던 편리성은 놀라웠다. 19세기에 배비지가 극복하고자 했던 시공간의 차이가 해결된 것이다. 그 이후 등장한 월드와이드웹은 인터넷을 통한 실시간 통신이라는 신기원을 열었다. 컴퓨터로 작성한 전자문서를 우편이 아닌 전자우편으로 전송하고 그것을 아무런 시간차나 오류 없이 상대방이 받아볼 수 있는 세계야말로 배비지가 차분기를 설계할 때 꿈꿨던 것이었다.

배비지가 구상했던 계산의 자동화는 사실상 속도와 정확도를 의미한다. 이 속도와 정확도는 와트의 증기기관을 선박에 장착해서 증기선을 만들게 했던 유럽 자본주의 경제의 확장에 따른 요구였다. 더 확대된 경제영역은 더 빠르고 안정적인 운송수단을 필요로 했고, 그렇게 더 복잡해진 물류를 관장할 데이터의 수집과 종합은 더 신속하고 정확한 계산 과정을 요청했다. 이런 의미에서 여성 계산원의 노동을 대체한 자동장치에 대한 배비지의 꿈은 순수한 과학적 호기심을 넘어 당시 제국 단계로 진입한 영국 자본주의의 요구에 따른 것이었다.

이론이 현실이 되려면

21세기 인공지능의 봄날도 19세기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과 중국이 앞다퉈 자국의 헤게모니를 관철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기술 개발을 부추기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금융자본시장에서 관심을 끌기 위해 선정적 이벤트도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 분명 인공지능 발전을 추동하는 과학과 기술의 내적인 혁신과 도약도 있지만, 반복해서 강조하자면, 이런 특정 분야의 내적 논리는 사회적 차원과 분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합성곱신경망은 심리학과 수학 분야의 혁신을 통해 현실화했다. 그러나 그 이론이 현실성을 얻기 위해 필요했던 것은 아마존의 메커니컬 터크 같은 글로벌 노동분업체계였다. 마치 배비지의 차분기가 러브레이스의 도움을 받아야 했던 것처럼 오늘날의 인공지능도 가장 단순한 작업을 해줄 노동자를 필요로 한다.

이택광 문화비평가·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영미문화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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